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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의 살인

표지의 인물이 주인공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우라조메 덴마라는 녀석이다. 말 그대로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긴 했는데 어딘가가 고장난 놈이다. 바로 지독한 아니메/미연시 덕후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자신의 덕질 아이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사건의뢰를 수락하기도 한다.

물론 별로 기대하지 않고 본 것이긴 하지만, 우라조메 덴마라는 캐릭터성이 뭔가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작가가 아마도 머리가 엄청나게 좋고 그러나 지독한 오타쿠인 고교생 탐정 캐릭터를 만들자!는 의지를 너무 앞세운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작위적으로 느낀 부분은 바로 머리가 엄청 좋은 고교생 녀석이 너무 오타쿠스러움을 두드러지게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런 캐릭터성에 너무 포인트를 주다보니 오히려 주인공이 추리하고 고뇌하는 과정을 너무 빈약하게 처리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탐정의 고뇌와 실수, 그리고 깨우침 등에 대한 네러티브는 보통 추리소설은 다 있는 거 아닌가? 이 소설의 탐정 덴마에게는 그런 것이 거의 없다. 처음부터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느낌으로 김을 새게 만든다. 말 그대로 [빙과]의 호타로처럼 뭐든지 초반부터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해결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결국 끝까지 읽지 못하고 책을 덮은 소설이다.

 

3일간의 행복

나는 미아키 스가루의 작품은 대체로 좋아하는 편이다. 라이트노벨답지 않은 필체랄까.

일단 이 소설은 말 그대로 남은 시간을 팔 수 있는 가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를 감시하는 역할인 여 주인공. 소재 자체는 참신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보다, 한때 자신이 "큰 인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던 사람이라면 대강 공감할만한 부분이 많다. 주인공은 자신이 정말 큰 인물이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결국 추락하는 일만 남은 그런 인생을 살게 된다. 그래서 주인공은 자신의 남은 시간을 모두 팔고 30일이었나.. 그런 시간만 남긴 채 남은 인생을 팔아치운다. 그런데 왜 책 제목이 "3일간"일까. 결국 감시원과 사랑을 하게 될 마지막 3일을 의미한다.

이 지점이 김빠지는 부분이다. 즉 주인공이 의외로 너무 많은 시간을 남기고 시간을 팔았다는 말. 이 점이 소설의 전개에서 지루해지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스가루의 문체를 생각하면 전개를 빠르게 하게 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죽음에 다가가면서 행복에 이르는 "역설적인" 로맨스물이라고 생각이 든다.

 

부분과 전체

모처럼 읽은 과학 고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부분.

하이젠베르크가 대학 입학을 준비하던 시절에 조머펠트 교수를 찾아갔을 때, 그와 대화하는 내용이 있다. 하이젠베르크는 조머펠트 교수에게 자신이 실험보다 이론물리학에 관심이 많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조머펠트교수는 칸트 주석가인 실러의 말을 언급한다.

"왕이 공사에 착수하면 일꾼들에게 할 일이 생긴다."

즉 조머펠트는 자잘하고 시시콜콜한 실험과 현상의 발견을 통해 이론이 완성되어 간다는 걸 하이젠베르크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 내 밑에서 실험이나 햇! 뭐 이런 소리는 아닐 거잖아.ㅋㅋ

당시에 상대성이론은 거의 완성되었다고 보았던 시절이었으나 그러면서도, 당시에는 아직 실험증거가 에딩턴의 중력렌즈 효과 외에는 없던 시절이었다. 어찌보면 그 시점에서 조머펠트의 말은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다. 그래서 자잘하고 시시콜콜한 것이라도 실험되고 입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마르크스경제학에 대한 나의 생각과도 일치되는 부분이라 꽤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한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하이젠베르크가 아인슈타인을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눌 때 아인슈타인은 말한다. "이론이 무엇을 관측하는 지 결정한다." 어찌보면 상대성이론이 중력렌즈효과를 관측하려는 동기를 만들었다는 점은 분명하니 이 말도 일리가 있고, 사실 과학의 진실일지도 모른다. 이런 말은 과학이 관측가능한 것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전혀 손실을 주지는 않기도 하다.

