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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요새 들어 오픈 일정 덕에 바쁜 나날을 보내다보니 두 권을 겨우 읽어냈고, 빠르게 2월의 덕후감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럼 시작할까요?
- 너의 이름은。어나더 사이드:어스바운드
[너의 이름은. 어나더 사이드 : 어스바운드](이하 어스바운드)는 이번에 개봉한 극장판 [너의 이름은.]의 소설 특별판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극장판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가 직접 작성했다고 한다. 부제 그대로 아니메에서 보여주지 못한 이야기를 다루지만 겹치는 것은 많다. 다만 주, 조연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보니 좀 더 디테일한 설정과 심리에 대해 이해하기 좋은 것 같다.
무엇보다 테시가와라의 관점에서 쓰인 이야기에서 내가 생각한 테시가와라가 자신이 사는 마을 이토모리에 대한 그의 태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잘 나타내고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사야카와 미츠하가 자기들의 마을 이토모리에 대해 흉을 보고 있을 때 테시가와라가 조금 불편한 마음을 포현했었고 아마도 그는 이 마을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생각했는데, 사실 그가 자신의 아버지이자 건설사의 사장에게 갖는 감정, 그리고 미츠하가 된 타키와 함께 마을을 구하기 위해 행동할 때의 태도를 보자면 그는 이 마을에 대한 부당함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의 해결방식이 이곳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바꿔보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설정은 이 소설의 테시가와라의 이야기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다음으로 극장판에서는 빠르게 전개를 탔던 정신이동 이후 일어나는 해프닝의 경우를 어스바운드에서는 아주 섬세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이런 부분들에 있어서 매우 불편한 지점들이 있었기도 하다. 몇몇을 살펴보자.
대표적으로 여성이 "되어졌을 때" 생기는 불편함에 대해서이다. 예컨대 타키는 브래지어를 차지 않아서 교우 여학생들에게서 몇 번 지적을 받기도 한다. 타키는 미츠하가 되었을 때 브래지어를 하고 싶지 않은 이유를 "이것을 가슴에 차면 나는 남자가 아니다."라고 둘러대고 있다. 이런 생각은 물론 이해는 가지만, 뭐랄까. 예컨대 그 덕에 남학생들의 시선강간을 당하게 되는데, 그에 대한 처리를 브래지어를 차지 않은 미츠하의 탓으로 돌리는 지점이 굉장히 부당하게 느껴진 것도 있다. 결국에는 미츠하의 "저주한다"는 말에 차게 된다. 또한 교복이 치마인 이상 여러 활동적인 상황이나 자세 등에서 여러 제약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럴 경우 미츠하의 친구 사야카가 지적을 해준다. 허나 이는 그저 생활의 불편함 정도를 보여줄 뿐. 여성으로써 존재하기 위해 치르고 있는 손실에 대해서 특별히 포인트를 잡지는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미츠하가 단정함과 소극적인 심리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서이다. 물론 미츠하 본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미츠하가 된 타키가 남성이라는 자각에 입각해 행동하면서 주변인들이 그에게서 느끼는 기존의 캐릭터와의 격차를 인지하게 되면서 추론하는 것이다. 미츠하는 굉장히 남의 시선을 신경쓰고 단정한 생활을 해야 하는, 아니 할 수밖에 없는 이토모리 마을을 지키는 신사의 무녀이다. 시골 마을에 살아본 사람은 다들 알겠지만 그 안에서 주민들끼리는 서로에 대한 정보가 완전정보에 가까울 정도로 투명하다. 즉 이웃 간에 거의 비밀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마을을 대표하는 신사의 무녀인 미츠하의 평소의 단정한 생활과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는 상당히 심할 것이다. 하지만 남성으로 살아가는 타키가 미츠하가 되어 겪는 대부분의 실수들은 대체로 여성으로써 존재함에 있어서 치르게 되는 속박에 대해 지키지 않을 때의 문제와 같다고 본다. 이런 것을 신사의 무녀라는 어떤 책임감으로 괄호치는 방식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정함이라는 것은 사실 친구인 사야카도, 교우 여학생들이 모두 지켜야하는 속박에 대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지키지 않는 타키(미츠하)를 보고 여학우들이 그녀를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평소의 그녀답지 않다는 것보다는 여성답지 않다는 측면에서 지적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것이 개인적 특수성이 아니라 '여성'이 갖게 되는 일반적인 상황일진데 신카이는 이를 미츠하의 성향으로 연결짓는 것은 오히려 어색했던 지점이었다.
