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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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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드디어 다카포를 보게 되었다. 다카포를 보고 난 후 주요하다 생각되는 두 가지 키워드를 각각 살펴보는 방식으로 리뷰를 써볼까 한다.
첫 번째 키워드 : 희망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사실 안노 히데아키 감독은 구극장판인 「앤드 오브 에반게리온」(이하 앤드)을 후회하고 있던 것 아니었을까 싶었던 것. 우리 같은 에반게리온 세대들에게 있어 그 충격적인 결말과 세기말 분위기와 극단적인 결말은 여전히 지우기 어려운 기억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 신극장판이 "리빌드"라는 점과 결말에서 신지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정리하면서 "에반게리온이 필요없는 세상" 속에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었던 점. 그리고 겐도의 "롱기누스의 창"에 대적하여 "희망의 창"을 든 신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안노는 이번 리빌드된 극장판을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예컨대 안노는 [앤드]에서 신지의 정신적 공황과 파멸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극성팬에 대한 경멸이 여러모로 표현된 감(실사로 갑자기 극장을 마주하는 장면)이 없지 않았다. 우리 세대는 "여기서 무언가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에반게리온을 읽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이번 판은 "무언가가 있어" 하는 대상a를 남발하지 않고 되도록이면 직설적으로 표현하려 하고 있다. 아마도 마지막이니까.. 그런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두 번째 키워드 : 성장
개인의 성장이라는 말은 여러 의미를 가지겠지만 나는 여기서 두 가지의 의미로 좁혀서 얘기하고 싶다. 첫째로는 더 나은 목표를 선택하는 것이고, 둘째로는 목표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신지는 TV판과 [앤드]로 알 수 있듯이 여러모로 답답한 캐릭터다. 다카포 초반까지도 꽁꽁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고 간섭되지 않으려고 하고, 카오루의 죽음과 니어서드임팩트에 대한 책임을 진정 마주하지 않으려는 것 등. 아무튼 무슨 일이 있으면 삐져가지고 어디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그 모습은 [앤드]와 다르지 않았다. 집 안에서 누구도 침범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갇힐 수 있는 안전한 AT필드의 성격을 신지는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신지는 스스로 일어섰다. 왜 자꾸 자신을 찾아오냐고 귀찮게 하지 말라고 아야나미에게 따져물을 때 아야나미는 "신지가 좋으니까"라는 말에 일어섰다. 아야나미는 친해지기 위해 손을 내미는 것이라고 배웠고 신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바깥세계가 이곳에 있어 한 발 내딛으면 돼"라고 해주는 것과 같다. 아야나미는 신지가 바깥으로 나가게 한 매개체였던 것.
이때에서야 신지는 자신이 올바르게 책임지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한 것 같다. 이것으로 신지는 더 나은 목표를 선택하려는 의지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혼자서 괴로워하고 자신을 자책하며 꽁꽁 싸매고 바깥과 이어지려 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신지는 TV판에서도 차분히 아야나미와 아스카를 통해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통해 나아갈 수 있던 기회들이 분명 여럿 있었다. 그들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기도 했다. 단지... 겐도에게 놀아나면서 신지의 정신이 붕괴되었던 것이다. 안노는 에반게리온 작품을 리빌드해서라도 신지가 자신의 끔찍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게 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어서 신지는 아버지 겐도의 포스 임팩트를 막으려고 했다. 이때부터 둘의 심성적 차이는 분명하게 갈려있었다. 겐도는 사실 이미 죽은 아내 유이에 의존하며 자기 스스로 서려고 하지 못하는 어린애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불안함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아들 신지와 함께 하지도 못했고 관심을 가져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겐도는 신지가 다가올 때 AT필드로 막으며 "나는 신지를 두려워 하는 것인가?"라고 한 것이다.
이렇듯 신지의 성장을 통해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마리와의 인연이다. 바로 신지는 더이상 예전의 신지가 아닌 것이다.
아스카를 좋아했다. 레이를 좋아했다. 그것은 단지 과거의 일이고 이젠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는 이가 된 것이다. 우리 세대가 청소년기에 에반게리온을 보았고 이젠 어른이 되어 기득권이 되어 가는 지금 이때에, 신지라고 변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아마도 감독의 취지는 "당신이 변했듯이 가상인물인 그들도 변했다. 과거에 당신들이 빠져들었던 캐릭터들에게 왜 멈추길 욕망하는가?"라고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결말에서 [앤드]의 결말 장면의 그 장소에서 신지는 아스카에게 (사실 아스카에게 그때 솔직하게 얘기해야 했던) "나를 좋아해줘서 고마워"라고 했다. 물론 아스카는 중반에 자신이 신지를 좋아했었다는 걸 인정하긴 한다.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둘 모두 "좋아했었다"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데에 있다. 아스카는 현재는 그렇지 않다는 이유로 "나는 너보다 빨리 어른이 되었어"라고 한 것에 주목하자. 여기서 어른이란 말은 중요하지 않다. 아스카는 성장하면서 달라졌다고 봐야겠다. 그렇게 되면 보는 세계도 다르고 호감을 느끼는 이도 달라진다. 그것이 아이다 켄스케와의 썸씽임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단지 지금의 아스카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때의 아스카가 아닌 것이다.
결론
떡밥의 회수도 준수하고 마무리의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결말에서 촬영세트 바깥으로 주인공들의 삶을 펼쳐놓는 장면들을 보며 이제는 에반게리온을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이제 그들이 그들 나름의 삶을 만들도록 떠나게 해달라는 메세지같다. 그런 점에서 안노 감독이 정말 많은 고민을 한 점이 역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것이 안노가 [앤드]에서 저지른 일을 참회한다는 측면에서 보고 싶다. 이로써 세기말류를 탄생시켰고 희망을 보여주지 못했고 우리가 에반게리온을 버리지 못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이들이 행복하길 바랬던 것이 아닐까?
사실 다카포를 볼 엄두가 안났던 점이 하나 있다면 이들을 떠나보내기 싫었던 나의 마음도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다카포를 본 후에 미련이 싸악 사라지는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기분일까? 좋은 작품이었고 안노 감독과 스태프들 그리고 성우들에게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런 마음이 들도록 좋은 전개와 결말을 만든 이들에게 그 완성도에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 정말로 "안녕. 모든 에반게리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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