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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기술인 블록체인이 뜨게 되면서 이를 "대안화폐"라고 명명하는 경우가 있다. 대안화폐의 역사는 사실 비트코인 이전부터 있어왔다. 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화폐가 썩어야 한다고 주장한 실비오 게젤

화폐란 사실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볼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생산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국가가 그것을 강제한다 해도 결국 실패하게 마련이었다. 조선 후기의 상평통보도 생산력이 증대하여 잉여생산물의 시장이 가능한 기반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는 점을 상기하자.

어쨌든 대안화폐라는 것은 결국 근대에서야 가능했던 국가화폐제도의 문제에 대한 의식에서 출발해왔다. 이를 경제학 차원에서 접근한 시초는 아마도 독일의 경제학자 실비오 게젤일 것이다.

[그림 1] Silvio Gesell

이젠 기억하는 사람은 없으나 당시 경제학자 사이에선 유명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특히 피셔, 케인즈는 게젤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게젤(1916)[각주:1]은 화폐가 다른 실물자산과 달리 가치가 감가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그는 이런 본질이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의 이론은 화폐를 설명하는 이론이 아니라 대안화폐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내세우는 대안은 단순하게도 화폐를 썩게 만드는 거다. 간단히 말하자면 오늘 거래되어 나에게 수익으로 들어온 화폐 1만원은 10일이 지나면 9000원의 가치가 되는 거다. 그것을 쓰지 않고 축재할 때에 대한 벌점을 주는 거다.

이렇듯 게젤의 대안화폐이론 이후부터 대안화폐운동들이 목표하는 것은 결국 화폐를 쓰지 않고 가둬두는 기능을 방지시키는 것이 핵심이 되었다. 케인스(1937)[각주:2]는 화폐를 가지고 있는 동기를 거래적 동기, 예비적 동기, 투기적 동기로 구분한다. 이런 동기들이 화폐를 소비하지 않고 축재하게 만드는 것이고 이것이 불황의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좀 더 고풍있게 말하면 이를 유동성선호라고 한다.

사실 이런 아이디어는 여러모로 케인스에게 영향을 줬을테고 그 아이디어는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까지 경제학자의 지식을 넓혀왔다는 점에서 학문이란 참으로 별 것도 아닌 듯한 아이디어에서 이렇게 발전하는구나 싶다. 물론 역사적인 대공황 사건은 리카도의 "화폐는 베일이다"를 계승한 신고전파가 흔들리게 된 계기였기도 하다.

지역화폐운동과 LETS운동

이와 달리 대안화폐를 일종의 윤동으로 보는 움직임도 있다. 실제로 지역화폐운동의 경우 대공황 시절 성공 사례들이 많다. 위에서 케인스가 언급한 바 있듯이 화폐의 유동성 선호가 불황을 낳는다고 했다. 따라서 불황 혹은 공황 시점에 이를 때 사람들은 유동성 함정에 빠지게 된다. 돈을 안 쓰게 된다는 거다. 이럴 경우 대안화페운동은 지역화폐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소비를 하도록 유인한다는 것이고 대공황 시절 이런 아이디어들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이들 사례를 보면 결국 정부가 지역대안화폐를 금지시키므로서 끝장이 나는 경우가 많다. 이미 말했듯이 현대의 화폐제도는 유동성의 관리가 본질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여기서 국가가 통제하지 못하는 화폐가 시장에서 유통된다고 하면 경제의 안정성은 심히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EU화폐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 불안정성이 있었고 경제학자들은 그리 낙관적이지도 않았다. 물론 실제로도 그랬다.

현재까지 잘 작동하고 있는 지역화폐운동은 아마도 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일 것이다. 한때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이 이를 조직했다가 와해되어 잠깐 유명해지기도 했었다. 한국에서도 이 운동이 있다(한밭레츠). 학술적인 차원에서도 연구가 많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만큼 지역화폐운동 차원에서 가장 검증이 잘되었다고 평가된다.

[그림 2] 국내 LETS운동의 성공적인 사례인 한밭레츠에서 활동모습.  LETS 통화 거래를 위해 매번 이런 식의 문화이벤트, 품앗이 활동 등을 통해 거래를 활성화해오고 있다. 그만큼 이들의 노고의 동기는 결국 "공동체성"의 회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경제학적인 흥미 뿐 아니라 사회주의적 측면에서도 여러모로 참고할만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http://www.tjlets.or.kr/bbs/view.php?id=gall&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reg_date&desc=desc&no=635

