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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류동민& 박도영의 논문 "[자본론] 과 경제학체계"를 읽다가 "체계화"와 "비판정신" 사이에서 비틀거려왔던 나를 떠올리게 되었고 이에 대해 썰을 풀까 한다. 1
체계와 저항
이 논문은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경제학의 '체계'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여기서 체계라는 말이 지시하는 것은 '교과서'를 의미함이 분명해보인다. 이로부터 무엇을 잘못 생각했는지 무엇이 맞는 생각인지 명확해지는 것이다. 어쩌면 주류경제학이 주류로서 가능했던 점은 이러한 체계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질문을 방해하는 요인 역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상존한다. 그것은 바로 경제학 '비판'이라는 또 다른 과제이다.
모종의 비주류경제학자들은 이중의 과제에 직면한다. 그 하나는 지배적 담론구성체에 대항하는 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식생산관계에 저항하는 것이다. 2
류동민& 박도영은 이때 '저항'이라는 의미를 추상적으로 언급하지만 내 생각엔 변증법적 통일 혹은 총체성과 관련된 개념을 지적하는 것 같다. 이것은 여러모로 체계화에 대한 저항을 낳아왔다. 변증법 통일이 필요한 이유는 모순이 상호작용을 한다는 점, 그리고 총체성에 있어서는 역사적으로 이러한 모순들이 변화하고 분열한다는 측면이 있다는 신념 하에 체계적인 지식을 구축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변증법적 통일, 총체성
변증법을 받아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이는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적 관계가 변화하며 자본주의 체제는 확고하며 영속적인 체제는 아니라는 생각은 적어도 일부분은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한에서 이러한 '총체성'의 입장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는 지난 몇 세기동안 유지되어왔고 여러 위기를 겪고서도 무너지지 않았다. 이런 역사성을 생각해보건데 그동안 하나의 확고한 지식체계를 만드는 것이 그렇게 두려워 할 일인지 잘은 모르겠다. 주류경제학 역시 신고전파 경제학의 기본적인 틀(한계개념)은 유지하고 있으나 많은 도전과 논쟁을 통해 변화해왔다. 어찌보면 이 '체계'에 대해 과잉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오히려 그러한 입장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내부의 심각한 게토화와 분열을 생각해볼 때 더더욱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오히려 이러한 '난장판'을 긍정하는 사람도 있다. 즉 변증법적 통일이니 총체성이니 말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살아있는' '생동감 넘치는' 이론이라는 찬양 말이다. 나는 이게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대체 그게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오히려 지식담론체계에서는 틀린 것을 인정하고 폐지하거나 포섭할 수 있으면 받아들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는 식의 이론이 성립한다면 그것은 무엇도 설명하지 않는 이론일 것이 분명해보인다.
피케티의 전략
어쨌든 류동민& 박도영은 여기서 현실적인 측면에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같은 전략을 취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어떤 공고한 대안이론으로 맞서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주류경제학이 무관심했던 불평등 문제, 상속 자본주의화라는 문제를 꺼내면서 주류경제학 아카데믹에 주요한 타격을 주는 전략이다. 3
하지만 이는 안하던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계열에서 실증연구자들이 주로 하는 일이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로써 논의가 주류경제학 쪽에서까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점일 뿐이다. 나는 이영훈이 '항등식'이라고 깠던 기술적 문제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비-마르크스주의&비-주류 경제학자들 내부에서 정성진의 연구에 대해 비판하거나 개선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논의는 되었긴 했다. 문제는 그 이상으로 논의가 확대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서의 교류가 거의 '닫혀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피케티도 주류경제학자이다. 단지 그의 책의 참고문헌을 보면 프랑스 내에서 주류 못지 않게 비-주류 경제학자와의 교류도 활발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이들 저자들은 주류경제학의 내부에서 타격을 가하는 전략을 생각한 것 같다. 물론 나의 표현은 좀 유치한 면이 있지만.. 이 글의 취지는 분명히 알 것은 같다. 바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외부와 교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닐까. 이때 이 교류라는 것은 다같이 친해지자 뭐 그런 말이 아니다;;; 서로 다른 경제이론의 입장을 갖고서 어떻게 교류할 것인가가 또 다른 문제가 된다.
주류와의 교류?
이는 내가 고민해오던 것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입장의 과학이 있다고 해보자. 토마스 쿤이 지적했듯이 이 둘은 공약불가능하기 때문에 같은 대상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노동가치론이 옳은가 한계효용이론이 옳은가? 이런 질문은 무의미한 질문이다. 각자가 경제라는 대상을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입장일 뿐이다. 모리시마 미치오는 노동가치론과 한계효용이론 사이에서의 대화는 수리적 모델을 통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존 로머, 요시하라 등의 노동가치론의 수리경제 논문에 대해 주류경제학자들에게까지 논의가 확장되지 않고 비-주류 사이에서만 논의되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 생각은 들어맞지 않은 것 같다.
내 생각에는 그들이 관심을 가져왔던 대상에 대해 새롭게 보는 관점을 제안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연구가 노동가치론에 어떤 도움을 주는가를 걱정하기보다 어떤 정책적 이점을 주는가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는 것을 용납해보는 것은 어떨까. 노동경제학에서 최저임금에 대한 논의들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최저임금이라는 관점에 대해 다른 관점은 당연히 '노동력의 가치'와 관련된 것이다. 그것이 효율적인 임금선인지가 문제가 아니라 재생산의 관점에서 펼쳐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물론 그것의 실제 추정방법에 있어서는 여전히 미비한 상황이지만 말이다.
결론
뭐 여러모로 단편적인 생각들이 많이 들긴 하다. 이런 문제에 있어 나 역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도를 자처하기 때문에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들이 오히려 마경학자들을 피로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그들이 현실문제와 이론과의 연결에서 길을 헤매는 이유는 사실 인정하기 싫은 문제이기도 한데 노동가치론이 현실 경제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좋은 이론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우노 고조는 자본론의 노동가치론을 순수한 자본주의 경제상태로 규정하고 단계론을 통해 현실경제를 분석하자는 방법론을 주장했다. 이러한 구멍들을 매꾸려고 여럿 시도가 있어왔다. 어떤 이는 노동가치론을 하다가 갑자기 현실 경제로 도약하여 사례별로 가치론의 논리를 덧쒸우기도 한다. 그걸 연결할 수 있는 이론틀이 존재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최근 들어 욘 엘스터에게 끌리고 있다. 다만 그는 노동가치론에 우호적이지 않았으나 방법론적 개체론과 노동가치론은 양립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말이다. 마르크스도 자본 간 경쟁에 대한 아담 스미스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면서 노동가치론과 화해시키려고 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미시적 기초가 없이는 정책적 분석은 노동가치론에 의미가 없을 것이다. 뭐 그냥 단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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