다른 한편, 나는 하이젠베르크가 독일 나치정권 하에서 핵무기를 만들려 했던 이야기들이 너무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변명을 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고, 특히 핵무기 개발 진행 중간에 닐스 보어와 핵무기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던 부분이 너무 뭉뚱하게 표현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 부분을 읽다가 관련 자료들을 조금 뒤져보기도 했다. 둘 간에는 말이 서로 다르게 진술되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미스테리한 부분인 듯 하다. 아참. 사회과학도는 역시 어쩔 수 없다. 과학고전을 읽다가 결국 인간에 눈을 돌리고 말다니.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박노자를 생각했다. 다만 박노자는 한국에 뿌리깊은 "군대문화"의 일반적 폭력성을 말해줄 뿐이고, 이 책은 그 군대문화와 한국의 특수한 가부장제 문화가 낳은 폭력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 대한 일종의 반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글을 쓴 오찬호 씨의 필체는 매우 큰 감정이 들어간 것 같다. 그것은 자신이 말했듯 자신에 대한 일종의 분노와 경멸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비슷한 감정에 휩싸였기도 하니까.

물론 이를 읽은 나 역시 부끄러웠고 고개를 들기 어려웠다. 한남충으로 살면서 이러저러한 것들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며 살았던 세계가 갑자기 불합리한 것이었다고 외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부족하다는 사실을 발설하는 행위 자체도 분명 이득을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난 부족하다. 그러니 나는 좀 더 노력할게. 다만 지금은 실수를 할지 몰라...라는 식의 멍석. 나는 그런 말 역시 쉽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 번쯤은 생각해야겠다. 사람을 가까이 하고 싶은 것과 상처를 낼 것을 두려워 해야 한다는 말은 분명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좋아한다. 특히 갈릴레오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추리소설은 아니다. 감동적인 드라마 정도랄까.

그 결론은 거의 예상이 가능한 수준이다.  그리고 편지가 시간을 초월하여 교환된다는 것은 조금 유치한 소재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마치 결말이 뻔한 드라마를 계속 보는 것처럼, 그런 느낌으로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빨려들게 만든다. 각기 상황이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로 초점을 계속 이동시키면서도 상당수 복선이 겹치는 부분이 있다보니 거의 지루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쁜 페미니스트

무거운 페미니즘 책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렇진 않다. 저자 록산 게이는 정말 유쾌하게 글을 쓰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사생활과 버릇 등을 매우 자연스럽게 꺼내는 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은 미국의 문화비평에 가까운 글들이다. 그래서 미국 문화를 전혀 모르는 나는 항상 "??" 물음표를 짓게 되어 집중이 잘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육군 예비역 병장으로 제대한 한남이 한국의 한남 문화에 대해 썼으니 당연히 여러 지점에서 탄성을 지르며 봤는데. 이건 도무지 집중이 안 되었던 것 같다. 다만 그 메세지는 분명 여러 지점에서 한국에 빗대어 보면 유사한 부분이 많다. 노래의 가사, 광고의 메세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내가 미디어에 취약한 삶을 살다보니 그런가.

무엇보다 말하고 싶은 건 제목이다. 사실 나는 록산 게이의 진짜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이 제목에 다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의미는 "악함"이 아니라 어떤 것으로 규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나는 생각되었다. 아마도 페미니스트에 반감을 갖는 무리들에게 있어서 어떤 편견이 자리잡았을 것이고 미국 역시 그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한 도덕적 규범을 강요하여 페미니스트가 되려면 자격기준이 매우 엄격해!라고 하는 말들을 비웃기 위함이다. BAD는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고 한다. 록산 게이는 그쪽을 더 염두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 지점이 꽤 흥미로웠던 지점이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대중적인 표제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이 대체로 수긍하는 지도 궁금했던 점이었다.

 

마션

그냥 아무 생각없이 오락을 즐긴다는 생각으로 읽었다. 무척이나 재밌게 읽었지만 의미를 얻기는 어려운 오락거리 장르소설이라고 보면 된다. 글을 정말 재미나게 쓰고, 1인칭이다보니 주인공의 썰을 보다보면 아예 푸욱 빠지게 되었던 것 같다. 영화는 아직도 못 보고 있구나.

 

소심한 복수 사무소

읽지 마라. 한국 라노벨 정말 읽기 싫어지게 된 계기였기도 하다.

