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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요즘은 공부할게 많아지다보니 라이트노벨, 소설을 읽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덕분에 4~5월 덕후감은 작성되지 못했다. 그 두 달 동안 간간히 읽었던 「나의 소규모 기적」을 이제야 모두 읽게 되어 서평을 포스팅하도록 하겠다.

이루마 히토마(한자로 入間人間(입간인간)이더라ㅎㅎ)라는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다. 일단 이 작품의 내용은 매우 시시한 편이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처음은 이십 년 전에 일어난 사건. 그리고 이십 년 후 또 다른 이야기로서 고등학생, 대학생들의 이야기로 구분되어있다.

여기서 사건이란 이십 년 전 이야기의 주인공이 짝사랑을 했던 여인이 결혼을 했는데, 이 자는 불치병 때문에 곧 죽을 운명인 상황에 맞닥뜨린 시점이다. 짝사랑한 여인이 비록 결혼을 했지만 아직 미련이 남아 그녀에게 고백하러 가던 길. 하필이면 나이프를 들고 행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사람과 마주하게 된다. 그에게 나이프를 팔에 찔리는 부상을 입었으나 다른 피해자는 없었다. 그를 겨우 제압했지만 그에게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점. 그녀에게 고백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그 자리를 도망쳐나와 짝사랑녀에게 간다. 그때 그는 팔에 꽂아있던 나이프를 거리에 하수구 길에 버리고 그녀에게 가 고백한다. 물론 대답은 '거부'다.

그리고 그가 죽고나서 이십 년 후. 4명의 학생들이 주축이 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작품에서 그 주인공들의 실명은 제대로 언급되지 않는 것 같다. 이야기의 화자는 오빠와 여동생. 그리고 오빠 쪽이 너무 좋아하게 된 눈이 삼백안이지만 미인인 여자. 그리고 여동생 쪽이 만나게 되는 일명 헨섬마루. 이렇게 화자 두 명이 번갈아가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풍이다.

해당 라노벨 내용의 전개에 대한 소개는 이쯤하도록 하자. 먼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다.

(1) 작가가 은유와 비유를 너무 남발한다는 점 때문에 텀과 텀이 너무 느리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것도 재능은 재능이겠다 싶지만... 더더욱이 본래 문학적 은유가 기능하는 바는 인물의 심리를 투영시켜 그 공감력을 높이는 데에 있다고도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작가 히토마는 뭐랄까. 화자가 말할 때마다 은유를 넣으려고 대단히 집착하고 있어서 이야기의 진행,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 그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이불 속에 파고든 채 아내가 아침상을 준비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옛 시대의 남편이 된 기분으로 그의 모습을 지켜본다."(p132)

"그는 멋지지만, 그 '야한 책이나 겨드랑이 털 따위와는 무관합니다'라는 듯 때 묻지 않고 순수한 모습에는 어째서인지 조금씩 짜증이 커져 갔다."(p91)

"내 삶에서 1초 후 일만 개의 선택지가 기다리고 있다면 (...) 하지만 그 한 번에 의해 반드시 어떤 결과는 나온다. (...) 그러나 어떤 엉뚱한 결과가 나오든 놀랄 필요는 별로 없다고 스스로를 타일러보지만, 심장에는 그리 효과가 없는 듯하다. 다른 장기의 몫까지 힘내고자 맥박 치고 있다,"(p155)

위의 내용들은 모두 이야기의 전개에 중요한 내용도 아니지만 뭔가 멋들어지긴 하다. 하지만 이런 은유가 반복되다보면 인물의 심리묘사 기능으로서의 은유의 역할이 무뎌지고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이 지점에서 작가가 안좋은 버릇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기승전결이 명확하지도 않고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

(2) 이십 년 전과 이십 년 후의 이야기의 복선이 너무 없다는 것이다. 기껏 있는 것이라고는 이십 년 전 주인공이 하수구 길에 버린 나이프 하나 뿐이다. 그 외에는 이십 년 전 인물들과 이십 년 후 인물들의 복선을 위한 소재가 너무 없다. 그래서인지 반전의 카타르시스 껀덕지도 없고 마지막에 너무 허무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3) 이 작품의 취지와 관련된 것이고 위의 (2)와 관련이 있는 이야기이다. 먼저 이 작품의 프롤로그를 살펴보자.
"내 행동의 결과가 멀고 먼 전혀 다른 이야기로 재탄생할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나는 그녀를 위해 살 것이다. 만일 인생이 단지 운명의 변덕이라는 도미노 게임의 한 조각이라 할지라도."(p3)

