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어느 덧 덕후감을 시작하게 된 16년 12월 이래로 1년이 흘렀다.

이렇게 기록을 남기게 되다 보니 간혹 내가 어떤 느낌으로 그 소설을 받아들였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 기록해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17년의 목표로 삼았던 덕후감 Project야말로 내게 있어 글을 쓰는 용기와 이유, 그리고 나의 감수성에 대해 돌아볼 수 있던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본래 덕후감은 스포일러성의 글을 써서 결말까지 다뤄서 완전한 해석을 감행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중간에 생각이 바뀌었다. 즉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하여 좋은 라이트노벨을 알게 해주자는 생각에 스포일러가 없게 작성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또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만화책으로 봤지만 그래도 원작자인 스미노 요루의 작품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또 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를 들었다. 정말 드는 순간 후욱 빨려들어갈 뻔 했다.

내용은 나카노라는 초등학교 여자아이의 성장기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국어시간의 연구주제에 대한 나름의 답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이다. 작품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대강은 주변인물들의 정체가 짐작이 되기는 한다. 사실 수수께끼로 놀라게 하는 류의 소설은 아니다. 뻔하긴 하지만 감동적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교훈을 준다.

이와 비슷한 소설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아닐까 생각되었는데.. 하지만 내 생각에 나미야보다는 이 작품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면 올해 라이트노벨 중 가장 최고의 작품이었다고 말할 자신이 있다. 내가 왠만하면 라노벨류는 추천을 하는 식으로 쓰지는 않는데... 이건 다르다. 정말 명작이다. 장르가 라이트노벨로 나오긴 했어도 대중적인 소설 같은 표지 디자인과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라노벨 하면 "히이익 오타꾸!"하며 경멸(?)하시는 분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스타팅 오버

내가 좋아하는 미아키 스가루의 데뷔작인 [스타팅 오버]이다. 여기서 Starting Over란 John Lennon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조금 딴소리를 하자면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보면 하루키가 얼마나 팝송의 광인지 알게 되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아마도 스가루도 마찬가지로 팝송의 광인 것 같다. 데뷔작에서는 별로 심하지는 않네. 다만 가면 갈수록 작품들에서 팝송을 언급하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빈도가 늘어난다. 어쨌든 내가 팝송을 즐겨 듣는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Starting Over는 내 취향은 아니다.. (나는 역시 뻔하기도 하지만.. 레논하면 Imagine이 좋다. 사실 이유는 있다. 이 노래는 공산주의의 이상향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스가루의 데뷔작이라는 말에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마도, 별 큰 기대를 안 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확신한다는 의미에서, 스가루의 작품 중 이 작품이 매우 우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의 작품을 거꾸로 거슬러 과거의 작품으로 소급해서 읽어나가면서 그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타임루프물을 즐겨쓰는 미아키의 특징에 맞추어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처럼.

이 작품은 타임루프물이다. 대학생이던 주인공이 어느 덧 갑작스레 십 년 전 열살이던 자신으로 돌아가있게 된다는 설정이다. 그것은 자신이 그렇게 되기를 너무도 염원해서 아니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미 도래했던 미래의 상황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되어 기쁘게 된 상황도, 모두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이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면 (예컨대 신) 지독하게 할 필요도 없는 일을 하였다고 주인공은 생각했다. 그는 다시 살았던 대로 그대로 살 것이라고 다짐을 한다. 자신의 도래했었던 그 미래는 자신에게 행복했던 삶이었기에 그는 그렇게 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의 결심은 뜻대로 되지 않기 시작한다.

여러 의미에서 스가루 작품의 특징은 삶의 의미를 어떻게든 찾는 결말을 내지만 보통 그것이 상당히 가볍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여기서 가볍다는 말의 의미는 매우 상식적이고 교훈적인 해피엔딩의 느낌으로 처리한달까. 하지만 이번 작품의 결말은 여기 저기서 독자가 예상을 쉽게 하지 못하기 위해 교모한 장치를 이용한다. 힌트를 주자면 주인공의 독백 그 자체는 진심에서 나오는 말일 수도 있고 아니면 기만적인 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교묘한 장치는 오히려 판단을 내린 주인공에게 공감이 가지 않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도 뭐 상관은 없었다. 좋은 전개로 그걸 잘 꾸며놓았고 여러 번 독자의 뒷통수를 칠만한 결말이었다.

스가루 작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손꼽고 싶다. 결국 스가루는 과거의 작품으로 거꾸로 갈수록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에 알게 된 포인트. 이 작품에서 나온 대사를 뒤틀어 스가루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10년 뒤에 온 작가이군요"

[이관 글. 2018-01-23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