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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이해하기 책 표지

서론

이 글은 에릭 올린 라이트(2009)의 저서 「계급 이해하기」[각주:1]에 대한 서평이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첫째로 그가 말하는 실용적 실재론pregmatist realism을 소개하고 각 방법론의 통합에 대해 간략하게 요약한다. 둘째로 이 실용적 실재론의 기초가 되는 베버주의적 기회독점에 대한 중심적인 내용을 요약한다. 셋째로 라이트가 정리한 계급분석의 틀을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이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1. 실용적 실재론

라이트가 말하는 실용적 실재론은 무엇일까. 우선 그가 언급하는 바를 인용해보자.

실용적 실재론은 단순히 몇몇 불특정 "사회학" 혹은 사회과학으로 마르크스주의를 분해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는 다른 이론적 전통에서 간과하거나 주변화하는 근본적인 질문과 문제들에 맞춰 주제를 구성한다는 측면에서 뚜렷하게 유지된다.(...) 이런 요소들은 독특한 해방적 사회과학의 지적전통 기반을 형성하지만 배제적 패러다임의 기초는 아닌 것이다.[각주:2]

이는 인식되는 것과 실재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듯 보인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다음의 사실들을 나열해보자.

  • 사회를 설명해주는 요소들. 즉 실재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
  • 마르크스주의는 사회를 설명하는 특수한 요소를 중시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마르크스주의는 사회를 설명하는 다른 요소들을 특수한 요소보다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 따라서 마르크스주의가 간과하는 또는 무시하는 요소가 존재한다.
  • 마르크스주의적 요소와 다른 요소들은 서로 독립적인 인과관계로 설명될 수 있다.

실용적 실재론은 이들을 사회를 더 잘 설명하기 위하여 이 요소들을 마르크스주의에서 상관이 있는 개념틀로써 "통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는 각 요소들 간에 내생성이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를 인식하기 위한 개념들은 서로 상관관계가 높고 또한 개념상 계층적 구조를 가지기도 쉽다. 즉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를 다른 방법론들과 실용주의적으로 통합하기 위해서는 그 요소들의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밝힌 후에 큰 틀에서 이를 통합할 수 있는지를 판별해내야 할 것이다. 실제로도 라이트는 이런식의 접근을 하고 있는데, 각 방법론에 대한 인과를 명확하게 하고 서로 다른 맥락으로서 마르크스주의가 간과하는 요소이면서 계급에 대한 유효한 설명틀로써 통합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미 언급했듯이 이 통합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결국 '계급 이론'이다. 밑에서 우리는 이 계급 이론으로서 각 방법론들을 적절하게 통합하는 방식들을 요약하도록 할 것이다.

1-1. 계급에 대한 세 가지 인과과정

라이트는 서로 다른 사회학 이론 및 계급분석 방법과 결부된 세 가지 인과과정들.[각주:3]을 먼저 이 연구의 바탕에 깔아두려 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① 개인특성 접근(계층화 연구전통) : 계급을 개개인의 삶의 특성과 물질적 측면에서 분석한다.

② 기회독점 접근(베버주의 전통) : 특정한 집단들이 그 집단이 갖는 사회적 위치를 이용하여 다른 이들을 배제하며 경제적 자원들을 통제하는 방식에 초점을 둔다.

③ 착취 접근(마르크스주의 전통) : 경제적 위치가 일부 사람들에게 다른 이들의 삶과 활동을 통제할 수 있게 만드는 방식에 초점을 둔다

라이트는 기본적으로 착취 접근을 베이스로 깔아두고 있으나 다른 방법론들을 비판하기보다는 긍정적으로 통합될 수 있는 여지들을 발굴하려고 노력하겠다고 이 책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다른 방법론들을 날카롭게 대응하는 마르크스주의 전통적 학풍을 생각해보면 꽤나 이례적인 자세가 아닐까 한다.

1-2. 개인 특성으로서의 계급

이는 다양한 개인들의 특성과 삶의 물질적 조건에 의해 형성되는 집단들을 계급으로 보는 관점이다. 이런 방식은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이 이해하는 계급개념에 부합한다[각주:4]. 이 방법은 개인의 어떤 특성이 특정 계급에 배치되도록 하는가에 집중한다.

1-3. 기회독점으로서의 계급

라이트에 따르면 기회독점은 막스 베버의 연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각주:5]. 이는 세 가지 폭넓은 계급범주를 갖는다고 한다.

