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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력 자신을 재생산하는데 필요한 생활재의 가치로 정의되는 것이 전통적인 해석이다. 하지만 이런 물음은 당연히 제기된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회는 재생산되는가? 이런 물음들에 대해 윤자영(2012)[각주:1]의 논문에서 많은 도움을 얻게 되었다. 이 글은 조잡한 모델을 담고 있으나 앞으로 이 논의를 마르크스경제학에서 복원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측면에서 공개하고자 한다.

재생산의 개념

윤자영에 따르면 재생산은 다음과 같이 3가지로 구분된다고 한다.[각주:2]

1) 사회 재생산

사회의 재생산이란 사회 체계를 유지시키는 이데올로기, 물질 조건을 의미한다.

2) 노동력 재생산

여기서는 활동, 노동이라는 의미가 부여된다. 즉 노동력을 다음 생산과정에서도 정상적으로 유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휴식, 교육, 훈련 등을 의미한다.

3) 인간 재생산

출산, 수유 등의 돌봄노동이라는 구체적인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전통적인 노동력 가치 정의는 2)번에 귝한된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채언(2009)[각주:3], 정성진(2013)[각주:4] 등은  등가교환 분석에 기반한 노동가치론에서 재생산 영역은 외생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일단 방법론의 정당성은 알겠으나 또 다른 의문을 남기게 된다. 노동력의 가치가 2)노동력의 재생산에 국한된다면 어째서 1)사회와 3)인간은 재생산될 수 있었는가? 가족임금은 어떻게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다시 재생산 문제에 대한 논의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Molyneux(1979)[각주:5]는 가사노동 논쟁이 불합리한 논의로 빠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돌봄노동 대신 가사노동 일반으로, 세대 재생산이 아니라 성인 남성 노동자의 노동력 재생산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서 가사노동이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사회관계와 의미만을 분석했다는 점이다.

또한 사회주의 페미니즘에서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의 분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 예컨대 Braveman(1974)[각주:6], Engels(1972)[각주:7] 등 사회주의자들은 가사노동이 사회주의에서 종식되고 사회화된다는 측면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왔다. 예컨대 생산력의 발전을 통해 여성의 가사노동 부담은 점차 종식될 거라는 생각이다. 윤자영[각주:8]은 이에 대해, 사회주의자들이 가사노동을 여성 억압의 물질적 기초라고만 보았기에, 돌봄노동이 사라지기 쉽지않은 노동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청소, 세탁, 목욕 등을 하루 중 투하하는 노동시간의 비율은 분명 기술, 가격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다. 아이를 돌보는 노동시간은 기술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대체되지 않는 돌봄노동

Folbre(1994)[각주:9]는 가사노동의 한 부분인 돌봄노동을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특정 국면에서 성별과 세대의 권력관계 변화와 관련하여 분석한다. Folbre는 돌봄노동을 가사노동과 분리하기 위해 타인의 상태(capabilities)를 나아지게 하는 대면 서비스 노동으로 정의한다. 여기서 capabilities란 DAUM 영어사전을 보면 능력, 재능, 소질과 같은 개인이 갖고 있는 성질을 표현하는 것 같은데 윤자영의 설명에 따르면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일컫는다고 한다. 이는 돌봄노동은 세 가지의 사회적 관계로 구분된다고 한다.

1) 돌봄 제공자와 돌봄 피-제공자 간에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경우

예컨대 남편과 아내와 같이 피-제공자가 스스로 돌봄노동을 할 수 있음에도 돌봄을 받는 경우이다.

2) 피-제공자가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경우

아이, 장애자, 환자의 경우이다.

