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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앞에서 뒤메닐의 상호교차 모형에 대해 정리한 바 있다. 그런데 본론에서 다루지 못한 의론이 있다. 바로 "불균형 미시경제학"이 대체 무엇이냐에 대해서이다. 아마 뒤메닐(2003)[각주:1]의 번역본인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 뒤메닐이 주장하는 "불균형 미시경제학" 항을 보았다면 다들 나와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 내용을 인용해보자.

미시경제학의 구상은 개별 행위자의 행동에 대한 기술(description)로부터 기인한다. 이러한 기술은 고유한 의미를 갖는 행동 및 (개인들의) 결정이 내려지는 환경과 동시에 관련된 특정한 원칙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지배적 미시경제학(인용자 : 주류 미시경제학)은 균형이 지배적이며, 미래를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틀 내에서의 (효용, 이윤의) 최적화에 기초한 [개별행위자의] 행동을 연구한다. [그에 비해]  스미스를 포함하는 고전파 경제학자와 마르크스는 불균형 상태 내의 조정(ajustement)에 기초한 대안적 미시경제학을 제안한다.[각주:2]

이 말은 사실 그 이전에 상호교차 동학모형을 발전시킨 조건에서 나온 말이라서인지 간단하게 언급되어 있다. 주류의 미시경제학의 근간은 결국 "합리적 기대가설"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뒤메닐&레비의 상호교차 모형 역시 합리성을 인정한다. 다만 두 모형은 서로 다른 근간에 기초한다.

  • 뒤메닐&레비의 상호교차 모형은 불균형에서의 조정행위를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 합리적 기대가설은 주체가 목적함수를 선험적으로 설정하여 그 안에서 최적화를 한다.

 

합리적 기대가설을 모델링한다면 결국 경제주체가 모델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주류에 있어서 "합리성"이란 경제주체가 모델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뒤메닐&레비는 불균형이 일어날 때 경제주체의 조정행위를 근간으로 한다. 따라서 이는 경제주체의 반응계수의 적절함에 달려있다. (이전에 쓴 글에서 본 바와 같이 이는 야코비 행렬의 고유값이 1보다 작으면서 크지 않은 수준이 적절한 반응계수라는 점으로 대표된다) 그러므로 주류의 관점에서 보면

첫째. 경제주체에게 목적함수가 미리 설정되어 있지 않고 있다.

둘째. 경제주체가 모델을 이해하고 있지 않다.

이런 점에서 비판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합리성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비판에 대해 언급한 최임철(2006)을 인용해보자.

(...) 조정행위에 근거한 이론화 방식은, 조정행위와 (합리적 기대 하의) 최적화 사이의 관계나 조정행위에 합리성이 내재되어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문제에 대해 깊이 논의되지 않은 채, 주류경제학으로부터 자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각주:3] 이러한 비판에 대해, 합리적 기대 가설의 비현실성을 비판하면서 방법론적 관점으로만 대응하는 것 보다는, 주류경제학의 기법과의 비교를 통해 조정행위를 통한 이론화 방식이 지닌 상대적 유용성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각주:4]

주류의 입장에서 모델은 균형이 지배적이다. 그에 반해 뒤메닐&레비의 모델은 불균형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는 균형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뒤메닐&레비의 합리성이란, 균형이 지배적인 모델과 그 모델을 이해하는 합리적인 기대를 하는 주체가 아니다. 그와 다르게도 불균형을 관측하고 이에 대해 조정행위를 하는 것이 논의의 전제인 셈이다. 여기서 주체는 모델을 이해하고 있지 않고 목적함수를 갖고 행동을 하지 않는다.

Capitals are not moved by an "invisible hand" (capable of determing the equilibrium position), but by capitalists who are aware only of the disequilibria by which they are directly affected. The same is true for the determination of prices and outputs by firms. Smith's metaphor obviously points to the global outcome of such individual behaviors.

