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번 11월동안은 슈타인즈 게이트 TV 애니메이션판을 모두 본 후 극장판 [부하영역의 데자뷰]까지 클리어 했다. (행복한 한 달이었다....) 사실 TV판은 게임 스토리와 그다지 차이가 없기 때문에 오리지널 스토리로 만들어진 [부하영역의 데자뷰]를 언급하는 편이 낫겠다. 아래는 예고편이다. 스토리가 본편과 연속되기 때문에 게임을 했든 애니를 봤든 부하영역의 데자뷰를 반드시 봐(줘)야 할 것이다.

게임에서는 크리스를 구하고 과거의 자신이 죽은 것으로 보이는 크리스를 관측하는 것, 그리고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원래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까지만 나오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그래서 이후의 이야기는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TV 아니메 판에서는 약간 '다루'고 있다. (슈파해카 다...다루...?!)

슈타인즈 게이트 제로에서 크리스가 죽은 장소에서 히야조는 오카린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물리학자가 아니라서 상대성 이론을 상세하게 이해하고 있지는 않지만... 시간과 공간이 함께 존재한다면, 어째서 시간은 공간처럼 쉽게 이동하지 못하는 걸까? 지금 우리는, 공간적으로는 "크리스의 죽음"과 같은 축 위에 있어. 그런데 시간축이 약간 다르다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크리스의 죽음에) 손을 뻗을 수 없어. [괄호는 인용자]

내가 왜 크리스에 대해 오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걸까 싶었는데. 생각해보면 이런 것 같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 속에서 거스르려 하는 욕망"이란 느낌이랄까. 어쨌든 게임에서는 살릴 수 있는 슈타인즈 게이트를 찾아내지만 말이다.

다들 공감을 할지는 모르겠는데..  비슷한 느낌으로는 [천녀유혼]의 섭소천(왕조현 역), [서유기 시리즈]의 백정정, 자하대사, 그리고 [이터널 선샤인]의 클레멘타인 등이다.  물론 이 작품과 [슈타인즈 게이트]의 크리스와 오카린이 다른 이유는 사랑이 이루어질 수가 없는 운명들을 하늘의 뜻으로서 받아들이는 한 인간의 비극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小를 잃고 大를 얻는다는 지고지순한 이야기이다) 물론 [제로]에서 오카린은 크리스의 죽음을 받아들이려 한다. 비참한 미래를 겪고나서야 일어날 수 있게 되지만 말이다. 사실 현대적인 감각을 갖는 주체 입장에서 보면 오카린의 서사가 가장 매력적이다. 운명을 거스르려 하는 인간이라니. 기껏 옛 홍콩 영화들은 저렇듯 중세적인 사상을 대표하는 것 같다. 왕이 사약을 하사하면 부당함이고 뭐고 들이켜야 하는 것이고 그게 하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는 주체인 거다.

아무튼 딴 소리를 해버렸는데.. 결론적으로 크리스에 대한 내 감수성은 운명에 대한 내 판타지가 조금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캐릭터인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의 아케미 호무라도 똑같다! TV판에서는 마도카가 신 존재가 되어야 할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는 주체성을 나타냈지만, 사실 호무라의 그때까지의 노력들은 마도카를 구출하는 것이었기에 그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는 것이 또 다른 비극을 불러온 것이고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했다. 하지만 역시 근대적 주체는 그 운명을 거스르는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 반역의 이야기]는 정말 압도적인 결론을 도출해주었다. 이런 걸 보면 캐릭터를 좋아한다는 감정이란 무엇일까? 사랑이란 감정도 분명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언제 깊이 고민해봐야겠다.

어라? 영화 얘기를 안했네. 영화는 크리스가 살아남은 '슈타인즈 게이트'로 이동된 세계선에서 1년이 지났는데, 관측자인 오카린이 현재의 세계선에 대한 혼란 때문인지 결국 오카린이 '없는 것으로 설정된' 새로운 세계선이 구축되었다. 아직 오카린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던 크리스가 오카린을 다시 원래의 세계선으로 되돌리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어쨌든 이런 이야기 역시 어떤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 이런 설정들이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무엇인지 왠지 알고 싶어졌다. 나는 나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취향은 분명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맥락들이 있을 것이고 어떤 캐릭터가 가장 인기가 있는 이유들은 우리 자신 스스로가 그 취향을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한 이유는 아닐 것이라는 재미있는 생각이 든다.

[이관 글. 2017-12-06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