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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따라서 모든 사람이 부정직하다고 가정해야 한다는 것은 단지 일종의 정치적 금언일 뿐이다. 실제로는 거짓인 이 금언이 정치에서는 참이어야 한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데이비드 흄. 1742. "에세이: 도덕, 정치 그리고 문학".

새뮤엘 보울스[각주:1]는 흄의 말을 빌려 인센티브 제도를 "부정직한 자들을 전제로 한 법"으로 본다. 왜냐하면 인센티브 제도는 인간을 이기적이라고 전제한 뒤 이들이 사회적 효용을 최대화할 수 있도록 개인적 이익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입법정책자는 정부 뿐만이 아니다

이야기에 앞서 언급해둘 사항이 있다. 보울스는 "입법 정책자"라고 명시하고 있으나, 이 이야기가 단순히 경제정책자나 정부관계자만의 이야기라고는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제도는 정부 뿐 아니라 기업조직 내부에서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경영자 혹은 중간관리자들은 기업의 생산성을 최대화하기 위해 선한 것에는 당근을 주고 악한 것에는 채찍을 주는 인센티브를 자주 고민한다. 이 말은 즉슨 "부정직한 자들을 전제로 한 법"은 특히 당신이 중간관리자라면 "입법 정책자"와 동일한 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소리이다.

몰아냄 효과

보울스는 이러한 인센티브 제도가 몰아냄 효과를 야기한다고 말하고 있다. 몰아냄 효과는 유명한 "하이파 실험"으로 더 잘 알려지기도 했다. 이 실험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스라엘의 하이파(Haifa)에 있는 어린이 집 여섯 곳에서 늦게 아이를 데리러 오는 부모들에게 벌금을 부과했다고 한다. 벌금제도의 목적은 지각을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목적은 달성되지 않았고 오히려 악화되었다. 그 결과는 벌금이 부과되지 않은 통제집단과 비교하여 부과된 집단의 지각 수가 더 많았고 예전보다 두 배로 늘었다는 것이다.[각주:2]

인간의 모든 행위에 가격을 매기게 되면 우리가 돌보아야 할 도덕적이고 시민적인 자산이 잠식된다.

Sandel, M. J. (2012). p121[각주:3]

보울스는 이 몰아냄 효과의 한계효과를 논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마도 내가 보기에 중요한 문제는 4장에서 다루는 "신호"이다. 예컨대 하이파 실험에서 벌금이 10NIS라고 말하는 것 자체는 그 가격을 통해 부모들에게 어떤 신호를 보냈을 가능성이 있다. 가격을 신호로 해석할 것을 주장한 사람은 하이에크이기도 하다.[각주:4]

도덕적 스위치와 신호

물론 내가 "중요한 건 신호"라고 말하는 건 보울스의 책을 심하게 건너 뛴 감이 없지 않다. 이 신호라는 것은 무엇에 영향을 주는가? 그것은 인간의 도덕적 스위치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은 사안에 따라 스위치를 on/off 할 수 있다.

시장 친화적 인센티브는 심리학자들이 '도덕적 거리두기moral disengagement'라고 하는 현상을 일으킨다. 도덕적 거리두기란 "사람들이 자신들의 윤리적 스위치를 필요에 따라 켰다 껏다 할 수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

보울스. 2016. 국역본 '4장. 인센티브가 도덕과 거리두기를 부추길 때' 챕터 중. 인용문은 Bandura 1991: Shu. Gino, and Bazerman 2011. p. 31.

사람은 신호를 통해 상대를 신뢰할 것인지 배반할 것인지 필요에 따라 도덕적 스위치를 껐다 켰다를 선택하기도 한다. 따라서 신호는 제도를 만들 때 중요하게 고려해봐야 할 사항인 것이다.

위에서 다룬 하이파 실험은 지각 벌금 제도가 시행되기 전 공고문을 통해 부모들에게 벌금제도가 시행된다고 전달했다. 이 공고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일부 부모님들께서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데리러 오시지 않기 때문에 저희는 지각하는 부모님들께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습니다(이 조치는 이스라엘 사립 어린이집 당국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다음 일요일부터 16시 10분 이후 도착하시면 그때마다 10NIS의 벌금을 부과됩니다."(NIS는 '이스라엘 신 셰켈의 약자이며 10NIS는 미화로 3달러 정도다.)

보울스. 2016. 국역본 7장에서 재인용. 괄호는 원본.

이 공고문의 내용은 도덕적 프레이밍을 피하기 위한 실험 디자인에 따라 작성되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어린이 집에 아이를 맡기고 있는 부모들에게 도덕적 스위치를 off 시킬 수 있었던 신호였다고 하면 어떨까?

실제로 공공재 실험, 최후통첩 등의 실험연구에서 이러한 신호들이 몰아냄 효과를 일으키는 케이스를 보울스는 언급하고 있다. 게다가 하이파의 어린이 집의 특성을 생각해보자.

