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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991년 12월 25일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대표격인 소비에트 연방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이 사건은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소련의 패망 이후 사회주의 블록들(동유럽)은 전부 자본주의화 되는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고 무엇을 배워야 할까?

아무래도 가장 저변화 된 해석은 소련사회성격 논쟁(일명 사회주의 이행논쟁)에서 출발한다. 트로츠키파는 소련에서 가치법칙이 작동했다고 믿는다. 보통 이를 (클리프가 주장한) ‘국가자본주의론’이라고 부른다. 또 하나의 해석으로 신트로츠키 파의 이론가 틱틴의 해석이다. 소련에서는 가치법칙이 작동하지 않았지만 사회주의로의 ‘이행기 과정’에 있었다는 클리프와 트로츠키 사이의 중립적인 해석이다.

이 논의의 한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가치법칙이 작동하면 안되는 관점이 기능주의적으로 혼용되었다. 가치법칙은 자본주의의 재생산 메커니즘이다. 가치법칙이 어쨌건 어느 체제던 그 자신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구조가 또한 필요한 법이다. 그것을 생각해야 하는 지점에서 “가치법칙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 그런 구조를 만들 것이라 암묵적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둘째. 가치법칙을 대체할 재생산 메커니즘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현실사회주의에서 다양하게 있어 왔다는 점을 간과한다. 이런 논점은 사회성격을 논하는 구조에서는 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틱틴의 말이 맞는다면 사회주의 이행기 과정은 어느 정도 모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으며 지속적으로 실험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실험들의 실패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가 우리에게 현재 처한 진정한 근본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 실험들은 가치법칙을 대체하는 과정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 와중에서 많은 문제가 있었다. 첫째로 시장에 대한 문제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일관되게 시장의 불안정성을 비판해왔고. 계획경제는 시장을 대체할 대안으로 모색된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둘째로 생산수단의 소유문제이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헌법에서는 생산수단을 명목적으로 국가소유이나 노동자의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경영자가 여전히 존재했고(물론 중앙당이 파견한 관료이다) 경영자는 계획당국의 지시를 받았으며., 노동자에게 할당된 생산을 하도록 지시하는 시스템이었다. 이는 계획경제와 맞물리는 문제로 볼 수 있겠다.

계획경제와 시장의 문제는 바로 생산수단의 소유 문제와 큰 관련이 있다. 결국 그 재생산에 대해 논쟁이 시작된 것이 바로 경제계산논쟁이다. 경제계산논쟁은 존 로머의 말에 따르면 5단계로 발전된 논쟁 과정이었다고 한다. 이 논쟁의 구조를 살펴보면 현재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시사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Suits for men are manufactured at the Bolshevichka garment factory (1967) 출처 :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Bolshevichka

경제계산논쟁의 발단 : 노이라트-미제스-베버

폰 미제스

경제계산논쟁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계획경제 하에서 적절한 자원배분이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였다. 또한 ‘시장사회주의 이론’이라는 하나의 흐름을 만든 계기였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계열에서는 이 논쟁에 가담하지 않았으며 시장사회주의라는 결과를 도출한 이 논쟁에 대해 무척 회의적인 편이다. 하지만 이 논쟁의 중요성은 무척 간과되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왜냐하면 경제계산논쟁에서 주로 대두되었던 자원배분의 문제는 자본주의이든 사회주의이든 어떤 체제에서나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런 공통적인 문제점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결국 개인의 사익추구 형태라는 인간형을 전제하는 것에서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체 게바라가 말한 바 있던 ‘사회주의적 인간형’의 개발이 가능하다면 공통적인 문제점도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폐쇄된 경제 하에서 가능한 문제일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아직 이는 실험이 덜 되었고 사례도 충분하지 않아 무척 조심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결론에서 개괄적으로 설명하기로 하겠다.

