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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한 연구자가 페이스북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작은 정부는 친화적이라는 글을 올렸다.[각주:1]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넘어가다가 이에 대해 한 사회운동가가 "좀 더 사려깊은 논증이 필요"한 문제라는 지적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반성..)

그의 지적에 뒷통수를 맞았기에 이런 작은 정부론과의 구체적인 비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국가와 사회의 관계라는 틀이 아니라 국가와 경제구조의 관계라는 마르크스주의의 독특한 개념을 먼저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함으로서 작은정부론과 마르크스주의의 국가론이 같거나 친화적일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 그런 후에 다시 국가와 사회를 논의하는 것이 온당하다 할 것이다.

국가와 경제구조

물론 마르크스주의가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를 국가의 폐지로 보았고 그 대안적인 형태를 어소시에이션의 어소시에이션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작은 정부론과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작은 정부론과 국가폐지론이라는 두 개념은 목적하는 것도 다르고 다른 맥락에서 나왔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이를 설명해보도록 하자.

먼저 작은 정부론에서 말하는 정부란 자유시장에 외적인 법-제도를 근거로 시장에 제한을 줄 수 있는 경제적 주체를 의미한다. 이와 달리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국가라는 개념은 자유시장과 정부의 관계라기보다는, 생산관계의 집합인 "경제구조"의 특수한 생산관계를 토대로 하는 상부구조라 할 수 있다.

  이들 생산관계의 총합이 사회의 경제적 구조, 즉 실질적 토대를 구성하고 그 위에 법적·정치적 상부구조가 세워진다. [각주:2]  

이에 따르면 경제구조에 의해 세워진 상부구조인 법과 제도가 결국 특정한 생산관계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기반이 되는 것으로 보는 관점임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지주-농노라는 생산관계가 지배적인 시기에는 그에 맞는 중세적 국가형태들이 존재했다. 이런 생산관계에서는 현대의 정부형태는 이에 상응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밀턴 프리드먼이 말한 경찰, 군대와 같은 필수적인 기관을 남긴 작은 정부라는 개념은 상부구조라는 관념적인 제도를 축소할 뿐이지 그 실질적 토대인 생산관계를 바꾸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의 국가이론이나 이데올로기론들은 상부구조의 자율성에 주목하고 있긴 하다. 허나 어느 이론들도 작은 정부론에 친화적이지 않을 것 같다)

경제구조는 상부구조의 토대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법-제도의 행정-집행 기관의 집합인 정부가 축소되거나 없어지는 현상형태를 가지고 공산주의냐 아니냐를 언급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상부구조는 경제구조를 토대로 세워진 것이고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에서도 지금과 같은 정부라는 형태가 유지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아주 큰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경제구조가 변수인 것이지 상부구조만을 바꾼다고 경제구조가 바뀌진 않는다는 걸 현실사회주의국가들이 증명해주고 있다.

결론 : 국가와 사회

다시 국가와 사회라는 차원으로 돌아와보자. 사회라는 건 마르크스주의가 말하는 경제구조(혹은 생산관계)보다 포괄적이고 다채로운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인간적 본질은 어떤 개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앙상블)이다.
-Marx. K.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태제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특수한 생산관계는 사실 사회의 특수한 일부분에 불과하며 어떤 생산관계가 다른 생산관계로 대체되는 이유는 여러 가능했던 사회적 관계 중에 하나가 특정한 생산력 수준에 상응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의 정부의 모습을 보고 "자본가계급의 집행위원회"라고 말하기는 어려워보인다. 그만큼 정부가 복잡해졌고 권력의 배치가 분권화되어가고 여러 가능한 사회조직들이 정부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관계를 맺고 있다.

이렇듯 국가와 사회가 복잡한 과정들과 맥락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이 태내에서 발전하는 대안적 생산관계를 만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들을 보았을 때 이런 세부적인 논의들이 작은 정부로 통쳐진다면 너무 싼 처분이 아닐까. 크든 작든 정부의 규모는 공산주의에서 어떤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것을 집행하고 통치하는 구조가 무엇인지 또는 그것이 어떤 생산관계를 토대로 갖고 있는지 등을 깊이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싶다.

  1.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187974385016124&id=100014107212334&ref=content_filter. 21.07.21 12:41 접속 [본문으로]
  2. Marx, K. "A contribution to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p20.Marx Today. Palgrave Macmillan US, 1971. 91-94.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