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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육식과 살생 그리고 원죄의 복원

현정경 2021. 5. 31. 07:03

유루캠프 2기의 한 장면을 보고 육식에 대한 어떤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고기를 먹는 것에는 결국 살생이란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채식주의자를 제외하고 이 과정을 목격할 때 사람들은 여러 태도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어떤 태도가 비도덕적인가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본 적이 있다. 오늘은 그것에 대해 좀 상세히 서술해볼까 한다.

나데시코는 피를 보지못해 눈을 감았고 린은 "이런 과정이구나" 하면서 본다. 그리고 결국 둘 다 장어를 맛있게 먹었다.

나데시코와 같은 태도가 기만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어찌보면 나데시코의 행동은 공감도가 높은 행동에 속할 것이다.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생물에게 고통을 가하는 과정이 벌어지는데 공감대 없이 그걸 별 생각없이 지켜보는 린이 더 나쁜 것이 아닐까. 하지만 고통에 대한 공감만을 가지고 도덕을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때로는 트롤리 딜레마와 같은 문제에서 옳은 이유에서 잘못된 선택을 내리게도 만든다. (한 사람을 살인하여 다수가 겪을 고통을 줄이겠다)

다른 도덕적 차원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바로 체 게바라의 예이다. 쿠바 혁명이 성공한 뒤 혁명세력들은 반혁명분자들을 대거 사형시켰다. 이때 체 게바라는 그 과정에 참석하여 똑바로 이들이 사형당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고 한다. 이는 "우리들이 당신들을 죽인다는 사실을 피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생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올바른 태도는 거기에 어떤 작위적인 뜻과 죄책감을 덜기 위해 고통받은 생명과 상관없는 이유를 넣지 않는 것이다. 채식주의자를 비아냥거리는 목소리 중 하나인 "인간은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잖어"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살생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것과는 상관이 없으며 이는 고통받은 생명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옛 사람들은 제사의 제물이라는 식으로 살생의 죄책감을 덜려고 했다. 할머니의 증언으로도 옛날에는 큰 짐승을 잡을 때 "우리를 노여워하지 말라"며 약소한 형식으로 제사를 지내줬다고 한다. 야만적이라고 생각할만한 옛날사람들도 자신이 저지른 죄를 받아들이고 생명에게 미안함과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양식은 상품시장이 고도로 발달한 요즘에는 살생이 고기를 만드는 공정의 한 과정에 불과하도록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마트에 가면 말끔하게 절단된 고기의 형태가 제품으로 등장하게 된다. 마치 살생과 동떨어진 듯하게 우리 앞에 상품으로 나타난다. (이는 상품물신이라는 효과와 유사하게 작용한다) 이 지점은 공장식 축산에 대해 비판적인 운동가들이 잘 아는 지점이다. 그 과정에서 고개를 돌린 이들에게 충격적인 영상을 보여주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상품시장은 동물을 죽이는 일에 종사하는 직업인들의 정신적 고통에 무관심하게 만들기도 한다. 축산업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던 이에게 들은 바로는 소는 여전히 총으로 쏘는 방식이고, 돼지 역시 전기충격으로 의식을 잃긴 하지만 칼로 멱을 따서 피를 뽑는 과정이 사람 손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대체로 축산업에서 살생에는 사람 손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소리이다. 물론 사람손을 거치냐 아니냐는 다른 문제를 유도하기도 한다. 예컨대 닭의 살생의 경우 대부분 기계적으로 처리되고 있다. 그래서 축산업 매니저에게 있어 쓸모없는 수컷 병아리는 분쇄기에 넣어 처리한다는 개념에 대해 어떠한 도덕적 문제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문제들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하더라도 성공적일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에서 눈을 돌리기는 매우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고기를 원하는 욕망과 살생의 관련성이 마트와 온라인쇼핑을 통해 쉽게 분리될 수 있다는 점도 한몫을 한다. 지젝이 자주 언급하는 "카페인 없는 커피"처럼 상품물신은 "살생없는 고기"로 인간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나는 비건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 "즐기기 위한 육식"이라는 것에는 동일한 문제의식을 갖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같이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인간의 원죄라고 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현대에 이르러 어떻게 사람들이 살생과 육식의 관계를 올바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그리고 '즐기는 육식', '욕망의 육식'이라는 태도에서 어떻게 필요에 의한 고기의 섭취 정도의 태도로 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그런 고민 말이다. 결국 핵심은 인간이 오랫동안 육식에 대해 가져왔던 원죄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다시 복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아이들에게 동물을 살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교육과정이 있는 곳도 있다고 한다. 안좋을 수 있지만 중요한 건 그것을 본 뒤의 교육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음 당한 동물에 대해 어떠한 비아냥이나 농담 혹은 대상화로 그 죄책감을 피하지 말고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생명을 죽일 수밖에 없는 원죄를 가진 자들이라는 사실을 올바르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이관 글. 2021/02/09, 12:06 오전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