1940년에 하이에크는 랑게의 저명한 논문 [사회주의 경제이론에 관하여(On the Economic Theory of Socialism) ]가 발표됨으로써 경제계산논쟁이 3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특징지었다[각주:1]. 그렇다면 1단계와 2단계는 무엇인가? 1단계의 특징은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가격이 사회주의 하에서 경제적인 계산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사회주의자들의 인식이다. 둘째. 이와 다르게 오스트리아 논리실증주의 계열인 노이라트Neurath와 바우어Bauer의 주장도 있다. 이들의 주장은 “경쟁적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이라는 공통척도의 도움 없이도 실물(in natura) 형태의 계산만으로 계획경제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셋째로 노동량과 에너지 량을 가지고 공통의 가치척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어쨌든 이들의 주장은 곧 전시공산주의의 참담한 실패와 함께 미제스와 베버가 반박하기 시작하면서 2단계에 접어든다. 이들의 주장의 핵심은 전시공산주의 체제에서 전쟁 동안 주어진 수단과 목적 하에서 이루어지는 단순한 기술적 극대화의 문제와 <경제문제>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른바 경제문제라는 것은 한정된 자원을 서로 경합하는 가운데 배분해야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시체계에서는 수단과 목적이 모두가 일치단결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조성되어 있다. 미제스는 이런 단계에서는 경제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전시체제가 아닌 상황에서는 그것이 작동하지 않는다. 이를 입증하려면 경제문제가 존재하는지를 판단할 기준이 먼저 필요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의 공통의 가치척도에 대한 설명은 서로 경합하는 관계에서 선택이 주어지며 이에 따라 ‘기회비용’이 존재하게 된다고 본다, 따라서 기회비용은 경제문제의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다. 전시체제에서는 정부의 목적달성을 위해 모두가 자신의 기회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허나 그런 체제가 지속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이들의 결론은 사유재산제도가 시장형성의 조건이며 시장이 부재할 때 기회비용에 대한 산출이 불가능하고 이에 따라 자원배분도 합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주장했다. 이에 대해 디킨슨은 일반균형이 연립방정식의 복합적인 체계를 해결함으로써 사회주의 경제에서 합리적인 자원배분이 달성되는 것이 가능하며 따라서 사회주의는 강력한 슈퍼컴퓨터의 발명을 기다리면 된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디킨슨은 1939년에 발간한 [사회주의 경제학]이란 저작에서 이런 주장을 철회하였다[각주:2])

오스카 랑게의 시장사회주의론 : 3단계

그 후 랑게의 저작 [사회주의 경제이론에 관하여]가 발표됨으로써 3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랑게는 시장이 사회주의적 균형을 발견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이라고 인정했다는 점에서 시장사회주의론의 아버지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는 생산수단, 즉 자본시장에 대해서는 시장이 없다 해도 자원배분의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다고 논조를 펼쳤다. 이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그의 주장의 주요 논점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소비재에 대한 시장이 존재하며 소비재의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된다. 임금도 시장에 의해 결정되며 직업선택의 자유에 따라 노동시장이 존재한다. 둘째. 자본재의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중앙계획당국에 의해 관리되며 이때의 가격은 일종의 모색절차에 의해 결정된다. 셋째. 투자율 및 축적율의 결정은 중앙계획국에서 결정하지만 이는 상당부분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둘째의 경우 이를 모의시장이라 볼 수 있는데 소비재와 임금은 시장에서 결정되므로 남은 문제는 자본재의 자원배분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이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알아야 향후 시장사회주의의 논의과정을 추적할 수 있으므로 구체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

  • 우선 계획당국은 임의의 가격을 가지고 기업 관리자에게 두 가지 원칙을 사용하여 생산을 계산하도록 위임한다.
  • 두 가지 원칙이란 첫째, 해당 가격에서 단위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생산기술을 선택할 것, 둘째, 한계비용과 가격이 일치하는 산출량을 선택하는 것이다. 만약 모든 기술들이 수확체감, 수확불변을 따를 때, 기업들은 이윤을 극대화하도록 산출량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은 투입 요구량과 산출 공급량을 중앙계획국에 보고한다. (실제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를 밝히는 것이다)
  • 이제 중앙에서는 이 보고를 기초로 수요-공급이 일치하는지를 파악한다. 수요초과 시 생산재의 가격을 높이고, 공급초과 시 생산재의 가격을 내린다. 이렇게 조정된 가격을 다시 기업에 제시하고 이 과정은 수요-공급이 일치할 때까지 반복된다.[각주:3]

실제로 자본재의 시장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앙계획국의 관리 하에 실제 시장행위자들처럼 행동함으로써 시장균형으로 접근해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랑게의 주장이다.

이에 대한 두 가지의 의문이 들 수 있다. 첫째. 모색절차에 의한 추정이 ‘수렴되어’ 균형가격 벡터를 만들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가? 둘째, 만약 그렇다면 그게 얼마나 신속하게 가능한가? 로머의 말에 의하면 최근의 연구들에 의해 모두 회의적이게 되었다고 한다.[각주:4][각주:5]

당시 하이에크의 반론들은 물론 이런 모형내의 질문들이 제기되지는 않았다. 그의 지적의 주요 논점은 첫째, 랑게가 중앙계획국의 관리자가 기업 관리자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가정하는 데에서 공격해왔다. 즉 ‘합산 오류’라는 명제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식에는 암묵지도 있을 것이고 합산하는 과정에서 모두 솔직히 다 말할 유인들이 기업 관리자에게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기업 관리자는 중앙계획국이 자신의 부정적인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모두 솔직하게 말한다는 유인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지식의 실제 총합과 계획당국이 보고받은 정보의 합은 일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요 반박지점이다. 따라서 자원배분의 효율적인 배분도 기대할 수 없다. 두 번째로 중앙계획국이 기업 관리자들에게 이윤 극대화 이외의 그 어떤 것을 요구하는 정도만큼 기업 관리자들은 그 기업이 입게 되는 손실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란 점이다. 따라서 시장에 대한 중앙계획국의 어떠한 개입도 기업 관리자로 하여금 책임 선을 벗어나게 하여 결과적으로 결실에 대한 모든 책임을 계획국이 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90년대에 들어 공산주의의 지지자였다가 결별한 헝가리 출신인 코르나이의 연성예산 제약론이 생생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 현실사회주의를 분석할 때 매우 유용한 비판을 제공할 것이다.

