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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의 「별의 목소리」를 보게 되었다. 때는 2039년. 화성에 조사대를 파견했다가 타르시스인이라는 외계문명에 의해 전멸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뒤 인류는 외계문명에게서 얻어낸 기술을 이용해 선발대를 꾸려 타르시스인을 추격한다는 설정이다.
다시 2046년. 이때 미카코와 노보루라는 두 중학생이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공유하였으나 아직은 고백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미카코는 타르시스인을 추격할 선발대로 뽑힌다. 아니 차출(?)된다. 미카코라는 중학생이 타르시스인의 추격대로 선발되어 우주 저 멀리 태양계를 지나 8광년이나 떨어진 혜성으로 간다는 배경과 전개는 억지스럽긴 하지만 사실 납득가능한 설정성은 중요하지 않다. 신카이는 두 주인공의 거리를 매우 멀리 설정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라고 생각된다.
두 주인공을 이어주고 소통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휴대단말기의 SMS이다. 화성에서 목성, 명왕성, 태양계를 벗어나 8광년에 접어들어가면서 둘 사이의 소통의 시간은 점차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노보루 역시 그러한 시간만큼 그녀 미카코의 SMS를 잊어간다.
어찌보면 잔인한 구도이기도 하다. 기다리는 고통을 감내하는 노보루, 그리고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우주로 갈수밖에 없어 자유를 제약당하는 미카코의 고통. 어찌보면 연인을 군대에 보내고 기다리는 여성과 군대에 강제징집당하느 남성의 구도가 여기서 성 역할이 뒤바뀐 상황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군대에서는 정말 사소한 사회에서의 생활이 자주 떠오르는데, 미카코도 그것을 느낀다. 편의점에서 사먹는 음료수, 교내에 시끄러운 친구들과의 대화, 친구와 수다를 떨며 가는 하교길, 그리고 사회에서 쌓아왔던 인간관계 네트워크에서 이탈되어 느끼는 어떤 소외감과 외로움. 그런 것들을 강제징집이 없는 일본인 신카이가 놀랍게도 잘 나타내고 있어 놀라웠다.
이 작품은 신카이의 두 번째 작품이기도 하지만 이후의 작품과 유사한 어떤 메세지가 있다. 결론적으로 두 주인공이 이어지는 일은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두 주인공 사이에서 빛의 속도를 넘어 초월적인 공간 속에서 서로의 영혼을 느끼는 것. 즉 "지금을 느낀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말한다.
"나는 여기 있어."
이후의 작품들은 두 사람 사이에서 한쪽인 남자는 상대방을 인식하려 하고 잊지 않으려 하며 잊으려 하는 자신을 불편해 한다. 그러나 다른 한 쪽인 여자는 상대방을 인식하지 않게 되고 그것 자체를 불편하게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비대칭에도 서로는 그냥저냥 살아가는 구도를 보여준다. 예컨대 「초속5센치미터」의 주인공은 분명 여자 주인공을 잊지 않으려고 발악하고 만나고 싶어하지만, 그의 무의식은 그녀가 없어도 괜찮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지 그는 그녀를 욕망하는 자신을 벗어나지 못할 뿐이라는 것을. 그에 비하여 한참 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서로를 인식하고 서로의 영혼을 인식하려는 노력과 열정이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무언가 신카이의 철학이 바뀐 것이 아닐까 한다.
다른 작품인 「초속5센치미터」에 대해 더 말해보자. 오히려 나는 이 작품에서 여성혐오를 발견한다. 남성은 과거의 첫사랑을 잊지 못하지만 여성은 다른 남성과 결혼을 준비한다.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는 식의 웃긴 메세지를 전달하는 느낌이다. 그런 남자의 순수한 마음과 기다림을 알지도 못하고 여성은 다른 남성과 결혼한다. 하지만 어찌보면 약간의 전복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두 사람은 연락을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다. 만날 수 있었음에도 만나지 않았다. 사실 두 사람은 서로가 필요하지 않다. 다만 욕망하는 자신을 원할 뿐. 그것이 삶이 유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관 글. 2017-03-25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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