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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정이근(2020)의 연구[각주:1]를 보았다. 최근 마경학자들에게서 전형 문제를 주제로 한 논문은 잘 나오지 않는 편이다. 그만큼 이 분야가 나름 새해석(NI)과 시점간 단일체계(TSSI) 두 분야로 극명하고 체계적으로 갈려있고, 그런 만큼 전형 관련 논문을 주제로 내려면 심사자의 리뷰를 통과하기도 까다로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주제로 논문이 나왔다는 점에서 흥미로웠고 논문을 읽고나서 이에 대한 리뷰를 꼭 쓰고 싶어졌다.

동시적 이중체계론의 검토

먼저 초록을 보면 마르크스가 제안한 두 개의 총계일치 명제를 언급하고 있다.

  • 가치총계 = 생산가격총계
  • 잉여가치총계 = 이윤총계

여기서 정이근이 말하는 '이중체계론'이란 바로 선형생산모형을 사용하는 체계적 방법을 말한다.

보르드키에비츠(Bortkiewiz, 1907)[각주:2]에서 시작되는 '동시적 이중체계 해석(Simultaneous dual-system interpretation, SDSI)'은, 두 총계일치의 명제는 동시에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잉여가치론은 논리적 일관성을 가지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

본 연구는 동시적 이중체계 모형(좁혀 말하면, 투입-산출 모형)에 마르크스 의 전형 접근법을 적용하여, SDSI의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이 오류라는 사실과 그리고 이 모형에서도 두 총계일치 명제는 성립한다는 사실을 논증하여 마르 크스 이론의 논리 일관성을 보강하고자 한다.

정이근. 2020: 164-165

정이근은 본 논문에서 선형생산모형을 사용하여 비판하는 비-마르크스주의자나 마르크스주의자의 비판이 오류임을 주장하고 싶어한다는 걸 알았다.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극복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이중화를 통한 해법

정확히 요약하자면 저자는 총잉여가치와 총이윤의 불일치 문제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이중체계 모형에 따르면, ‘총이윤≠총잉여가치’ 정확하게 말하면 ‘가격체계 에서의 총이윤≠가치체계에서의 총잉여가치’이다. SDSI는 이를 근거로 총이 윤의 실체는 노동자의 노동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본 연구는 ‘가격 체계에서의 총이윤≠가치체계에서의 총잉여가치’이지만 총이윤의 실체는 노 동자의 노동이라는 사실을 밝혀, SDSI를 비판하고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잉 여가치론을 지지할 것이다.

정이근. 2020: 176.

여기서 핵심적인 저자의 기여는 생산가격을 두 가지 의미로 구분하는 것인 듯 하다.

이상의 논의로부터, 마르크스가 말한 (표현의 차원이 서로 다른 두 가지 용어를 섞어 쓴) “상품가치의 생산가격으로의 전형”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현실에서는 상품의 가격은 “상품가치(를 표현하는 가격)에서 생산가격으로 전형”된다. 따라서 둘째, 현실에서는 상품의 ‘가치’는 “상품가치에서 생산가격(으로 표현되는 상품의 사회적 가치)로 전형”된다. 결합해서 말하면, 상품의 가격 및 ‘가치’는 상품가치에서 생산가격으로 변환된다. 이리하여 생산가격은 두 가지 의미―‘가격으로서의 생산가격’과 ‘사회적 가치로서의 생산가격’ ―를 가진다

정이근. 2020: 172

저자는 전형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려고 한다. 바로 전형을 두 체계의 전형으로 이중화하는 것이다.

먼저 가치체계에서 상품가치가 상품가격으로 전형되는 과정이고 그리고 가격체계에서 상품가치가 상품가격으로 전형되는 과정으로 이중화하는 것이다. (정이근. 2020: 176~178)

먼저 가치체계에서는 총계일치가 성립한다고 한다.

