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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절된 노동, 변형된 계급1

한 줄 요약
울산 대공장 노동자라는 정체성은 소비 압력이라는 풍요로운 노동자 그리고 계층상승 욕구에 따른 도구적 집단행동을 추구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계급의 파편화는 앞으로도 심화될 것이다.
일러두기
- 전자책이지만 PDF버전이므로 인용한 쪽 번호를 소괄호 () 안에 표기하였음. (예: 5쪽->(5))
울산에서 변형된 계급
이 책은 어떤 책인가란 질문을 제기한다면 나는 저자가 서두에서 밝힌 바가 이 책의 전반적인 취지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인용해보자.
나는 이 책에서 울산의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는 산업노동자들의 일과 생활, 문화와 정체성, 노동조합 활동과 저항의 역사를 들여다봄으로써, 민주화 이후 지난 35년의 급격한 사회 변동 속에서 한국의 노동계급이 지나온 행로를 이해하고 오늘날 그들의 집단적 실천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다.(5)
다만 울산 현대라는 지역적인 특성을 고려해보면 이것이 과연 급격한 사회 변동을 설명할 적절한 바로미터일지 의심스러울 수 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난 곳 중 하나고 대표적인 노동운동 지역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몽준이라는 국회의원을 탄생시키기도 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것만 봐도 이곳의 격동적인 변동은 가히 민주화 이후의 한국의 변화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적절한 표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울산은 무엇이었나
먼저 울산의 역사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도록 하자. 근대적 공업도시인 울산은 "1930년대 후반 어느 일본인 자본가[@현정경:이케다 스케타다, 1885-1952] 머릿속에서 기원했고, 1962년 군사정부의 특정공업지구 지정을 통해 물질화되었다."(49).
산업화의 속도는 매우 빨라 "1980년에 오면 143개의 공장에서 66,529명의 종업원들이 일하는 공업도시가 되었다(울산상공회의소, 1981:82)"(54). 여기서 울산 인구 증가는 "외지 노동력의 유입에 기인하는 것"(55)이었다. 특히 현대그룹의 투자는 울산 인구 증가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데 "현대자동차가 입지한 염포 지역과 현대조선이 입지한 방어진 지구의 인구가 울산 구시가지의 인구를 절대수에서 능가"(55)하는 현상만 보더라도 이 울산지역의 현대그룹의 위상은 예상되는 바와 같이 상당히 클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울산에서 노동자 대투쟁 그리고 파편화
아무래도 울산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진원지라는 역사가 있다. "한국 최대의 중공업 밀집 지역이었던 울산은"(71) 의외로 대투쟁 이전에는 노동자 집합행동이 잘 일어났던 곳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울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 시작은 현대엔진노조의 결성이라고 한다. "사실 현대엔진노조 결성은 민주화운동이 가져온 정치적 개방국면과는 상관없이 1987년 1월부터 노사협의회 활동을 한 주도세력이 치밀하게 계획한 자체의 일정대로 진행되었고 6월항쟁은 그러한 계획 추진에 자신감을 불어넣은 것으로 볼 수 있다."(75). 이는 "1986년의 울산지역(양산 포함)에는 121개의 노동조합에 3만 5천여 명이 조합원으로 조직되어 있었는데, (중략) 노동조합 조직률은 1987년 이전 약 20%에서 1년 만에 44%로 급증했다. 1990년에는 노조 수 241개, 조합원 수 9만 4천여명이 되었다."(78)
하지만 이런 노조 결성 노력의 결과는 무척 컸지만 이런 운동이 민주노조의 연대조직 대오로의 결집에까지 이르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이것이 울산의 문제로 보긴 어렵겠지만 매우 큰 조직이던 울산 지역의 노조들이 이런 연대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점은 의외인 부분이다. "지역노조협의회 건설 시도가 좌절된 이후 한동안 울산에서는 지역연대조직 건설의 흐름이 중단되었었다"(100). 현대그룹사의 연대체인 현총련의 결성도 있었으나 "엄밀한 의미에서 지역연대조직이라고 보기 어려웠다"(103). 현대 계열사 노조만 가입할 수 있었고 각 사업장이 울산뿐 아닌 "경인지역과 창원"이 있어 지역운동으서 전개되기 어려운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1990년대 초반에 현총련과 울민노 모두 지역 전체의 노조운동을 포괄하는 연대조직 결성에 실패했다"(106).
단기적인 임금극대화 전략
저자는 국내의 노조 임금정책이 임금격차를 유발하는 중요 요인으로 지적한다. 이는 울산 지역의 대기업노조도 마찬가지이고 대표적인 경우로 생각할 수 있다.
