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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드디어 내청코가 14권으로 대단원의 막이 내려갔다. 그리고 이전에 해석했던

2021.05.23 - [덕후감] - 내청코 캐릭터 분석

에서 내린 해석들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여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내청코를 보기 시작한 지는 5년은 넘은 것 같다. 그리고 그동안 애정이 많이 쌓인 작품이고... 10년 넘게 완결을 기다려 온 하루히 시리즈를 생각해보면.. 그래도 12권 이후 3년만에 완결을 내줘서 와타루에게 조금 기쁜 마음이 들어버렸다만. 드디어 완결도 되었고 이 작품에 대해 생각해왔던 나의 기대와 해석에 대한 검토를 할 나름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럼 시작해보자.

히키가야의 '진실'

히키가야는 12권에서 "진짜를 원해本物が欲しい"라고 한 바 있다. 나는 이에 대해 두 가지 가설을 세웠다.

1) 진실은 사랑
2) 진실은 우정

나는 봉사부 간에 우정이기를 기대했으나.. 사랑하는 마음이었다.(아쉬움) 14권에 이르러 히키가야는 유키노시타에게 고백했다.

"········· 그래봤자 재산이라고는 땡전 한 푼 없으니, 줄 수 있는 거라고는 시간이라든가 감정, 미래나 인생 같은 막연한 것밖에 없다만."

이딴 약속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알면서도.

"대단한 인생을 살아오지도 않았고, 장래도 딱히 유망하지는 않다만·········. 그래도 남의 인생에 관여하는 셈이니, 내 인생도 걸지 않으면 불공평하니까."

그럼에도 말을 끌처럼 휘둘러, 전해야 할 것들을 파내어갔다. 전해질 리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말하지 않고는 베길 수 없었다.

"전부 다 줄테니까, 네 인생의 일부가 되게 해줘"

(14권. p413~414) (히키가야와 유키노시타의 대화 중)

이 장면은 라노벨들을 통틀어.. 가장 명장면이었고 카타르시스를 불러왔었다.. 흐아... 내 전부를 준다니.. 완전 간지럽긴 하지만 그래도 고백장면으로 치면 이 정도면 라노벨에서는 힘 팍팍 준 편이다.

이후 히키가야와 유키노시타는 서로의 마음을 계속 확인하게 된다.

"안 돼. 마지막으로 딱 한 가지 꼭 말해둬야 할 게 있거든."

그렇게 설명한 유키노시타가 내게서 시선을 떼더니, 나직하게 헛기침을 했다.

(...)

뒤이어 내리깔았던 시선을 천천히 들어 그 아름다운 눈으로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유키노시타는 속삭이는 듯한 어조와는 달리 또렷한 말을 내뱉었다.

"너를 좋아해. 히키가야."

14권. p531 (히키가야와 우키노시타의 대화 중)

하지만 순정만화같이.. 누구를 최종적으로 선택하느냐로 이 이야기를 완결짓는 단순한 형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은 좀 더 휴리스틱한 것이다. 히키가야와 유키노시타는 진실인지 아닌지 모른다.

"질문을 잘못한 것 같군. ········· 네 진실된 것은 찾았나?"

이번에는 대답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건 선생님에게서 배운 것이니까.

고뇌하며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발버둥 치며 고민해서 ········· 내 답은 정해졌다. 그래서 머리를 콩 마주 부딪치고, 나는 피식 입꼬리로 웃었다.

"글쎄요. 그렇게 쉽게 찾아낼 수 있을 만큼 간단한 게 아니잖아요?"

(...)

책상다리 위로 턱을 펴고 손가락을 하나씩 꼽아서 다양한 감정을 세어나가며, 히라츠카 선생님이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래서 헤어지거나 떨어지지 못하고, 거리가 생겨도 시간이 흘러도 서로에게 끌린다면·········. 그건 진실된 것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지."

(...)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의심하려고 합니다. 아마도 우리 둘 다 그렇게 쉽게 믿지는 못할 테니까요."

14권. p523~524 (히라츠카 선생과 히키가야의 대화 중)

이전에 12권에서 히라츠카 선생과 히키가야의 대화를 기억해보자. 히라츠카 선생은 히키가야가 선거에 개입하려고 한 '그 마음' 즉 욕망을 히키가야 스스로가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진중한 이야기를 꺼냈어야 했던 것이다. 중요한 건 결국 지금 누군가를 위한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돌아보고 진실되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한 발을 디뎌봐야 아는 것이다. 연애도 마찬가지 아닌가? 사귀어봐야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어찌보면 [내청코]의 진실이란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 [도둑맞은 편지]의 그 편지처럼 텅빈 욕망 대상이라는 느낌을 준다. 진실이란 무엇인가? 라는 데 대한 간단한 대답은 없을 것이다. 결국 그것은 어떤 내용을 넣어도 의미화되고 마는 대상a와 같은 것이다. 진실은 봉사부의 관계를 재구축하는 것일 수도, 즉 진실은 우정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유키노시타를 사랑하는 히키가야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 유이가하마와 다시 관계를 복원하고 (예전같지 않겠지만) 모두가 다시 행복한 관계가 되길 바라는 것이다.

