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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다 소이치로. (2025). 「국가에 대항하는 마르크스」1

한 줄 요약
폴리티컬 이코노미 비판의 의미로서 형태분석을 통해 국가의 타율성을 다시 환기하고 총체로서의 자본주의 사회시스템 관점을 취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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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논의의 배경 : 마르크스주의의 국가론
마르크스주의와 국가라는 개념의 관계는 많은 부분 흥미로운 주제이다. 특히 이것이 흥미로운 이유는 마르크스 스스로가 국가의 자율성을 무시했다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비판 때문이다.
1-1. 국가이론에 대한 배경
앞에서 언급했듯이 마르크스주의는 국가를 가치법칙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진 상부구조로 파악했고 이에 따라 토대가 폐기되면 상부구조도 소멸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런 기대 하에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은 국가 권력을 손에 넣어 이를 이용하다가, 결국 국가의 자율성을 무시한 대가로 국가가 소멸할 수 없는 것은 둘째치고 국가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네오마르크스주의는 현실 사회주의의 경험을 반성하며 그 대응으로 상부구조 자체의 자율성을 수용하고 이에 중점을 두는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는 알튀세르가 어딘가에서 말한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최종심급’이라는 고독한 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는 말로 갈음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이러한 방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마르크스주의는 본래 사회혁명의 '수단'이어야 할 정치권력 획득을 자기목적화했다. 그러나 '현존 사회주의'의 경험을 감안한다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비판하고 과학화한 것으로 이야기되는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학적 사회주의'에서 유토피아적 사고모델이 망각된 이유는 미래사회에 대한 사유와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이를 위한 방법과 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문제가 혼동되어왔기 때문이다.(7)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저자는 이를 "폴리티칼 이코노미 비판"을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 국가에 대한 논의들에서 이 주제를 재환기시키고자 하는 것 같다.
1-2. 이 책의 목적 : 마르크스의 국가 비판 재고
저자는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에 지워진 혐의였던 "국가의 자율성 무시"에 대한 문제를 "국가의 타율성"으로 재환기시킨 뒤 이 책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세우고 있다.
이 책이 시도한 것은 마르크스의 국가 비판을 '현존 사회주의'의 권력 작용과 분리하여, 경합하는 19세기 사회주의자들의 담론 공간에 다시 위치 짓는 것이었다. '사회에 의한 국가의 재흡수'라는 말하자면 '사회의 자율성', 즉 이 책의 부제인 '정치의 타율성'이라는 사고 모델은 마르크스에 게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8)
이 자율성과 타율성에 대해서는 매우 흥미로운 맥락을 이해해야 하는데, 이는 이른바 ‘국가도출 논쟁’의 간략한 맥만 잡으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2. 국가도출 논쟁
여기서 국가도출이란 특정한 경제 논리로부터 특정한 국가 논리를 도출하는 방법론을 의미한다. 먼저 이러한 논리형식이 나타났고 이에 대한 학설사를 다루고 이로부터 국가의 타율성을 독자들에게 환기시키고 있다.
2-1. 국가도출 논쟁과 국가의 타율성
저자가 앞서 주요하게 다루는 주제가 바로 국가 도출 논쟁이다. 이는 국가의 타율성을 이해하는데 맥을 잡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먼저 이 논쟁의 계기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인용해보도록 하자.