총잉여가치 : $sx=lx-\lambda{b}lx$

총이윤 : $\pi{x}=lx-\lambda{b}lx$

총가치 : $\lambda{x}=\lambda{A}x+lx$

총가격 : $px=\lambda{A}x+lx$

가격체계에서도 총계일치는 성립한다고 한다.

총잉여가치 : $s^{*}x=(1-pb)lx$

총이윤 : $\pi{}^{*}x=(1-pb)lx$

총가치 : $\lambda{}^{*}x=(pA+l)x$

총가격 : $p^{*}x=(pA+l)x$

하지만 당연히 가치체계와 가격체계 간에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중체계 각각의 내부에서는 가치와 가격의 전형에 있어 총계일치 명제는 성립한다고 한다. (정이근. 2020: 180~182)

평가

저자의 생각을 모두 이해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이것을 읽고 드는 생각들을 나열해보고자 한다.

  • 먼저 저자는 가치체계와 가격체계 모두에서 총 산노동 $lx$에서 노동력의 가치 혹은 가격을 제한 것으로 정의된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가치체계에서는 $lx-\lambda{b}lx$. 그리고 가격체계에서는 $(1-pb)lx$이다. 여기서 왜 가격체계에서 산노동에서 $pb$를 제하는 형태여야 하는가는 사실상 이렇게 정의된다는 주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예컨대 신해석에서는 가치체계와 가격체계를 매개해주는 MELT라는 개념을 통해 총 순생산물의 가격과 가치를 연관짓는다. 따라서 저자가 "수학적으로 해명되었다"는 말에는 의문이 있다. 산노동에서 추출된 것이 잉여가치이며 이윤이라고 정의된 체계로부터 총계일치 명제가 잘 정의된다는 것 이상으로 총계일치 명제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충분조건으로 총계일치 명제가 일치한다는 것이 산노동에서 잉여가치를 추출하는 것이라고 필연적인 연역을 보일 수 있을까? 사실상 내 생각에는 이는 "정의식"에 불과하다는 판단이 든다. 이에 비견하면 이중체계론에서는 마르코프 과정을 통해 총계일치 명제에 대한 어떠한 정의식이나 제약식을 염두하지 않고도 분해불가능 투입계수행렬만 있으면 총계일치 명제에서 총가격=총가치 명제가 성립할 수 있음을 보일 수 있다.[각주:3]
  • 가치체계와 가격체계의 이중화는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긴 하다. 가치체계와 다른 별도의 가치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바로 단순가격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부터이다. 예컨대 정운영(1993: 46)[각주:4]의 생산가격체계에 대응되는 '생산가치체계'를 통해 가치의 결정과 가격의 결정을 구분하는 논의가 있으며, 가치와 가격이 비례하는 단순가격체계에 대한 김정주(2003: 233~234)[각주:5]의 논의가 있다. 물론 이들의 논의와 저자의 논의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 저자는 이중체계론에서 총잉여가치와 총이윤이 불일치하는 것이 오류라고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중체계론을 사용하는 연구자들을 너무 단편화하는 것 같다. 예컨대 오키시오의 마르크스의 기본정리가 이런 헛점을 보완하기 위한 수학적 정리라는 사실을 빼먹으면 곤란하다. 그리고 비-마르크스주의자들이 비판하는 것은 총잉여가치와 총이윤의 불일치가 아니라 바로 이 마르크스의 기본정리가 결합생산에서 성립하기 어렵다는 점에 중점을 두었었다. 정이근의 이중화 해법은 사실상 이중체계론의 그것이기 때문에 가치체계와 가격체계의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이 기본정리로 이윤율과 잉여가치율의 필연적 관계를 연역하는 것이 가능하다.
  • 하지만 저자의 방식은 이중체계론의 방식을 못벗어난다. 왜냐하면 가치체계의 총잉여가치와 가격체계의 총이윤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건 똑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의 목적은 해법보다는 이중체계론의 비판을 극복하려는 것에 있다고 생각된다(정이근. 2020: 184). 결국 이중체계론에서 말하는 총잉여가치와 총이윤의 불일치 문제에 대한 지적은 이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 저자는 자신의 이중화로부터 각 체계에서의 전형을 통해 이윤의 실체가 노동에 있다는 사실을 보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정이근. 2020: 186) 이 부분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여전히 왜 가치체계에서 따로 전형과정이 있고 가격체계에서도 따로 전형과정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든다. 특히 가치체계에서의 전형이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자의 말을 직접 인용해보자.

