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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 「힘과 교환양식」[각주:1]

힘과 교환양식 책 표지

책에 대한 한 줄 요약

호수성이라는 영적인 힘 그리고 자본=네이션=국가를 지양하는 교환양식D.

일러두기

  • 인용문 끝에 소괄호 () 안에 쪽수를 표기. (ex: 21쪽→ (21))
  • 한자, 영어가 병기된 경우 인용하지 않고 무시했다.
  • 인용자가 인용문 안에 표기하려 할 때는 대괄호 [] 안에 인용자명인 @현정경을 넣고 설명을 표기한다.(예: [@현정경:나의 주장이다])
  • 이 책에서 다른 자료를 재인용할 때는 소괄호 ()안에 저자와 발행연도 표시 후 해당 책의 쪽수 표기 후 재인용 표시 (ex: (마르셀 모스. (2002). 98에서 재인용))

교환양식이란 무엇인가

먼저 가라타니 고진을 유명하게 만든 개념인 '교환양식'에 대해 교환양식A에서 D까지 그가 간단하게 정리한 내용(12)을 아래와 같이 표로 정리해두니 글을 읽기 전에 참고하라.

A
(호수 : 증여와 답례)
B
(복종과 보호 : 약탈과 재분배)
C
(상품교환 : 화폐와 상품)
D
(A의 고차원적인 회복)

여기서 내 기억으로 고진이 위와 같은 표를 그리며 구체적인 의미를 설명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설명해보고자 한다.

A에서 D까지는 교환양식의 분류명을 의미한다. 교환은 공동체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이 개념의 공준이므로, 소괄호에서 좌측은 교환양식이 기반하는 공동체간 관계성을 의미하는 것이겠다. 그리고 우측은 교환 행위를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이제 이를 풀어서 설명해보자면 교환양식A가 기반하는 관계성은 호수성인 것이고 이는 증여를 받은 사람이 답례를 하는 행위로 이루어진다. B도 그 관계성은 복종과 보호이고 약탈과 재분배라는 행위로 이루어진다. C 역시 상품교환이 관계성이고 화폐와 상품의 거래 행위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D에 대한 논의는 이전까지의 논리와 좀 달라진다. 교환양식D란 바로 상품교환이 지배적인 교환양식인 현대에 들어 A를 고차원적으로 회복시키는 교환양식이 될 것이라고 고진은 주장하고 있다.

여기까지 이해했다면 이제 본서를 이해할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다.

교환양식에서 오는 힘

고진은 사회구성체의 경제적 토대를 생산양식이 아닌 교환양식에 두고 있다.

나는 사회구성체의 역사가 경제적 베이스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에 반대하지 않지만, 단 그런 베이스는 생산양식이 아니라 오히려 교환양식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교환양식에는 다음 네 가지가 있다. A. 호수(즈여와 답례) B. 복종과 보호(약탈과 재분배) C. 상품교환(화폐와 상품) D. A의 고차원적인 회복 (11-12)

그리고 고진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얻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나는 이와 같은 ‘힘’이 ‘경제적 하부구조’에서 온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단 그것은 생산양식이 아니라 교환양식에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사고하는 실마리를 사적 유물론이 아니라 [자본론]에서 발견했다.(20)

고진이 여기서 “사적 유물론이 아니라”라고 하는데에는 정치적 맥락이 있는 것 같다. 사적 유물론과 자본론을 무언가에서 분리시키고 있는데, 사실 보통 “사적 유물론”이라고 하는 계통의 원조가 스탈린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에 있기 때문 아닐까 한다.

