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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아주 사소한 물음이 있었다. 업햄은 인도주의에 입각해 생포한 독일군 포로를 풀어줘야한다고 했고 그렇게 풀어준 포로는 당혹스럽게도 이후 다시 자기 전우에게 칼과 총구를 겨누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업햄은 다시 포로가 된 그 독일군을 사살하게 된다.
이때 이 장면에서 물음이 생겼다. 바로 카메라는 경멸스러운 독일군의 최후의 모습이 아니라 업햄만을 비추었던 점 말이다.
왜일까? 이런 의문이 생긴 이유는 영화에서는 일반적으로 복수 장면에서 복수 대상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며 죽었느냐에 따라 관객에게 커다란 쾌락을 주기 때문에 공포에 질겁한 대상의 표정을 집중적으로 비추게 된다. 그런데 스필버그 감독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하여 이것이 내게 흥미를 줬던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당시에 생각해보았지만 잘 모르겠었는데, 요새 들어 다시 생각해볼 기회가 있어 좀 더 고민을 해보았고 나름의 결론을 얻었다. 그것은 감독이 시청하는 이들이 기대하는 최후를 배신하기 위한 장치였다는게 내 결론이다.
그 독일군은 업햄의 전우들을 공격하는데 열성을 다하는 모습을 내내 보여주었고 그가 의리를 져버렸다고 관객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관객들은 그에게 복수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그의 최후가 어떤지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카메라는 독일군의 최후가 아니라 복수를 마친 복잡한 표정의 업햄을 보여준다. 이는 전쟁에 사적인 서사와 감정을 덧입히는것이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독일군도 결국 장치였을 뿐이다. 그가 전쟁통에서 의리에 따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거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이에 대한 적절한 설명은 의식을 구분하는 전통적인 사회과학의 이론을 도입하는 것이다. 개인의 싸움이면 의리를 생각해 주먹을 멈추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전쟁은 개인의식이 아니라 공동체의식으로 행동한다. 개인의 의식이 어쨌거나 그는 전사(戰士)가 된다. 이에 비견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만화 「진격의 거인」의 라이너이다. 라이너는 마레의 반-엘디아인 이데올로기를 신임했고 그로서 작전을 펼쳤지만 선량한 벽 안의 엘디아인을 대량학살 했다는 걸 인식해가면서 정신적으로 붕괴한다. 그의 사례만 보더라도 개인의식과 공동체의식은 독립되어있지 않으며 영향을 줄 수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업햄의 복수 장면은 결국 전쟁통에 처한 인물들에게 사적인 서사를 입히고 있는 관객의 관점을 응시하는 것이다. 실제로 스필버그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생각하는 이 장면의 효과는 분명하게 해석된다. 전쟁 속의 우정, 전쟁 속의 전우애, 전쟁 속의 사랑과 같이 전쟁에 사적인 서시를 외삽해버리는 이데올로기적 대중미디어에 익숙해있는 관람객들에게 전쟁을 똑바로 보라고 말하는 메세지이다.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가 좋다. 하지만 소통 또한 중요하다. 메시지를 전하는 건 친절하게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영화를 할 생각은 없다. -박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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