앞에서 가격체계의 전형이 현실 경제를 반영한다고 했다―이러한 의미에서 가격체계는 현실 경제를 반영하는(또는 추상화한) 경제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치체계의 전형(또는 가치체계에서의 자본순환)은 어떤 경제를 반영하는가? 가치체계가 반영하는 경제는 투입물이 생산가격이 아니라 상품가치에서 매매되는 경제이다. 현실에서는 상품은 상품가치가 아니라 생산가격에서 매매된다. 따라서 가치체계의 전형이 반영하는 경제―투입물은 상품가치에서 그리 고 생산물은 생산가격에서 매매되는 경제―는 현실의 경제가 아니라 가상의 경제이다. 결국 가치체계의 전형은, 현실 경제(가격체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가상의 세계’에서 또는 ‘먼 과거의 세계’에서 진행되는 경제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이근. 2020: 193

사실 저자가 가격체계라고 하는 것에서의 생산가격이라는 것은 자본간 경쟁에 의한 장기적인 경향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가치체계에서의 생산가격 역시 자본간 경쟁에 의한 일반이윤율 과정을 겪게 되므로 모두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왜 가치체계의 생산가격은 가상적이고 먼 과거의 일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남는다. 즉 자본간 경쟁과 이윤율 균등화라는 과정에는 두 가지의 차원이 있다는 것이 된다. 하나는 현실세계의 경쟁 그리고 또 하나는 이세계의 경쟁에 의한 이윤율 균등화에 따른 생산가격이 생기게 된다. 이런 이중화는 대체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보론]동시적 이중체계론이란 무엇인가

동시적 이중체계론(보통은 이원론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긴 한다)은 보르드키에비치에서부터 출발하여 체계적인 이론으로 발전한 경제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정이근이 이를 '해석'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적절하진 않다. 전형문제에 대한 마경학자들의 논의에서 해법과 해석을 엄격히 구분해온 과정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해석이 자신을 해법Solution이 아니라 '해석Interpretation'이라고 한 이유는 수학적으로 증명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뒤메닐(1993)[각주:6])

아무튼 동시적 이중체계론은 보통 선형생산모형 혹은 투입-산출모형에 기초한다. [각주:7] 좀 더 정치적인 마경학자들은 "~~주의자"라는 명칭을 보통 선호하므로 이를 신리카도학파 혹은 스라파주의자라고 명명하는 것도 많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런 명칭도 좀 부당한게 있다. 일종의 순혈주의로 학파를 가르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선형생산모형은 분명 스라파 모형에서 유래했지만 스라피앙들과 달리 독특한 기본정리로 발전시킨 별도의 발전된 이론이 있기 때문에 이런 명명은 이상하다. 모든 모형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모형은 모형일 뿐이며 도구일 뿐이다. 유용한 케이스마다 유용하게 사용하면 그만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다.

각설하고 아래와 같이 가치체계와 가격체계를 별도로 나누어 이원화된 형태로 정의한다.