그리고 타키가 미츠하가 된 후 자신의 가슴을 주무르는 행동에 대해 한 마디 해야겠다. 그 행동을 소설에서는 일종의 '자기인식'을 위한 과정으로 (초반에만) 처리하고 있다. 그런 서술은 걸을 때, 무언가를 들 때, 운동을 할 때 등에서 많이 보여지고 있다. 하지만 그 뒤로는 확실히 의도적인 성적 만족을 위해 가슴을 주므른다는 것은 명백해보인다. 이 지점은 명백한 여혐이자 성추행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아니메나 소설이나 이를 코믹스럽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건 좀 껄끄러운 처리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극장판에서 그걸 지적한 미츠하에게 타키가 "아.. 한 번밖에 안했어."라는 게 온당한 사과인 것인지 이제 생각이 났다. 그때 그런 생각을 못했던 나 역시 반성해야겠다…
그 이후 미츠하의 아버지 토시카의 이야기는 민속학적 이야기가 나와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토시키가 바로 민속학 연구자라는 설정이었고 특히 토착신앙에 대한 연구자였는데 어떤 신화에 대한 연구를 위한 인터뷰에서 미츠하의 어머니 후타바를 만난 것. (사실 나는 인류학을 열심히 공부한 건 아니지만 무척 선망하는 편이다. 물론 거기 나오는 학술적인 이야기들은 이토모리라는 동네도 가상이고 신화도 일종의 짜집기일 것으로 보이지만 보는 내내 너무너무 두근댔었다) 특히 이토모리가 천 년 전에 이미 혜성으로 큰 피해를 본 적이 있고 이것이 이토모리 신사의 교리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는 식의 여러 단서들과 증거들을 나열한다. 이 이야기는 침을 꼴깍 삼킬만큼 매우 흥미롭게 서술되어 있어서 꽤 재미있었다.
허나 후타바가 자신의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토시키가 혜성에서 사람들을 피신시킬 지위를 갖게 한다는 식으로 후에 연결짓는 건 너무 무리한 '무스비'였다고나 할까. 후타바가 물론 신사에 소속된 종교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두 딸과 사랑하는 남편을 놔두고 병을 무작정 치료받지 않겠다고 하면서 그 병을 받아들이고 죽는 것을 선택했다는 것은 신의 뜻을 받아들이는 종교인의 모습으로 보이기 보다는 죽고싶다는 인간 자체의 의지로 보여서 더더욱 어색했었다는 건 나만 그럴까?
이제 전체적인 평으로 결착을 지어보자.
극장판 "너의 이름은."에서 그냥 넘어갔던 어떤 구멍들이 존재할 것이고, 어스바운드는 신카이 마코토 자신이 직접 작성하였다는 점에서 일종의 감독이 소설로 쓴 [너의 이름은。] 외전이라고나 할까. 그 구멍들에 대해 해소해주고 있다. 다만 나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신의 뜻이라며 죽음을 선택한 미츠하의 어머니 후타바와 같이, 실상 신의 뜻은 혜성을 피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왜 그 역사는 한 번 이루어져야 했는가이다. 사람들은 동일본 대지진을 떠올리며 일종의 희망을 던져주는 메세지로서 읽고자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의아한 접근이라고 본다. 중요한 건 재난을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재난을 당한 피해당사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물론 작품은 작가의 자유이다. 내가 말하는 건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희망의 메세지로 보기에는 무리라고 생각이 든다는 거다. 그리고 역시 신카이 감독은 그런 서사에 어울린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단지 "그 일은 없었던 것이 된다면." 같은 바램을 구현한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 우울한 빌런즈 2권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이능배틀물 라노벨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읽는 작품 중 하나가 [우울한 빌런즈]이다. 이 작품의 설정은 일종의 유명한 동화물을 갖다가 악역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변형시킨 동화책 워스트엔드 시리즈라는 것이 있고 그 책의 악역에 매혹되기 시작한 순간 악역의 능력을 얻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대출되는 것이고 연장하거나(상한선이 있다) 반납을 해야 하는데, 만약 이를 어긴다면 악역에게 완전히 빙의되어 자신을 잃어버리는 살인마가 되어 버린다. 전작은 이미 그 살인마가 된 자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 2권은 살인마가 되기 싫은 자들의 이야기이다. 즉 워스트엔드 독자는 능력을 계속 얻고 싶다기보다는 반납을 할 도서관이 어디있는가?에 대해 1권을 읽으면서 궁금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2권에서 이에 대해 다룬다. 위스트엔드 시리즈는 누가 만들었고 누가 대출해주는 것이며 그 도서관은 어디에 있는가? 모든 키는 대출연장 카드를 가지고 있는 워스트엔드 시리즈를 회수하는 역할인 오비나타 츠키요가 가지고 있다.