힘이란 무엇인가

다음으로 고진이 “토대”와 “힘”을 구분해서 말하는 지점이 독특하다. 그 전에 이 “힘”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 “이것은 국가가 단순히 경제적 지배계급의 ‘폭력장치’가 아니라 독자적인 ‘힘’을 가진 장치라는 것을 의미한다.”(17)
  • “이때의 패배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자가 가볍게 보앗던 국가, 네이션, 종교 등 ‘정치적이고 관념적 상부구조’에 존재하는 ‘힘’에 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18)
  • “즉 그들은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발견한 경제적 토대(교환양식)에서 생겨나는 관념적인 힘(물신)에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다.”(18-19)
  • “사람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따르게 하는 ‘힘’(물신)은 다양한 생산양식의 중층화가 아니라 교환양식B에서 생겨나는 것이다”(19-20)

즉 여기서 “힘”이란 국가, 네이션, 종교와 같은 상부구조라는 주체가 사람들을 따르게 하는 “힘”을 의미하지만, 정확히 그 힘이 작용하는 것은 강제로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따르게 하는 힘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그 힘의 작용의 이론을 물신주의 이론과 관련을 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증여교환의 기원과 힘

먼저 마르셀 모스(2002)[각주:2]를 인용해보자.

따라서 선물이란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만, 받으면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주어진 물건 자체가 쌍방적 연결을 만들어내는데 이런 연결은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98에서 재인용)

고진은 증여교환이 왜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왜 그것이 힘을 가지는지에 대한 분석을 위해, 먼저 방랑생활을 하는 유동수렵채집족과 정주농민사회를 비교한다.

현존하는 수렵채집민은 대부분 정주하고 있으며, 또 유동채집수렵민도 이전에 정주한 흔적이 있다. 예를 들어 칼리하리 사막의 부시먼은 전형적인 유동수렵채집민으로 간주되는데, 이전에 정주를 하다 그로부터 쫒겨나 사막으로 도망친 사람들이다. 또 레비-스트로스가 [슬픈 열대]에서 문제삼은 브라질의 유목민(남비콰라족)도 일찍이 정주를 한 시기가 있었다. 그들은 아마 정주를 하고도 수렵채집민이었겠지만, 피터 벨우드가 보여주는 것처럼 한 번 농경민이 되었지만 수렵채집민이 되는 예도 저깆 않다.(106-107)

이와 함께 마르크스의 “교환이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서 시작되었다”(107)는 말을 상기해보자. 고진은 마르크스의 상품물신에서 화폐 물신으로의 변화의 사이가 너무 멀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그 인류사회사의 출현으로 원시적 유동민에 둔다는 점(108)이 독특하다.

정주는 그것 자체로 이득이 있지만 상당한 어려움도 있었다.

  • 정주로 많은 사람이 모이는 데에 따른 심리적 부담.(109)
  • 역병의 가능성.(109)
  • 규울과 관리의 부담.(110)

이런 어려움에도 정주민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구의 온난화로 인한 수렵채집 대상의 소형화”(108)가 컸다고 한다.

이로써 정주화가 시작되면서 서로 다른 공동체들이 결집하게 되는 일이 많았을 것이고, 다른 공동체와의 교환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110). 이것에서 생긴 것이 바로 교환양식A인 증여교환이다.

증여교환과 영적인 힘

여기서 잠깐 영적인 힘에 대해 언급하고 넘어가자.

고진이 다루고 있는 증여교환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인 ‘영적인 힘’의 예를 통해 이 힘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하우hau를 들 수 있다.

이처럼 말할 때 그[@현정경:모스]는 증여교환을 강제하고 있는 것을 물건에 부착된 영이라고 생각했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은 그것을 하우hau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증여된 물건에 부착된 하우는 원래의 장소로 되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그것을 원래대로 되돌려주어야 한다. 모스는 포틀래치에서 증여의 순환은 이처럼 물건에 부착된 영의 힘에 의해 생긴다고 말한다.(98)

이런 사례는 전통문화들에서 많이 나타난다. 한국도 예외가 없다.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가문의 운과 불운이 조상이라는 영적인 힘에 달렸다는 개념에 입각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이런 문화는 굉장히 미신에 기반한 것이지만 이러한 영적인 힘을 통해 이웃과의 사이가 좀 더 돈독해지는 계기가 되며, 서로 시기하지 말고 복을 기원하도록 이 사회에 어떤 힘을 작용시킨다.