도출논쟁 자체의 계기가 된 것은 1970년 볼프강 뮐러와 크리스텔 노이쥐스가 발표한 논문 「사회국가 환상과 자본-임금노동의 모순」이었다(Müller & Neusüss 1970). (각주 생략) 그들의 문제의식은 JUSO 내부의 구조 개혁파에 의한 사회국가 개량주의와 동독의 슈타모카프파에 의한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하 국독자론)을 모두 수정주의라고 비판하는 데 있었다. 6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자본론』 ‘노동일’ 장의 공장법 분석에 의거하여 부르주아 사회에서 분리된 국가를 자본의 가치증식 과정의 본성에서 논리적으로 도출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다시 말해 국가의 ‘사회 통합 기능’을 국가가 가진 고유한 권력이 아닌 자본 자체의 모순으로부터 밝혀내, 좌파의 정치중심주의, 즉 사회국가 환상을 비판했다.(71)
정리하자면 논쟁의 계기는 뮐러&노이쥐스(1970)2의 논문으로 시작되었고 이 논문의 핵심내용은 "'노동일' 장에서 전개된 잉글랜드 공장법 분석을 바탕으로 자본의 가치증식 과정에서 국가형태를 도출하려고 시도"(268)한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을 저자는 “형태분석”(83)이라고 명하고 있는 점이 재미있다. 별 것은 없고 유물론적인 접근방식인데, 자본론에서 상품에 내재한 노동이 가치 실체임을 가치형태론으로 도출했듯이, 마찬가지로 국가를 도출하는데 국가형태론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로써 자본주의 체제의 특정한 형태의 국가는 자본에서 도출되는 국가라는 점을 강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로부터 “후기자본주의론의 단계론 및 정치중심주의를 비판할 수 있다”(83).
그렇다면 저자가 비판하고자 하는 “국가의 자율성”에 대한 이해가 먼저 선행될 필요가 있다.
2-2. 마르크스주의에서 국가의 자율성에 대한 논의들
여기서 국가의 자율성에 대한 이해를 위해 주요하게 언급할 논쟁은 바로 밀리밴드-플란차스 국가론 논쟁이라 할 수 있다.
(전략) 밀리밴드는 그람시를 따라 국가시스템(좁은 의미의 국가)뿐만 아니라, 그 “정당화 과정”, 즉 “사회 통합”을 매개하는 “정치시스템”으로서 정당, 조합, 교회, 미디어 , 교육 제도, 기업 조직 등을 위치시켰다(Miliband 1969, 183).3 반면 플란차스는 밀리밴드나 라클라우의 비판을 받아들여, 도구주의적인 사물, 그리고 국가중심주의적인 주체(또는 실체)로서 국가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관계로서 국가를 이해하는 모델을 개척했다(Jessop 1985, 336-337)4 5
저자는 이 논의가 “’계급 지배’를 관철하는 상부구조로서의 ‘국가’ 개념이 의심받지 않았다”(60)며 마르크스의 폴리티칼 이코노미 비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여기서 왜 저자는 상부구조로서의 '국가' 개념을 의심해야 한다는 것일까? 이는 좀 더 뒤에 명확한 대상을 후술하고 있어 인용해보자.
즉 네오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은 경제로부터 분리된 정치를 실체화 하고, 정치적 영역을 고유의 연구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정치의 타율성' 이론을 발전시킬 수 없었다.(61)
저자는 이제까지 네오마르크스주의가 경제와 분리된 정치의 자율성에 주목하게 되면서 경제와 정치의 관계지어진 구조를 사고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는 옮긴이인 정성진이 <옮긴이의 말>에서도 동일하게 지목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에 따르면,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는 국가론 및 경제적 형태규정에 기초한 폴리티칼 이코노미 비판이 결여된 채, 자본주의와 독립된 국가라는 존재를 상정하는 '정치의 자율성'론에 매몰되어 있었다. '정치의 타율성'은 이러한 '정치의 자율성'에 맞서는 저자의 핵심 개념이다.(396)
그렇다면 이런 비판의식 하에서 저자가 자주 환기시키고자 하는 '폴리티칼 이코노미 비판'의 의미를 되새겨 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2-3. 정치경제학 비판의 의미
정치경제학 비판의 의미와 국가이론의 밀접하게 접근한 예시로 들 수 있는 것은, ‘도출 논쟁’을 생산적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하는 홀로웨이-피시오토(1978)를 재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해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상품, 화폐, 자본이라는] 경제적 형태의 비판에서 단지 차례대로 형태를 분석한 것만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가치라는 기본 형태와 가치의 원천이면서 가치에 의해 표현되는 사회관계에서 출발해, 사회관계에서 다른 형태들을 ‘도출’한 것이다. 마르크스에게 형태분석이란 형태의(역사적 및 논리적) 기원과 발전을 분석하는 것에 다름없다.(Holloway&Picciotto. 1978. 스미다역 66쪽)6
정리하자면 정치경제학 비판은 상품의 가치는 왜 가치라는 형태를 취하는가라는 핵심적인 질문을 던진 후 상품을 통해 이 대답을 도출한다. 마찬가지로 국가 역시 가치의 원천인 생산관계로부터 출발해 다른 형태를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인 것 같다. 그렇게 함으로서 저자는 경제와 분리된 자율적인 국가가 아니라 총체로서의 자본주의시스템을 다룰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87).