사회주의 블록의 시장개혁 : 4단계와 5단계

그 4단계에 접어든 시기는 바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추진된 시장개혁의 시기와 연관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련의 경우 시장개혁이 잘 이루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고르바초프 시기였던 1985년부터 이러한 개혁이 시작되었다는 점, 그렇지만 당시에도 여전히 중앙계획국의 통제는 강했고, 경쟁이 국영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허용되지 않았으며, 국내시장을 보호함으로써 국제시장과 경쟁하는 여건이 마련되지 못했다. 사실 소련의 도태는 오래 전 예견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로머의 경우 이러한 예를 1968년 이후의 헝가리와 1950년 이후의 유고슬라비아에서 찾는다. 또한 폴란드의 경우는 1981년 시기에 이러한 시장개혁이 단행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 나라에서는 위에서 열거한 소련의 문제점과 동일한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었고 그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으로 상당수 고통받았다.

이러한 실험들의 본질적인 경제적, 정치적 성격을 특징화 한 것은 코르나이(1993)에게서 발견된다. 코르나이의 연성예산 제약론은 시장에 개입하는 중앙계획국이 손실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하이에크의 논지를 분명하게 한 것이다. 사회주의 블록에서 중앙계획국은 기업 관리자들이 목적달성에 실패하거나 도태되기 시작할 때, 그 파산을 막기 위해 대출이자를 절감시켜주거나 세금을 절감시켜주는 일을 했다. 이에 대한 유인을 살펴보면 계획국의 관료들은 기업의 실패에 따라 자신의 책임을 질 일을 피하기 위해 연성이자, 연성세금을 이용하여 부정적인 일들을 피해온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기업 관리자는 목표달성의 기준이 언제든지 협의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목표지시를 내린 계획국의 지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이다.[각주:6]

마지막으로 5단계의 경우는 현재진행형이다. 여기서 시장사회주의자들은 랑게의 자본재 모의시장을 철회하였으며, 국유화라는 방법 없이도 자신들의 주장을 펼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로머에 따르면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1)노동자기업 2)쿠폰사회주의 3)협의민주주의[각주:7]. 예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국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으며 시장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노동자의 자주경영방식으로(이는 가라타니의 어소시에이션에도 포함될 수 있다), 로머의 제안으로 쿠폰을 통해 주식과 화폐가 거래되는 시장을 부정함으로써 소득분배의 평등이란 목적을 실현하는 것, 협의민주주의는 코헨이 제안한 것인데, 그는 생산수단의 소유를 전혀 건드리지 않고 이사회의 구성을 다양한 계층의 구성원으로 만드는 것으로 파악한다. 어느 것이 옳으냐 아니냐를 살펴보기 이전에 이것이 사회주의가 맞는가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이런 질문은 계획경제=사회주의를 부당 전제하는 질문일 수 있다. 로머는 이를 사회주의를 윤리적 실현의 문제로 정리한 후 평등주의란 관점에서 사회주의적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주장은 마르크스주의로 볼 때 받아들일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로머도 이를 예상하고 그런 평등주의적 가치는 마르크스주의의 대안이 아니라 ‘보완’ 또는 ‘양립 가능한’ 수준에서 제안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분명 그런 수준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자본주의에서 진보한 체제라고 여겨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자신들의 목적에 대입하여 볼 때는 무척 부족한 것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역시 마르크스주의는 또 다른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 있다. 바로 계획경제의 모순을 해결할 방법을 제시해야 할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난관이 기존의 잘 정비된 자본주의적 시장관계들을 이용해 사회주의와 양립 시키려하는 시장사회주의론의 흐름이 생긴 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이에 대한 통상적인 반론은 마르크스주의 진영에서 준비되어 있다. 바로 유고슬라비아와 헝가리의 시장사회주의적 실험이 실패했다는 점을 들 것이다. 물론 이는 균형적인 비판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흐름은 소비에트의 계획경제의 모순들을 보며 새로운 실험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도전적으로 행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사회주의론자들에게도 그에 대해 합당한 답변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선 시장개혁을 단행했던 유고슬라비아와 헝가리에 대해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유고슬라비아의 노동자기업 모형

