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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론

역사유물론 연구 리뷰

현정경 2024. 5. 8.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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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물론 연구 책표지.

에티엔 발리바르의 [역사유물론 연구][각주:1]가 관통하고 있는 주제를 3가지로 꼽자면 다음과 같다. 1) 1989년 번역본에서 누락된 3장 부록과 5장의 의미 2) PT독재 이론 3) 정치경제학 ‘비판’ 이론?이다. 바로 서론 없이 본론으로 빠르게 넘어가도록 하자.

누락 번역된 3 부록과 5장의 의미

이 책은 국내에서 1989년 번역본이 나온 적이 있다고 한다. 이때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그 당시 번역본에는 3장 부록과 5장이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어떠한 알 수 없는 사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5장과 3장의 부록이 번역에서 누락된 것이든, (…) 그 자체로 이러한 누락은 우리 세대가 앞으로 해명해 나가야 할 증상이며 또한 지식사회학의 연구대상이다. [각주:2]

이런 류의 주제는 알튀세리앙들이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징후적 독해"의 소스이다. 나 역시 이와 관련한 흥미가 동하여, 왜? 3장 부록과 5장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기에 1989년 번역본에서 누락되었는지 궁금했다.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한 독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자 두 장의 제목과 요약을 아래와 같이 제공해보았으니 참고하라.

  • 3장 부록 : 레닌, 공산주의자 그리고 이주
    • 요약 : 자본주의는 특수한 종류의 인민이주를 창조했고 숙련화된 노동자들과 파편화된 노동자들 사이의 분할을 낳았다. 이러한 결과를 보면 결국 이주 문제란 왜 노동자 운동이 경제주의적 운동으로 빠져서는 안되는지를 보여준다.
  • 5장 :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역사에서 유물론과 관념론
    • 요약 :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역사는 노동자운동과 사회주의 역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이런 측면에서 레닌이 노동자운동 내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지니는 역사적 숙명에 대해 분석한 내용을 살펴보아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참에 대한 표상이 아니다. 표상은 관념론적이며 비-역사적이다. 마르크스주의에 내포되어왔던 관념론적 요소는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가로막았다. 철학의 역사는 유물론과 관념론 사이의 투쟁의 역사라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적 태제이며 이 태제는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이 철학의 역사를 규정한다는 점을 주장한다. 이에 따라 레닌의 텍스트를 검토해보면 그는 마르크스주의 역사 내에서 경향들 간의 투쟁에 탁월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두 편향 모두에 맞서 싸우면서, 절충하기보다는 둘이 공통된 뿌리를 발견하여 두 전선 사이의 대립을 현실적으로 지양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발전은 마르크스가 발견한 것들로부터 도출되는 결과가 아니라 이러한 불가피한 논쟁의 효과, 즉 반-프루동, 반-바쿠닌, 반-뒤링이라는 논쟁의 효과인 것이다.

위에서 내가 작성한 요약문들은 내용을 너무 단순화한 감이 없지 않지만, 징후적 독해까지는 못하더라도 누락될 수밖에 없었을만한 이야기꺼리를 제공한다. 이에 대해 설명해보도록 하자.

옮긴이가 첨부한 서관모 교수의 회고록 내용을 보면 발리바르의 이론 작업 등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의 쇄신 내지 개조가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각주:3]이라는 언급이 나온다. 그 당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맹목적이고 교조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또는 몇 년 뒤 발생한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까지 고려해보면, 교조주의는 그때가 가장 정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상황에서 번역팀이 발리바르의 "마르크스주의의 탈구축"을 꺼낸 것은 레닌의 말을 빌리자면 구부려진 막대를 펴기 위해서는 더 큰 힘을 들일 필요가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을 고려한 상태에서 이제 내용들을 검토해보자. 3장 부록의 경우 인민 이주 문제는 확실히 당시 1989년에 우리나라의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주제였을 것은 같다. 그래서 제외했더라도 이상하진 않을 것 같다. 그러나 5장의 경우는 좀 설명이 필요해보인다. 옮긴이가 첨부한 서관모 교수와 윤소영 교수의 회고는 마르크스주의의 해체가 아니라 탈구축에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데 5장의 내용은 참의 비-역사성을 얘기하며 관념론과 유물론의 비교 후 반-프루동, 반-뒤링으로 대표되는 비판”이라는 실천을 우위에 두는 설명을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탈구축의 의미란 것도 모호한 구석이 있다. 예컨대 마르크스주의를 참의 이론으로 적극 받아들이는 집단 혹은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집단이 있을 것이므로 구차한 논쟁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이를 피하려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론