2-4. 국가도출 논쟁의 한계와 총체로서의 자본주의시스템
저자는 국가도출 논쟁이 폴리티칼 이코노미 비판의 의미를 환기시켰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경제에서 도출되는 국가라는 개념 때문에 총체로서의 자본주의시스템을 고려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여러 번 강조해왔듯이, 폴리티칼 이코노미 비판의 핵심은 ‘마르크스 경제학’에 나타난 좁은 의미의 경제 분석이 아니라, 국가를 구성 요소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시스템 총체를 파악하는데 있었다. (중략) 근대 국가는 단순히 가치법칙의 차원에서 추상적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시스템에서 지배적이지 않은 생산관계를 탐구하기 위한 역사적 전개, 임금노동-자본 관계나 축적 과정에서의 계급적 지배 관계의 관철, 그리고 사회적 힘관계가 응축된 정치적 제도들을 고려한 후에 구체적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중략)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적, 정치적 기능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거나, 민족주의나 인종주의와 같은 정치적 현상, 그리고 자본주의 세계시스템 내에서 헤게모니 국가의 변천 등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도출논쟁에서 밝혀진 ‘자본주의의 정치적 형태’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소위 경제결정론을 피하면서도 장기 침체기에 있는 자본주의 경제를 분석하고, 자본주의 사회시스템을 총체로서 분석하기 위해서는 형태분석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즉, 유물론적 국가 비판이야말로 경제결정론을 벗어나 경제시스템을 분석하는 길을 열어주며, 동시에 국가(정치)중심주의에 빠지지 않고 사회적 제도나 권력관계를 고려한 정치시스템(체제)을 파악할 수 있다.(87-89)
정리하자면 정치경제학 비판의 핵심은 가치법칙과 국가를 총체로서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이 “총체”로 파악하는 방식은 ‘형태분석’ 혹은 ‘형태규정’을 통해 가능하며 이는 경제결정론을 피하면서도 구체적인 정세를 파악하고 실천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3. 국가의 타율성의 회복 : 형태분석으로 국가의 타율성을 드러내기
여기까지 읽으면서 이제까지 네오마르크스주의가 경제와 분리되어 있는 국가의 자율성에 지나치게 매혹됨으로서 총체로서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파악할 기회를 놓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저자는 이에 대비한 작업으로 '국가의 타율성'이라는 개념으로 이 문제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3-1. 국가의 형태분석 : 경제와 정치의 분리
앞서 정치경제학 비판의 의미가 형태분석 방법론이라고 한 바 있다. 하여 좁은 의미의 경제사회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총체로서의 자본주의 사회시스템을 파악하는 것이다(134). 여기서 핵심적인 질문은 "어째서 국가권력은 사회로부터 분리된 공적 형태를 취하는가"(136)이다.
먼저 지배-예속 관계에 대한 정치적 형태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먼저 잉여노동을 영유하는 생산관계가 형성되고 이 관계로부터 지배-예속 관계가 생성되고 난 후, 마치 지배-예속 관계가 생산관계를 규정하는 것처럼 현상된다(142). 이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전-자본주의의 정치적 형태와 자본주의의 정치적 형태를 비교할 필요가 있다. 전-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주의와 달리 공동체에 기초한 지배관계 형태를 갖는다. 그리고 국가는 생산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했으므로 생산관계가 국가에 내포되어 있었으며 정치 역시 사회에 내포된 형태를 가졌다(146). 정리하자면 전-자본주의 사회는 공동체를 기초로 한 지배관계가 생산관계를 통제하고 총노동의 배분과 총생산물의 분배는 인격적인 지배관계에 의해 해결했다(153).