유고슬라비아는 티토가 이끄는 공산당이 독재자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하고[각주:8] 공산주의 국가가 된 나라이다. 이 운동은 매우 강력하였고 인민들의 신뢰를 받았다고 한다. 티토와 스탈린은 매우 두터운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1948년 유고슬라비아가 코뮨포룸에서 축출되는 사태가 일어났고, 스탈린과 티토의 갈등이 커지면서 결별하게 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유고는 소련과 떨어져 자율성을 갖게 되었고, 계획경제에 대한 최초의 전면적 수정을 단행한다. 수정을 가한 그 핵심적 내용은 생산수단은 모두 명목상 국가의 소유였으나, 의사결정권을 중앙정부가 아닌 기업 각자에게 이전한 것이다. 그 내용은 1)순수익 가운데 얼마를 노동자에게 나누어 주고 얼마를 투자기금으로 남겨둘지를 결정하는 권한. 2)기업의 노동자들은 노동자평의회를 조직하여 기업경영에 관여한 점이 그 특색이겠다[각주:9].

유고 공산당은 이런 모형을 노동의 소외를 극복하고 생산수단을 연합한 직접생산자의 통제 하에 둔다는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이상적으로 구현한 모델이라고 자부했다. 여기서 노동의 소외란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론과 닮은 면이 있는데 아무리 생산수단의 소유가 국가에 있다 하더라도 노동자가 여전히 지시에 따라 일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노동의 소외가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로머에 따르면 유고는 1980년 이전까지 무척 높은 성장률을 보였으며 1949년에서 1970년까지의 유고의 성장률은 유럽에서 가장 높았다고 한다.[각주:10] 이런 결과들 때문에 당시 유고식 노동자기업 모형은 많은 관심을 주목 시킬만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1980년대부터였다. 인민들에게 고통을 주었던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지속되었고(이 문제는 경제학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수준의 인플레이션 사례로 기록되었다) 저성장과 마이너스 성장이 반복되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문제가 발단이 된 것일까?

첫째. 노동자기업은 자본조달 문제가 가장 큰 문제였다. 유고에서는 자본시장(주식, 채권시장 같은)이 존재하지 않아 은행에 상당수 의존한 상황이었는데, 물론 이는 은행에 대한 과중한 압박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사태가 결국 자본금이 적게 드는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후퇴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기도 했다. 슈퍼마켓을 경영해야만 하는 10명정도의 노동자기업을 고려해보자. 비록 그들이 은행에서 추가적인 담보를 하여 자금을 빌릴 수 있다 하더라도, 사업의 위험부담으로 인해 파산할 가능성이 높다. 대부금에 대한 매달 지급액이 상당히 크다고 본다면, 또는 수입 없이 몇 달이 경과하게 되면 곧바로 저당권설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는 예시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도 유고의 노동자기업들은 대부분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밀려나가는 경우가 팽배했다. 이는 곧 사양 산업으로의 집중을 의미했고, 만약 그것이 자본집약적인 혁신산업으로 집중되었을 때의 산출량과 비교하여 본다면 이런 발전 형태는 ‘비효율적’이었을 것은 분명하다.

둘째. 노동자가 투자배분과 투자에 관여하게 될 때 발생하는 문제이다. 상대적으로 고령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은퇴 뒤에나 수익이 발생할 장기적인 투자는 기피하고 단기 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컸다. 또 다른 문제로 노동자들은 자신이 지분을 갖고 있지 않은 타 기업에 대한 투자를 꺼리게 되었고 이에 따라 신규산업이나 기업을 설립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각주:11]. 결국 투자란 것은 모험을 걸어야 할 일이기도 한데 이에 대해 지나치게 안전을 도모한 바가 크다.

셋째. 중복투자이다. 유고에서는 기업 간 경쟁이 제약되었고, 중앙정부는 기업을 통제하지 않았으나 각 지방정부들의 통제는 무척 심했다고 한다. 지방의 정치당국은 다른 국내기업은 물론 수입상품과의 경쟁을 차단했으며 경영진의 특권을 제약하였다. 말 그대로 사실상 계획경제와 같이 경영진을 정치당국이 파견한 것이다. 한 연구자에 따르면 독일의 관리자들이 90%를 생산과 판매에 관련된 활동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유고의 경영자들은 10%를 사용하였고 나머지는 모두 지방정부와의 회의시간에 쏟아 부었다고 한다[각주:12] 이 문제는 곧 코르나이의 연성예산 제약을 떠올리게 된다. 유고의 기업경영자는 지방정부와 협상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기울였다고 한다. 만약 어떤 지시내용이 목적달성에 실패했다면 기업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게 된다. 따라서 지방정부는 연성세금,. 연성이자를 통해 지속적으로 악순환이 반복되게 되는데, 이것이 1980년부터 일어난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원인이다. 정부는 그 구멍을 화폐의 신규발행으로 메워왔기 때문이고 그런 모순이 축적되어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간 것이다(아마도 그래서 유고연방이 분열된 것 아닐까 생각된다). 이에 따라 각 지방정부마다 각자의 투자를 하게 되어 중복투자가 빈번하게 발생하여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데 크게 작용시켰다.