  • 생산수단의 사적소유권을 지닌 자본가 계급.
  • 교육과 기술 습득에서 배제매커니즘을 갖는 중간 계급.
  • 위의 두 가지에서 모두 배제된 노동 계급.

기회독점이라 함은 예컨대 자신에게 고소득과 특혜가 주어지는 현재 일자리에 대해 다른 이들이 접근하는 것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이 존재할 것이다. 이를 사회적 봉쇄social closure라고 하며, 한 위치에 대한 접근이 일부 사람에게만 가능하고 나머지는 제한하도록 하는 과정을 뜻한다[각주:6].

1-4. 착취로서의 계급

이는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으로 볼 수 있으며 계급을 착취와 피착취 관계로 파악하는 관점이다. 여기서 라이트는 지배와 착취를 구분한다. 왜냐하면 모든 지배가 착취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같은 노동자이면서도 부장은 과장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부장이 필연적으로 과장을 착취하지 않는건 아니다. 즉 착취란 엄밀히 말하자면 피지배자들의 노동행위로부터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것이어야 한다. 착취는 지배를 필연적으로 끌어오게 되지만 지배가 언제나 착취를 끌어오는 건 아니다.[각주:7]

1-5. 세 가지 계급 개념의 통합

세 가지 계급 개념을 개별적으로 다룬 뒤 우리는 비로소 세 가지 계급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개념적 층위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① 개인의 특성 요소 : 개인의 특성과 삶의 조건은 개인들이 계급구조상의 다양한 위치로 분류된다. 이 접근은 사람들의 삶에서 누가 중간계급의 직업으로 접근하고 안정적인 직업으로부터 배제되는가를 설명해준다.

② 기회독점 요소 : 어떤 매커니즘이 안정적이고 고소득인 중간계급의 직업으로부터 어떻게 배제하는지 '중간계급'의 직종을 구별해주는 주요 매커니즘을 밝혀준다. 여기서는 '누가 배재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장벽이 이 매커니즘을 지지하고 있는가를 밝히는 것이 중심적인 주제일 것이다.

③ 착취 요소 : 자본주의 경제의 특성과 본질적으로 관련된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계급 구분을 중심적으로 다룬다.

여기서 ① 과 ②는 결국 마르크스주의가 간과하기 쉬운, 또는 마르크스주의의 단순한 양대계급론(노-자 계급)이 무시하고 있는 '중간계급'에 대한 훌륭한 접근법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들을 통합적으로 연관지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베버주의적 기회독점에 대한 것이다. 라이트는 이를 중심으로 하여 다음과 같이 통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기회독점은 개인이 계급에 속한 특성을 획득하는 미시적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 기회독점은 직업과 같은 구조와 갈등을 설명할 수 있다.
  • 기회독점은 생산관계(생산수단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생산영역에서의 직접적인 관계)에서의 갈등을 설명할 수 있다.[각주:8]

2. 기회독점에서 찾을 수 있는 계급적 틀

라이트가 다루는 내용들은 꽤 다채롭고 복잡하다. 여기서 나는 라이트가 정리하는 베버주의의 계급분석의 틀에 대해 간단히 요약하고자 한다.

아무래도 중대한 것은 계급개념이 있냐 없냐가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 '착취'가 위에서 밝힌 두 가지 계급 개념(개인 특성, 기회독점)과 적절히 통합될 수 있는가가 가장 큰 중심문제가 될 것이다. 아래의 인용문을 보도록 하자.

베버는 노동자가 노동에 최대의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도덕적 압박을 만드는 노동지향적 태도─프로테스탄티즘의 노동윤리─를 노동자들이 견지할 때에만, 이런 기술적 문제가 효율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각주:9]

베버의 도구적 합리성에 따라 노동자는 노동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에 따라 프로테스탄티즘 노동윤리가 이를 부과할 수 있다면 효율성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부과가 강제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비효율성을 낳을 것이고 베버 역시 합리화되지 못한 데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각주:10]. 따라서 베버는 효율성이 만족될 수 있도록 만드는 '간접적인' 통제 방안[각주:11]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제시하고 있다