자본가들은 (균형 상태를 결정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불균형을 인식하는 자본가들에 의해[서만] 움직[일 뿐이]다. 기업이 가격과 산출물을 결정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스미스의 은유는 명백히 그러한 개인적 행동의 전역적인 결과를 지적하는 것이다.[각주:5]

왈라스적 경매인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비하여 뒤메닐은 자신의 모델의 근간에 대해 "visible hand". 즉 보이는 손으로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목적함수를 미리 설정하여 그에 대해 최적화하는 개인을 상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단지 경제주체는 "관측된" 불균형에 대해 직접적인 조정행위를 할 뿐이다. 즉 경제주체의 합리성은 관측되는 불균형에 대해서만 반응할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합리성이란 것에 대해 여전히 논쟁점은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합리적 기대가설에 대한 배경지식이 미천한지라 아직 이 사항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고민을 해야겠다는 정도로 그치도록 하겠다.

 

비율의 안정성과 차원의 불안정성에 대하여

뒤메닐&레비는 자본주의가 놀라운 비율의 안정성을 갖는다고 보고 있다. 그들의 불균형 미시경제학에서 경제주체는 불균형을 관측하고 이에 대해 적절한 조정행위를 하는 데 있어서 비율의 안정성이 돋보인다고 밝히고 있다. 일반적으로 고전적인 공황론들은 자본주의가 비율의 안정성이 불안정하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에(과잉공급설, 과소소비설, 불비례설 등에 대해) 이런 논의들과 대비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는 다르게 차원읜 불안정성을 언급한다. 이는 수학적으로 (특정한 균형해에서 국소적으로 정의되는 수준에 그치지만) "야코비행렬의 고유값이 1에 가깝다"고 표현될 수 있다. 고유값은 반응계수가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려준다. 그 수학적 내용의 대강의 설명은 이전 글에 이미 소개한 바 있다.

여기서는 좀 더 직관적인 설명을 얻고자 하여 시뮬레이션을 시행했다.

우리는 이전의 글에서 공개한 시뮬레이션을 가지고 반응계수의 값을 0에서부터 1로 이동할 때 이윤율과 산출간 비율, 가격간 비율의 추세를 보이고자 한다. 이는 매우 간단하다. 반응계수들을 0으로 설정한 후 100회의 루프를 돌도록 설정한 후 반응계수를 1/100 단위 씩 증가하도록 하면 그 추세를 명확히 알 수 있게 된다. (단, 여기서 $x,y$에 대한 초기값$x_{0},y_{0}$는 뒤메닐이 국소적으로 정의된다고 밝힌 $x_{0}=1,~y_{0}=\frac{a}{1-a}$로 설정하여 시행했음을 밝힌다)

[그림 1] 반응계수에 따른 이윤율의 추세. x 축은 반응계수, y 축은 이윤율이다.

 

[그림 2] 반응계수에 따른 산출간 비율, 가격간 비율의 추세. x 축은 반응계수, y 축은 x,y이다.

반응계수가 1에 가까울 수록 이윤율, 산출간 비율, 가격간 비율이 불안정해지고 있음을 [그림 1], [그림 2]를 보면 알 수 있다. 뒤메닐&레비는 자본주의가 놀라운 조정능력을 보이므로 수요-공급의 불일치, 이윤율의 불일치를 가격과 수량, 그리고 설비가동률을 통해 충분히 조정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이 비율의 안정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율의 안정성이 매우 신속하고 민감하게 반응할 수록 차원의 불안정성은 커진다고 한다. 이는 반응계수가 1에 가깝다는 내용과 동일하다.

