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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감

「아수라」를 보고나서

현정경 2021. 5. 23. 20:34

아수라를 봤다. 보고나서 아주 간단하게 감상을 남겨보겠다.

이를 보고나서 처음 생각했던 것은 약속을 함부로 하면서 기대를 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지독한 가학이라는 것이다. 주인공 한도경은 약속하고 따르는 상대방을 신뢰할 수가 없으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심정으로 절망의 끝까지 간다.

일반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일을 재생산하는 무리들의 논리는 "너도 X되고 나도 X되는" 상황을 담보로 짓는다. 그래서 비리를 잡아내려면 내부고발자에 대해 X되는 일을 최대한 경감해주므로서 고발을 유인하고 내부를 분열시키도록 하는 방법을 쓰는 것이다.

박성배 안남시장. 그리고 김차인 검사가 한도경을 지배할 수 있던 건 힘을 가진 자가 덜 손해를 보는 상황을 만들었던 거다. 실상은 너도 X되고 나도 X되는 게 아니라 너만 X되는 상황이 바로 권력이 가능한 상황인 거다. 한쪽만 X되는 상황이 되면 그가 모든 행동응 수행하게 된다. 그것이 한도경이고 박성배 안남시장 집사,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이기도 하다.

잠깐 딴 이야기를 해보자. 아수라에서 등장인물들은 뭔가 사슬에 매여있는 듯한 맥락들이 각자 있는데, 여기서 특이한 존재가 있다. 경찰 동료이자 도경이 아끼는 동생 문선모라는 사람이다. 선모는 도경처럼 아내의 병원비가 필요해서도 아니고 그런 나락에 빠져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도경의 소개로 경찰직을 그만두고 박성배 시장을 따르게 된다. 그리고 어느새 나락으로 떨어져갔고 박성배 안남시장의 지시에 의해 살인까지 거침없이 저지르게 된다.

선모의 이탈은 대체 무슨 이유로 그렇게까지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것일까. 내 생각엔 이렇다. 그것은 한도경이 좋아하는 동생을 위한답시고 '엉아'로서 그의 몫도 챙겨줄 겸 별 생각없이 박성배 안남시장을 따르는 무리로 소개시키게 되었고 도경이 형을 신뢰하고 따랐던 선모는 그에 응하여 그런 삶을 선택하게 된다. 실상 선모와 도경의 관계는 "의리로 뭉친 형과 아우"라는 표상을 대표한다. 선모에게 죽음이 앞으로 다가오고 있을 때 그는 도경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게 다) 형 때문이야.."

하지만 그도 그 길을 선택한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모든 책임을 도경에게 지우는 건 실상 남자들 세계에서 형, 동생하는 그 의리니 우정이니 하는 것의 대표적인 악습의 고리랄까. 그 안에서는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책임을 져야 할 때 이들은 "너와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기 쉽상이다. 그럼 누구 책임인가? 세상의 잘못인가? 그렇다. 그렇게 된다. 한국에서 의리로 뭉친 남성들의 의리라고 하는 공동체 의식이란 개인의 책임 문제에서 이토록 잔혹한 것이다.

어쨌든 다시 손해의 비대칭구조인 권력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그런 건 일상에서도 충분히 많은 예를 찾을 수 있다. 학생시절엔 왕따나 괴롭힘을 뮥인하는 논리, 군대에서 구타를 묵인하는 논리, 회사조직에서 뒷담화의 논리 등은 바로 그런 거다. 분명히 누군가는 조금만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고 가장 X되는 사람이 모든 위험한 일을 하게 된다. 손해가 적은 새끼는 잘 움직이지 않는다. 박성배 안남시장이 잔인한 짓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손해가 적고 언제든 빠져나갈 구멍들이 갖춰져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잔혹함은 본성일 수 있으나 제약 가능하며 교육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제도이고 법치이다. 그것이 그것을 제약할 수 없을 때부터 인간은 잔혹해질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해보면 클레어법은 분명 고려할만한 제도이다. 여성은 약자이다. 그리고 남성 역시 잠재적인 데이트폭력자가 될 수 있고 나 역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폭력은 제도적으로 제약해야 하며 그러한 한에서 인간은 선한 의지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클레어법은 데이트폭력 방지를 위한 효과적인 제약이 될 수 있다. 이 행동 자체가 앞으로 미래에 치명적인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리고 그런 법이 인간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권리를 침해하더라도 그 권리가 여성살해로 인한 생명권의 침해보다 우선한다고 생각되지 않으므로 그 법은 남성의 폭력성을 제약할 수 있다고 본다.

어쨌든 영화는 말미에서 모두 X되는 상황이 된다. 그때 가장 손해를 볼 사람이야말로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밖에 없는 계급 같은 것이 된다. 가장 손해가 적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순간에서야 한도경은 말할 수 있었다.

"박성배 (아니 박근혜) 앞으로 나와!"

[이관 글. 2017-03-20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