이에 비해 자본주의 사회는
하지만 상품 생산 관계가 전면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적 개인들은 여럿으로 분열되어 정치적 공동체를 매개로 한 생산관계를 맺을 수 없다. (중략) 공동체가 해체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서로 독립된 사적 노동으로 사회적 분업을 이루어야 한다. (중략) 다시 말해 사적 생산자들은 노동 생산물을 가치로 취급하면서 관계하고, 가치를 가진 물, 즉 물상을 서로 관련시킴으로서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153)
그럼으로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공동체는 총노동을 동원하는 능력을 잃고 경제와 분리되어 "자본에 포섭된"(159) 근대국가가 되는 것이다. 이는 근대국가의 정치적 공동체의 재정 역시도 그 근원이 가치법칙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167)을 생각해보면 분명해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분석은 역사적 고찰에 의해 보완될 필요가 지적되었던 점도 인용해볼만 하다.
형태분석에서는 "자본에 의해 지배되는 생산양식의 현실 시스템"이 고찰 대상이었다. 반면 역사적 고찰에서는 바로 "자본의 생성, 성립의 조건 및 전제", "자본 생성의 역사적 선행 단계"가 주제가 된다(MEGA II/1., 368). 따라서 마르크스의 폴리티칼 이코노미 비판에서는 먼저 자본 개념이 이론적으로 전개된 다음에, 도외시되었던 역사적 고찰이 형태분석의 한계를 보완해야만 한다. (230)
3-2. 근대 국가의 형태분석
그런데 근대국가는 단순히 전근대국가에서 경제가 떨어져나간 것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아보인다. 근대국가의 형태는 전근대 후기에 절대주의적 정권 즉 앙시앙레짐에서 이미 형성되었다고 보는 의견이 있다.
바디와 비른봄은 앙시앙레짐 시대의 서유럽 사회에서 근대 국가가 자본주의에 선행하여 형성되어왔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국가는 자본주의의 산물도 아니고, 무역로 개설의 산물도 아니며, 더군다나 공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탄생한 것이 아니며, [...] 고도로 봉건화된 사회 기구의 이례적인 저항을 받으면서, 또 심각해지는 영주의 정치적 무능과 경제적,사회적 생활에 대한 영주의 강력한 통제를 양립시키면서, 분업의 시대에 직면한 유럽이 취해야 했던 정치 방식"이다(Badie & Birnbaum 1979, 243-244)7.(238)
그렇다면 언뜻 떠오른 보나파르티즘은 이것과 함께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에 대한 정리도 흥미로워 이것도 인용해본다.
(전략) 오토 바우어에 따르면 절대왕정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봉건귀족과 부르주아지의 세력균형 속에서 발전했고, 보나파르티즘은 19세기 1848년 혁명 이후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의 일시적 세력균형의 산물이었다(Bauer 1936, 128f)8.(241)
3-3. 자본 국가의 형태분석
"앙시앙레짐하에서 형성된 근대 국가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전에 대응하여 국가기능이 경제적 형태 규정에 제약된 '자본의 국가'로 전환된다."(244)
다시 말해 근대국가와 자본국가의 차이는 가치법칙에 제약된 형태냐 아니냐의 차이이다. 근대국가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선행했을 수 있지만 이 형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지배화로 자본 국가로 전환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근대국가와 자본국가를 구분하지 않으면 "만약 근대 국가와 자본의 국가의 형태규정을 혼동한다면, 국가에 과도한 기능과 능력을 부여하는 국가주의에 빠지게"(247) 된다.
