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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델.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1

한 줄 요약
경제는 공동체의 자치 수단이다.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두 가지 질문
샌델은 개정판(2022년) 서문에서 트럼프 1기 정권 이후 무너져가는 민주주의 원칙들 속에서 다시 민주주의를 활발하게 하기 위해 관료주의에 가려져온 핵심적인 질문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민주주의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최근 수십 년 동안 이어졌던 기술 관료주의 정치에 가린 두 가지 질문을 놓고 토론해야 한다. 하나는 ‘경제가 민주적 통제에 순응하게 하려면 어떻게 경제를 재구성해야 할까’이고, 다른 하나는 ‘양극화를 누그러뜨리고 효과적인 민주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공적 삶을 재구축해야 할까’이다.(15-16)
어떻게 공적 삶을 재구축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그의 개정판 서문의 질문은 안타깝게도, 현재의 우리로서 이후에 미국의 정치가 어떤 사태를 맞이했는가를 목도하였기에 아쉬운 마음이 들 것이다. 바로 트럼프 2기 정권이 다시 돌아오면서 이 질문은 당분간 건널 수 없는 루비콘 강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더더욱 오히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더더욱 유효한 질문이 된다고 볼 수 있다면 어떨까? 바로 윤석열 씨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의 대한민국 정치사회에 분명 던져야 하는 질문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미국 역시도 트럼프 2기 정권 이후의 정치사회를 고려해보면 이 질문은 한국에서는 도래한 질문이며 미국에서는 앞으로 도래할 질문이 될 것이라 믿으며 책을 탐독해보고자 한다.
공동체의 자치 수단으로서 경제
센델은 이 책에서 독특한 정의를 한다. 자유주의에서 정의한 경제란 총생산물의 증가 그리고 분배 방식에 대해서이다. 이와 달리 샌델은 이 문제를 다시 환기하기 위해 공화주의적 전통적 개념을 다시 들추어낸다. “공화주의 전통에 따르면 경제는 소비뿐만 아니라 자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31). 이런 낡아보이는 개념의 필요성은 이미 자유주의적 경제 관념이 지배적인 미국의 상황에서 닥쳐온 모순들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소비자는 풍요롭고 번영하는 경제에서 개인적 선호를 더 많이 충족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조건이 나빠지거나 경제 구조가 민주주의적 통제를 거부한다면, 공화주의 자유 개념의 중심 가치인 자치에 대한 열망에 응답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중략) 자유주의적 자유관은 비록 그 나름의 호소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치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시민의식 차원의 자원 측면에서는 부족하다. 이런 부족함 때문에 공적 삶을 힘들게 만드는 자치 권한의 박탈감은 자유주의적 자유관 아래에서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32-33)
샌델은 과거로 가 미국 건국 시기에도 이와 관련한 공화주의적 논의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존 애덤스(1971: 222)2를 참조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공공의 덕목은 공화주의의 유일한 기초다. (중략) 공공의 명예와 권력과 영광을 향한 적극적인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화국의 정부도 있을 수 없고 진정한 자유도 있을 수 없다.(41에서 재인용)
임노동과 자유로운 시민
여기에서 독특한 챕터는 바로 임노동을 샌델이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검토하는 자료를 보면 미국 노동운동은 노예제 폐지 운동과 동시에 일어났다고 한다.
노동운동과 노예제 폐지운동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두 운동 모두 일과 자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했지만, 양측 진영은 서로에 대해 크게 공감하지 않았다. 노동운동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반대하는 임금노동을 남부 노예제와 동일시함으로써 자기주장을 극대화했다. 실제로 그들은 임금노동 체계를 “임금노예제wage slavery”라고 불렀다. 임금노동은 노동자를 가난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공화주의적 시민의식에 반드시 필요한 경제적, 정치적 독립성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노예제와 다름 없다는 것이었다.(101)
물론 남부의 노예를 노동운동 쪽이 감아낸 건 이에 동조하지 않는 목소리도 컸을 것이다. 다만 정치적 독립성의 부정이라는 차원에서 제기된 것이라면 납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브라운슨(1840:309,306-307,310)3은 노동자가 그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조건 하에 임노동을 허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우리의 동료 시민들 가운데 그 누구도 임금노동자로 평생 힘들게 살아가는 운명을 짊어지는 계층이 있어서는 안 된다. 임금노동을 용인해야 한다면 (중략) 어떤 노동자가 인생의 어떤 연령대에 도달해 (중략) 가진 돈으로 농장이든 가게든 간에 자기 소유의 작업장을 마련해 독립적 노동자가 되기에 충분한 자본을 축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다.”(102에서 재인용)
하지만 그동안 독립적이지 않은 상태의 시민이 용인되어야 한다는 말과 자유로운 시민의식을 생각하는 것 사이에 상당한 괴리감이 커보인다. 그래서 논의는 노동자가 애초부터 자유로운 선택으로 임노동자가 된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으로 환기된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자발주의적 자유노동관은 노예제 폐지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산업자본주의가 정당성을 주장할 논리적 근거를 제공했다. 그러나 남북전쟁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러한 인식은 미국의 정치 담론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그저 주변부에 머물렀을 뿐이다.(109)
1830년대에 공화당이 수행하던 노동운동에서 규정한 자유노동은 영구적 임금노동이라기보다 경제적 독립이라는 궁극적 목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거칠 수밖에 없는 노동이었다.(113)
그리고 이로써 자유로운 시민이 되기 위한 경제적 조건을 따지는 쪽으로 19세기 말에 이르러 분위기가 흘러간다.
19세기 말이 되면 미국 내 정치 논쟁의 초점은 시민적 덕목을 갖춘 시민을 길러내는 데 필요한 경제적 조건을 따지기보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선택을 행사하는데 필요한 경제적 조건을 따지는 쪽으로 기울었다.(127)
읽다가 책을 덮으며
특별한 감명을 받지 못한 독서였다. 하지만 내가 미국 정치사상사에 대해 부족하다는 걸 안 것은 소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내게 그것이 필요한 지식인가?에 대한 대답은 소원하다. 더 진전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면서 이 책을 읽는 중간에 책을 덮어버렸다.
-끝-
- Sandel, M. J. (2022). Democracy’s discontent: A new edition for our perilous times. Harvard University Press. (국역본)마이클 샌델. (2023).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이경식 번역. 김선욱 감수. 미래엔. 2023-03-16 발행. [본문으로]
- Butterfield, L. H. (1971, January). Worthington Chauncey Ford, Editor. In Proceedings of the Massachusetts Historical Society (Vol. 83, pp. 46-82). Massachusetts Historical Society. [본문으로]
- Brownson, O. A. (1840). The laboring classes. reprinted in joseph I,. Blau, ed., Social Theories of jacksonian Democracy (Indianapolis: Bobbs-Merrill, 195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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