이런 점에서 고진은 모스의 ‘영적인 힘’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비판과 세간의 비판(99-100)을 반박하고 이것이 사회에 어떤 힘을 작용시킨다는 점에서 필요한 대상이라고 보는 듯 하다.

요컨대 영적 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꼭 과학적 인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영이 있든 없든 어떤 ‘힘’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일단 인정하는 것에서 ‘과학적’ 인식이 시작된다.(106)

파워와 포스의 차이

고진은 영적 힘과 물리적 힘의 차이를 언급하는 것이 있는데 흥미로워 인용해본다.

다시 말해 국가는 지배계급이 ‘발명’한 장치가 아니다. 확실히 그것은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힘(파워)은 말하자면 영적인 것이어서 물리적인 힘(포스)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씨족사회에서도 물질적인 힘에 의한 충돌은 언제나 있을 수 있었지만, 교환양식A에서 오는 영적인 힘에 의해 억제되어 있었다. 그것이 씨족사회를 뒷받침하고 있었던 것이다. 엥겔스가 씨족사회 시스템이 충분히 기능하지 않게 되었을 때 국가가 출현했다고 말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정당하다.(140)

여기서 말하는 물리적인 힘으로서 포스는 물리적으로 신체에 손실을 가하거나 죽일 수 있는 위협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뜻에 따르게 만드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와 달리 파워는 영적인 힘이다.

이런 점에서 교환양식B는 국가의 출현과 관련이 있다. 씨족사회가 여러 씨족의 수용을 통해 규모가 커지고 수장이 생산물을 모으고 재분배하게 되면서 씨족사회와 달리 권력이 집중된 상하관계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아직 강력한 권력을 가진 것은 아닌데 아직 교환양식A가 강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143). 즉 수장은 전쟁에 선두로 나가야 하고, 사제로서 주술이 실패하면 실각당하거나 살해당할 위험이 여전히 있었다(143).

국가의 형성을 방해한 호수성

고진이 교환양식A에서 B로의 이행을 가정하고 그 사이에 국가의 출현을 상정하고 있음을 기억하자. 이로 인해 국가의 형성을 방해한 것은 국가가 교환양식B에 기반하기 때문에 A가 그 방해요인이 된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씨족사회를 싸움이 없는 평화로운 상태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동시에 그들의 끊임없는 싸움에서 마침내 국가가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다. 끊임없는 전쟁상태 자체가 국가의 성립을 저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50-151)

카리스마적 힘과 교환양식B

베버는 국가권력의 원천을 ‘카리스마적 지배’에서 발견했다. 고진에 따르면 베버는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정치적 상부구조로 보려 했다(154-155). 이에 반해 고진의 생각은 다르다. 이는 상부구조가 아니라 경제적 하부구조에서 오는 것이며 교환양식B에서 온다고 생각했다(155). 고진은 카리스마라는 어떤 영적인 힘이 작용하는 원천은 이에 복종하는 사람과 지배자 간 거래가 있다고 보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성스러운 왕권이 민중에게 ‘커다란 매력’을 가지게 된 이유는 단순히 복종과 봉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보호하고 구제해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때 생겨난 것은 피지배자가 지배자에게 복종함으로써 보호와 구제를 받는다는 타입의 ‘교환’. 즉 교환양식B다.(158)

하지만 이런 성스러운 초기국가는 “성립 후에도 수장제사회나 부족사회로 돌아갈 가능성”(159)이 있었던 불안정한 사회였다.