여기서 핵심은 두 가지이다. 연성예산 제약과 노동집약적 산업으로의 후퇴라는 관점이다. 로머에 따르면 시장사회주의의 핵심은 기업간 경쟁, 국제시장의 경쟁, 기업의 자율성과 책임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유고에서는 비록 중앙정부는 관여하지 않았으나 지방정부의 관여가 컸던 점. 그리고 자본시장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여 시장사회주의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펼친다.

헝가리의 신경제체제

헝가리에서는 1968년 기업의 자율성을 증대시키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이때의 경제체제를 신경제체제라 부른다. 물론 여기서는 중앙계획을 유지하면서도 국가와 가게, 국가부문과 부문 사이의 거래의 경우 시장을 도입하였다. 계획당국이 생산량을 기업에 할당하고 지시하는 관계는 철폐되었고, 기업의 자율성이 확보되는 제도로 대폭 수정되었다. 이윤추구가 경제활동의 주요 목표로 인정되면서 이윤은 기업 활동성과의 주요 지표가 되었다. 경영자는 이윤에 따라 성과급을 받고 노동자도 그에 따라 성과급을 받았다. 브루스와 라스키는 헝가리의 신경제체제를 ‘규제된 시장을 갖는 중앙계획’이라 규정하였는데, 핵심부문의 계획경제는 그대로 두고 기업들로 하여금 정부가 정하는 일반적인 규칙과 조건에 적응하게 하는 체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서로의 경쟁을 통해 이윤극대화를 목표로 한다고 보기보단, 오히려 국가가 제시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연성예산 제약의 문제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기업은 일반적으로 ‘경성예산 제약’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따라 사업에 실패하게 되면 파산을 피할 수가 없다. 이윤이 없다면 노동자에게 줄 임금도 없게 되고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는 일반적으로 연성예산 제약이라 볼 수 있다. 기업이 실패할 경우 정부는 보조금을 주거나 세금을 감면하는 등 여러 조치를 통해 지원해주었다. 이렇게 되면 기업경영자는 정부가 제시하는 목표를 달성할 유인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경영이 실패해도 예산제약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이라면 큰 불이익이 없다고 보게 되고 마땅히 열심히 경영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게 된다. 하이에크가 지적한 대로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기업에 대해 책임을 지게 만들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헝가리에서 정부는 실패한 기업을 파산하게 두지 못했을까? 정부의 입장에서 기업을 파산시키는 것은 이득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관리감독에 대한 책임이 정부에 있게 됨으로 정부는 되도록 그 책임을 회피하고자 비효율적인 기업의 생산을 계속 가동하도록 조치할 것이다[각주:13]. 이러한 비효율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갔다.

헝가리 또한 마찬가지로 연성예산의 문제에서 기업의 자율성, 책임을 지게 하는 것에서 계획경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를 시장사회주의의 실패라고 하기보다 오히려 계획경제의 실패에 무게를 두는 것이 더 현명해 보인다.

시장사회주의론에 대하여

그런데 이런 계획경제의 모순들을 해결하는데 시장의 도입을 주장하는 시장사회주의론의 경우 자본주의의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국가소유로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그렇게 될 때 그 주장은 이미 잘 정비된 자본주의의 시장제도들을 활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겠다. 물론 시장사회주의론은 사회민주주의보다 더더욱 진보한 형태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체제의 가치법칙을 폐기하고 노동 소외를 철폐하는 것이 그 목적이며 그를 위해 시장의 폐기,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의 철폐를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다. 그 절차는 반드시 국유화여야 한다는 점은 여전히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여태까지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일반적인문제들은 대부분 계획경제 하에서 이루어진 모순들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시장의 도입 없이 계획경제를 잘 정비할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는가?