유키노시타가 원한 것

14권을 보고 가장 많은 의문들을 풀어내지 못한 인물로 유키노시타를 꼽고 싶다. 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작가 와타루는 이 점에서 욕을 백만 번은 먹어야 할 것이다.. 특히 유키노시타의 과거에 대해서 많은 의문이 풀리지 못했다. 주요하게는 다음과 같다.

  • 히키가야와 유이가하마에게 자신이 교통사고의 가해측 당사자라는 사실을 왜 말하지 못했는가? 피해자인 두 사람이 납득할만하게 설명했던 적도 없었고 명시적으로도 밝히지도 않은 상태이다.
  • 선택받지 못한 과거가 밝혀지지 않았다. “유키노시타는 또 선택받지 못하는구나”(5권 p199)
  • 어머니는 유키노시타에게서 무엇을 바랬고 이것이 유키노시타의 바램과 어떤 점에서 충돌하였는가? 이것이 명시적으로 작품에서 밝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어머니는 아무 이유없이 유키노시타를 통제하는 순수 악역으로 비춰져서 유치하고 긴장감 떨어지는 악당으로 만들었다고 평가된다.
  • 구해달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한 것이었나? "언젠가 나를 구해줘いつか私を助けてね"(9권) 어머니에게서? 그런데 위에서 말한 거지만 어머니는 무엇을 유키노시타에게서 원했던 것인지 명시적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대체 어머니는 유키노시타에게 무엇을 원하는가가 해명이 되어야 이 말의 의미가 명확할텐데.. 단지 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애다 정도로 생각하는 건지도 역시 모르겠고 말이지.

또한 언니 하루노는 유키노시타에게 과연 무엇을 원했는가에 대해서도 적절한 답을 주지 못하고 끝내고 있다. 유키노시타는 이미 작품 초반에 히키가야에게 이야기한 것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치를 하고 싶어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시의원이면서 기업가이기도 하다. 14권에서는 자꾸 '가업'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아버지의 기업경영권을 물려받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상하다? 유키노시타는 정치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어쨌든 하루노는 아무래도 아버지의 가업을 잇는 후계자로 점쳐져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루노는 어째서 유키노시타의 인생에 그렇게 개입을 했어야 했을까? 즉 하루노는 무엇을 원했는가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말보다도 명확한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하루노가 쾌활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 오해하지 마. 후계자 문제는 솔직히 어찌되든 상관없으니까. 난 딱히 가업을 잇고 싶은 마음은 없거든."

"그럼·········."

막 입을 열려던 유키노시타의 말이 끊겼다. 그 시선 끝에는 냉소를 머금은 하루노가 있었다. 입가에 미소의 형상을 그린채, 하루노는 하지만········· 하고 말을 이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살아왔는데, 갑자기 아 네 그러십니까 하고 물러날 순 없는 노릇이잖아? 뭐 어쩔 수 없나~ 하고 기껏 체념하고 타협했는데, 그랬더니 이 꼴이라니. ·········이 상황에서 납득한다는 거, 상당히 어려울 것 같지 않아?"

14권. p284 (하루노와 유키노시타의 대화 중)

단지 그녀는 재미를 위해 움직였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다 유키노시타가 어머니에게 가업을 잇겠다고 고한 바 있다.

"유키노가 하고 싶은 일은 이런 거니까. 진로도 그쪽으로 잡을 거지?"

"하고 싶은 일·········?"

유키노시타의 어머니는 고개를 갸웃하며 하루노를 빤히 응시했다.

(...)

유키노시타의 손끝이 움찔 떨렸다. 그 반응에서 긴장감이 전해져왔다.

"사실········· 나는 아빠가 하는 일에 관심이 있고, 나중에는 그쪽 분야에 종사하고 싶어."

14권. p279 (우키노시타의 어머니와 하루노, 유키노시타의 대화 중)

그 이후부터 형식적인 적대 분위기로 흘러간다. (이는 진심이라기보다 그 자신이 밝힌 것처럼 경로의존성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형식은 그렇다치더라도 나는 하루노가 동생에 대해 생각하는 마음을 좀 더 밝혀야 했지 않았을까 싶은데.. 오히려 캐릭터를 붕괴시켜버렸다. 지금까지 동생의 관계에 개입해온 모든 노력들의 의도는 당연히 동생을 위한 행동들 아니었을까 싶었는데.. 그런게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긴장감은 나중에라도 풀어줬어야 했다. 뭔가 이 자매들의 관계를 시원하게 정리해주지 못했다는 느낌.

하지만 해소된 것도 있긴 하다.

  • 하루노가 학생회장을 하지 않았고 유키노시타는 학생회장을 하려 했다는 점의 차이가 밝혀진 것이다. 하루노는 사실 가업을 별로 잇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이 점은 확실해졌다.
  • 히키가야가 가지고 있는데 유키노시타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대체 무엇인가?(9권) 그것은 히키가야는 이상한 방식이긴 하지만 타인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해준다는 사실에 있다. 유키노시타는 정치에 뜻을 두었으니 이런 면모를 자신이 가지길 원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 미안하지만 도발에 넘어와 주라. 어려운 일이라는 건 알지만 부탁한다. 나를 구해줘."

