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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었다
새벽이었다. 가볍고 느릿느릿하지만 밀도가 높은 눈이 내려왔다. 멀찍이 내리막길에서 물건을 실은 오토바이가 넘어졌다.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찢어냈고, 나는 놀랐다.
그 노장은 한참 후에야 몸을 추스렸고, 이내 넘어진 生을 일으키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내리막길이었고 그래서 그의 의지만큼이나 몸은 따라주지 못했다. 오토바이의 본래의 본질이 어쨌건, 내리막길에서의 본질은 내려가는 거니까.
나는 그를 도와 오토바이를 잡아두어 그가 시동 거는 데에 전념할 수 있게 하였다. 이내 시동이 걸렸다. 그리고 고맙다고 말하며 멀어져가는 노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괜찮다고 말을 한 이유가 뭘까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고마운 건 내가 차체를 일으킨 것일까 아니면 늦지않고 물건을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걸까도 생각해봤다. 아무렴 어떤가. 넘어진 오토바이 앞에 있는 인간은 누구든 간에 일으켜야 하는 것이니까.
마르크스는 상품 너머의 인간을 직접 대면하는 세상이 오기를 바랬다고 한다. 우리네의 고마움들은 어디를 향해 있는가.
무엇이었을까
허름하며 목도 좋아보이지 않는 안경 가게에서 안경집을 샀다. 사실 항상 지나다니는 골목임에도 그곳에 안경 가게가 있을 것이란 짐작으로 간 것이다보니 도착한 후 오히려 놀랐었다.
안경가게 사장님이 보여주신 안경집은 어두컴컴한 흑색바탕에 기울어져 쓰러져가는 안경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얼마인지 물었다.
그리고
시간이 멈췄다.
천 원울 지불하고 가게를 나오면서 생각했다. 그 공백은 무엇이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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