  • 고용주는 해고권을 갖는다.
  • 고용자가 생산수단을 독점한다.
  • 노동자들은 자신의 재생산을 스스로 책임진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노동자는 최대의 생산성을 발휘하여 자본가의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렇듯 베버에게 있어 생산관계에서의 계급은 무엇보다 경제조직의 합리화 정도에 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마르크스주의 역시 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생산력 우위 태제에 기초하면 어떤 특정 생산관계가 다른 특정 생산관계로 대체되는 이유는 생산력의 발전 때문이라고 한다. 이때 특정한 생산력의 발전수준은 그에 조응하는 특정한 생산관계로 설명될 것이다. 그리고 그 특정한 생산관계가 특정한 생산력의 발전수준을 설명하는 이유는 그 발전수준에서 가장 합리화될 수 있는 생산관계이기 때문이다.[각주:12]

다만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큰 중심의제가 특정한 생산관계가 노동자계급에 어떻게 피해를 입히고 있는가를 폭로한다는 점, 그리고 이 생산관계가 어떻게 도전받게 되는가로 잡고 있다는 점에서 베버주의와의 차이점일 것이다.[각주:13]

3. 라이트의 대안적인 계급분석

3-1. 착취 개념의 세 기준

라이트는 다음과 같이 착취 개념을 정의함에 있어 세 가지 기준[각주:14]을 제시한다.

① 역-상호의존적 번영원리 : 착취자의 물질적 번영은 인과적으로 피착취자의 물질적 번영이 줄어드는 것에 의존한다.(제로섬 게임)

② 배제 원리 : 피착취자는 생산자원에 대한 접근에서 배제된다.

③ 전유 원리 : 착취자들은 배제 원리를 통해 피착취자의 노동을 전유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지 않으면 그것은 착취의 개념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예컨대 전유 원리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경제적 억압이지 착취가 아니다. 유럽 이주민들이 북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토지에서 내쫒는데만 집중한 예는 정확히 경제적 억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다르게 유럽 이주민들의 남 아프리카 원주민을 잡아다가 노예시장에 대거 사용한 역사는 착취라고 볼 수 있다.

3-2. 중간 계급

라이트의 대안적 계급분석에서 이 대안을 필요로 하게 만든 것은 방법론들 간의 통합이라는 기치보다 '중간 계급'을 설명해야 한다는 필연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우리는 중간계급의 위치를 이 통합적인 분석 틀과의 관련 속에서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중간계급을 어떤 단일한 집단으로 볼 수 있으며 그렇지 않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인데, 라이트의 경우 이 중간계급을 단일한 집단으로 보는 것을 거부하고있다.

나는 역사적 과정에 대한 우리의 심화된 이론적 이해가, 계급을 조직된 권력 행위자로만 이해하기보다는, 계급분석의 세 가지 개념군을 체계적으로 함께 도입하려는 시도 하에서 발전한다고 생각한다.[각주:15]

위에서 말하는 세 가지 개념이란 (1) 사회구조로서의 계급, (2) 사회집단으로서의 계급, (3) 조직된 사회적 행위자로서의 계급을 말한다. 이는 중간계급이 단일한 집단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또 다른 문제를 알려준다. 바로 잠재적인 계급 구조가 선험적으로 존재하는데, 이 구조적 관계를 통해 어떤 집단적인 계급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라이트는 저 세 가지 개념으로서 계급을 잠재적인 계급 구조가 집단화된 계급으로 형성되게 된다는 상응원리에 기초한다는 점을 지적해두자. 라이트는 이를 즉자적 계급/대자적 계급으로 표현하는데, 그가 언급한 바에 따르면 사회학자들은 대체로 잠재적 계급 개념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각주:16]

라이트의 즉자적/대자적 계급론은 그의 중간계급에 대한 개념에서 필연적으로 보이는데, 왜냐하면 그가 판단하는 중간계급은 '계급관계 내 모순적 위치'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을 전유하는지 여부를 가지고 착취를 정의하는 그의 개념 상 중간계급의 위치는 모순적 위치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이 개념(인용자 : 계급관계 내 모순적 위치)의 기본적 착상은 하나 이상의 계급을 동시에 가진 자본주의 계급관계 내에 있는 일련의 위치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좀 더 상술하면, 지배관계와 착취관계에 대해서 몇몇 위치는 지배받는 동시에 지배하거나 착취하는 동시에 착취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각주:17]

라이트의 중간계급론은 복잡성의 증대로 말미암아 발생한 계급관계 내 모순적 위치라고 판단된다.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에 입각하여 현대 노동자들을 본다면 딱히 그래보이진 않는다. 우리사주를 배분받는 노동자들, 스톡옵션을 받는 고위급 노동자들,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노동자들, 생산수단을 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노동자 자주 기업들의 사례 등을 보면 이러한 조건들이 분명 고전적인 개념들이 따라잡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라이트와 같이 복잡성의 증대로 말미암은 계급관계 내 모순적 위치로서 판단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하겠다.