14권. p401 (히키가야가 유키노시타에게 합동프롬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부탁하는 씬)

고백하기 전에 히키가야는 최종적으로 합동프롬 문제에서부터 유키노시타에게 자신을 구해달라고 한다. 이는 결국.. 유키노시타는 이젠 예전의 유키노시타가 아니라 타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거기에 덤으로 자기희생 말고는 구원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온 히키가야가 누군가를 믿고 함께 협력하여 해결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점에서 히키가야도 성장했다는 갈 알 수 있었다.

희생이 큰 유이가하마

자. 그래. 아름답다. 두 안물은 성장했다.

그런데 말이다. 진짜 큰 문제가 발생한다.

리얼충이 "리얼충 폭발해라!"라고 말하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바로 유이가하마 얘기이다. 다들 예상했다시피 봉사부가 해체되고 각자 갈 길 가는 엔딩이라면 씁쓸한 맛이 있더라도 가장 깔끔하겠지만.. 유키노시타와 히키가야가 맺어지는 형국이 되었으니... 남아버린 유이가하마는 어찌해야할까? 완결을 보고나서 감히 평하건데 유이가하마와 봉사부의 관계를 정리함에 있어서 와타루는 욕을 좀 많이 먹어야 한다... 이 작품의 결말은 많은 부분 유이기하마의 본전도 못뽑을 커다란 희생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후반부터 유이가하마의 비중이 갑작스럽게 조연B 아니 지나가는 사람C 수준으로 헬적화되기 시작하고 흐리멍텅해진다. 별도의 독백 부분이 있긴 하지만 본전도 못건질 수준이다. 이건 작가가 유이가하마를 비극으로도 희극으로도 나아가지 못하게 그냥 뭉개려는 의도였던게 분명하다. 안 그러면 작품 분량이 아마하게 늘어났을 것은 물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새로운 봉사부에 유이가하마가 의뢰인의 형식으로 들어오게 된다. 마치 초반의 이야기가 다시 새롭게 시작되는 형식이랄까. 하지만 이후부터 이어질 3자 간의 새로운 긴장 관계를 독자에게 제대로 직시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그냥 유야무야 모두가 윈윈하는 분위기로 끝을 내고 싶었겠지) 나는 이게 비겁했다고 생각한다. 와타루 네가 유이가하마냐?

"우움········· 사실은 의뢰랄까. 상담을 하려구 왔는데·········."

유이가하마가 운을 떼자, 유키노시타가 미소 띤 얼굴로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만사 제쳐놓고라도 반드시 성공시키고야 말겠다고, 그 생기 넘치는 눈동자가 말하고 있었다.

생생하게 살아나는 유키노시타의 눈빛과는 대조적으로, 내 눈빛은 시들시들 죽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윽고 유이가하마가 후읍 숨을 들이쉬더니, 가슴에 손을 얹었다.

"내가 좋아하는 애한테 여자 친구 같은 사람이 있는데, 걔가 내 가장 소중한 친구거든·········. ·········그치만 앞으로두 계속 사이좋게 지내구 싶어. 어떡하면 좋을까?"

14권. p542 (유이가하마가 새 학년의 새로운 봉사부(코마치 부장, 유키노시타, 히키가야)에 의뢰하는 마지막 씬)

이윽고 유이가하마는 유키노시타에게 그 이야기가 길어지고 주욱 이어질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유키노시타는 역시 주욱 이어질 것이라고 대답하며 작품은 끝이 난다. 이는 앞으로 이 관계가 다시 시험에 오를 것이라는 걸 추측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무튼 이 마지막 장면에서.. 이 셋의 긴장감이 갑자기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유이가하마는 결국 히키가야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유키노시타도 가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이런 느낌이 잘 어필되지 않고 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그녀의 소원이 "전부 가질 거야."(12권)이기 때문.

위에서 언급한 거지만.. 다시 강조하자면.. 거짓된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지은 것은 와타루가 이 작품을 빨리 끝내고 싶었던 거겠지. 5252 이러면 등가교환이 아니지. 유이가하마의 희생이 너무 큰 손해 막심한 장사잖아. 이건 분명 아침막장드라마로 이어질 플래그였다고.

결론

어쨌든 뭔가 뒤가 캥기는 결말이 되었으나 그래도 이정도면.. 완결은 준수하다고 하고 싶다. 결국 봉사부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거짓되고 작가의 그만 쓰고 싶어~욕망도 많이 보이는 것이긴 하다만. 그래도 대체로 준수하다고 평하고 싶다. 아무튼 완결을 내줘서 와타루에게 감사를 표한다. TVA는 코로나19로 방영이 잠정 중단된 상황이지만.. 아무튼 기대 중이다. 라노벨 인생 내 갓작으로 선정하는 바이다.

[이관 글. 2020/06/08, 6:02 오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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