이를 생각해보면 왜 뒤메닐&레비가 "관리자 혁명"을 중요한 화두로 생각하는 지 알 수 있게 한다. 뒤메닐&레비의 관리자는 관료, 경영자 뿐만 아니라 중간관리자와 사무직까지 모두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비율의 안정성에 대해 최적화를 하는 주체는 결국 "관리자"라는 것이다.(단지 이들 관리자 중 제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관료들의 경우 거시경제적 안정화에 매우 적절한 반응을 했다고 뒤메닐은 평가하고 있다)

 The progress of private management associated with the rise of managerial and clerical personnel-including some aspects of the functioning of financial institutions-is responsible for an historical tendency toward increasing instability. For rather intuitive reasons, the progress of management results in larger reactions to disequilibrium. (...) Larger reaction coefficients are synonymous with faster adjustments to disequilibrium situations. There is, however, a price to this progress: such increases, in spite of their benefits with respect to individual firms, may be responsible for the recurrent violation of the condition for stability in dimension. The growing instability of the macroeconomy resulting from tighter management periodically causes unusual clusters of overheating, recessions, or depressions.

금융 기관의 일부 기능적 측면을 포함하여, [중간]관리자 및 사무직의 부상과 관련된 [민간기업 내] 관리의 진전은 [차원의] 불안정성을 증가시키는 역사적 경향에 대한 원인이다. 오히려 직관적인 이유 때문에 관리의 진행은, 불균형에 대한 더 큰 반응을 가져온다.  (...) 더 큰 반응계수는 불균형 상황에 대한 더 빠른 조정과 동일하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는 개별 기업에서는 이익임에도 불구하고 차원의 안정성에 대한 조건을 반복적으로 위배할 수 있다. 보다 엄격한 [민간기업 내의 "타이트"한] 관리로 인하여 거시 경제의 불안정성 증가는 정기적으로 비정상적인 과열, 경기 침체 또는 불황의 원인이 된다.[각주:6]

 

뒤메닐&레비의 책을 덮으며

일단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결국 거시경제학의 미시적 기초에 대한 생각이었다. 예컨대 잘 알려진 거시경제 변수들의 관계를 연결하는 미시적 기초가 잘 정립된다면 뒤메닐이 말하는 "차원의 문제"는 좀 더 정책적 이슈를 우리에게 제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균형을 지배적으로 생각한다면 비율의 신속하고 민감한 조정행위는 당연히 올바르고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 역시 그렇게 생각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뒤메닐은 이러한 조정이 너무 민감하고 크다면, 차원의 불안정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정확히 여기서 차원이란 결국 "거시경제적 안정성"과 관련된 문제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러나 차원의 문제가 어떻게 거시경제의 안정성과 연결되는 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겠다. (내가 빠뜨렸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함의는 매우 흥미롭다. 여태까지 나 역시 머리 속에서 지배당해온 균형에 대한 인식이 있었던 것 같고, 뒤메닐&레비의 불균형미시경제학은 분명 균형에 대한 새로운 함의를 경제학에 불어넣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나는 이것이 경제학이 여태까지 패러다임으로 가져왔던 "균형"에 대해 상당히 중요한 도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수학적 엄밀성과 실증적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은 뒤메닐&레비 역시 언급하는 바이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내가 그들의 불균형 미시경제학을 읽으면서 여러번 반문을 하긴 하였으나.. 이건 분명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들의 모델이 너무 안 알려졌다는 점이 아쉬운 점이다.

[이관 글. 2016-12-25 작성]

  1. Duménil, G. (2003). Économie marxiste du capitalisme. La Découverte. 국역:"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김덕민 역. 그린비. 2009. [본문으로]
  2. Duménil, G. (2003). ibid. 국역본 p66. [본문으로]
  3. Duménil, G., & Lévy, D. (1989). Rationality of adjustment behavior in a model of monopolistic competition (the) (No. 8916). p225. CEPREMAP. 인용은 최임철(2006). [본문으로]
  4. 최임철. "고전학파 및 맑스 경쟁이론의 동학적 정식화 시도에 대한 일 고찰". 고려대학교 경제학 석사학위논문. 2006. [본문으로]
  5. Duménil, G., & Lévy, D. (1993). The economics of the profit rate.  p98-99. Books. [본문으로]
  6. Duménil, G., & Lévy, D. (1993). ibid.  p3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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