혁명이란 의미에 대하여

사회주의의 도입 시기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가치법칙을 계획경제로 대체하여 무력화시켜야 한다고 본다. 이런 주장은 경제계산논쟁 당시 모리스 돕(M, Dobb)의 지적에서 잘 드러나 있다. 돕은 시장과 계획경제가 양립 불가능하다는 점을 주장했다[각주:14]. 랑게와 디킨슨과 같은 신고전파 경제학적 사회주의 모델에 대해 돕은 그들이 질적으로 새로운 체제를 발전시킬 사회주의의 중대한 과제에 집중하기보다는 자본주의적 매커니즘을 그대로 흉내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돕의 입장은 즉 정태적인 균형과 한계적 조건들을 탐구하는 것으로 사회주의 논쟁의 흐름을 가두어야 한다는 당시 하이에크-랑게의 논쟁의 기본전제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이는 쿠바혁명 당시 일명 ‘대논쟁’에서 체 게바라의 주장들을 살펴보면 사회주의적 과업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한다. “이를(사회주의적 인간형 : 인용자) 문화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이 새로운 조건을 획득해야 한다. 인간이 상품으로 존재하는 것을 중단해야 하고, 사회적 의무수행을 위해 몫을 분담하는 시스템을 수립해야 한다”[각주:15] 체게바라의 인식은 자본주의적 경쟁과 시장에 의존하게 되면 사회주의적 인간주의를 발전시킬 가능성을 저해할 것이라고 우려한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단계에서 기존의 관습들을 혁명 시켜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 과제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는 사회주의적 인간형을 개발해야 하는 문제를 선험적으로 전제함으로써 둘을 혼동하는 것 같다. 혁명이라는 것은 기존의 사회적 풍토와 양식들을 새로운 사회적 관계로 급격하게 변혁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이 사회주의의 과제이기도 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결국 혁명시기에는 어떤 사회적 관계들로 그것을 대체하는지가 먼저 확실하게 논의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계획경제라고 고집하겠다면, 계획경제에서 여태까지 나왔던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한다. 물론 계획경제는 70년 동안의 짧은 기간 동안 혁신하고 변화할 실험의 기회를 놓친 상황이다. 그렇다면 현재로써 시장사회주의만이 그 대안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계획경제를 옹호하는 부류에서도 그 해결의 단초를 ‘참여계획’이라는, 민주적인 참여를 통해 계획경제의 문제점들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계획경제에 대한 변론

칵샷과 코트렐에 따르면 “현존 계획경제” 중 가장 선진적이었던 구 소련에서도 경제계산에 필수적인 투입산출 분석은 적용된 적이 없다고 한다. 1980년 중반에 작성된 고스플랜Gosplan은 초보적 형태의 투입-산출표였고 고작 2천여 개의 품목에 대해서만 작성할 수 있었다. ㅡ 1970년대에는 1만 5~7천의 품목이 소련에서 존재한 것으로 안다ㅡ중앙계획에 필수적인 정보통신 기술조차도 23%의 전화보급률을 기록하였다. 이는 서방시장경제에 비해 낙후한 수준이었다. 따라서 엄밀하게 그런 기술적 혜택이 없었고 제대로 된 계획경제를 실천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각주:16]

그러나 계획경제가 투입산출 분석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투입산출모형을 최초로 만든 레온티에프의 모형이 발표된 것은 1930년이었고, 이를 다듬는 과정이 필요했다. 사실 이에 기초한 산업연관표가 작성되기 시작한 역사는 세계적으로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물론 소련은 비-군사부문에서 상당히 낙후된 설비를 갖추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낙후성이 소련의 문제였다면, 왜 제대로 된 투자를 통해 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했는가? 남조선의 경우 전쟁으로 인한 폐허와 자본파괴, 그리고 시설의 낙후성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기술발전을 이룩하지 않았던가?

로머의 지적에 따르면 소련은 시장개혁이 시작된 1950년부터 1970년 이전까지는 상당한 성장을 구가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 무언가가 고장 났다는 것이다. 로머는 소련 전체를 주인-대리인 모형을 가지고 모두 비판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적어도 시기상 1970년대까지의 시기에 이를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로 응수한다. 한번 생각해보자. 경제학에서는 경제성장과 국가 간 소득수준의 차이를 설명하려는 ‘경제성장이론’이 존재한다. 여기서의 일반적인 설명은 발전회계를 통해 알 수 있는데, 경제의 성장은 요소축적(노동과 자본의 증대를 통한)에 의한 성장과 기술혁신, 즉 총-요소생산성에 의한 성장으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발전회계의 구분을 통해 한 나라의 경제성장 경로를 추측할 수 있는데, 대부분 동아시아의 호랑이들의 기적적인 경제성장이 요소축적에 의한 것이라는 것은 현재 상식이 되었다. 그런데 요소축적이라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요소축적에 의한 성장이 점차 경제가 성숙되는 시기에 이르게 되면 그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로머는 소비에트의 참혹한 실패를 1970년 이후로 설정한다. 이 시기에 소련이 기술혁신에 의한 성장을 해야 할 시기에 그것이 잘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로머는 이 시기에서부터 주인-대리인의 문제, 투자의 문제, 연성예산 제약의 문제가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각주:17]

직접계산

랑게는 1967년에 모리스 돕의 기념 논총에 기고한 글에서 현대의 전자 컴퓨터가 시장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자신의 시장사회주의 모형이 이후의 이론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대체되었다고 랑게는 확신했다. 직접계산의 현대적 모형은 칵숏과 카트릴에 의한 것이다.