3-4. 사회 국가의 형태분석
자본에 제약되는 근대국가인 자본의 국가는 가치법칙의 모순을 사용가치를 보완하는 형태로서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는 사회 국가의 형태가 나타나게 된다. 일명 북유럽의 복지국가 혹은 사회민주주의의 형태를 떠올리면 될 듯 하다. 노동력이 탈상품화되는 현상은 일종의 산업예비군의 확대를 의미하며 비생산적 노동에 종사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노동력의 탈상품화가 진행되는 한, 노동자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한 투쟁은 직접적인 임금투쟁(노동력의 교환가치를 둘러싼 투쟁)으로부터 국가의 사용가치 공급을 둘러싼 투쟁으로 점점 더 전환될 것이다."(Wright 1978, 236)9. (282에서 재인용)
3-5. 어소시에이트한 사회시스템의 과도기적 정치형태 : 사회에 종속된 기관으로서의 국가
이제까지 저자를 따르다보면 국가의 기본적인 정치형태에 대한 분석과 형태규정을 통해 앙시앙레짐-자본의 국가-사회 국가라는 발전론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형태규정과 관계들을 통해 미래사회시스템에 대한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소시에이트한 사회시스템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국가의 폐기에 대한 고찰을 시도할 수 있다.
즉, 장기간에 걸친 어소시에이트한 사회시스템으로의 과도기에는 어소시에이트한 생산관계에 의해 상품 교환을 폐기함과 동시에, '자본주의 정치적 형태'로서 국가를 어떻게 사회에 종속시킬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295)
엄밀히 말하면 국가의 폐기가 아니라 국가가 사회에 종속되는 형태로 사고하는 편이 더욱 현실적으로 보인다. 저자는 이런 점에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과도기적 독재 상황을 비판적으로 보고 이행이 결국 장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전통적 마르크스주의가 강조하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의한 국가사멸이 아니라, 어소시에이트한 사회시스템으로의 과도기에서 어소시에이션을 보완하는 국가(공동체) 형태를 분석하는 것이다."(287)
여기서 어소시에이트한 사회시스템의 과도기적 정치형태에 있어 문제가 되는 주제를 두 가지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상비군, 경찰, 관료 등의 중앙집권적 집행 권력의 코뮌의 재흡수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이다(297). 둘째로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는 코뮌의 입법-집행(298)을 어떤 방식으로 수행되느냐에 대한 것이다.
어찌되었든 코뮌이라는 형태는 결국 과도기적 정치형태로 볼 수 있으며 "노동의 경제적 해방을 달성하는 것"(299-300)이 핵심일 것이다.
4. 복수의 국가 시스템
여태까지 저자는 단일국가의 형태분석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분석이 "과연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까?"(306). 예컨대 발리바르(1991: 89. 306에서 재인용)10는 "국민적 형태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부터 '도출하는' 것은 전혀 실행 불가능한 일"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러한 문제에 저자는 세계시스템을 일종의 복수의 국가시스템으로 고찰함으로서 보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자본은 경제의 상위 정치형태로 국가가 있으므로 근대국가가 자본의 국가로 전환되었지만, 세계시스템은 지배적인 상위의 존재가 없다. 때문에 세계시스템은 복수의 국가 시스템으로 이해해야 한다.
[국내와 달리] 강제력의 기능이 조직화되어 있지 않고, 그것이 양 당사자 위에 있는 특별한 기구의 관할에 속하지 않는 곳에서는, 이 기능은 이른바 상호성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중략)(Paschukanis. 2003, 134)11(313에서 재인용)
"자본주의 세계시스템에서는 국민적 국가들로 분열된 세계사회를 총괄하는 초국민적 국가, 즉 세계제국이 존재하지 않"(318)는다. 그런데 이런 복수 시스템이 형성된 이유로 저자는 세계시장에서 자본의 경쟁 환경이 그렇게 만든다기보다는 "글로벌한 가치증식과 축적의 연계 속에서 (중략) 계급의 구성원들이 국가의 차원으로 묶이고 (중략) 국가의 영역 밖에 있는 같은 계급과 대립하게 되는 방식으로 주권국가 시스템에 의해 수정된다 (후략) (Hirsch 2005, 60)"12(331-332에서 재인용). 이렇게 접근하게 되면 현재의 복수 국가시스템 하에서 일부 지정학적으로 이루어지는 내전, 정치적 불안정성, 미중 무역갈등,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 등 여러 현상들로 왜 이런 폭력적인 문제들이 근대 이후에서까지 해소되는 경향을 보이지 못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줄 수 있다고 본다.
