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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없음
옛날에 보았다가 최근 다시 생각이 나서 보게 되었다. 이 영화가 당시 히트를 못쳤다는 점이 일단 큰 아쉬움으로 남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영화에 대한 리뷰를 남겨보고자 한다.
이 영화의 배경은 고려에서 명나라로 사신으로 갔다가 명나라에게 잡혀서 귀향을 보내는 상황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당시의 맥락은 압록강에서 명나라 사신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 후에 고려가 사신을 보낸 것이었기 때문에 이미 예상된 결과였다고 하기도 한다. (그나마 귀향이 어디냐고까지 얘기하기도 함) 하지만 귀향 도중 원나라의 습격으로 일행들을 인솔하던 명나라 군대가 모두 전멸해버렸고 장군 최정(주진모 배우)은 사신으로서의 목적이 모두 사라졌다고 판단하고 최종목적을 고려로 돌아가는 것으로 결정한다. 그러다가 어처구니 없게도 최정 장군은 명나라의 공주를 납치한 원나라의 군대를 습격하고 공주를 구출한 것을 명분으로 명나라에게 안전한 고려로의 복귀 경로를 얻으려고 하여 목표를 다시 새로 변경하게 된다. 이때부터 고생길이 열리게 된다
이 영화의 액션신은 일단 지금 보더라도 상당히 타격감이 크고 현란한 느낌이 강하다. 창을 들고 휘두르는 액션을 앵글로 잡을 때 창의 전체를 잡는 욕심보다 동작에 의해 충분히 잘 전달하고 있다고나 할까..
다음으로 이 영화의 진짜 훌륭한 키는 바로 대립하는 상황을 복합적으로 전달한다는 것이다. 정규군인 용호군과 준-예비군인 주진군의 대립, 역관 박주명(박용우 배우)과 지산 스님(이두일 배우)과의 유교의 리와 불교의 리의 대립, 명나라 공주(장쯔이 배우)와 명나라 백성들의 갈등 그리고 가장 중심적인 갈등은 최정 장군의 권위를 앞세운 지휘에 의한 갈등이다. 이들의 갈등이 멋지게 해소되는 건 아니다. 단지 마지막 전투에서 서로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정도랄까. 중요한 건 갈등의 해소가 아니라 이 갈등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고려시대 당시의 역사적 맥락을 우리가 알아야 하지 않나 싶다. 1
여기서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 있다. 바로 여솔(정우성 배우)이다.
여솔은 사신단의 이지호(송재호 배우) 부사의 노비이자 개인 호위무사였는데, 이지호 부사는 초반에 노쇠한 나이로 여독을 견디지 못하고 병들어 죽게 된다. 이때 여솔을 노비 신분에서 해방시켜준다. 이런 맥락에서 사실 여솔은 유일하게 고려로 돌아갈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점 ─ 여솔은 주진군 진립(안성기 배우)에게 이지호 부사의 유품을 전달하려고 했다 ─ 에서 상당히 자유롭고 사적인 이유에서 움직인다. 즉 그는 어떠한 명분에 의해서 행동하지 않는다.
공주가 여솔에게 끌리는 이유도 공주가 어떤 자인가에 신경쓰지 않고 대한다는 점 때문일지도. 나의 뺨을 때린 건 네가 처음이야 삘인가 나중에 밝혀지지만 공주가 납치된 이유도 그놈의 자유를 찾아서 성 외곽으로 도주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사실 여솔에게 이끌린 점은 바로 자유로운 주체가 여솔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한 장면은 그의 뛰어난 창술을 보고 원나라의 장군으로 임용시키려 한 탐블화(위롱광 배우) 장군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 여솔의 그 결심도 역시 개인적인 이유에서 그렇게 했을 뿐이었다. 명분과 이득을 가지고 움직이는 자였다면 그 제안은 매우 매리트가 있었을 것이지만 여솔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즉 여솔은 명분에 의해 움직이지도 않으며 사익에 따라서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솔은 무엇을 욕망하는가와 같은 질문이 덧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따라서 좀 더 구조적 측면에서 여솔이란 존재는 이 작품에서 왜 필요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고려의 사신단이 명나라에서 고립된 특수하고 예외적인 상황에서 고려에서 작동해왔던 명분과 형식들이 어떻게 고장나고 쓸모가 없는지를 보이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던 것 아닐까. 일종의 애드거 앨런 포의 [잃어버린 편지]에서 대상a였던 편지처럼, 여솔은 당시 사회계층의 각자의 입장에 따른 욕망하는 대상a라는 것이다. 사익과 명분으로 작동되는 고려의 작은 사회가 고립되는 순간 담론들이 충돌하는 묘한 긴장감이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하겠다.
[이관 글. 2018-03-11 작성]
- 특히 정규군과 예비군의 갈등에 대해 잘 소개된 내용이 있다. TOTO의 상념나라라는 블로그의 글(http://blog.naver.com/totalbak/80138912126)을 참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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