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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소개한 오키시오의 환원문제 해법에 대해 방법론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느껴져서 이렇게 메모를 해둔다.  이미 소개했듯이오키시오(1963)[각주:1]에게 있어 환원 문제란 어떤 유형의 노동이 단순노동보다 더 큰 가치를 대표하는 이유는 양성비용의 차이때문이다. 바로 그 차이를 고려함으로써 환원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이다.

오키시오는 우선 투입-산출방정식에 기초한 가치방정식의 기본 가정을 나열하였으며 환원을 고려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가정이 유지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2) Labor is taken to be homogeneous, so wage differentials are ignored 노동은 동질적이라고 가정된다. 때문에 임금 차이는 무시한다.[각주:2]

(...)

Some critics argue that Marx failed to take account of the heterogeneous character of labor in determining the values of commodities. To examine this point we must drop assumption ( 2).  일부의 비평가들은 마르크스가 노동의 이질적인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이 점[인용자:노동의 이질적인 특성]을 고려하려면 우리는 (2)의 가정을 제거해야한다.[각주:3]

오키시오의 (2) 가정은 다음과 같은 서로 다른 논리를 하나의 가정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를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 모든 노동은 동질적이다.
  • 그러므로 임금 차이는 무시된다.

이에 대해 다음의 의문을 얻는다. 첫째. 노동이 동질하다면 임금 차이는 무시되는가? 둘째. 환원문제를 고려하면 임금차이를 인정해야하는가?

.

 노동이 동질하다면 임금차이는 무시되는가

첫째에 대해 검토해보자. 노동이 동질하다면 임금차이는 무시된다고 한다. 먼저 다음과 같은 명제를 살펴보자.

  • 모든 노동이 임금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노동의 유형은 동질하다.

허나 이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모든 노동의 유형이 동질하다 하더라도 임금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만약 모두 동질한 노동만이 있는 세계를 가정하자. 그런데 어떤 자본가가 이 노동자를 다른 노동자로 대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 대체된 노동자를 생산과정에 투입하기 위해서는 몇 일 간의 훈련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과정동안  자본가는 더 적은 산출액을 얻는데, 훈련시간동안 고용한 임금액과 적어진 산출액이 바로 자본가가 부담할 전환비용이 된다. 이 전환비용의 존재는 "언제든지 대체가능하다"는 명제와 모순된다. 또한 전환비용의 존재는 노동력 수급의 문제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임금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데, 훈련사간이 필요하다는 전제 하에서, 첫째로 산출액이 유지되지않는다는 점, 둘째로 산출액이 유지되지않는데 임금액은 유지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노동이 동질하다는 것만으로는 임금차이가 없다고 가정하기는 힘들어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필요-충분조건을 표현해야만 한다.

  • 모든 노동이 훈련비용이 없는 유형의 노동이라면 임금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환비용이 없는 유형의 노동은 단순한 노동이 된다. 그러므로 모든 노동이 동질하다는 말은 불필요하다. 여기서 단순한 노동이라 함은 바로 대체가능하며 대체하는데 드는 전환비용이 전혀없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임금차이를 무시할 수 있는 가정이 정당하려면 모든 유형의 노동이 양성비용이 없는 단순 노동이라고 해야한다. 따라서 동질노동 가정은 다음과 같이 변경되어야한다

  • 모든 노동은 단순한 노동이다.
  • 그러므로 임금차이는 무시된다.

 

환원문제를 고려하면 임금차이를 인정해야하는가

위에서도 살펴보았지만 모든 노동이 단순노동이라고 가정할 때는 어떤 유형의 노동이든 예컨대 존의 노동 한 시간과 밥의 노동 한 시간은 동질하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환원 문제란 어떤 복잡한 노동의 노동량은 단순한 노동의 몇 배의 노동량으로 결정되는지를 묻는 것이다. 그런데 환원을 고려한다는 것은 단순한 노동과 복잡한 노동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이는 모든 노동이 단순한 노동이라는 가정과 양립할 수 없다. 그러므로 환원 문제를 고려할 때는 모든 노동이 단순한 노동이라는 가정을 제거하고 노동의 이질성을 인정해야한다.