LETS는 일종의 포인트 제도의 혼합형이라 볼 수 있다. 즉 하나의 거래를 국가화폐와 LETS통화를 혼합하여 쓸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발행주체는 중앙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이며 여기서 한쪽이 소득이 생기면 한쪽이 부채가 생기며 갚을 시기는 정해져있지 않으나 언젠가는 갚아야 한다. 이런 시스템은 정확히 부족사회에서 공동체가 호혜적으로 실물을 교환하는 시스템을 그대로 화폐경제에 실현한 시스템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가라타니 고진은 이런 특징에 따라 잉여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소득이 발생하면 부채가 발생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모든 거래를 합산하면 0이 된다. 또한 부채가 증가하는 구성원의 경우 공동체에서 신뢰를 잃게 되기 때문에 특별히 부채탕감에 대한 시간적 제약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채는 갚도록 유인시키게 된다. 이 "갚는다는 것"도 명확한 주체는 없다. 단지 그가 어떤 거래의 공급자가 되는 방식일 뿐이다. 그러니까 결국 대안화폐 운동의 본질 상 소비를 추동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투기적/예비적 동기에 따라 부채를 많이 갖거나 아니면 소득을 많이 갖게 되면 그것이 모두 공개되기 때문에 공동체에서 신뢰를 잃거나 너무 많이 가졌다고 욕을 먹기 때문에 어떻게든 "쓰도록 만든다".

한국의 LETS운동 한밭레츠를 실증분석한 류동민(2003)[각주:3]에 따르면 네트워크 분석결과 가장 큰 연관관계를 갖는 주체가 의료생협이라고 한다. 이 큰 수요자 때문에 지역민들 간 거래가 활성화될 수 있었다는 것이 결론이다. 결국 어떤 큰 수요 고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역화페운동은 장기화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암호화폐는 대안화폐가 아니다

이와 달리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기술은 어떨까. 이건 특별한 대안화폐운동은 아니다.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대안화폐의 문제의식은 거래적 동기 외의 동기에 따른 축재를 금지시키는 거다. 하지만 암호화폐기술은 이런 이념과 전혀 다르다.

비트코인의 기능은 블록체인 기술에 의해 실현되었다. 블록체인이란 익명의 제 3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정보임을 보증해주는 기술이다. 예컨대 국가화폐를 가지고 거래한다 치자. 그 화폐가 진짜인가 아닌가를 누가 보증하는가. 정부당국이다. 그래서 당국은 가짜화폐를 단속하기도 한다 . 이에 비헤 블록체인은 익명의 다수가 알고리즘에 참여하여 현재 거래소에 올라온 코인 정보가 확실히 진짜임을 보증시키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어떤 점에서 "대안"이라고 하는 걸까. 이것이 대안으로 하는 것은 바로 신뢰성 있는 정보임을 보증하게 하는 기술에 대한 것일 뿐이다. 그 외에는 화폐의 축재를 금지시켰던 이전의 대안화폐운동의 이념에 대해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를 "대안화폐"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대안화폐의 목적이 아니라 공인인증의 방식을 분산처리 기술을 통해 가능토록 만들려는 목적에서 개발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안화폐라고 한다면 축재를 금지시키거나 불평등의 해소를 고민하는 방법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지만 비트코인은 그런 목적에서 등장하지도 않았으며 축재에 벌점을 부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이더리움 창시자가 투기적 목적에서 비트코인을 거래하는 현재 상황을 비관적으로 얘기하여 화제가 되었다[각주:4].

[그림 3]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

하지만 애초부터 투기 목적을 제재할 장치는 처음부터 없었으면서 저런 말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가 말하는 것은 결국 도덕적인 차원에서 제기되었을 뿐이다. 처음부터 대안화폐운동으로써 출발했다면 시스템을 저렇게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18/1/19 추가) 뮬론 블록체인 기술을 본래 있어왔던 지역화폐운동에 도입하는 경우는 나쁘지 않은 시도일 거라 전망된다. 왜냐하면 기존의 방식은 거레발생 시 중앙협회에서 지역화폐의 무결성을 입증하는 방식을 채택해왔기 때문에 관리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노원구가 블록체인을 이용한 지역화폐를 도입했다는 소식은 흥미로운 사례일 것이다.

[이관 글. 2018-01-01 작성]

  1. Gesell, S. (1916). Die natürliche Wirtschaftsordnung durch Freiland und Freigeld; published in Bern in 1916. [본문으로]
  2. Keynes, J. M. (1937).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51(2), 209-223. [본문으로]
  3. 류동민. "지역통화운동 활성화방안에 관한 연구 - 한밭레츠의 사례를 중심으로 -". 경제발전연구 제9권 제1호 / 2003 / 85~106. [본문으로]
  4. 중앙일보. "이더리움 창시자 “투기 이어지면 암호화폐 시장 떠나겠다” [출처: 중앙일보] 이더리움 창시자 “투기 이어지면 암호화폐 시장 떠나겠다”". http://news.joins.com/article/22247577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