  • $\lambda{x}=\lambda{A}x+lx$ : 가치총계방정식
  • $px=(1+r)p(A+bl)x$ : 생산가격총계방정식

동시적 이중체계론을 간단히 요약해서 설명하겠다. 이 이론은 몇 가지 수학적 조건이 갖춰진다면 즉, 기술적 조건 $A$와 분배조건인 $b$ 그리고 직접노동 $l$이 주어졌으며 $A$가 생산적이라면 $x^{*}>Ax^{*}$, 가치방정식은 $\lambda=l(I-A)^{-1}$이다. 그런데 생산가격(연립)방정식은 식별되지 않기 때문에 별도의 방법으로 해를 구하게 된다. 이는 페론-프로베니우스 정리(P-F)에 따라 P-F 고유값인 가장 큰 이윤율의 역수$\frac{1}{1+R}$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P-F 고유벡터이자 모든 원소가 양(+)인 산출량벡터 $x$를 얻는다. 그리고 $\lambda,~p$들을 모두 동시에 얻게 된다. 그래서 "동시적 이중체계"라고 부른다. (김창근. 1998: 9)[각주:8][각주:9]

동시적 이중체계론의 핵심적인 기여는 바로 "마르크스의 기본정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이중체계론의 문제는 많은 부분 드러나게 되었고 이에 대한 마경학자들의 많은 논의들이 오갔었다. 특히 핵심적인 문제는 실물 단위에 기초한다는 점 때문에 가치와 생산가격이 실물에 의해 종속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각주:10]. 그리고 가장 큰 문제로

관측가능한 현상에 대해 어떤 설명력을 지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투하노동계수 체계의 분석에 동기를 부여

Foley. 2000. p18[각주:11]

하는데 실패했다는 점이다.[각주:12] 이는 정합성을 중심으로 논의하며 발전되어온 이 이론 특히 마르크스의 기본정리가 관측가능한 변수를 통해 경제현상의 설명력을 제대로 보여주기 어렵다는 한계를 드러냈다는 점이다.

[이관 글. 2021/01/02, 3:38 오전 작성]

  1. 정이근. 2020. “전형 문제의 검토.” 마르크스주의연구 17(3):162–202. [본문으로]
  2. Bortkiewicz, L. Von. 1907. “Value and Price in the Marxian System.” translated by J. Kahane. 1952. in International Economic Papers, No. 2. [본문으로]
  3. 물론 이는 가치와 가격이 다른 차원을 갖기 때문에 동일한 차원으로 정규화한 속에서의 일치임에 주의해야한다. 일반적으로 이중체계에서 가치는 생산가격보다 작으며 균제성장경로에서만 성립한다. (Morishima, Michio (1973), Marx's Economics: A dual theory of value and growth. Cambridge. (국역본)맑스의 경제학. p135. 류동민 역) [본문으로]
  4. 정운영. 1993. 『노동가치이론연구』 까치. [본문으로]
  5. 김정주. (2003). 생산가격에 의한 가치체계의 재생산: 전형문제의 재검토. 경제학연구, 51(1), 229-256. [본문으로]
  6. Duménil, G., & Lévy, D. 1993. The economics of the profit rate. p98-99. Books. [본문으로]
  7. 마경학자들은 보통 투입-산출 모형이라는 명을 선호하긴 하지만 나는 이 모형의 한계와 제약을 잘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선형'생산모형이라는 명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본문으로]
  8. 김창근. 1998. "전형문제에 대한 비이원론적 접근."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석사학위논문. [본문으로]
  9. 정확히 말하자면 생산가격 $p$는 $w=pb$가 상수로 취급되어 P-F 고유값인 이윤율의 역수를 얻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그 기반 위에서 $p=(1+r)(I-(1+r)A)^{-1}wl$로 구해질 수 있는 것이다 [본문으로]
  10. 김창근. (2007). 맑스의 전형과 화폐의 가치. 경제학연구, 55(2), 91-122. [본문으로]
  11. Foley, D. K. 2000. Recent developments in the labor theory of value. Review of Radical Political Economics, 32(1), 1-39. [본문으로]
  12. 류동민. 『수리 마르크스 경제학』. p124에서 재인용. 충남대학교출판문화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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