망가이아섬과 마르케사스 제도에서는 끊임없는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수장제사회 이상이 될 수 없었지만, 하와이 제도에서는 수장이 다른 사제나 전사를 억누르고 ‘신성한 왕’이 되었다. 즉 국가가 성립했다. 그 후 하와이 ‘왕국’은 1778년 영국인 제임스 쿡에 의해 ‘발견’된 이후에 생겨난 국제관계 하에서 해체되기에 이른다. (중략) 외부 국가의 개입이 없었다면 (중략) 계속되었을까 하면 꼭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수장제사회로 되돌아갔을지도 모른다.(161)

고진은 이러한 초기국가가 다시 수장제사회로 돌아가지 않는 안정된 상태가 되는 조건으로 “자발적 종속화”(162)를 든다. 다시 말해 “법에 복종하면 법에 의해 보호받는다”(169)는 식으로 거래관계로서 보는 관점이다. 여기서 고진이 언급하진 않았으나 일단 이 복종관계로 들어가면 수장제사회로 쉽게 들어갈 수 없다는 점도 들어야겠다. 봉건제 하에서 영주의 관할지에서 사는 자유농민도 결국 영주를 위한 부역과 조세를 부담해야 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굳이 영주의 관할지에 와서 거주하는데는 분명 이득도 있었다. 강도나 외세에 의한 침탈에서 영주는 이들을 보호해줄 의무가 있었으며 이로써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했다는 점도 그렇다.

화폐경제와 교환양식C

교환양식C는 화폐경제의 발달과 때기 어려운 관계이다.

먼저 교환양식C의 확대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것은 구체적으로는 화폐경제의 확대다. 그것이 생겨난 것은 일단 도시국가에서였다. 이 경우 국가가 화폐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화폐의 힘은 공동체와 국가를 넘어서 통용되는 ‘신용’에 있다. 국가가 한 것은 그것을 보증하는 것이다.(178)

마르크스의 말처럼 상품교환이 국지적인 한계를 돌파하고 이로 인해 상품가치가 인간노동의 일반으로 체현되는 것이다(179).

교환양식D에 대하여

지금까지 고진이 다룬 것은 교환양식A에서 C까지의 이야기였다. 여기서는 D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는 이를 이렇게 정의한다.

D는 말하자면 B와 C가 발전을 이룬 후, 그 밑에 있던 무력화된 A가 고차원적으로 회귀한 것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이미 고대에 출현했다는 사실이다.(209)

헤겔, 마르크스, 푸코 등 철학자들은 보통 말년이 되면 고대 양식에 대해 분석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고진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고대에서 발견되는 증여교환에 기초한 교환양식A가 이후 다시 고차적으로 회귀하는 형태를 D로 예상하고 있다.

여기서 왜 A가 회귀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데, 이에 대해 고진은 일단 과거를 보면 이러한 회귀하려는 경향을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피에르 클라스트로는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정주하고 국가를 형성하게 된 이후에도 씨족사회에 있었던 생산물의 공유라는 평등주의와 개인의 자유독립성이라는 관념이 다양한 형태로 남아있었다고 말한다.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씨족사회에 존재한 교환양식A의 흔적, 또는 그것의 회귀가 있었다는 말이다.(210)

고진이 이후 분석하는 사례들인 보편종교로서 조르아스터, 모세, 예수 등 종교적 인물들을 다루며 대체로 정주화를 하면서도 국가 혹은 제국에 대항하는 어떤 경향을 다루고 있다.

자본=네이션=스테이트 그리고 네이션

가장 유명한 고진의 통찰인 자본=네이션=국가가 언급되는 것을 참조해보고자 한다. 이는 자본과 국가와 네이션의 지양이 상당히 어려운 이유에 대한 고진의 통찰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국가(권력)를 통해 생산관계를 바꿀 수는 있을 것이다. 즉 계급사회를 없앨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국가는 남는다. (중략) 이런 견해는 국가를 너무 쉽게 보는 것이다. 애당초 국가는 지배계급이 사용하는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교환양식B에 근거하는 ‘힘’이다.(365)

여기서 달리 주목되는 한 가지가 바로 네이션이다. 네이션은 “교환양식A의 저차원적인 회복”(375)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본=네이션=국가가 출현함과 동시에 ‘자본의 지양’이라는 문제도 ‘국가의 지양’이라는 문제도 이전보다 더 어렵게 되었다. 왜냐하면 자본, 네이션, 국가 즉 교환양식C, A, B가 서로 도와가면서 존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들의 지양을 생각할 때 그것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불가결하다. 그것이 바로 D다.(375)