3) 호혜에 기반한 상호간 돌봄제공

특별한 설명이 붙어있지는 않으나 돌아가면서 다른 이웃의 아이를 보육해주는 협동조합 정도가 이와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에 의해 돌봄노동은 기술과 경제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육아도우미와 보육원의 존재를 생각해보면 과연 그러한가하는 의문이 먼저드는데, 실제로도 Anttonen(2005)[각주:10]에 따르면 선진국일수록 돌봄노동이 가사노동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하며, Folbre&Yoon(2008)[각주:11]의 연구에서는 1인당 GDP 수준이 높은 국가일수록 전체 부모의 무급노동시간이 줄어들지만 사람을 돌보는 노동은 쉽게 대체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자신의 자식은 '대체'될 수 없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는 제3자에게서 보육서비스를 받는 것은 비교불가능한 리스크를 갖고 있을 것이다. 내 경험에 따라도 대부분의 육아를 하는 직장인 여성들은 직장에 나왔을 때 육아를 어머니에게 맡기고 있었다. 노년의 여성 역시 육아부담이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Folbre는 농경사회에서 돌봄노동은 농경에 아동노동을 투입하는 것과 돌봄 제공자가 나이가 들어 이 자식들에게 돌봄노동을 피-제공받을 것을 기대할 수 있었기에 여성 개인에게도 출산과 양육을 할 동기를 주었다고 판단한다. 그와 달리 산업사회인 현대에는 돌봄을 제공한 자식에게서 돌봄을 제공받을 기대를 하기 어렵고 아동노동이 금지되어 있기에 돌봄노동의 비용이 크다는 점, 그리고 이 미래의 노동력에게 돌봄노동을 제공한다고 해도 이 미래 노동력이 주는 혜택이 '사회화'된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점에서 Folbre는 성별, 국가/자본/가족이 공평하게 돌봄노동을 공평하게 분담하는 사회경제체제를 구축하여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가족임금 MODEL

여기서 나는 Folbre가 농경사회와 산업사회를 비교하는 작업에서 하나의 의문이 들었다. 왜 산업사회로 이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산업사회 내에서 가부장제적 가족이 유지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예컨대 이렇게 생각해보자. 농경사회에서 가족은 아동노동을 투입하여 생산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돌봄노동의 비용에도 불구하고 개인에게 이득을 줄 동기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단순화를 위해 노동력의 가치를 상태(capabilities) 스톡이라고 가정하면

부모의 노동력 $v_{1}(t)$

자식의 노동력 $v_{2}(t)$

이때 스톡의 단위는 소비재의 가치가 된다. 즉 소비재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직-간접적 노동시간이다. 이 가치는 단순화를 위해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또한 이 노동력은 시간 $t$의 함수이다. 이 노동력 스톡은 생산과정을 통해 소모되며, 이 소모분은 재생산노동을 통해 다시 보충된다. 따라서 1일당 노동력의 가치는

$v_{1}'(t)=\frac{dv_{1}}{dt}=$보충되는 소비재 가치 - 소모되는 노동력 스톡

$v_{2}'(t)=\frac{dv_{1}}{dt}=$보충되는 소비재 가치 - 소모되는 노동력 스톡

와 같이 정의된다.

여기서 해당 모델의 가정을 언급해두겠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면 즉시 노동을 시킬 수 있다고 가정된다. 초기시점에 부모가 가지고 있는 노동력 가치 스톡은 200이고 자식의 노동력 가치는 50이라고 하자. 출산 후 노동이 가능한 나이까지의 시간문제는 없다고 가정한다. 이는 비현실적이지만 이 분석에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아동노동이 가능할만큼 자랐을 때까지의 돌봄노동 제공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허나 이 전제는 공평성과 같은 도덕적 문제를 무시한다는 것에 주의하라)  둘째. 부모와 자식 모두 임금은 증가하지 않고 고정된다. 즉 노동력의 가치 혹은 소비재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단위 가치는 고정된다. 이것이 변동한다하더라도 언제나 노동자가 고정된 노동력의 가치 제한선에서 대체가능한 생활재를 얻을 수 있다고 해도 좋다. 셋째. 저축이 없으며 모두 소비한다고 가정된다. 넷째. 임금의 유형이 가족임금이다.