컴퓨터의 속도가 아무리 발전한다 하더라도 경제의 복잡성이 증대하는 상황에서 그 계산은 불가능하다는 노브의 지적에 대해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그들의 계산에 따르면 백만 개의 구분된 생산으로 구성된 경제에서 대략 초 당 2백만 회의 계산을 실행할 수 있는 컴퓨터가 동시방정식을 푸는 데 표준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면 각 생산의 노동가치를 계산하는 데는 1만 6천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들의 다른 방식은 연속된 근사적 접근을 사용한다면 몇 분 안에 소수점 네 자리까지 정확한 해를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현대의 컴퓨터는 이보다 빠를 것이다.

그러나 이어 그들은 “생산되고 있는 산물의 목록.. 각 생산과정에 사용되는 기술에 대한 정기적인 갱신자료.. 모든 형태의 원료의 유효 스톡과 기계의 모든 모델에 대한 목록.. 다양한 생산기술에 대한 중앙의 평가에 의거하여 계획시스템은 각 기술이 사용되는 정도로 선택할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상 계산은 불가능하다는 노브의 지적을 효과적으로 늘어놓은 것에 다름 아니었다.[각주:18]

이들은 또한 노동증서라는 프루동의 아이디어를 차용한다. 현재 지출되는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노동증서를 노동시간에 맞게 노동자에게 지급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노동증서는 한번 사용하게 되면 폐기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화폐가 아니며, 노동시간에 따른 분배만이 평등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정성진의 지적에 따르면 이들의 제안에는 분업의 폐지가 빠져 있다는 것을 그 문제점으로 들고 있다[각주:19]. 또 다른 문제로 여기서는 칵숏과 카트릴의 지적대로 암묵지에 대한 문제가 제대로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문제가 상당히 복잡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사실 계산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증명한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참여계획

참여계획에 대해 이들이 해결하는 관점은 바로 하이에크가 지적한 합산오류 문제에 대해서이다. 지식에는 암묵지가 존재하고 계획당국에 기업 관리자가, 기업 관리자에게 노동자가 모든 정보를 솔직하게 공개할 유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런 차원에서 전체지식과 계획당국의 지식은 합산에서 차이가 나게 되고 자원배분에 문제가 일어난다는 취지였다. 참여계획은 이런 문제에 대하여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하이에크는 개별자본의 사용에 관한의사를 결정하는 기업가만이 암묵적 지식에 접근하고 발견할 인센티브가 존재하며 계획경제보다 합산오류의 괴리가 작다는 논지를 펼치고 있다. 이에 반해 참여계획의 경우 만약 개인들이 암묵적 지식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자신들의 결정에 대한 결과를 분석하고 수정하는 능력을 갖추었다면, 이 지식을 명료히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은 개별자본의 소수의 간부와 사장에 국한하기보다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암묵적 지식을 사회적으로 동원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는다[각주:20].

참여계획에는 파레콘, 협상모델로 나누어지는데 여기서는 협상모델에 대해서만 다룬다. (파레콘은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협상모델은 드바인Devine으로 대표되는데, 드바인은 시장교환과 시장강제를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협상모델”에서는 시장강제가 소멸하고 협상조절로 대체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협상조절에서는 시장교환이 존재하나 이는 투입물들을 구입하고 생산하는 영역에서만 작동한다. 반면 신규 투자 및 투자 축소에 대해서는 협상조절을 통해 수행된다. 여기서 협상조절의 주체들은 다양한 계층들이 참여하게 된다.

여기서 약간의 의문이 든다. 협상조절의 주체들 간에 수렴이 존재할 수 있는가? 제도주의 경제학자 호지슨G. Hodgson의 지적에 따르면 “무제한적인 간섭과 끝없는 숙의의 장치로 전락할 것”이라고 지적된 바 있다. 또한 협상이 수렴되는 속도는 경제의 역동성에 얼마나 영향을 줄 것인가.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면 로머가 지적한1970년 이후의 소비에트에서 일어난 문제들을 해결해주지 못할 것이다.

