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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학

가불과 잉여가치

현정경 2021. 5. 31. 07:07

어느날 우연히 페이워치라는 앱을 알게 되었다. 제작社는 엠마우스. 관련 기사를 정독했다.

한국경제 : 엠마우스 "급전 필요하면 일한 만큼 미리 당겨받으세요"

재밌는 사업 아이디어다. 페이워치의 주요 기능은 노동시간을 기록하여 고용주와 피고용자가 공유하는 앱이다. 물론 52시간제의 도입으로 근태관리 솔루션 시장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은 되었다.

그런데 페이워치는 매우 독특한 서비스를 한다. 바로 가불 서비스이다.

보통 가불이란 임금 지급일이 되기 전에 노동자에게 급한 사정이 생겨 돈이 필요할 경우 이때까지 일한 시간에 대해 먼저 정산을 받는 제도로 금융이 아직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부터 노동자들에게 요긴하게 사용된 사금융 같은 것이라 보면 된다. 하지만 이게 금융이라고 하기에는 또 거시기한게 이미 노동자가 노동시간을 지출한 것에 대해 먼저 정산 받는 것이기 때문에 지불액에 대해 어떤 할인률도 발생하지 않는다.

앞에서 가불에 대해 살펴보았듯이 가불제도의 주체는 고용주와 피고용자뿐이다. 그런데 이 사이에 브로커로 페이워치가 끼어 가불을 요청하면 페이워치 측이 먼저 노동자에게 가불액을 연 이자율 6%를 조건으로 지급한다. 물론 이 서비스의 필요조건은 상식적으로 알 수 있듯이 임금 지급이 고용주-피고용자-페이워치가 연결된 3자 계좌가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정상적인 임금 지불의 프로세스를 확인해보면 알 수 있다.

  1. 고용주 A는 페이워치와 거래하는 계좌 x에 노동자 B의 임금을 이체한다.
  2. 페이워치는 B에게 가불액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이자액을 포함한 가불액을 자기 계좌 y에 이체한다. 없으면 제하지 않는다.
  3. 페이워치는 계좌 x에서 B의 계좌 z에 이체한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고용주에게 페이워치와 거래를 할 동기가 잘 부여되고 있는가인데 이것이 꽤 약해보였다.

어쨌든 이걸 보다보니 흥미로운 생각도 들었다. 소액 여신 서비스가 많이 발전한 현대에서도 가불은 이자가 없는 것이기에 여전히 선호되는 편이다. 왜냐하면 가불은 이미 지출한 노동시간에 대해 지불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불 받는 행위에 이자를 받게 된다면 이 이자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여기서 재미있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즉 이제까지의 임금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정말 임금은 이자가 없는 것인가? 왜 가불에는 할인이 적용되지 않아왔을까?

예컨대 노동자들은 월급을 익월 30일에 받는다는 식으로 고용주와 계약한다. 그리고 이것을 먼저 받을 때 할인이 적용된 임금을 받는다고 일단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고용주는 노동자에게 채무를 갖는 것과 같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주는 임금에는 이자가 포함된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는가.

물론 노동은 일일마다 연속적으로 지출된다. 따라서 좀 다르게 생각해봐야 한다. 바로 월마다 노동자가 받는 임금의 성격이란 결국 주 40시간 하에서 평균 월 209시간의 노동시간을 고용주가 먼저 구매한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정확히는 평균 월 209시간의 노동시간을 지출하도록 명령할 권리라는 소리이다. 어찌보면 선물옵션을 고용주에게 판매한 것과 같다.

여기서 밝힌 임금의 두 가지 성격을 다시 정리해보자. 첫째. 임금의 채권적 성격이다. 임금이 주급이든 월급이든 결국 계약 이후 일정시간이 지난 후에 지급되도록 계약한다. 그러므로 노동자와 자본가가 맺는 근로계약서의 본질은 채권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모르게 할인이 적용된 임금액으로 결정되어있을지 모른다. 둘째. 노자 간 계약이 월 209시간의 노동을 명령할 권리를 구매한 선물옵션의 성격과 같다는 것이다.

노동시간 월 209시간의 가치를 노동자는 잘 이해하고 있을까? 개별 직업군들의 평균임금은 이 209시간의 가치가 적용된 것일까? 예컨대 나와 같이 SI를 수행하는 S/W 개발자들은 M/T(Men/Time)에 대한 가격으로 고객과 거래를 하게 된다. 이로부터 개발자는 209시간의 가치를 대부분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흥미있게도 실제 잡마켓에서 이 가격정보로 연봉을 결정하는 경우는 없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임금의 금융적 성격 때문이다. 매출이 좋든 안좋든 일단 고정적으로 급여를 지급한다는 사실이 M/T에 대한 가격을 노동자가 알더라도 이를 쉽게 제시하지 못하는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마르크스는 이것이 월 209시간의 가치가 아니라 노동을 명령할 권리라는 사실을 잘 파악했다. 이러한 권리는 자본가에게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한다. 자본가는 더 많은 시간을 노동자에게 일하라고 명령할 수도 있으며 동일시간에 대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강도를 결정할 수 있다. 자본가에게는 임금이 고정된 것으로부터 더 많은 잉여가치를 생산하도록 자본가에게 그만한 자유가 있다는 소리이다. 마르크스는 이런 사실로부터 노동력 상품의 이중적 성격의 분석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렇듯 임금의 "금융적 성질"이 임금의 가불 서비스라는 아이디어가 파생된 본질적인 이유인 것 같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가불 서비스란 것은 이러한 모순을 더 잘 분명하게 보여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당한 임금이니 노동에 대한 댓가라는 수식어들과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아직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가불 서비스라는 뉴스를 보면서 나는 임금이 금융적이라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관 글. 2021/03/08, 4:51 오전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