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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메닐&레비가 이윤율을 실증을 할 때 그 분모가 순고정자본'스톡'을 사용하고 분자는 이윤'플로우'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 변수들의 개념이 다르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드는데, 이에 대해 지인과 이야기를 했고 해당 글을 쓰게 되었다.

먼저 뒤메닐&레비의 이윤율 정의는 다음과 같다.

$r=\frac{\Pi}{K}$

$\Pi$는 이윤이고 연간 발생한 플로우이다. $K$는 순고정자본으로 임의의 기준점에서 누적되는 스톡이다. 이런 비율은 서로 개념이 다르므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이윤율은 플로우 변수와 스톡 변수의 곱으로 표현될 수 있다. 즉 $\Pi{K^{-1}}$이다. 스톡은 누적되므로 그 역수는 시간이 갈수록 작아지므로 플로우가 변동할 때마다 그 반응폭은 커질 것이고 그것이 경제를 얼마나 잘 설명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는 말이긴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르크스가 했던 것처럼 총비용으로 이윤을 나누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것에 근접한 정의가 바로 이윤폭(Profit Margin)이라는 개념이다. 허나 이에 대해 뒤메닐은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A profit rate also differs from a profit margin, which is the ratio of profit to costs. This ratio is also quite meaningful in several respects. It relates profit to the price of the inputs (raw materials, energy, labor and, possibly, depreciation of fixed capital, etc.) required for the production and commercialization of the good, but it does not measure the ability of the stock of capital to yield profit.

이윤율은 이윤에 대한 비용의 비율인 이윤폭과는 다르다. 또한 이 비율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있다. 이 비율은 상품의 생산과 생산에 필요한 투입물(원재료, 에너지, 노동 및 고정자본의 감가 상각 등)의 가격과 관련되지만 자본스톡의 이윤 생산능력을 측정하지는 않는다.[각주:1]

즉 뒤메닐은 이윤폭이 자본스톡의 생산능력을 측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든다는 점이 독특했다. 따라서 자본스톡의 가치를 교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순고정자본스톡을 사용하는데, 이는 고정자본에 대하여 1) 항상 당시의 지배적인 가치로 현재가치로 평가한 것을 사용하며 2) 감가상각을 고려한다. 이로써 이는 단순히 누적되는 스톡이 아니라 현재가치로 평가되며 감가상각을 고려하게 됨으로서 실제 자본스톡의 이윤생산능력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윤폭은 계산하기가 쉽다. 그에 비해 뒤메닐의 측정방식은 어렵다. 우선 고정자본에 대해 현재가치로 평가하고 감가상각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윤폭 계산보다 더 어렵다. 그럼에도 이런 어려운 일을 뭐하러 시행하겠는가. 뒤메닐은 역사적 이윤율의 동학을 평가하려면 고정자본의 생산능력, 즉 기술적 요인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김덕민(2015)을 인용해보자.

이윤폭은 자본이라기보다는 비용(노동을 포함하는) 대비 이윤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우리가 이윤율을 측정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자본축적과의 관계 및 자본이 새로운 수입을 창출하는 역량(capacity or ability)를 측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윤율은 자본축적에 영향을 주고, 이러한 축적은 기술수준에 의해 생산으로 전환되며, 생산은 분배로 이어진다. 이러한 분배는 기술선택에 영향을 주고, 기술선택은 다음 기의 생산과 축적을 결정한다. [각주:2]

이윤폭은 마르크스가 기존에 생각했던 (가치 단위로 정의한 것이긴 하지만) 총투하자본으로 이윤을 나누는 가치이윤율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윤폭은 기술이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산의 영역보다 분배적 요인 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순고정자본스톡을 측정하는 데 (이윤폭 측정보다) 어려움이 있다하더라도, 또는 김성구(2017)의 지적과 같이 마르크스의 가치이윤율의 정의와 다르다고 하더라도[각주:3] 이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이윤율의 측정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관 글. 2017-01-13 작성]

  1. Duménil, G., & Lévy, D. (1993). The economics of the profit rate. p21. Books. [본문으로]
  2. 김덕민. "이윤율 논쟁과 “오래된” 마르크스적 이윤율의 역설". 참세상 - 웹사이트 글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98488   [본문으로]
  3. 김성구. "마르크스의 이윤율 개념, 실증분석에서 어떻게 곡해되었나?*.  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 - 웹사이트 글 http://danginri.egloos.com/59216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