그렇다면 이 모순적 위치가 노동의 전유라는 라이트의 착취개념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또 하나의 관건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해 라이트는 중간계급이 분명 생산수단의 부분적인 소유, 그리고 노동자들보다 높은 고소득 임금을 받지만 계급구조 상 그들은 자본가에 의해 지배받으며 베버가 제시한 노동 통제의 간적적인 방안으로써 생산수단의 독점에서 일부의 권리를 획득하나 고용자의 해고권의 사용과 노동자 스스로 재생산을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에서는 배제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계급위치는 모순되지만 계급구조 상 그들은 노동은 자본가에 의해 전유받는다는 것이고 이러한 구조는 중간계급에 위치한 개개인의 삶과 기회들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3-3. 복잡성의 형성과 계급
일명 계급 죽음 논쟁에서 주장된 배경으로서 복잡성이 증가한 것을 두고 그것이 계급이 소멸되었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은 시기상조일 것이다. 그가 통합하는 대안적 계급론의 관점이 잘 요약되어있는 문장을 인용해보도록 하자.

계급이 "사회조직"의 가장 강력한 혹은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 수 있고, 계급투쟁이 오늘날 세계를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아닐 수도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급은 사회적 삶의 많은 측면에서 작용하는 하나의 중요하고, 때로는 강력한 결정요인으로 남아있다. (...) 불평등한 자본 자산 분배는 사람들의 물질적 이익에 계속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고, 자본주의 기업들은 비소유 피고용인으로부터 노동을 추출해야 하는 문제에 계속 직면할 것이며, 계급위치는 하나의 변수로서 계속 개인의 주체성에 현실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각주:18]

그는 계급론을 일종의 이데올로기를 통한 사회변혁의 추구 플랜으로서도 활용될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

계급분석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복잡성을 설명하고, 정치적 행동을 동원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인 힘을 가지게 된다면, 계급분석은 사회변화를 지향하는 해방 프로젝트에 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각주:19]

4. 결론

라이트의 방법론은 개인의 특성과 기회독점에 대해 부정하지 않고서도 착취계급을 설명할 수 있도록 통합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다만 그는 노동가치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착취를 설명하기 위해 '노동의 전유'를 내세우고 있다.
이 지점에서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다. 일단 해당 책의 역자 부록에서부터 문혜림&곽태진은 이런 점을 비판하고 있다.

이때 라이트가 도입한 로머의 착취 이론에서는 단순한 시장관계의 성립만으로도 착취관계가 형성된다고 간주하는데, 이럴 때 착취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특수성에서 개념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양식을 불문하고 작동하는 일종의 불평등 기제로 확대 정의될 여지가 커지게 된다.[각주:20]

나는 이러한 비판을 곡해라고 생각한다. 노동가치론은 생산수단을 가진 자가 노동력을 전유하여 가치를 생산하고 여기서 얻어지는 잉여가치를 얻어 착취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것이 가능한 필요조건이 바로 생산수단의 독점이다. 그리고 그 독점을 통해 노동을 전유한다는 측면에서 라이트의 착취개념도 마찬가지로 생산수단의 독점-노동의 전유에 입각한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그것이 초월적인 역사성을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 역자로 참여한 문혜림(2014)[각주:21]은 라이트가 노동가치론을 부정함으로서 노동력의 상품화를 착취로 규정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라이트는 노동력의 상품화가 착취의 기반이라는 맑스의 노동가치론을 부정함으로써 잉여노동의 창출 및 전유 기제를 자본주의 동학과 연계시켜 사유할 수가 없었고, 그 결과 소득의 차이를 가져오는 여타 요인들(조직에서의 지위나 기술)이 생산수단 자체의 소유로부터 발생하는 통제 효과와 대별되지 못한 채 부유(浮游)하고 마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각주:22]

이것 역시 바람직한 비판은 아니어 보이는데, 예컨대 노동력의 상품화는 착취의 필요조건이지만 그것 자체가 착취는 아니다. 왜냐하면 노동력의 상품화 자체는 지배이고 경제적 억압으로써 정의될 수는 있어도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것은 아니다. 이는 노동과 노동력의 구분과 관련이 있는데, 노동력은 실제 노동을 지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만 지적해두자.