되돌아가려는 힘. 억압된 것으로의 회귀

책을 읽으면서 고진은 어떤 교환양식을 얘기하든 교환양식 A가 상존하면서 ‘다시 돌아가려는 힘’을 얘기한다. 이것을 설명하는 작업가설이 바로 “억압된 것으로의 회귀”라 할 수 있다. 고진은 프로이트의 죽음충동(무기질로 돌아가려는 충동)에 대해 언급하며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초기 인간사회는 유동민 사회였다. 프로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원유동민의 ‘무기질’ 상태다. 나는 그것을 원유동성(U)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하지만 인류가 정주한 후 다양한 갈등과 대립이 생겨났다. 그것을 해소한 것이 교환양식A이다. 프로이트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망각된 것의 회귀’로서 생겨났다. 그것은 반복강박적이다. 다만 ‘망각된 것’은 살해당한 우너부가 아니라 원유동성(U)이다. 그것은 정주 후 잃어버렸지만 소멸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증여교환을 명령하는 영으로 나타났다. 그것을 통해 원부와 같은 것의 출현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 형제동맹(씨족사회)이 만들어진 것이다.(127-128)

결국 교환양식D로 가려는 ‘힘’의 원동력은 원유동민이라는 억압된 것에 대한 회귀에 기초한 것이다. 여기까지 보고나서 나는 무언가 나이브하고 피상적인 이론이라 납득하기 어려웠다. 일단 최대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면 어떤 것이 억압되었다는 것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박도영(2014: 146)[각주:3]에 따르면 유동민의 생활을 통해 갖게 되는 자유로움이 그 정체라 할 수 있다. 작은 소공동체로 유동하는 삶에서 정주민이 되면서 다른 공동체와의 갈등과 공동체의 규모증가로 자유를 더 갈망한다는 것이겠다.

그리고 고진은 이 되돌아 가려는 힘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를 매트릭 V. 커치의 ‘역사의 자연실험’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태평양의 폴리네시아 제도로 기원전 1000년 전 무렵 형성된 제도로 하와이까지 폴리네시아인들이 이주하며 형성된 제도이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는 권력구조의 차이가 있었다. 예컨대 하와이 제도는 ‘싱성한 왕’이라는 칭호 아래 왕국이 형성된 반면, 망가이아섬이나 마르케사스 제도 등에서는 수장제사회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이 사례에 대해 고진은 망가이아섬과 마르케사스 제도가 끊임없는 투쟁으로 통합되지 못한 반면 하와이 제도는 수장이 다른 사제나 전사를 억누르고 신성한 왕이 되었다고 본다(161).

책을 덮으며: 교환양식과 생산양식의 친화성 고민 필요

적어도 이 책은 지금까지의 고진의 책에서 해명될 필요가 있던 자본=네이션=스테이트라는 일명 삼위일체론의 각 대항력과 되돌아가려는 ‘힘’에 대한 이론을 개괄적으로 그리고 역사 사례를 통해 해명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그가 자주 표현하는 ‘영적인 힘’이라는 표현이 상당히 거슬린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좀 더 세밀한 논의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물론 자본=네이션=스테이트라는 그의 삼위일체론에 대한 훌륭한 설명력은 분명 강력한 잇점과 신선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적어도 내가 젊었을 적 그를 읽고나서 들었던 생각이기도 하다. 허나 근래에 오랜만에 고진을 다시 읽다보니 나도 상당히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생산양식과 교환양식의 친화성