그런데 환원을 고랴할 때 오키시오가 언급했듯이 과연 임금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 상응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 분석하려면 임금 차이가 존재하지않기 위한 가정이 무엇인지 다루어보도록 하자. 이는 다음과 같이 나열된다

  • 임금=노동력의 가치라고 하자. 여기서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만큼으로 정의된다고 한다. 그럴다면 임금차이가 존재하지않으면 잉여가치율로 보았을 때 복잡한 노동은 단순한 노동보다 더 많이 착취된다.
  • 노동력의 재생산은 다음날에도 다음월에도 언제나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노동을 지출할 수 있도록 유지하는 것이다. 그랗다면 이는 노동강도가 모두 동일하다고 가정된다. 예컨대 복잡노동이든 단순노동이든 컨디션을 저하시키는 스트레스는 그것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결과적으로 동질하다는 것이다.
  • 노동의 정상적인 컨디션을 위해 필요한 소비재 집합이 있다고 하자. 이 소비재는 질적으로 다르다하더라도 모두 동일한 가치를 가져야한다. 예컨대 지식노동은 전공서적과 최신기술논문. 잡지 등이 필요하며 육체노동은 힘든 신체를 치료하기 위해  파스와 진통제. 병원비용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동일한 가치리고 가정해야한다.

그런데 우리는 위의 가정들이 일반화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복잡노동이 더 착취된다는 말은 우리가 가지는 상식과 전혀 맞지않는다.  둘째. 복잡노동과 지식노동의 노동강도가 동질하다는 것은 어느정도 인정될 소지는 있다. 예를 들어 경험적인 판단이지만 사무직은 욱체가 힘들지않지만 정신적인 소진이 큰 스트레스. 육체노동은 정신적 소진이 없는 대신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으며 결국 둘 사이의 노동은 스트레스가 동질할 수 있다. 다만 이 전제가 논리적으로 타당한지 아닌지 판단할 기준이 우리에게는 없다. 셋째. 지식노동과 욱체노동의 컨디션 유지를 위한 소비재의 가치가 동일하도록 보징하는 매커니즘은 존재하지않는다.

따라서 환원 문제를 고려하먼 임금 차이는 불가피하게 인정되어야한다. 다른 한편 환원을 고려하면서도 추가적으로 잉여가치율 균등화를 가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환원을 고려할 때 그러한 가정을 추가적으로 유지해야 할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는 없는 것 같다.

결론을 대신하여 - 환원을 고려할 때 마르크스 경제학이 처하는 문제들

그렇다면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복잡노동의 단순노동으로의 환원을 고려하게 되면 그것은 곧 임금격차를 용인하게 되는 것과 상응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잉여가치율 e는 스칼라가 아니라 벡터로 표현되게 되며 이는 추가적인 식이 주어지지 않는 한 해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렇다면 다음의 가정이 추가되어도 유효한지 확인해야 한다.

  1. 잉여가치율이 동질하지 않아도 마르크스의 기본정리(FMT)는 유지될 수 있는가?
  2. 위의 가정이 해결된다해도 결합생산을 용인하는 수준까지 갈 때도 FMT는 유지될 수 있는가?

이는 마르크스 경제학이 얼마나 탄탄한 이론인지 검증할 기회이기도 하고 망할 기회이기도 하다. 다만 이 문제를 이원체계라는 가정에서는 적절하게 풀기가 어렵다는 이론적 곤란함이 있긴 한 것 같다. 그런데 이 문제는 새해석에서 어느정도 적절한 답에 이르른 것으로 보인다. 즉 추가적인 식을 가정할 필요도 없이 화폐임금률을 사용하면 해결된다. 즉 신고전파 모델과 같이 가격 변수의 성격을 변상수의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지수가 아니라 (주어진) 파라미터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구체적인 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즉 여기서는 잉여가치율 벡터가 미지수가 아니라 가격정보(예컨대 화폐임금률)로 파악하여 "주어진 것으로" 가정하는 것이다.(관련된 내용은 류동민(1994) p45 참고)[각주:4]. 이는 시장교환 매커니즘이 가치를 역으로 규정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새해석과 정합적이기도 하지만 가격변수를 가치체계에 혼합시키는 것은 (나쁘게 말하자,면) 일종의 변칙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새해석의 가정은 이원체계의 곤란함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내려진 처방이다. 다만 나는 아직 그 방법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얼마나 속편한 소리인가..하하 죄송합니다.

[이관 글. 2015-11-26 작성]

  1. Okisio, N. (1963). A mathematical note on Marxian theorems. p288-289. Weltwirtschaftliches Archiv, 287-299. [본문으로]
  2. Okisio, N. (1963). ibid. p287. [본문으로]
  3. Okisio, N. (1963). ibid. p288-289. [본문으로]
  4. 류동민. (1994). 가치이론의 정합성과 분석적 의의에 관한 연구.  서울대박사학위논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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