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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은 동일본 대지진을 기억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울러서 한국의 세월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한국에는 상업문화에 재난에 대해 이야기를 만들어 기억시키는 방식이 왜 잘 없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걸 보고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끄적여본다.

나는 이것을 보며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이 오랜만에 떠올랐다. 이는 근대문학이 정치적 실천에 영향력을 미쳐왔던 역할이 끝났다고 선언한 것이었고 국내 문학연구자 사이에서도 논쟁을 일으켰던 주제였다. 논쟁 당사자들도 문학의 종언에 대해 기본적으로 공감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정치/문화의 차이에 대해 오히려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시 신카이 감독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신카이의 시도는 매우 공익적이고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인들은 왜 세월호를 그런 식으로 문화화하지 못했는가에 대해서는 근대문학의 종언 논쟁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과 일본의 정치/정세가 재난에 대해 사회가 풀어가는 방식이 상당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싶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점이 하나 있는데, 동일본대지진이 자연재해지만 세월호침몰사고는 인재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동일본 대지진이 순전한 자연재해로만 볼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발생은 자연재해라도 자연재해를 어떻게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며 행동하느냐가 정치/사회에 의해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한 가지 단순한 예를 들어보자. 대지진으로 인해 비극적이게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났고 후쿠시마 해산물도 영향을 받아 지역경제가 파탄이 난 바 있다. 이런 재해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은 그 해산물을 억지로 먹는 쇼를 보였다. 이건 상당히 비난 혹은 못매를 맞을 짓인데, 왜냐하면 진실을 은폐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속이는 자신도 속여야 한다는 격언이 떠오르게 만든다. 즉 기만적이라는 소리다. 문제는 일본에서 그런 행보를 비난하는 방식이 단체행동으로 잘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맥락들을 모두 고려하자면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에 대해 정치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에 신카이 마코토의 역할이 큰 힘이 되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다시 세월호 이야기로 돌아가자. 신카이 인터뷰에서는 이야기 만들기가 잘 없었다는 식의 말이 있는데 물론 이건 거대자본 대중문화만을 가지고 얘기한 것 같다. 하지만 작은 문화로 따져본다면 그런 시도들은 매우 많았다. 이건 직접 세월호 사건 현장에 가보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그곳에 유가족들이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남긴 많은 글들과 많은 사람들의 발자취들을 읽어보면 이야기는 계속 만들어져왔었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 외치고 있다. 이 문제는 이제서야 정부사찰 문제로 판결이 내려졌고 아직 정치적/실제적으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대부분 책임을 지지 않은 상황의 연속이다. 오히려 "폭로"와 "진실"이 국내에서 세월호에 절실한 주제였기에 그것은 "스즈메의 문단속"이 되지 못했다는 일종의 변을 하고 글을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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