나는 고진의 교환양식 이론이 생산양식과 억지로 분리시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에는 생산양식 개념과 친화적인 가능성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먼저 생산양식이 뭔지 알아보자. 생산양식이란 잉여노동의 추출을 위해 생산을 조직하는 생산관계와 생산력이 결합된 '제도'를 의미한다. 여기서는 잉여노동은 생산자에게서 나오는데 어떤 집단이 이들을 지배하고 잉여노동을 가져가는가? 이 추출 방식은 재생산될 수 있는가? 등의 핵심적인 질문 하에서 이론이 만들어진다. 이런 개념에서 원시공산제, 노예제, 봉건제, 자본제가 (코헨의 생산력 우위 태제에 입각하여 설명해보자면) 당시의 생산력에 조응하는 생산관계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전통적인 생산양식 이론은 통시적이다.

이와 달리 교환양식 이론은 증여와 호수성, 약탈과 재분배, 자유상품교환이라는 3가지의 교환양식이 발전론을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3가지고 병행되어 삼위일체로 발전해온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교환양식 이론은 공시적인 이론이다. 때문에 고진이 역사 사례를 들어 교환양식을 설명할 경우 시기와 생산력 수준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든 특정한 교환양식을 설명해낼 수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소쉬르적 구조주의의 영향을 상당히 심하게 받았다고 볼 수 있다.

- 교환양식은 상부구조로 보는 것이 어떨까? 이와 함께 생산양식이 교환양식에 대해 설명적 우위가 있는 것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시적이고 구조적이라면 역시 정통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보면 "상부구조"가 확실히 그런 성격이 아닐까? 분명 상부구조는 특정한 생산양식에 조응하는 생산관계의 특정한 지배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으나, 이데올로기 자체는 알튀세르가 보여준 바와 같이 일종의 구조이기도 하다. 예컨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국가장치(ISA)라는 구조는 학교, 가족, 언론, 법률 등의 기구와 호명을 통해 견고하게 작용한다. 알튀세르는 근대 자본주의에 걸맞는 "국가장치"라는 구조를 통해 이에 접근하고 있지만 그 구조가 꼭 특정한 시기의 구조로 볼 이유는 없다고 한다면, 고진의 교환양식 이론도 알튀세르의 이론과 같이 자연스럽게 마르크스주의 전통이론과 자연스럽게 흡수될 수 있지 않느냐는 것.

이에 대해 유재건(2013: 146)[각주:4]은 고진이 생산과 교환을 대립시키긴 하지만 그렇다고 교환 개념으로 대체하자는 주장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다만, 그는 생산을 광의의 교환과정으로 이해"(유재건. 2013:146)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른데, 생산은 재생산가능해를 갖으며 기술수준으로 갖는 경제구조를 아우르는 의미이다. 코헨의 "생산력 우위 태제"에 따르면 생산력은 교환과 독립적으로 발전되며 이러한 발전수준이 교환을 규율할 수 있다. 예컨대 상품시장이라는 교환양식은 산업혁명 수준의 생산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된다. 조선이 오랫동안 장시가 성장하지 못했고 외국에 시장을 개방하지 못한 이유는 정치/외교적인 이유가 컸을지라도 조약한 생산력 수준에 의해 장을 열만한 잉여생산물도 경제 내에 없어서 그랬다. 그렇다면 생산은 교환의 광의의 의미로 사전적으로 쓸만하겠지만 이론적으로 무엇이 무엇에 대해 더더욱 설명력을 갖는가에 무게를 둬야 할 것이다.

- 생산과 교환에 대한 흥미로운 케이스 : 호남은 왜 장시가 발달하지 못했나

또 하나 생산과 교환에 대한 흥미로운 케이스가 있다. 조선시대 최대 곡창지대였던 호남은 왜 장시가 늦게 발달했는가란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조선에서 호남은 생산력이 다른 지역보다 발달된 곳일텐데 왜 시장기능이 허술하였을까?

