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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헤븐즈 필 2장을 함께 본 친구들과 다시 3장이 시작되어.. 말 그래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마지막 장을 이제야 극장으로 보게 되었다. 확실히 유포테이블이 애니메이션 참 잘 만들었다. 액션씬도 흥미롭게 잘 만들고 말이지.

나의 경우 코믹스판으로 나온 세이버 루트 그리고 TVA판으로 나온 UBW 즉 토오사카 루트는 알고 있으나 실상 사쿠라 루트에 대한 정보는 거의 전무했다. 운이 좋게도 스포도 안 당한 찐 뉴비라 이 말이다. 이 돌이킬 수 없게 타락한 사쿠라를 과연 나스 키노코는 어떻게 풀어냈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극장으로 향했다.

헤븐즈 필을 사쿠라 루트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리야 루트라고 하는 이유를 매우 잘 알 것 같았다. 성배체인 이리야스필은 그 운명에 따라 항상 처절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왔었다. 하지만 헤븐즈 필에서는 생전에 오빠(사실은 동생ㅋㅋ) 에미야 시로와 관계를 쌓아나가는 이야기가 그나마 길게 이어진다. UBW와 달리 그나마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다른 루트에서는 항상 비극적이고 불쌍하게 최후를 맞이했는데... 헤븐즈 필에서는 스스로의 의지로 최후를 맞이한다는 점이 매우 다르다. 그리고 그 죽음은 어머니에게로의 회귀로 나타나 일종의 해방으로 나타났기도 했다. 확실히 헤븐즈 필의 진정한 주인공은 사쿠라가 아니라 이리야스필이 아닐까.

사쿠라의 되돌릴 수 없는 타락에 대한 처리는 좀 불만스러운게 뭐냐면, 이 타락 역시 본인의 의지로 선택된 점 때문이다. 강한 힘을 얻는 것에 대한 만족감에 의해 악 그 자체인 앙리 마유의 영향력에 속하는 것을 선택했다고도 봐야 할 것이다. 사쿠라라는 존재는 물론 가해자가 된 피해자라는 서사에 따르고 있는데 이 모든 비극적인 타락이 사실 복수심에 근간한 것이 아닐까 하는 플로우를 갖는 것 같다. 왜냐하면 오빠와 조켄을 죽인 후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라고 묻는 사쿠라의 허무함이 이를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잘못들에 대해 어떤 식으로 책임져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남게 된다. 시로는 죽는 것이 그에 대한 속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옳은 반론을 갖긴 한다. 문제는 이 작품이 어떤 속죄인가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긴 하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행복해"라고 말하는 사쿠라로 희석하는 엔딩 장면은 좀 거시기 하긴 했다. 어찌보면 루트 전체로 볼 때 가장 세속적이고 타락한 엔딩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세속적인 선택을 한 에미야 시로의 정신적 붕괴를 잘 표현해내지 않는 것 같다는 친구들의 얘기도 있다. 나는 왜 재가 말을 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 싶었는데 들어보니 이식된 아처의 팔을 사용하는 것은 꽤 위험한 일이라는 설정 때문에 일종의 정신착란이 일어난 것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이제서야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의 모든 루트를 알게 되었으니.. 이제 잠도 잘 잘 것 같다(?) 유포테이블 참 잘 만든단 말이야. 차라리 월희 리메이크는 어차피 만들지도 않을 거... 게임으로 내놓으려 하지 말고 그냥 유포테이블에 "진월담월희 리메이크"라는 명분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도 희망도 없는 희망을 잠깐 가졌다 내려놓는다.

[이관 글. 2020/10/25, 4:55 오후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