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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이것은 라이트노벨이 아니라 코믹스 판이다. 사실 소설을 살 생각이었는데 택배 온 것을 보니 코믹스 판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코믹스의 장점은 빠르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있으니까. 거의 두 시간도 안 되어 상, 하를 모두 다 읽은 것 같다.
사쿠라라는 여학생은 매우 쾌활하고 밝고 친우관계도 폭넓고 인기가 많다. 그에 비해 주인공 "???"(이름이 안나와줘야 한다. 물론 나는 이 장치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지만 말이다)는 독서가 취미이고 타인과의 교류관계가 아예 없는 자의식 과잉 남학생이다. ???가 병원에서 우연히 공병문고라고 써있는 사쿠라의 비밀일기를 읽게 되면서 둘 사이가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되는 스토리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말은 초반에 나온다. 사쿠라는 췌장병을 앓고 있어 몇 년 후면 죽는다고 한다. 그 사실을 비밀일기를 통해 알게 된 ???는 그녀의 소원대로 이것저것 먹으러다니거나 여행을 가는 이야기가 이 만화의 주 내용이다.
먼저 다 읽고 나서 생각된 것은 그녀가 죽은 방식에 대한 의문이다. 왜 이런 장치가 필요했을까 의아했던 것. 단지 죽음의 덧없음, 죽음의 무의미함을 보여주려 했던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쿠라 사후의 이야기는 밝고 두근두근한 미래가 기다릴 것 같은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그래서 더더욱 사쿠라의 죽음에 대한 이 이야기의 장치에 대해서는 여전히 공감이 가지 않는다. 왜 그녀는 그렇게 죽었어야 했는가?
일명 일본소설이 보통 억지스러운 감동을 키우려는 그런 B급 작품들이 많다. 이것도 그런 작품들과 비슷하다. 예컨대 주인공 ???가 타인과 떨어져 살면서 그것이 자신의 의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타인과 가까이 하고 싶다"는 무의식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서사는 좀 흔한 편이 아닐까.
물론 내가 비유한 B급작품들과 비교하면 가장 큰 여운이 남는 작품으로 손꼽고 싶다. 왜냐하면 그녀의 죽음은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랑을 모르던 시절 사랑에 대해 알아가고 오해하고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배워가는 과정을 보면, 작가는 연애에 대해 깊이있는 이해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건 그녀가 췌장병 시한부 환자라는 설정이 더더욱 그런 심리적 압박감을 독자에게 끌어당겨주는 것 같다.
그리고 네가 없는 9월이 온다
케이타, 다이키, 슌, 리노, 미호 이 다섯 명은 매우 돈독한 친구사이이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카라스쵸 산에서 실족에 의해 케이타가 사망했다. 무엇때문에 그가 카라스쵸 산으로 혼자 갔던 것인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슬픈 장례식을 치룬 후 어느날 미호에게 케이타와 똑같이 생겼지만 다른 '케이'가 나타난다.
자신은 케이타의 유령이 아니라 도플갱어라고 하며 "케이타와 다른 사람"이라고 전했다. 단지 케이타가 죽으면 도플갱어는 사라진다는 설정이지만 케이타가 마지막으로 남긴 소원이 있기 때문에 자신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하는 것. 다만 매우 친했던 사이에서만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만져지지도 않는, 사실 거의 유령과 같다.
케이가 케이타의 마지막 소원이라며 친구들을 데리고 케이타가 죽었던 카라스쵸 산으로 가자는 케이, 왜 그래야 하는지 그리고 케이타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케이는 말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의구심이 깊었던 리노, 그럼에도 카라스쵸 산에 가겠다고 고집부리는 미호, 그리고 어떻든 간에 무조건 간다는 미호 때문에 리노, 다이키, 슌도 따르기로 하였다. 그렇게 네 사람은 카라스쵸 산으로 여정을 떠나게 된다.
이 소설은 뭐랄까. 일본드라마를 가끔 보다보면 "착한 녀석" 같은 게 있지 않은가? 나는 사실 아주 어둡고 그래! 라고 밝혀지더라도 사실 엄청 착한 놈이란 그런 거. 케이타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게다가 나머지 네 친구 놈들도 다들 케이타에게 하나쯤 죄책감을 갖는 사건들을 품고 있다. 그런데 읽다보니 그 죄책감을 갖게 되는 사건이란겤ㅋㅋㅋㅋ 정말 어이없었다. 그걸 알고 나서 "얘들 왜 이리 착한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추악하다느니 하는 게 정말 별거 아님...