이것을 읽고 나는 어떤 복선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이십 년 전 이야기를 꽤 상세하게 읽었었다. 허나 막판에 이르러 무척 허무했던 것 같다. 특별한 반전도 이십 년 전의 뭔가 숨겨진 비밀이라던가는 없었다. 따라서 (아마도 프롤로그가 작품의 의도라고 가정하자면) 작가가 최초에 가졌던 대주제는 분명 서로 다른 이야기들에 숨겨진 복선들을 연결짓는 카타르시스를 생각했을 것이라 믿을만 하겠다. 허나 스펙터클은 없으며 오빠가 좋아하는 삼백안 미녀를 쫒아다니는 스토커의 정체가 밝혀질 때 정말 맥이 빠졌다. 이건 엄연히 작가가 막판에 접어들어 소설을 쓰기 싫었나보다 할 정도로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정체랄 것도 없다. 그냥 삼백안 미녀의 오빠를 좋아하는데 이 삼백안 미녀가 그 오빠의 그림을 찢어버릇 하다보니 여동생에 분노해서 해꼬지를 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삼백안 미녀와 핸섬마루도 남매였던 것이고, 삼백안 미녀가 오빠의 그림을 찢는 이유도 어이없게도 뜬금없이 "자신의 그림을 그리려 하지 않으니까."라고 한다. 이건 공감이 안갔던 건 핸섬마루 스스로가 자신의 그림에 대한 태도를 독자가 알아채도록 단서들을 조금 뿌려두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보니 뜬금없이 들리는 거다. 아무튼 스토커의 정체가 '진짜 별거 아닌 스토커'였다는 그 장면을 볼 때 나는 지하철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헐! 뭐야 이게!"라고 했을 정도다...

(4) 다음으로 캐릭터성에 대한 것이다. 라이트노벨이 문학소설과 구분되는 것은 당연히 상품성이 있는 캐릭터성에 있다. 그러나,.. 오빠와 삼백안 미녀 외에는 특별하게 캐릭터성을 살리지 못한 듯 하다. 하지만 상품성은 아예 살릴 껀덕지는 없는 것 같다. 미녀의 손등을 긁는 버릇 외에는 그다지... 오빠라는 사람도 어떤 사람인진 알겠다. 그저 한 여자만 보고 계속 주욱 사랑을 해줄 수 있는 '개같은(?)' 사람이다. 허나 이런 캐릭터성은 상품성 요소가 되긴 어려워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여동생과 핸섬마루는 그냥 캐릭터성이 없다. 그리고 인물의 고민이 제대로 묘사되지 못한다. 여동생이 미술을 포기한 이유를 스스로 추적하고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잘 묘사된 것 같지 않아 계속 부유하는 느낌이 든다.

너무 후드러까기만 했다.. 사실 이 작품은 장점도 많다(늦었어!). 마지막 부분은 그리 유쾌한 시간은 아니지만.. 적어도 초중반까지는 그럭저럭 흥미롭게는 읽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작가의 독특한 문체라고나 할까. 위에서는 은유를 너무 남발해서 문제라고는 했지만 이 작가의 생각이 워낙 4차원이라서 상당히 독특한 은유들을 많이 쓰인다(약간의 단점으로 꼽자면 제3자가 못알아들을만한 사적인 은유가 간혹 쓰인다). 또한 화자의 독백 역시 재밌는 방식으로 묘사하는데 뭐랄까. 쓰레기를 착착 분리수거하는 느낌으로 진행되는 기분이랄까. 담백하다고 해야겠다. 라노벨에서 이런 독특한 문체는 보기 드문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리해보자면 스펙터클함이나 복선을 기대하지 말고 봐야 좀 더 작가의 문체에 집중하여 재미를 볼 수 있을 작품으로 생각된다. 문학적인 건 아니고.. 개성이 독특하다고 봐야겠다. 이것도 글쓰는 사람에겐 일종의 능력이긴 하겠지.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너무 시시하다.

[이관 글. 2017-06-13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