즉, 전라도는 국가의 근본이라는 말 속에는 이 지역이 소비지로서보다는 물산의 공급지로서의 비중이 크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따라서 생산물이 외지로 유출되는 비율이 매우 높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전라남도는 수탈대상지였지 교역의 중심지는 아니었다. (고석규. 1998: 223)[각주:5]

생산, 생산력은 이런 부분을 설명해내지 못한다. 이럴 경우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국가"이다. 교환양식으로 보면 수탈과 재분배의 교환양식을 담지하는 주체로 볼 수 있다. 생산, 생산력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은 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경제구조의 변화를 설명할 때가 장점이 된다. 이에 비해 고진의 교환양식은 이렇듯 체제 내의 교통, 교환, 교류, 식민지 등의 교류를 확인할 경우 설명력이 높다. 이는 페리 엔더슨(2013: 480-484)[각주:6] (유재건(2015: 404)에서 재인용[각주:7])에 따르면 자본주의 이전의 생산양식이 지나치게 친족, 종교, 법률, 국가 등의 상부구조를 분리한채 설명될 수 없다고 지적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나는 이런 경우 교환양식을 상부구조로서 보는 것으로 둘이 친화적인 이론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이로써 "생산력은 교환양식을 설명한다". 고진은 이런 설명에 동의하지 못하겠지만 전통적인 사적 유물론의 측면에서 그를 받아들이는 한 방법으로서 이를 제안해보고자 한다.

- 교환양식에 대한 생산양식(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설명적 우위로서 얻을 수 있는 것

그렇다면 그렇다고 치자. 현재로서 이런 주장은 기초적인 부분에서 설득력이 떨어져보이겠지만, 일단 그래서 뭐 어쩌자는 것인가?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로써 고진이 대안으로 제출한 "교환양식 D"에 대한 비판적 교찰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

생산양식이 교환양식에 대한 설명적 우위 관계로 오히려 교환양식 D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예컨대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생산력은 진보하고 생산적 노동인구의 감소가 심화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이러한 배경은 교환양식과 전혀 상관이 없는 맥락에서 연원하지만 생산양식의 양상이 교환양식 D로 가는 어떤 힘을 설명하는데 더 유효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다시 말해 이로 인해 호수성을 복원하려는 어떤 "힘"이 증대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할 수도 있겠다. 아니면 인공지능의 발달은 추상적/예측적 통제가 가능하게 된다는 배경으로 수탈과 재분배성이 더욱 강화되는 힘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즉 고진이 이 책에서 불안정하게 설명했던 교환양식이 가진 "힘"에 대해 정신분석이론에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며 분석적인 기틀이 마련될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어쨌든... 대략적이고 개괄적인 내용으로 내가 청년 때 읽었던 고진에 대한 이론을 스스로 정합성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물론 이는 엄밀성보다는 "실천성"을 더욱 염두한 생각일 뿐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에 대한 입론 수준을 넘는 설명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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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柄谷行人, (2022).「力と交換様式」、岩波書店 (국역본)가라타니 고진. (2023). 「힘과 교환양식.」 조영일 번역. 도서출판 비고. 2023-11-01 발행. [본문으로]
  2. マルセル・モース、 (2014).『贈与論』、森山工訳、岩波文庫,369-370 頁 (국역본)마르셀 모스. (2002). [증여론]. 이상률 번역. 한길사. 234쪽. [본문으로]
  3. 박도영. (2014). 규제적 이념은 ‘억압된 것의 회귀’로서 도래한다: 가라타니 고진의『세계사의 구조』에 대한 소고. 마르크스주의 연구, 11(4), 134-158. [본문으로]
  4. 유재건. (2013). 카라따니 코오진의 ‘교환양식론’과 맑스. 한국민족문화, 48, 137–161. [본문으로]
  5. 고석규. (1998). 조선 후기 장시 변동의 양상. 한국문화, 21, 207-241. [본문으로]
  6. 페리 앤더슨. (2013). 고대에서 봉건제로의 이행. 유재건, 한정숙 번역. 현실문화. [본문으로]
  7. 유재건. (2015). 카라따니의 교환양식론과 맑스의 유물론적 역사관. 코기토, 78, 400–422.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