그리고 마지막 반전을 꾸민 건 의외의 놀라움이긴 했다. 단지 놀라움을 느끼고나서 잘 생각해보면 이미 설정해둔 도플갱어 설정과 모순되는 것 아닌가 했다. 이 작가는 도플갱어를 너무 자의적으로 꾸미고 있다는 느낌. 소설 전개에는 편했겠지만 내 느낌으로는 리스크가 너무 큰 억지 설정이었다는 생각. 그래도 놀랍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따뜻해지면서 훈훈한 그런 소설이다. 다만 작가의 문체가 너무 미지근해서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우울한 빌런즈 4권
어느 권부터였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적어도 내 기억으로 2권까지는 첫 페이지에 칼라삽화를 3~4장 정도 깔아두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4권을 사보니 그게 없어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작가의 에로한 에피소드 컷 만화... 캐릭터를 성적으로 농락하는 설정들이라 대단히 불편했고 제발 좀 사라졌으면 했는데.. 몇몇 독자들이 따져서 그랬나. 사라졌다. 아무래도 우울한 빌런즈 시리즈가 가면 갈수록 뭔가 실망스럽게 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 일단 뭐 요새 읽을 게 너무 없어서 다시 사보았긴 했다.
이번 편은 무라세 이치로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다만 약간 의아한 점이 있다. 그렇게 오비나타 츠키요를 지키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왔는데.. 이번 편에는 이치로가 스스로 자신의 사촌인 하나요미를 지킨다는 목적만이 자기 삶의 모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여태까지 함께 했던 팀을 배신한다. 나는 이 점이 뜬금이 없었긴 하다. 츠키요를 여태껏 위기에서 구출해오던 행동들에 무의미함을 편리하게 덧씌웠다고 할까? 이치로의 삶의 목적이 하나요미의 구원에 있었다면 왜 츠키요를 지켜왔는가 하는 점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게다가 나중에 츠키요를 죽이려고까지 하여 캐릭터의 연속성과 맥락들이 모조리 붕괴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고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무라세 이치로였는데.. 이번 편에서 독자들이 이치로에 대해 생각해왔던 연속성을 상당수 붕괴시켰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요미에게 빙의된 도깨비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다. 그 능력이 너무 반칙이다. 게다가 또 하나로 그 악인인 도깨비가 어떻게 사람의 감정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인데.. 도대체 워스트 엔드 시리즈의 악역들은 어떤 정체를 가지고 있기에 그렇다는 걸까. 작가가 그렇게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아서 현재로써는 뭐라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아참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워스트 엔드 시리즈의 "일러스트레이터"가 소속된 또 다른 기관이 등장하는데 이는 "선생님"을 적대그룹으로 해왔던 지금까지의 맥락들과 어떻게 버무려지게 되는가가 호기심이 든다. 물론 두 조직은 어차피 츠키요 일행의 "적"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겠으나 어떤 긴장감을 보탤지 모를 일. 그런데 내가 이 두 조직에 의한 새로운 긴장관계를 기대한 건 여태까지 무라세 이치로와 연대해온 코사메의 존재 때문이다. 코사메는 '선생님' 계열인데도 셰리의 책을 돌려받아야 하는 임무 중에도 불구하고 이치로와 연대했다는 점에서 '선생님' 조직은 새로 등장한 POM 기관에 적대하기 때문에 잠깐의 연대를 하자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하지만.. 이 권의 마지막을 보면 역시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긴 하다. 모처럼 새 조직의 등장에 의한 새로운 긴장감을 조성할 것이란 기대감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작가는 그런 걸 풀만한 능력이 안되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지쳤는지도 모르겠다. 다음편이 마지막이라고 했으니 무리도 아니겠다. 보통 인기작품이 십여 권쯤은 넘어가는데 6권에서 종결된다니 반응이 영 시원치 않나보네.. 그래도 끝까지 내줘서 다행이다.
[이관 글. 2017-11-19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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