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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바집에서 차려주는 음식의 놀라움

함바집의 주방 현장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재미있게 보는 중이었다. 천오백여 명 분의 음식을 조리하는 고난한 과정을 보며 대단한 분들이란 생각을 할 즈음. 계란말이를 부치고 있는 한 노동자가 이렇게 말한다.

(나중에 아내가 밥을 차려주면)
아무 소리도 말고 감사하게 먹으세요

계란말이 1인분을 만들어보았는가? 젓가락을 들고 상당한 노력을 들여야한다. 게다가 천오백 여명이 오는 대형 항바집에서 계란말이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런 맥락에서 "감사히 먹어라"는 말 자체에 큰 울림을 받을 수밖에 없던 건 나만의 일일까.

골라 듄 다큐. 한식뷔페 편. 놀랍지 않은가? 대용량 조리는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여전히 놀라운 생산력의 예시라 생각된다.

부채감의 근원은 상품의 이중성에 있다

이렇듯 돈을 지불했는데도 무언가 부채감이 드는 이유는 상품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이중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품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이중화되어 있을 뿐, 둘은 서로 상관이 없다 (출처: AI generated image (GPT) )

내가 값을 지불한다는 것의 의미는 전체 상품시장에서 차지하는 교환비율의 실현 외에 다른 의미는 없다고 봐도 좋다. 거기서 얻는 만족감과 부채감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사회적 감수성에 의해 현상되는 것이 분명하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 위해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20~30만원의 저가형 스마트폰이 있다. 우리가 이 정도의 값을 지불하고 적당한 성능과 전문지식이 응집된 테크놀로지 그리고 완성된 PC를 손안에서 구동시킬 수 있다는 것은 무언가 말이 안되는 느낌이 든다. 예컨대 애니메이션 [닥터스톤]은 인류 모두가 석화되어 몇 천년이 흘러 센쿠라는 과학자가 깨어나 문명을 다시 되돌리려는 이야기를 담는데, 여기서 센쿠는 무선전화기를 만들기 위한 로드맵을 보여준다. 이를 보면 이것이 얼마나 많은 노동력과 사회적 생산력이 소모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본다. 상황이 이러한데 나는 20~30만원을 지불했으니 사회적 생산력에 아무 감사함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겠나.

센쿠의 전화기 제작 로드맵. [닥터스톤] TVA 21화 中

또 하나의 예로 사람들이 식당에서 돈을 지불한 후 "잘 먹고 갑니다"라든가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같은 인사를 하는 경우이다. 상품시장이라는 교환양식의 극한의 논리로 얘기하면 돈을 지불했다는 것은 그 식당에서 들인 모든 노력을 보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 생활에서 그렇게 하지 않고 교환 이후에도 남는 어떤 마음을 서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 마르크주의 경제학은 상품물신주의와 싸우기 위한 도구이다

근래 들어 요새 일부 사람들은

나는 그대의 서비스와 노동에 값을 치뤘는데 뭐? 어쩔티비?!

식의 태도로, 예컨대 편의점에서 식탁을 더럽히고 치우지 않는데 주저함이 없다거나, 식탁에 올려진 깍두기 반찬통을 모두 먹어치워버리는 등의 몰상식한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이런 태도의 근원은 바로 상품물신주의에 근원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상품물신성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상품물신성(commodity fetishism, 商品物神性)이란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에서, 사회적 관계가 인간 대 인간이 아니라 시장에서 교환되는 돈과 상품에 의해 결정

ko.wikipedia.org

상품물신주의는 상품과 상품 너머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 장막이 되어 우리의 부채감을 깔끔하게 제거할 수 있다. 예컨대 2,400원을 횡령한 버스기사를 해고하는 자본가의 기분을 우리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이해해서도 안될 것이다.

 

한덕수 지명 함상훈 후보자, ‘요금 24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판결 전력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새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승차요금 2400원을 횡령한 버스기사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전력이

www.khan.co.kr

하여 내가 생각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실천성은 결국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는 사람은 알테지만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보통 상품의 가치 실체는 노동이라는 걸 보이기 위해 갖은 복잡한 논리와 수학을 사용하기까지 한다. 그렇다해도 이렇게 상품물신성에 의해 가려지고 괄호쳐지는 어떤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관계들을 들추어내 드러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