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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소설 <사이코패스 제로>(이하 제로)를 읽다보니.. <사이코패스 1기>(이하 1기)의 마키시마 쇼고가 사체표본을 광고 홀로그램 뒤에 장식한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제로>를 보면 마키시마가 오료 리카코의 사상이 얕다고 판단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 이제야 <제로>를 읽게 되어 그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제로>의 토마 코자부로의 사체표본과 <1기>에서의 오료 리카코의 사체표본이 다른 점은 바로 “정치적 의도”가 있고 없고의 문제였던 거다. 이 점이 코가미가 “사상이 얕다”고 판단한 이유였다.
따라서 마키시마에게 있어서 전시하는 재료의 질은 문제가 안된다. 토마 코자부로는 그 재료로 정치적 메세지를 담고 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충격을 주는 것이 바로 그 의도였다. 더 자세히 보면 바로 시빌라 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제로>의 토마가 사체표본을 전시한 광고 홀로그램이 바로 제약사였다. 정상적인 스트레스색상을 유지하기 위한 멘탈케어 제약사의 광고라는 사실은 분명 정치적이었다. 이에 비해 리카코는 절제되고 순수한 여성성을 생산하고 (리카코의 말에 따르면) “부자집 따님들이 클래식한 남성에게 팔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에 대한 메세지를 말하고 싶어한다. 그 의도는 여성성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고 정치적 의도로 인정된다. 그렇지만 마키시마가 노리는 시빌라시스템에 대한 비판의식과는 어굿나있었던 것이다. 물론 둘 다 의도는 옳더라도 수단은 분명 옳지 않으며 오히려 수단이 목적을 넘어서버리는 범죄를 행했기 때문에 둘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어쨌든 마키시마는 정치적 목적을 갖는 정치범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지만 수단 자체가 목적을 넘어서서 파괴로 치달은 것이기 때문에 그 행위를 정당화하는 건 무리가 있는 것임을 다시 언급한다) 토마의 사체표본 사건이 노렸던 멘탈케어에서 또 다른 은유를 읽어들일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바로 “안전한 자본주의” 그리고 “탈이데올로기의 시대”라고 외치는 이데올로기 장치가 아닐까. 그 광고의 뒷편에 표본을 놓은 것은 결국 세상에 대한 계몽적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코가미는 마키시마와 같다고 한다(마키시마도 그래서 코가미에게 흥미를 갖는다). 하지만 그와 코가미의 차이는 선을 넘는 목적이 다르다는 점이다. 한쪽은 혁명을 위해 선을 넘는 적군파, 한쪽은 혁명을 방어하기 위해 선을 넘는다는 파시즘이라는 차이. 마키시마가 적군파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 것이 뭐냐면, 그의 행동의 의도는 시빌라시스템에서 살고 있는 일상적인 주체의식을 계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국 극과 극은 연결된다고 해야할까. 사실 극좌파와 파시즘은 역사를 돌아볼 때 서로 유사한 측면이 없지 않아 있기도 하다. 물론 정치학은 그 둘은 엄연히 구분하며 등장한 맥락 역시 서로 다르긴 하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권력의 초월적 사용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 둘 모두를 비판하는 건 쉬운 일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긴 하다. 선을 넘는 것은 언제든지 나쁜 일이라고 말이다. 프레임에 따라서도 서로 다른 수용을 가질수도 있다. 극우적인 사람이라면 혁명을 방어하기 위해 도미네이터가 아니라 불법적인 무기를 손에 든 코가미 쪽을 높이 살 것이고, 극좌파라면 (도덕적 이유를 제하는 게 어렵겠지만 그게 가능하다면) 혁명을 위해 사람들을 계몽시켜야 한다는 마키시마를 높이 살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각자가 이 논거를 근거화하는 맥락은 있을 것이다. 극우는 혼란과 의심의 초래가 질서와 안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할 것이고, 극좌는 (적군파가 그랬듯이) 안정적인 삶 자체의 생산이 그렇지 못한 삶을 착취한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의도적인 무관심을 충격을 통해 일깨우게 만든다고도 말한다. (프랑스의 바더-마인호프가 제국주의 전쟁에 테러리즘으로 맞서려 하던 것도 이와 유사한 것이었다)
일단 적군파의 이런 주체의식에 대한 태도는 슬라보예 지젝도 사실 유사하다. 그가 대적하는 건 탈-이데올로기의 시대라는 이데올로기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주체의식에 대한 “운동”이나 “테러리즘”의 역사를 통해 확고해진 건 있다. 마르크스가 말한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라고 한 말 말이다. 이데올로기가 충격과 문구를 이용하면 바뀐다고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이에 비해 현재로써는 시빌라를 대체할 대안이 없다는 판단과 함께, 그럼에도 시빌라시스템과 적대하는 태도를 유지하면서 앞으로 시빌라를 대체할 (좀 더 인간적인) 체제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희망하는 츠네모리 아카네야말로 현대 자본주의를 사는 중도좌파의 입장이 아닐까.
하지만 “중도”가 언제든지 옳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어떤 정치태도는 당시 그 시대의 맥락에 따라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내 지론이다. 아카네는 시빌라를 대체할 진보한 시스템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점에서 그 스탠스는 (그 시점에서는) 옳았을 것이다.
이 맥락 상 옳고 그름의 예시를 좀 더 다른 예로 살펴보자. 해방 시기의 한반도를 생각해보자. 지주계급이 소멸되는 시점은 자본주의 발전에 분명 필요한 부분일 수 있으며 경제사학에서도 동의하는 분위기이다. (지주계급이 유지된 라틴 아메리카의 공업화가 더딘 것을 생각해보자) 그런 속에서 여전히 지주계급을 방어하는 보수적인 입장이 대세였다면, 그것은 그 시대의 맥락에서는 옳지 못한 스탠스였을 것이다. 결국 해방 이후 남한이든 북한이든 지주계급은 몰락했다. 남한의 경우 물론 미국의 압박 때문에 이승만이 농지개혁을 실시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농지개혁은 좋은 효과를 가져왔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농민들에게 상환과 저곡가 정책으로 많은 부담을 주었다) 하지만 그 사실 때문에 공업화가 초기에 달성된 것일지도 모른다. 농업에서 이탈한 노동력인구의 증가, 해방 후 귀속재산을 국유화하여 대기업우선 정책으로 공업화가 달성된 것이니까. 결국 맥락은 분명 중요하며 대체로 서로 경쟁하는 사상들은 이 역사적 맥락의 해석을 두고 투쟁하기도 한다.
한 줄 요약 : 결론은.. 아카네가 짱이라는 겁니다.
[이관 글. 2018-03-19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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