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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질문들]은 답을 쓰지 않는 질문만을 담는 글의 모음입니다

배경: 연기자의 기자회견. 믿을 수 있는가?

연기는 가식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된 계기는 공교롭게도 최근 배우 김수현의 기자회견을 보고 든 생각 때문이다. 최근 김수현은 故김새론이 미성년인 시절 연애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면서 그 파급이 커재고 있다. 더군다나 그녀의 자살에 일부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잇슈 컬처] 외신도 ‘김수현 기자회견’ 주목…“한국 사회 충격”

이틀 전 열린 배우 '김수현'씨의 사생활 관련 기자회견에 외신도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해외에선 이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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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 기자회견을 보고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간혹 전문연기자가 저렇게 직업공간이 아닌 곳에서 언론에 극적인 어떤 일로 담화를 하는 걸 볼 때마다 "가식"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건 나의 연기자라는 배우에 대한 편견 때문일 수 있다. 예컨대 기자회견이라는 공간은 무대, 카메라는 TV촬영용 카메라, 그리고 발화자는 연기자에 대응되는 등 모든 구성은 마치 TV드라마와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나의 이런 평가가 잘 와닿지 않는다면 다르게 생각해보자. 전문연기자의 연기는 상당히 리얼하다. 그렇다면 연기자가 작정을 하고 진심이 아닌데도 진심을 속이려 한다면 당신은 속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나의 대답은 자신이 없다는 거다.

때로 우리는 진심을 온당히 전하기 위해 연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나의 질문은 여기서 한걸음 더 넘어간다. 어쩌면 연기라는 행위에 대한 본질에 대해서인데, 바로 우리는 진심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심성과 표정 그리고 몸짓을 통해 전달해야만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의 심성을 꺼내서 타자에게 보여줄 방법은 결코 없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것을 익혀간다는 사실이다.

진심을 전하는 방법도 숙련이 필요하다 (이미지출처: 이백오 상담소 - 잘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공감!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1730619 )

이로서 문제가 점점 복잡해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진짜 문제는 우리는 결국 사람의 본심을 결코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 좀 더 가혹할지 모르겠지만 좀 더 문제를 다른 차원으로 끌고 가고자 한다.

상대방을 잘 속이려면 자신까지도 속여야 한다

메소드 연기의 병폐로 알려진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故장국영 배우이다. 장국영은 [이도공간]을 찍으면서 역할에 대한 몰입이 컸던지 불면증에 자주 시달렸고 결국 자살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알려졌다. 물론 이는 우리가 너무 한 인간을 단순화한 것이 아닐지 싶다. 실상은 사적인 이유일 수 있고 단지 우울증에 의한 영향 때문일 수 있다. 인간은 우리의 예상과 음모론보다 훨씬 복잡하다.

 

장국영 자살원인은 ‘우울증’

[파이낸셜투데이] 비운의 스타 장국영이 자살 전 심각한 우울증을 겪은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지난 3월 28일 소후오락을 인용한 중국 칭니엔바오에 따르면, 장궈룽과 '최후의 점심'을 함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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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 케이스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때로는 우리가 속이기 위한 가식을 통해 우리가 진짜 본심이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재미있는 예로 뇌과학에서 뇌가 얼마나 멍청한지 사과를 먹고 침을 삼키는 시늉을 내면 정말 소화기관이 사과를 소화하는 준비와 똑같이 동작한다는 이야기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깔깔 웃을 수 있지만 그것을 웃을 수 있는 조건은 당신이 그 모든 것을 관망했기 때문 아닌가? 간단한 최면술을 통해 이런 암시가 의식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파스칼이 무신론자에게 한 격언 "무릎을 꿇어라. 기도의 말을 읆조려라. 그러면 믿게 될 것이다"를 기억하라.

나의 질문: 심성과 연기는 분열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떤 상호작용이 윤리적일까

나의 질문은 이렇다. 심성과 연기는 분열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둘은 분명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은 분명해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떤 상호작용이 윤리적인가?

분명 연기이론 쪽은 이런 질문들을 해왓을 것이다. 내가 이쪽 전공이 아니다보니 퍼플렉시티를 이용하여 자료조사를 했는데 그중 스타니슬랍스키의 다음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어떻게 '사랑'을 연기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사랑의 감정은 직접적인 의식으로 조종할 수 없다. 사랑은 그 정서를 이루는 사건들과 순간들을 상상함으로써 표현될 수 있다. 따라서 정서는 모방의 문제가 아니라 과정이 된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작품을 사건 단위로 나누며, 각 사건은 다시 같은 목적을 향해 발생하는 수많은 행동들로 구성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스타니슬랍스키와 리얼리즘 연기 (영화 연기, 2015. 5. 20., 박서연)

스타니슬랍스키의 이론에 따라도 둘이 분열되어있음을 잘 알 수 있고 그 역시 "모방"의 경우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연극"을 일종의 자기성찰과 심성의 계발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연극무대에서의 연기를 "인간행동의 모방"으로 사고했다. 이런 점에서 스타니슬랍스키의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에서 넘어서고자 한 근대적 이론으로 생각할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역시 이쪽 분야는 전혀 익숙하지 않는터라 좋은 질문이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겠다. 하여 나는 이를 질문들 카테고리에 둔 것이다.

노트

  • 우리는 타자를 알 수 없고 그런 이유로 결국 사회에서 통속적으로 "진심의 행위와 정서"라고 할만한 눈에 보이는 타자의 행동과 제스처와 언어를 통해 그럴듯하게 판단할 뿐이다. 이런 사회적 센서는 성공적이지도 않고 우리를 혼란스럽게도 하지만 때로는 "대체로 성공적"이다. 이런 규범적이고 통속적인 센서조차 갖추지 않으면 너무 잘 속거나 오히려 사람을 안믿는 불신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위에서 얘기한 심성과 연기의 상호작용에서 가장 나쁜 케이스로 생각되는 것은 바로 "자신은 속지 않는 연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분열된 상태를 해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가 속으래?"라는 비아냥을 떠올려보자. 이런 말이 가능한 사람은 한 사람이다 애초부터 속이려고 작정했지만 나는 이 연기를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당신만이 속기를 바란다는 계획에 따른 행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