 이 책의 가장 심도 깊은 논설은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 발리바르는 매우 흥미로운 가설들을 제공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관념은 노동자계급이 “완전히 준비된 국가기계”를 부러뜨리고 파괴해야 하며, 이 국가기계를 단순히 소유하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각주:4] [각주:5]

이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혁명단계에 대한 설명에 불과할 것이다.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이후에 나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설명이다. 이를 참고해보자.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최초의 정의의 문제로 돌아오도록 하자. (…) 국가가 또한 이미 하나의 ‘비-국가’이기도 하다(...) 파리코뮌이 진정 증명해내는 것은 무엇인가? (…) 비-국가가 존재한다면, (…) 프롤레타리아 국가권력이 그 종말의 과정 속에서 약해지기 때문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국가권력은 (…) 강화된다. (…) 이전의 역사 전체가 이 국가장치를 완전화시켜왔다는 의미에서 (…) 국가장치가 이미 더 이상 하나의 국가장치가 아닌 한에서, (…) 의회주의의 폐지는 국가장치에 특수한 전문화와 분할의 종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어느 한 계급의 국가권력 강화가 국가장치의 강화라는 물질적 조건을 항상 지녔던 것과 대조적으로, (…) 국가권력의 강화는 국가장치의 약화를, 혹은 더욱 정확히 말해 국가장치의 존재에 대항하는 투쟁을 그 조건으로 취한다는 점을 말이다. [각주:6] [각주:7]

이 문단 자체는 매우 흥미롭고 놀라웠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질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국가권력과 국가장치는 대체 무엇인가?

국가권력이란 지배계급의 피지배계급에 대한 경제적 목적에서의 지배를 의미한다. 그리고 국가장치는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전문화된 하나의 장치를 매개로 해서 실제적으로 행사”[각주:8]되는 매커니즘을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설명하다보니 둘의 관계가 매우 경계가 흐리고 거의 서로에게 필연적이고 동일한 의미가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까지 한다. 뒤이은 발리바르의 둘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더 귀기울여보자.

반면 우리는 부르주아지가 국가장치를 발전시킴으로써만 “지배계급으로 조직화”된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는 국가장치 곁에서 그리고 국가장치에 대항하여 실천과 조직의 완전히 다른 정치형태들을 돌발하게 만듦으로써만, 그러니까 사실은 기존 국가장치를 파괴하고 이 국가장치를 (단순한 또 하나의 장치가 아니라) 또 하나의 국가장치 더하기 국가장치와는 다른 무언가의 앙상블로 대체함으로써 “지배계급으로 조직화”된다.[각주:9]

답이 명확해졌다. 이로써 발리바르는 사회주의 혁명에 있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필연성을 설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부르주아 독재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구분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것은 국가권력을 강화하지만 이와 함께 기존의 국가장치를 폐지하고 다른 무언가로 대체된다고 해명하고 있는 것이다.

매우 흥미롭고 유효한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설명 방식은 상당수 모호함이 남아 질문이 너무 많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에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일단 내가 생각하는 의문점 두 가지를 두서 없이 언급해두는 것으로 만족하련다. (곧 다시 이를 정리해볼 기회가 주어지길 바래야겠다)

  • 첫째. 일단 부르주아 독재에 기초한 기존의 국가권력을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바꾼다고 해서 혁명이 되는게 아니란 걸 잘 설명해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상적인 혁명은 이렇다"하는 수준의 설명 이상의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어떻게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독재를 하면서 국가장치를 폐지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안풀린다. 국가장치의 폐지와 함께 다른 무언가로의 대체를 이룬다고 설명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하지는 않으며 "부러뜨리는 것"과 "장치의 대체"가 함께 일어날 필연적인 이유도 없다. 그렇기에 이런 설명은 결국 유토피아 사회주의와 동일한 논설방식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 둘째. 발리바르가 적극적으로 참조하는 레닌이 이룩한 그 소비에트 연방이 해산되고 자본주의로 손쉽게 전환된 바 있는데, 이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쉽게 퇴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라고 한다면... 과연 그렇게 변혁된 사회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가에 대한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정치경제학 ‘비판이론?