이러한 가정에 따라 분석을 시도해보자. 1일당 부모는 생산과정을 통해 30 가치단위가 소모되며, 자식 역시 생산과정을 통해 10 가치 단위가 소모된다고 하자. 그런데 여기서 부모는 '가족임금'의 유형을 따르기 때문에 소모된 노동력의 가치 30 단위를 얻는 것이 아니라 5단위를 더 받는다고 하자. 허나 아동노동자인 자식의 경우 5단위의 임금을 덜 얻는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미분방정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1)$v_{1}'(t)=-\frac{30}{200}v_{1}(t)+\frac{35}{200}v_{1}(t)-\frac{7}{200}v_{1}(t)+\frac{2}{50}v_{2}(t)$

$v_{2}'(t)=-\frac{10}{50}v_{2}(t)+\frac{5}{50}v_{2}(t)-\frac{2}{50}v_{2}(t)+\frac{7}{200}v_{1}(t)$

이를 벡터방정식으로 표현하면

$v'=\begin{bmatrix}-0.010&0.04\\0.035&-0.14\end{bmatrix}=Av$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다음의 [그림1]을 참고해보자.

[그림1] 가족임금 도식

부모와 자식 모두 잉여금이 없이 모두 소비되도록 짜여져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v(t)$의 일반해를 얻기 위해 다들 알다시피 지수함수 $v=xe^{\lambda{t}}$를 시도해뵬 수 있을 것이다.

$v(t)=xe^{\lambda{t}}$

$v'=\lambda{}xe^{\lambda{t}}=Axe^{\lambda{t}}$

양변을 $e^{\lambda{t}}$로 나누고 정리하면

$\lambda{}x=Ax$

를 얻는다. 즉 $v(t)$의 일반해는 고유값과 고유벡터를 얻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와 같은 형태라면 '중첩의 원리'를 적용하여 미분방정식의 해를 구할 수 있다. 중첩의 원리란 만약 $v'=Av$의 형태라면

$v=c_{1}v_{1}+c_{2}v_{2}$

가 가능한 해라고 한다.[각주:12]

이에 따라 고유값과 고유벡터를 얻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lambda_{1}=-0.15,~\lambda_{2}=0$

$x^{(1)}=[-0.2747211,~0.9615239],~x^{(2)}=[0.9701425,~0.2425356]$

따라서 $v(t)$의 일반해는

(2) $v=\begin{bmatrix}v_{1}\\v_{2}\end{bmatrix}=c_{1}\begin{bmatrix}x^{(1)}_{1}\\x^{(1)}_{2}\end{bmatrix}e^{\lambda_{1}t}+c_{2}\begin{bmatrix}x^{(2)}_{1}\\x^{(2)}_{2}\end{bmatrix}e^{\lambda_{2}t}$

여기서 $c_{1},~c_{2}$는 임의의 상수이다.

이제 특수해를 얻기 위해 초기조건에 대해 부모의 노동력 스톡이 200, 자식은 0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하자. [각주:13]그러면 임의의 상수는 $t=0$일 때

$c_{1}\begin{bmatrix}-0.2747211\\0.9615239\end{bmatrix}+c_{2}\begin{bmatrix}0.9701425\\0.2425356\end{bmatrix}=\begin{bmatrix}200\\0\end{bmatrix}$

가 되어 이를 풀면 $c_{1}=-48.53407,~c_{2}=192.41160$가 되어 특수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아래 [그림 2]와 같이 된다.

[그림2] v1(t), v2(t)의 추이

Folbre의 말과 같이 농경사회, 혹은 자본주의 초기 아동노동이 가능했다는 점을 두고 생각해보면 노동력의 가치가 가족임금의 유형을 따랐다고 할 때, 부모의 노동력 재생산을 자식이 얻은 작은 소득을 통해 보충할 수 있게 되고 이는 당분간은 부모의 노동력 스톡을 소모시키지만 0이 되는 것이 아니라 t가 무한히 가면서 186.6으로 수렴하게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결론

이것이 반드시 부모와 자식 간의 가족임금 유형만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두 주체를 남성과 여성으로 위치를 바꾼다하더라도 가부장적 남성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고 여성에게 적은 임금을 주는 가족임금 유형으로 보더라도 결과는 다르지 않다.