결론

우리는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문제들을 검토하면서 연성예산제약의 문제, 기술혁신 문제로 압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 글에서는 주인-대리인 문제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진 않았다. 이 문제는 기술혁신의 문제와 관련이 깊다.). 로머의 지적에 따르면 현실사회주의들의 초기 경제성과는 무척 괜찮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서구 경제학계가 매달린 연구들은 대개 자본주의의 성적이 사회주의 블록 국가들보다 안 좋은 것은 아니었다는 것(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을 입증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가 제대로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은 대부분 1970년대 이후 성장경로가 요소축적에 의한 성장이 한계에 다다를 때 기술혁신을 할 유인들이 사회주의 블록에 존재하지 않았었다는 지적, 그리고 이것이 경제의 역동성을 좀먹으며 결국 패망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이런 분석은 사실 남조선에서도 외환위기 이후 붉어진 동일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시장의 도입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일까? 또한 생산수단의 소유를 건들이면 안 된다는 것일까? 계획경제의 병폐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시장사회주의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계획경제의 모형으로 등장한 이론들은 사실 조금은 실망스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쿠바혁명이 일어날 때 체 게바라는 강경하게 시장의 도입을 극구 부정했다. 기존의 관습이 남아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인센티브를 이용하는 소련의 재정시스템의 도입을 부정했던 것도 자본주의적 인센티브에 의존하면 사회주의적 인간형을 개발하는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극구 자신의 중앙계획에 집중된 재정시스템을 도입하고 만다. 문제는 사회주의적 인간형이 잘 개발되었다면 이런 문제가 붉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그러한 인간형의 개발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의 이론이 좀 더 세련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만을 강경하게 주장하는 것으로는 무척 부족하다고 본다. 사회주의의 공동체 의식을 어떻게 자본주의적 인센티브와 다르게 의식화 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이 “가치법칙의 폐기, 시장의 폐기”라는 붉은 말로 때우는 것은 무척 허망하다. 그렇다고 시장사회주의론을 따르는 것은 조금 부족하다. 나는 사실 시장사회주의론보다 자본주의가 훨씬 역동성에 있어서 우월하다고 본다. 만약 민주주의의 성숙된 형태, 조금이라도 평등에 가까워지기 위한 경로를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시장사회주의론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는 진보적 태제로 가능하긴 할 것이다. 현재 “시장의 폐기, 가치법칙의 폐기”를 하나의 태제여야 한다고 믿는 자라면 문제는 좁은 안목을 가진 사회주의 세력들이 권력을 갖게 될 때 또 다시 계획경제의 오래된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실상 오래 가지도 못 할 것이다.

현재 어떤 결론이 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는 아주 이기적인 개인이란 문제와 사회적인 공동체적 인간 사이에서 이기적인 인간을 다루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현재로서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선호는 결국 자본주의적 관습들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것을 변혁해야 한다는 것은 나는 동의한다. 우리가 얼마만큼 사회적 인간을 믿느냐가 계획경제의 문제들을 개선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관 글. 2013-07-20 작성]

 

  1. Hayek, F. A. (1940). “사회주의 계산 Ⅲ : 경쟁적 ‘해’”. p6.  [본문으로]
  2. Hayek, F. A. (1940). ibid. p16. [본문으로]
  3. 박흥기. “경제계산 논쟁과 하이에크의 과제”. p16 ~ p17. [본문으로]
  4. Roemer, J. E. (1994). A future for socialism. Harvard University Press. 국역본:“새로운 사회주의의 미래”. p47. 한울출판사. [본문으로]
  5. 전자의 경우 소넨샤인(1973)과 데브루(1974)에 의해서, 그리고 후자의 경우 오르투뇨와 로머, 실버스트에 의해 90년대의 연구에 의해 이에 대한 회의론이 붉어졌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밑의 ‘직접계산’ 참고) [본문으로]
  6. Roemer, J. E. (1994). ibid. p108. [본문으로]
  7. Roemer, J. E. (1994). ibid. p65. [본문으로]
  8. (21.09.26 바티스타는 쿠바의 독재자이기 때문에 본 언급은 실수라 삭제하였다. 지적해주신 후텐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본문으로]
  9. 김수행 외. (2002). 현대 마르크스경제학의 쟁점들. p108. 서울대학교출판부. [본문으로]
  10. Roemer, J. E. (1994). op. cit. p65. [본문으로]
  11. 강신욱. 시장사회주의론. p16. [본문으로]
  12. Roemer, J. E. (1994). op. cit. p109. [본문으로]
  13. 강신욱. 시장사회주의론. p18. [본문으로]
  14. Dobb, M. (1933). Economic theory and the problems of a socialist economy.The Economic Journal, 588-598. [본문으로]
  15. 헬렌 야페. (2012).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 p136. 번역 류현. 실천문학사. [본문으로]
  16. 정성진. (2006). ‘21 세기 사회주의’와 참여계획경제의 가능성. p3-4. 진보평론, 100-127. [본문으로]
  17. Roemer, J. E. (1994). op. cit. p60. [본문으로]
  18. Fikret Adaman &Pat Devine, (1997) On the Economic Theory of Socialism, p20. New Left Review 221, [본문으로]
  19. 정성진. (2006). op. cit. p16. [본문으로]
  20. Fikret Adaman &Pat Devine, (1997). op. cit. p22.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