 내가 정치경제학 비판’ 이론?이라고 비판에 따음표를 하고 물음표로 이론?이라고 한데에는 많은 속사정이 있다. 이 책에서 발리바르는 일명 사회학주의, 경제학주의로서 마르크스주의를 활용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학풍에 대해 적대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는 나도 마경을 연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름의 해명이 필요해보였다.

물론 발리바르가 저런 말을 하면서 생각한 취지와 의도는 무엇인지 알겠다. 사회학주의라는 언명은 그것이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일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뭐시 중한디”와 같은 푸념인 것이다.

마르크스에게서 문제는 기존 경제이론을 동일한 대상을 취하는 또 하나의 다른 이론으로 대체하는 것도, (…) 하나의 사회학적 일반이론 혹은 하나의 보편적 역사이론이라는 더욱 광대한 하나의 전체로 ‘빠뜨리는 것’을 자신의 핵심 목표로 삼았던 적이 전혀 없다. (…) 오히려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실천 속에서 하나의 제한으로 정의될 것이다. [각주:10]

이것이 바로 정치경제학이 아니라 정치경제학 비판이라고 하는 하나의 태도이다. 이로부터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갖는 근원적인 역할과 책임이란게 결국 자본주의에서 위기에 대해 착취의 강화 혹은 생산양식의 혁명적 변형 외에는 가능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각주:11]

이런 생각에 나 역시 십분 동의하는 바이다. 그렇지만 마경 학자들이 수행하는 연구들에는 분명 나름의 가치가 있음을 해명하고 싶었다.

발리바르가 지적했듯이 실제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이 하는 연구들은 대체로 수세적인 것들이 주이고, 창조적인 연구들은 거의 없는 것은 맞다. 전형문제에 대한 비판에 대해 해명하고 이윤율 저하 경향 법칙에 대한 비판에 대해 해명하는게 주로 이루어지는 연구이다. 이런 연구들이 혁명에 봉사하지 못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사실 마르크스주의 정치철학자들이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이론들도 역시 혁명에 드라마틱하게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긴 어려운 상황 아닐까? 사실 마르크스주의를 내건 연구자들은 분야가 무엇이건 책임을 통감해야 할 거 같다.

각설하고, 사실 마경학자들이 하는 연구들이 정치철학자들의 연구주제보다 속이 좁고 찌질하기도 하고 전문화되었기도 하지만 결국 이들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현대경제학이 훌륭한 분석모델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변혁을 방어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하는 부분도 크기 때문에, 바로 이런 경우에 대해 이론적으로 투쟁하는 역할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에 있다고 본다.

결론

 이 책의 백미는 사실 어느 쪽으로 보나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부분이었다. 사실 발리바르의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그를 언급하는 책들은 참 많이 봐왔긴 한데.. 그만큼 번역서를 찾기 어려운 분이라 이번 번역을 해주신 배세진 선생님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게다가 번역 품질도 너무 좋고 읽기도 수월해서 좋았다.

그리고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문제에 대해 다시 내게 경각심을 일깨워주었던 책이었다. 그리고 마경학자가 어떤 역할과 그리고 투쟁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반추하고 반성해볼 수 있었던 기회를 주기도 했다.

  1. Balibar, É. (1974). Cinq études du matérialisme historique. F. Maspero. [에티엔 발리바르. (2019). 『역사유물론 연구』. 베세진 역. 현실문화. (전자책)] [본문으로]
  2. Balibar, É. (1974). 옮긴이 후기-2. (전자책) [본문으로]
  3. Balibar, É. (1974). 옮긴이 후기-1. (전자책) [본문으로]
  4. Balibar, É. (1974). 2장. (전자책) [본문으로]
  5. 옮긴이가 번역문과 원문을 병기한 부분은 편의상 제외했다 [본문으로]
  6. Balibar, É. (1974). 2장-3. (전자책) [본문으로]
  7. 옮긴이가 번역문과 원문을 병기한 부분은 편의상 제외했다 [본문으로]
  8. Balibar, É. (1974). 2-3. (전자책) [본문으로]
  9. Balibar, É. (1974). 2장-3. (전자책) [본문으로]
  10. Balibar, É. (1974). 3장-서론. (전자책) [본문으로]
  11. Balibar, É. (1974). 3-서론. (전자책)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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