츠키요가 대출연장카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워스트엔드 시리즈를 대출하는 도서관과 무척 관련이 깊은 인물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연결이 된다. 그리고 다른 워스트엔드 독자(이능력자들)들은 그녀를 납치하여 그 정보를 캐서 연장카드를 얻어내려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대출카드에 연장할 때마다 이름을 적어야 하는데 그 칸이 다 차면 빙의되어 끝장인 거다)
이 작품의 재미있는 점은 주인공들이 (츠키요를 제외하고) 워스트엔드 독자들이긴 한데 뭐랄까. 그렇다. 이능'배틀'에 특화될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주인공 카네스케도 원래 평범한 고딩이었다가 1권 말미에 [빨간 모자]를 통해 악역에 매료되어 워스트엔드 독자가 되었으나 그 이능력은 '변장술'. 그리고 워스트엔드 시리즈를 회수하는 츠키요는 워스트엔드 독자도 아니고 싸움능력도 없지만 사람의 마음을 문자열로 독해할 수 있는 능력은 가지고 있다. 치도리는 본 세계와 정반대의 거울 세계로 가는 능력을 가지지만 이것도 뭐 피신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든가 1권에서처럼 늑대인간을 함정에 빠뜨리기도 하는 정도는 도움이 되긴 하지만.. 역시 '배틀'로 사용하는데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유일하게 배틀을 할만한 사람은 주머니에서 온갖 날붙이, 권총을 꺼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푸른 수염' 무라세 이치로 정도다. 그런 그도 결국 초반에 키이로 일당에게 발려버리고 주인공 카네스케도 변장을 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어버려 츠키요를 데려가는 것을 방해하지도 못했다. 결국 주인공 팀이 개발려버린다.
그런데 이런 약점들을 가진 주인공들이라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정말 작가의 능력이 정말 중요한데, 가장 대표적인 교범은 당연히 [원피스]다. 각자의 약점들이 위기를 갖게 만드는 일종의 장치가 되고 이는 전투씬을 긴장감있게 흘러가게 만들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시시하게 느껴지기도 쉬운 것이다. 1권에서는 이능배틀이라기 보다는 늑대인간이라는 살인광을 막는다는 것이 주 목적이었던데 반해, 2권에서는 다른 워스트엔드 독자 '팀'을 상대하는 이능배틀물에 가까운 이야기를 갖고 있다. 따라서 각 캐릭터의 약점에 대한 위기를 만들어 전투씬을 긴장감있게 해야 하는데.. 솔직히 2권 초반에서 키이로 일당과 싸우는 씬은 조금의 긴장감도 내게 부여하지 못했다. 게다가 키이로 일당이 카네스케 일행의 약점들을 치도리와의 거래를 통해 모조리 간파하고 있다는 설정 역시 긴장감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요인이었던 것 같다. 말 그대로 주인공들이 무력하게 당한다는 느낌이랄까. 조금의, 아주 조금의 가능성도 독자에게 허용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읽는 이에게 긴장감을 주는 데 실패한 씬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카네스케가 변장술이라는 장점을 이용해 치도리로 변장함으로써 그 능력 역시 변장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별로 설득력이 없어보였다. 그러려면 변장과 이능력 간에 어떤 의미로 그것이 "변장"될 수 있다는 것인지가 납득이 되어야 할텐데 그 부분을 애매하게 처리하는 부분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치도리의 슬픈 과거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뭐 잘은 알겠으나 "어머니에게 구타를 당했다"는 것과 "어머니를 넘어선다"가 어색하다고나 할까. 사실 가정폭력 피해자의 심리는 대체로 '자기혐오'를 만드는 것은 알고 있고 이 작품에서도 그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 같지만 중요한 건 가해를 당한 피해자가 극복해야 할 것은 피해자가 결국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 자체가 아니라 가해자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 실타래가 풀리지 않는 한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일본의 전쟁책임과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일들 역시 그것과 유사한 것이 아닌가.
끝으로 치도리가 크게 다쳤을 때 나이를 빼앗아서 살린다는 설정도 역시 매우 억지스러웠다. 나이를 빼앗는다는 것이 시간을 빼앗는 것이라면 모를까. (이럴 때는 기억과 자아도 그에 맞춰 달라져야 할 것이다) 육체적인 시간을 빼앗는다는 의미가 대체 뭔지 나는 상상도 못하겠다.
전반적으로 설정이 억지스러운 감은 있으나 그렇다고 재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음 권이 기대되는 이유는 카네스케의 앞으로의 성장경로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그의 변장술의 수수께끼는 여전히 남아있고 의문도 있으나 굉장한 떡밥을 제공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2 권이라서인지 아직 츠키요의 비밀에 대해서는 잘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권에서 주인공은 츠키요보다 치도리가 주인공이었기도 하다. 하지만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었다.
[이관 글. 2017-02-23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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