한국의 조율되지 않은 기업별 교섭이라는 오래된 전통이 기업 규모별 임금격차를 유발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노조 임금정책의 두 가지 목표 중 한국의 노조운동은 현재까지도 단기적인 임금 극대화 전략을 위주로 했고 임금 평준화 전략은 매우 제한적이었다고 평가한다.(120-121)
대기업 노조의 이러한 행위를 "임금 극대화 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행위는 임단협의 단위가 산별 혹은 지역별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업장별로 파편화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면 임금 극대화 전략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듯이 대기업 노조는 이득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상급단체에서 탈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기업노조로 작동하고 있는 현재의 대기업노조를 지역노조로 해소하지 못하는 현재까지의 민주노총의 한계이다. 예컨대 북유럽의 경우
노조들은 (스웨덴의 연대임금정책에서 가장 잘 드러나듯이)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임금 극대화 대신 임금 평준화와 완전고용 정책을 결합하거나, 국가의 공동정책에 적극 개입하여 탈상품화, 수요관리, 산업정책 등을 통하여 실업이 야기할 수 있는 혼란을 완화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임금 극대화와 임금 평준화의 동시적 추구가 낳은 결과는 이와 달랐다. (중략) 조직률이 낮고 분권적, 비포괄적인 노조형태와 교섭구조가 일반적이고, 독점 재벌이 산업의 가치사슬을 지배하는 조건에서는 대공장 사업장의 임금 극대화가 야기하는 충격이 외부 또는 주변부 노동시장으로 전가될 여지가 충분했다. 이러한 이유로 대공장 기업별 노조의 임금 극대화 및 내부적 평준화 정책은 기업의 경영실적이 악화되지만 않는다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136-137)
그런데 한 편으로. 현대그룹 사측은 왜 이런 노조의 임금극대화 전략을 수용할 수 있었을까도 의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대기업 노조는 임금 극대화를 우선 목표로 하면서 그로 인한 기업의 비용절감을 위한 다른 노력들에 대해서는 동의를 해주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사내하청 노동자의 수용, 원하청 구조의 압력, 생산현장의 기계화 수용으로 사측이 임금압박에 의한 손실을 보전할 다른 기회들을 용인한 것이다. 이런 구조가 현대그룹 사측이 노조의 임금극대화를 지속적으로 수용해왔던 이유로 지적할 수 있다.
풍요로운 노동자 모델
저자가 얘기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는 이 울산 대공장 노조를 설명하기 위해 '풍요로운 노동자(affluent workers)' 모델을 이야기 한다는 점이었다. 이는 런던의 신흥 공업도시 공장노동자들의 일, 생활, 사회의식, 정치적 태도를 조사한 연구에 기인(252)한다.2 3
"외환위기 이후에도 회사의 고도성장이 지속되면서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임금소득은 꾸준히 상승했고, 한국의 '풍요로운 노동자'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257-258). 특히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외환위기 이후 평균 40대 초중반의 생애과정에 직면하여 자녀 사교육비, 주택구입 대출상환금, 노후대비 자산저축 등의 "가계지출의 압박 속에서 살아가고"(264) 있었다. 이런 생활세계의 소비 압박(264)이 '임금극대화 전략'의 추동력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풍요로운 노동자 모델은 임금 극대화 전략의 추동을 소비 압박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흥미로웠다.
도구적 집단주의 성향
또 다른 흥미로운 것은 현대차 노동자들의 특정 행위 성향의 설명을 위해 '도구적 집단주의 성향'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풍요로운 노동자 모델은 세대에 따른 소비압박으로 설명하는 것과 달리 여기서는 임금 인상의 동기로서 의도적인 '계층 상승 욕구'로 설명하는 점이다. 전자가 구조적 설명이라면 이 후자는 의도적 설명이라 볼 수 있겠다. 저자는 이를 통해 울산의 대공장 노조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결국 울산의 대공장 노동자들은 공장 내에서는 강한 집단주의 문화와 경영자에 대한 계급적 대립의식을 견지하며 전투적 집합행동을 마다하지 않지만, 집단주의의 표출이 노동계급 전체의 연대에 기여하기보다는 점차 대공장 노동자 집단의 경제적 이해의 베타적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변형되어갔다. (중략) 이 책은 전투적 경제주의가 1980년대 이후 대공장 노동자들의 생애 전반에 걸쳐 구조화된 도구적 집단주의 행위 성향에 부합하는 노조운동의 정체성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448)
결론 : 계급의 재형성에 대한 희망
물론 계급의 파편화의 원인들은 다른 나라에서도 일반화된 것이기도 하므로 굳이 울산의 대공장 노동자들을 타겟으로 잡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러한 계급의 파편화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민주노조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런 현실을 자료와 연구자들의 결과들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저자 역시 "계급의 재형성은 매우 지난한 과제"(463)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이것이 한국만의 현상도 아닌 자본주의의 일반화된 현상이기도 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러한 문제는 지속적으로 고민해볼 가치가 큰 문제라 보인다.
-끝-
- 유형근. (2023). 「분절된 노동, 변형된 계급: 울산 대공장 노동자의 생애와 노동운동.」 산지니. 2023-11-21 발행. 전자책(밀리의 서재). https://short.millie.co.kr/yjixpo [본문으로]
- Goldthorpe, J. H., Lockwood, D., Bechhofer, F., & Platt, J. (1967). The affluent worker and the thesis of embourgeoisement: Some preliminary research findings. Sociology, 1(1), 11-31. [본문으로]
- Goldthorpe, J. H., Lockwood, D., Bechhofer, F., & Platt, J. (1969). _The affluent worker in the class structure. Lond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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