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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감

언어의 정원 사라지는 매개자

현정경 2021. 5. 23. 12:58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은 대게 사랑, 이별, 그리움 이런 것들이 대부분의 스토리인 것 같다. 또한 이와 함께 눈을 매혹시킬만큼 리얼한 배경화면과 빛의 효과가 가장 돋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내용이 보통 단순하지만 눈을 매혹하는 '화면빨'이 메꾸어주기 때문에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될 것 같다. 나는 사실 신카이의 작품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눈만을 현혹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보고나서 약간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이 애니의 내용은 무척 단순하다. 신카이답게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서로 그리움으로 남는다. 여태까지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이 주제 때문에 이 작품을 보고 조금 생각난게 있었다. 인생의 중요한 계기점으로써 서로 매개자가 되는, 어찌보면 슬라보예 지젝이 말한 "사라지는 매개자" 같은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신카이가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언어의 정원 中

만약 이것이 맞다면 서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우리의 희망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뭐랄까. 신카이 작품을 계속 봐 온 팬이라면 더 이상 이루어지고 말고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할 것 같다. 내 생각은 이런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계기였던 상대방이지만 사랑할 수는 없는 것. 우리들도 보통 그런 경우가 있지 않은가? 그리운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다른 계기가 없다면 이어질 수 없는 경우이다.

만약 연락을 한다면 그것은 상대에게 당혹감을 줄 수도 있다. 오히려 그들이 그 때 그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다시 일어서게 만든 그 당시의 "나"의 상황이다. 그 이후 특별한 다른 계기가 없이 누군가 연락을 하는 일이 생긴다면. 당시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는 점, 그래서 당혹감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햇다.

상황이 다른 상황에서 별다른 계기가 없이 사랑은 이루어질까? 보통 영화를 보더라도 특별한 계기를 통해 다시 사랑하게 되는 그런 스토리가 많지 않나. 이는 소설 속 이야기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현실에서도 그런 계기가 우리는 필요하다는 점을 많이 느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건 둘이 이루어지고 말고가 아니라 우리는 "성장한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주인공들은 그 당시의 상황과 심리, 그리고 고통들이 재생될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때의 내가 아닌 이상 그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이런게 바로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의 정체가 아닐까 한다. 사랑햇지만 다시는 그러지 못한다는 것.

[이관 글. 2014-03-19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