결론
책을 덮으며 저자의 폴리티칼 이코노미 비판의 의미는 확실히 시사적인 수준에서 내게 공감을 주긴 했다. 특히 네오마르크스주의의 상부구조의 자율성을 중시한 면에 대해 어느 정도 반성적인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성급하게 "다시 자본론으로 돌아가자"는 식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일종의 총체로서 보려는 관점을 폴리티칼 이코노미 비판을 통해 환기시키자는 것이겠다.
하지만 이 책은 세계체제 그리고 국제분석에 대한 논의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복수 국가시스템의 형태분석을 통해 폴리티칼 이코노미 비판을 "보완한다"고 하고 있으나 내가 보기에 국가와 복수국가 사이에 단절된 인상이 있어 과연 이러한 확장이 온전한 관점인지는 의심스러웠다. 다만 국제정치분석의 경우 내게 버거운 주제이기 때문에 일단 판단을 유보하고자 한다.
두 번째로 네오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점이 폴리티칼 이코노미의 의미를 무시했다는 것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들의 상부구조의 자율성을 부각하기 시작한 데에는 오히려 경제결정주의에 대한 반성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물론 저자는 경제결정주의 역시 회피하기 위한 노력으로 폴리티칼 이코노미 비판의 의미를 형태규정 및 형태분석이라는 방법론적 틀을 가져와 극복하려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국제정치분석으로 확대할 경우 자본의 국가 형태규정과 매끄럽게 연관되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끝-
- 스미다 소이치로. (2025). 「국가에 대항하는 마르크스: 정치의 타율성에 대하여. (정성진&서성광 번역)」 산지니. 2025-02-20 발행. 전자책(밀리의 서재). https://short.millie.co.kr/zdbqxg [본문으로]
- Müller, W., & Neusüß, C. (1970). Die Sozialstaatsillusion und der Widerspruch von Lohnarbeit und Kapital《, in: Sozialistische Politik, 6/7, S. 4-67. [본문으로]
- Miliband, R. (1969). The state in capitalist society. Quartet, London. [본문으로]
- Jessop, B. (1985). Nicos Poulantzas: Marxist theory and political strategy. Mcmillan. London. [본문으로]
- @현정경:인용의 두 문서의 쪽 번호는 재인용 시 주의가 필요하다, 번역서의 레퍼런스에 일역서가 함께 병기되어 있으므로 저자가 기록한 쪽번호는 일역서일 가능성이 높다. [본문으로]
- Holloway, J., & Picciotto, S. (1978). Introduction: Towards a materialist theory of the state. State and capital: a Marxist debate, Edward Arnold. London. [본문으로]
- Badie, B. Birnbaum, P. (1979). Sociologie de I'Etat. Grasset. Paris. [본문으로]
- Bauer, O. (1936). Zwischen zwei Weltkriegen?: die Krise der Weltwirtschaft, der Demokratie und des Sozialismus. E. Prager. [본문으로]
- Wright, E, O. (1978). Class, Crisis and State. New Left Books. London. [본문으로]
- Balibar, E. Wallerstein, I. (1991). Race, Nation, Class. Verso. London. [본문으로]
- Paschukanis. (2003). Allgemeine Rechtslehre und Marxismus. Caira-Verlag. Freiburg. [본문으로]
- Hirsch, J. (2005). Materialistische Staatstheorie: Transformationsprozesse des kapitalistischen Staatensystems. VSA. Hamburg.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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