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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이고 나도 최근에야 이런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배경은 70년 대 말 쯤의 한국을 배경으로 육상부였던 오이랑이라는 여고생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체육대회에서 자신의 경쟁자였던 동료에게 추월당하면서 "지는 것보다 넘어지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 일부러 넘어지게 되었다고 하면서..
[소중한 날의 꿈]은 오이랑의 성장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 뒤로 오이랑은 육상부를 그만둔다. 그 뒤에 서울에서 왔다는 전학생 한수민을 알게 되고 극장에서 러브스토리를 보러 갔다가 우연히 마주치게 된 계기로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하지만 한수민이란 존재는 오이랑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존재는 아닌 것 같다. 단지 한수민은 세상에 대해 회의적인 자신의 생각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이랑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한수민의 회의적인 태도 덕에 외로웠을 수도 있을 것도 같다. 오이랑의 입장에서 한수민은 시를 참으로 못쓰면서도 "당당하게 사는" 모습을 부러워 한다. 한수민은 "영감이 영원히 흘러 넘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들으며 최고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육상을 포기했던 자신과 비교해보면 시를 못쓰면서도 당당한 한수민의 면모를 자신도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세상은 1위만 기억한다는 점에 분노하는 오이랑은 최고가 될 수 없기에 육상을 포기했다고 한다. 자신은 그것 외에 할줄 아는 것이 없음에도 그렇다고 그것으로 독보적인 정상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 세상의 인식들 속에서 오이랑의 삶은 바로 그런 인식들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의 사이에서 투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오이랑이 이 작품에서 겪는 과정은 단순히 청소년의 사춘기 시절에 겪는 일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자주 겪을 수 있는 과정이라고. 그래서 따지고 보면 세상이 청소년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규범이란 사실 '성인聖人 ' 같은 느낌이 아닐까.
오이랑이 합의점을 찾게 된 계기는 공돌이 김철수라는 남학생이다. 오이랑은 우주비행사가 목표라면서 열심히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차곡차곡 해나아가는 철수를 보면서 오이랑 자신의 난처한 상황에 많은 영감을 얻게 된다. 이런 점에서 수민이가 이랑에게 철수는 냄새나는 녀석이며 여자들이 싫어하는 우주 이야기나 하는 녀석이라고 할 때 왜 화를 내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철수의 노력하는 모습과 수민의 당당함을 보며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그것을 수민이에게 부정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철수를 좋아하기 때문에, 연애감정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것에 대한 논거는 결국 철수에게 "우정을 택하겠다"고 수민에게 터놓고 얘기했다는 점일 것이다. 철수에게 느낀 건 연애감정이 아니라 일종의 선망 정도랄까.
수민도 결국 자신이 좋아했던 한 예술가에게서 자신의 시가 별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니. 사실 그 자신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패배감을 느끼는 수민을 보며 개인적인 생각들이 겹치기도 했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사실 얼마나 별로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실제로 느끼게 될 때 그것은 참으로 당혹스러운 사실이 된다. 이 작품은 그런 과정 속에 있을 청소년과 어른들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최고가 아니라도 상관없어. 하지만 유명해지지 않는 건 분하긴 해. 그렇지만 그런 분위기에 녹아서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어중간하게 정리되지 못한 작품이 던지는 질문을 제대로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브레히트의 시 중에 "독서하는 노동자의 질문"이라는 것을 끌어오고싶다.
누가 일곱개의 성문이 있는 테베를 세웠는가?
책에서 그대는 왕들의 이름을 발견한다네. 왕들이 바위덩어리를 끌어 날랐는가?
그리고 몇번이고 파괴된 바빌론 누가 바빌론을 몇번이고 일으켜 세웠는가?
건설 노동자들은 금으로 번쩍이는 리마의 어느 집에 살았는가?
만리장성이 완성되던 날 밤에 석공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위대한 로마는 개선문으로 가득 차 있다네. 누가 그것들을 세웠는가?
-브레히트 [독서하는 노동자의 질문 中 발췌-
아직 우리 한국에서, 아니 인류의 언어는 브레히트가 던지는 질문을 압축하여 답할만한 언어가 없는 것 같다. 그것이 이름붙여지지 못한 지금. 우리는 아직도 그런 것과 싸우고 있다.
어찌되었든 이 작품을 통해 감독 한혜진, 안재훈을 기억하고자 한다. 꽤나 감동적인 작품이었기도, 아마도 한국의 미야자키 하야오라고나 할까. 성우들도 괜찮았다. 다만 약간의 아쉬움은 우리나라의 음성처리에 대한 것이다. 예컨대 거리가 다른 사람끼리 이야기를 나눌 때, 카메라와 먼 거리에 있을 때 소리에 거리감을 입히는 것이라든가, 아니면 좀 더 바깥에 있는 경우 바깥이라는 감을 입히는 정도의 기술적인 부분이 아직은 아쉽다는 인상이다. 영상미는 충분히 아름답고 경쟁력이 있지만 이런 음성효과에서는 조금 아쉬웠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 외에는 모두 굉장히 잘만든 작품이다. 못 보신 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이관 글. 2017-02-12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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