물론 이러한 지적의 맥락은 라이트가 중간계급이 갖는 통제력을 착취 기제로서 포섭하기 위해 대안적 계급론에 통합한 측면을 비판하기 위함이긴 하다[각주:23]. 그러나 내가 여기서 묻고싶은 것은 노동가치론은 중간계급이 착취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는가에 대해서이다. 오히려 상황은 반대이다. 노동가치론은 양대계급론에 기초한 단순한 원론적 이론이기 때문에 복잡성이 증대된 현대의 구체적인 계급투쟁에 대해 이론화하지 못하는 한계들을 먼저 지적했어야 했다. 그가 검토하는 존 로머(1986)의 작업[각주:24]이 바로 그런 배경에서 노동가치론과 상관없이 착취를 설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물론 그가 말하는 비판점들은 분명 마르크스주의 공준에 적합한지에 대해 검토하는 데 충분히 정당한 지점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현재의 노동가치론은 복잡성이 증대된 현실을 구체적 수준에서 분석이 가능한 수준으로까지 발전하였는가를 질문했어야 한다고 본다. 실상 노동가치론을 새해석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뒤메닐의 연구들만 따져보아도 노동가치론은 사실 현실 설명에서 별로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지적해두어야겠다.

어찌보면 라이트를 방어한 느낌이지만 그가 노동가치론을 부정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에 적대적이라고 믿는 상황 자체는 내게 더더욱 불합리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가치론을 학습하는 입장에서 노동가치론 없이 작업한 라이트의 대안적 계급론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라이트의 방법론의 문제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그것은 어찌보면 노동가치론의 한계일수도 있고 노동가치론이 복잡성이 증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이론을 개선하고 혁신하는 노력에 게을렀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갈 길이 멀어보이지만.. 그래도 노력하고 기대하며 열정을 가지고 사회주의 그날(?)을 염원하며 끈질기게 노력해야겠다.

어쨌든 이 책을 읽은 후 적어도 계급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 좋은 도구를 얻은 것 같다. 물론 문제도 많을 것이고 비판도 많았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현재 내가 검토하기는 버거운게 현실이다. 시간을 갖고 차차 나 역시 라이트를 검토해보겠다.

[이관 글. 2017-05-31 작성]

  1. Wright, E. O. "Understanding class: Towards an integrated analytical approach." New left review 60.November?December (2009): 101-16. (국역본)계급 이해하기. 문혜림&곽태진 옮김. 산지니 출판사.2017. [본문으로]
  2. Wright. ibid. (국)p21. [본문으로]
  3. Wright. ibid. (국)p22. [본문으로]
  4. Wright. ibid. (국)p23. [본문으로]
  5. Wright. ibid. (국)p26-27. [본문으로]
  6. Wright. ibid. (국)p27. [본문으로]
  7. Wright. ibid. (국)p32. [본문으로]
  8. Wright. ibid. (국)p37. [본문으로]
  9. Wright. ibid. (국)p87. [본문으로]
  10. Wright. ibid. (국)p96. [본문으로]
  11. Weber, Max. Economy and society: An outline of interpretive sociology. p151. Univ of California Press, 1978. (Wright. (국)p89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12. Cohen, Gerald Allan. Karl Marx's theory of history: a defence. Oxford: Clarendon Press, 2000. (국역본). 카를 마르크스의 역사이론. p254. 박형신&정현주 옮김. 한길사. [본문으로]
  13. Wright. op. cit. (국)p97. [본문으로]
  14. Wright. ibid. (국)p139. [본문으로]
  15. Wright. ibid. (국)p174. [본문으로]
  16. Wright. ibid. (국)p175. [본문으로]
  17. Wright. ibid. (국)p259. [본문으로]
  18. Wright. ibid. (국)p240. [본문으로]
  19. Wright. ibid. (국)p242. [본문으로]
  20. 문혜림&곽태진 역자 해제에서. Wright. (국)p384. [본문으로]
  21. 문혜림. 계급 죽음 논쟁에 대한 맑스주의 비판. 경상대학교 석사논문. 2014. [본문으로]
  22. 문혜림. 2014. ibid. p71 [본문으로]
  23. 문혜림. 2014. ibid. p69 [본문으로]
  24. Roemer, John E. "Should Marxists be interested in exploitation?." Philosophy & Public Affairs (1985): 30-65.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