  • 지각자가 얼굴을 보는 이웃 부모는 같은 지각자일 뿐이다. 따라서 지각한다는 사실이 동네 이웃들에게 정보전달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의 동네에서의 신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공고문에 도덕적 프레이밍을 지움으로써 부모들에게 전달된 신호는 결과적으로 이것이다. "16시 10분 이후 지각에 대한 미안함에 대한 시장가격은 10NIS입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보울스는 인센티브 제도 전체가 몰아냄 효과를 일으킨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여러 실험들을 통해 밝혀진 바로 경제적 인센티브를 설계함에 있어서 이것이 몰아냄 효과를 야기하지 않는지 신중히 고려해봐야한다는 것이다. 그 덕에 책은 갈수록 내용이 상당히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몰아냄 효과는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환경파괴와 몰아냄 효과

그러한 복잡성을 고려해보면 사안별로 고려할 가짓수가 많아진다. 때로는 동일해 보이는 인센티브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결과로 나타나는 사례도 존재한다. 예컨대 2002년 아일랜드에서 비닐봉투에 소액의 세금을 부과한 일은 하이파의 어린이 집 실험과 매우 유사하지만 그 결과는 극명하게 다르게 나타났다. 비닐봉투세 제도는 하이파와 달리 사회적 선호를 증대시켰기 때문이다. 즉 비닐봉투의 사용이 현저히 감소했다.[각주:5] 어떤 점이 차이가 나서일까?

하이파 어린이 집의 경우 벌금을 공표하면서 내린 처벌을 정당화하지 않았다. '도덕적 교훈'은 없었다. 벌금에 대한 명시적인 규범적 정당화가 없었기 때문에 기본 프레이밍이 작동되었다. 말하자면, 지각을 팝니다! 벌금이 낮았다는 점도 부모들에게 지각이 학교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한 요인이었다. (...) 이와는 반대로, 아일랜드 비닐봉투세의 경우 오랜 기간 공적인 숙의 과정을 거쳤다. 또한 비닐이 환경 훼손에 미치는 영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효과적인 공공캠페인이 선행되었다. (...) 아일랜드의 비닐봉투세는 금전적 인센티브가 명시적으로 사회적 의무라는 메시지와 결합되었고, 비닐봉투를 사용하고 처분할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더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 했다. 하이파의 벌금 부과가 '돈만 내면 지각해도 괜찮다'는 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아일랜드의 비닐봉투세가 전달한 메시지는 '에메랄드 섬을 쓰레기로 뒤덮지 마!'였다고 할 수 있다.

보울스. 2016. 국역본 '7장-도덕적 교훈:인센티브를 탓할 것인가?' 챕터에서 재인용.

한국의 비닐봉투 환경부담금 제도도 아마도 이런 메시지로 다들 인식했을 것 같다. 비닐봉투의 가격이 50원이라고 인식했을 뿐인 것이다. "환경부담금"이라는 네이밍은 분명 정책설계자의 세심함이 돋보이긴 했지만, 봉투의 사용을 환경파괴와 연관지어 생각하기보다는 봉투의 가격을 50원이라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한 손님이 점원에게 봉투가 왜 이리 비싸냐고 따지는 걸 상상해보자)

때로는 이런 인센티브 문제로 인해 잘못된 행동을 유인하기도 한다. 말그대로 악법한 자들을 전제로 한 법제도가 악한 결과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이 케이스는 최근 한국의 '친환경 분해 플라스틱' 제도로 그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결국 분해되는 플라스틱 제품이라고 광고하는 그 제품은 실제로는 묻는 게 아니라 태우는 쓰레기로 직행하고 있다. (탄소를 줄이기 위해 분해되는 플라스틱을 만들도록 한 것인데 탄소를 되려 늘리고 있는 것이다) 밑에 닷페이스 영상에서 전문가의 말대로 오히려 친환경 분해 플라스틱이라는 제도는 되려 플라스틱 사용을 더 부추기도록 유인하고 있다.

결론을 대신하여

이와 같이 되려 제도가 사회적 효용을 떨어뜨리도록 잘못 설계되었거나 어쩌면 의도적인 경우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겠다. 산업에 비용을 부과하는 것처럼 했다가 생산비용이 올라가 경쟁력이 약화된다면? 뭐 이런 판단에서 친환경 분해 플라스틱이라는 걸 거래했을지도 모른다. 환경부는 자기 일을 한 거니 땡큐고 기업도 친환경적인 일을 한 것처럼 포장할 수 있으니 서로 윈윈하는 것이랄까. 이런 경우라면 노동조합도 대응하지 않을 문제가 된다. 어찌되었든 플라스틱을 더 쓰든 말든 노동자들에게 주는 영향은 없을테니까. 그렇게 해서 생산량이 늘면 노동조합에는 OT가 늘어나게 되니 오히려 이득이 된다. 즉 친환경 문제에 대해 이해당사자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 어떻게 친환경을 위한 대처를 위한 '대안세력'을 형성할 수 있을지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이 든다.

[이관 글. 2020/12/19, 7:21 오후 작성]

  1. Bowles, S. (2016). The moral economy: Why good incentives are no substitute for good citizens. Yale University Press.[국역]새뮤엘 보울스. 2020. "도덕경제학." 박용진,전용범,최정규 옮김. 흐름출판. [본문으로]
  2. Gneezy, U., & Rustichini, A. (2000). A fine is a price. The Journal of Legal Studies, 29(1), 1-17. [본문으로]
  3. Sandel, M. J. (2012). What money can't buy: the moral limits of markets. Macmillan.[국역 :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 [본문으로]
  4. Hayek, F. A. (1945). The use of knowledge in society. The American economic review, 35(4), 519-530. [본문으로]
  5. Rosenthal, E. (2008). By ‘bagging it,’Ireland Rids itself of a plastic nuisance. New York Times, 1(31), 0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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