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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기억술사 1 - 기억을 지우는 사람

이번에는 라이트노벨이라기보다는 일반소설이다. 요새는 소설을 읽는 시간이 많이 없어 이번 달 역시 한 권만 읽었다. 그것이 「기억술사 1 - 기억을 지우는 사람」이었다.

이 소설은 기억술사라는 일명 도시전설류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한다.

'기억술사'라는 도시전설을 처음 들은 것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이었다.

해 질 녘 공원의 초록색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면 기억술사가 나타난다. 그래서 잊고 싶지만 아무리 해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지워준다는.[프롤로그 中]

다른 도시전설과 다르게 이 기억술사 이야기에는 몇 가지의 특징이 있다.

  • 이야기에 플롯이 없다. 즉 발단→갈등→절정→대단원과 같은 무서운 이야기들의 전형적인 플롯이란 것이 없다.
  • 도시전설은 대체로 해외에서 수입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기억술사 이야기는 도쿄 인근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만 이야기가 떠돌았다.

물론 이 정도의 정황이 주인공 요시모리 료이치의 궁금증의 발단은 아니다. 료이치는 기억술사에게 기억이 지워진 사람으로 강하게 의심되는 이들을 알고나서부터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추적한다. 그 세 명은 소꿉친구 가와이 마키, 그리고 그가 좋아했던 같은 학부 1년 선배인 사와다 교코이다. 그리고 그 자신으로 의심하고 있다.

소꿉친구인 마키는 어린 시절 충격적인 상황을 목격한 후 다음날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상황을 목도했었다. 하지만 료이치는 그 당시 어렸으며 그에 대한 추적해야 한다는 관심은 없었다. 다만 그는 어린 시절 무의식으로 침잠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억술사와 마키의 접촉과 관련한 고통스러운 꿈을 가끔 꾸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기억술사에 관심을 갖고 추적하게 된 것은 사와다 교코 때문이었다.

사와다 선배는 과거에 어두운 골목에서 성폭행 미수 피해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이로부터 생긴 후유증 때문에 적어도 저녁이 되기 전까지는 집으로 귀가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린다. 그녀는 자신의 강박증을 해결하고 싶었고 그래서 기억술사와 만나고 싶어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료이치에게 알려준다. 료이치는 사와다 선배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싶어했고 둘의 썸씽은 어느 정도 축적되어갔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한참 후 사와다 선배는 료이치와 깊어지기 이전만의 기억을 안고서 그를 대했기 때문이다. 바로 기억이 사라진 것이다. 료이치는 그 후부터 기억술사를 찾으려고 한다. 그는 그것이 억울하다고 한다.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타인에게 고통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조금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사실 사와다 교코는 자신의 후유증을 견디기 힘들어했고 그것 때문에 일상생활이 거의 어려웠다. 기억을 없애므로써 그녀는 후유증에서 탈각되었던 것이다. 그럼으로서 그녀는 자신의 정상적인 생활을 찾았다. 이 부분에서 주인공 료이치가 입은 손해는 그에 비해 얼마나 큰 것일까? 물론 한 사람을 사랑했지만 실제로 사귄 것은 아니었다. 분명 둘은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했었고 그에 대한 미련도 분명 있을 터이고 이해는 되지만 그러나 사랑이란 건 다른 누구와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코와 료이치가 잘 되서 결혼했을 가능성은 확률이 낮을 거다. 그리고 다른 기회도 존재한다. 따라서 료이치가 입은 손해는 일상생활이 어려웠던 그녀가 그걸 감수해서라도 얻을만한 가치가 있던 것이었다.

오히려 나는 료이치의 동기가 더 의아했다. 기억술사를 추적하려는 다른 인물들, 다카하라 도모아키 변호사는 자신을 극단적으로 좋아했던 고등학생 나나미 때문에, 그리고 도시전설 덕후들은 호기심에 의해 각각 추적의 동기를 가지고 있고 납득할만 하다. 하지만 료이치만은 기억술사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일종의 정의구현 때문이다. 기억이 남아있는 제3자에게 너무 큰 형벌을 내린다는 것이고 그러한 기술을 갖는 자가 존재한다면 그거야말로 제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그러한 정의를 내세우기 이전에 교코와의 관계가 틀어지게 된 이후의 그러한 결정 자체가 의아하다고 생각했다. 왜 그는 사와다 선배와 다시 새로운 운명을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물론 이전에 가지고 있던 과거는 료이치만 가질 뿐 교코는 가지지 않았다. 거기서 생기는 인지부조화는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그 기억이라는 것이 그렇게 큰 값어치랄 게 없다...  일단 둘이 관계를 나누기 시작한 지 그리 길지도 않았다. (한두 달 정도?) 그리 큰 기회비용도 아닌데 왜 기억술사를 추적해서 '정의구현'을 하겠다는 선택 쪽에 무게를 실었는지부터가 납득이 잘 안 되었다.

다른 한편 다카하라 도모아키 변호사의 이야기 챕터에서는 이 사람이 왜 존재하는가? 라는 의구심이 드는 인물이 있다. 바로 변호사 사무실 가정부 도노무라 아쓰시이다. 나는 도모아키가 아쓰시를 고용하게 된 발단과 도모아키가 병으로 죽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보고 훌륭한 동성애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귀거나 연애를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진심으로 좋아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좋았지만 왜 아쓰시가 이 소설의 한 챕터에서 화자 역할을 해야 할만큼 중요한 인물인지까지는 잘 모르겠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야기 전개에 그리 중요한 역할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면 그가 죽고나서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겠지만 그 이야기는 료이치와 아쓰시가 짧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더 이상 관련 이야기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것만 봐도 뭐랄까. 분량을 내기 위해 만든 중간 이야기라고나 할까. 대신 이야기는 좋았다.

그리고 기억술사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이 때 정말 황당했다. "반전"이 성립하려면 그만큼 소설은 독자에게 단서를 적절히 배분하면서 제공했어야 했다. 그러나 전혀 단서를 제공하지 않다가 마지막 부분쯤에 서둘러 단서들을 토해낸다. 거기서부터 황당한 반전이 기다리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은 클라이맥스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그 끝맺음 덕에 소설 전체를 실망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은 1편이다. 하지만 1편만 봤는데도 더이상의 떡밥이 나올 소스가 있나? 싶은데... 다음 편은 왠지 읽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도모아키 변호사가 안나오니까ㅠ 정말 마음에 드는 캐릭터였는데... 작가놈아 왜 죽였냐 썅 ㅠㅠㅠ

[이관 글. 2017-07-25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