위의 분석에 대한 해석은 가족임금 유형은 두 주체 간에 불합리한 분배구조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안정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둘 간에 정확한 분배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만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설명이 필요한데, 왜 가족임금 유형은 깨져가고 있는가? 사회적 재생산론자들은 가사노동에서 상품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아질수록 노동력의 가치가 증가한다고 주장한다.[각주:14]">http://workers-zine.net/29069[/footnote] 예컨대 무급가사노동에서 보육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이 되면 재생산비용은 증가한다. 단, 이는 노동력의 가치에 재생산노동이 포함된다면 그렇다. 손빨래를 하던 방식에서 세탁기가 반드시 필요한 시대가 되었으므로 예전보다 노동력의 가치는 증가했으며, 노동소득을 얻는 여성이 증가하게 되면서 재생산노동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 기회비용이 발생한다는 점 역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임금소득이 예전보다 더 높아진 현대의 노동자들에게 재생산노동은 과거보다 더 비싸게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무급가사노동이 계속 유지되는 이유는 노년여성이 손자의 육아를 떠안고 저녁이 되어 퇴근한 여성노동자가 다시 육아부담을 지고 있는 형편이 그렇다. 이것이 재생산의 위기로 볼 수 있다. 가족임금 유형의 구조가 아직도 답습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돌봄노동의 경우 특히 시장에 의해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러한 구조가 쉽게 허물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관점에서 노동력의 가치 크기에 대한 정의에서 재생산의 역할을 상호보존적인 관점으로 분석하는 모델들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가 활발하지 않은 것 같지만 이 주제를 환기시키는 한에서 이 글이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관 글. 2018-07-16 작성]

  1. 윤자영. (2012). 사회재생산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마르크스주의 연구9(3), 184-211. [본문으로]
  2. 윤자영. (2012). ibid. pp189 [본문으로]
  3. 이채언. (2009). 노동력가치이론과 상품가치이론 사이의 논리적 정합성에 관한 연구. 사회경제평론32, 167-193 [본문으로]
  4. 정성진. "가사노동 논쟁의 재발견." 마르크스주의 연구 10.1 (2013): 12-48. [본문으로]
  5. Mackintosh, M. (1979). Domestic labour and the household. Fit work for women, 173-191. [본문으로]
  6. Braverman, H. (1998). Labor and monopoly capital: The degradation of work in the twentieth century. NYU Press. [본문으로]
  7. Engels, F. (2010). The origin of the family, private property and the state. Penguin UK. [본문으로]
  8. 윤자영. (2012). ibid. pp190 [본문으로]
  9. Folbre, N. (1994). Who pays for the kids? (pp. 27-9). London: Routledge. [본문으로]
  10. Anttonen, A. (2005). Empowering social policy: The role of social care services in modern welfare states. In Social policy and economic development in the Nordic countries (pp. 88-117). Palgrave Macmillan, London. [본문으로]
  11. Folbre, N., & Yoon, J. (2008). Economic Development and Time Devoted to Direct Unpaid Care Activities: An analysis of the harmonized european time use survey (HETUS). Geneva, United Nations Research Institute for Social Development (UNRISD). [본문으로]
  12. Coddington, E. A., & Levinson, N. (1955). Theory of ordinary differential equations. Tata McGraw-Hill Education. [본문으로]
  13. 왜 노동력의 가치로 미리 정해둔 (200,50)을 초기조건으로 하지 않는가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이는 해당 조건이 안정점이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초기의 노동력 가치에 대한 가정과 불합리할 수 있다는 점이 불안한데, 모든 초기조건들을 시뮬레이션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는 추후에 해결할 수 있게 된다면 다른 포스팅을 통해 밝히도록 하겠다. [본문으로]
  14. 가브리엘 윙커. 노동 전체를 변혁하자 세계 페미니스트들이 다시 읽는 마르크스(3), 번역 정은희. 2018년 7월 12일44호, 기획 연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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