 

음의 방정식

그냥 비추한다. 주인공이 탐정이다. 하지만 아무런 캐릭터성도 없는 일본 아재이다. 그리고 추리 과정 자체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조사만 주구장창 한다. 그리고 범인이 너무 쉽게 자백(?)을 할 때 정말 어이가 없어서 바로 책을 덮었었다.

 

청춘 돼지는 바니걸 선배의 꿈을 꾸지 않는다

나는 이런 소재가 왜 하필 라이트노벨에서 미연시 같이 나왔는지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여 주인공은 투명인간이다. 이것은 일종의 형용사로 말한 것이다. 여 주인공은 너무도 유명한 탤런트. 그러나 그 일상에서 그 존재가 잊혀지는 존재이다. 누구도 볼 수 없다는 것.

어쨌든 꽤 판타지한 소재라 꽤 흥미롭게 본 기억이 난다. 다만 간간히 나오는 짤이 좀 야하고 성적대상화가 많이 나와서 불편했다. 이렇게 좋은 소재와 이야기를 이딴 식으로 방해하다니 하는 생각.

 

사쿠라코 씨의 발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

솔직히... 그냥 표지의 사쿠라코 씨가 너무 예뻐서 샀다. 하지만 막상 사보니 사쿠라코さん은 그냥 "내청코"에 나오는 히라츠카 시즈카 선생 같은 성격을 지녔다. 단지 세상 물정에는 관심이 없고 뼈에 대한 박식한 지식을 가졌다. 그런데 나는 추리물에서 특히 미리 답을 초반부터 알아냈다는 듯이 전개되는 방식이 너무 싫다. 사쿠라코 씨 시리즈가 그런 느낌이 들었기도 해서 재미는 없었다. 다만 캐릭터성은 너무 분명해서 (결론)사쿠라코 짜응은 귀엽다...

 

우울한 빌런즈

판타지. 그중에서도 "이능배틀물"은 별로 적극적으로 사서 읽는 편은 아닌데... 이것은 표지를 보고 골랐다. (아아 역시 이 놈의 눈깔...) 하지만 의외로 재밌게 봤던 작품이다. 액션이 꽤 긴장감있고 속도감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다만 친구의 여동생과 이상한 썸씽(?)도 볼만한 부분이다. 그리고 (라노벨에 산적한) 성적대상화는 거의 없어서 불편함 없이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왠지 표지에서부터 느껴지는 포스가.. 작품 전체의 분위기가 무거울 것으로 예상했었지만 주인공이랑 주변인들이 워낙 유쾌하고 코믹스러워서 재미나게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고문서를 취급하는 가게 사장이 "고서와 관련한" 사건을 가지고 추리를 하여 해결하는 일상 추리물이다. 뭐 그렇게 재미나게 읽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이거 읽고 드는 생각이..  중고책이 막 희소성이 넘쳐서 몇 십만, 몇 백만이라고 하는데 ㄷㄷㄷ 정말 현실에서도 그러는 건가.. 우리나라 중고서적 온라인 가면 몇 십년 전 책이 비싸봐야 오천 원 막 이러자나..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전쟁도 있었으니 전통적인 오래된 출판사가 없어서려나...

어쨌든 여 주인공이 너무 세상 물정을 모른다. 다만 그의 밑에서 일하는 남 주인공이 착해서 다행이었지..  게다가 유도로 대학을 졸업한 탄탄한 녀석. 그러나 1권만 읽어서 모르겠으나 특별한 액션씬은 나오지는 않는다. 아니.. 유도가 특기인 남 주인공이 나왔으면 뭔가 활약을 하도록 해야 하지 않는가싶다.

 

아메쿠 타카오의 추리 카르테

라이트노벨에서 보기 힘든 "의학 소설"이다. 나는 이걸 보고 꽤 재밌던 부분이 "진단의"라고나 할까. 아니 모든 의사는 진단이라는 것을 하는데.. 여기 주인공들이 소속된 과는 이름하여 "총괄진단부". 즉 여러가지 이유로 진단이 곤란한 환자들을 이곳에서 담당한다고 한다. 환자가 우긴다든가, 상대가 곤란하든가 아니면 말 그대로 원인을 확인하기 어렵다든가 여러 이유로 이 총괄진단과를 병원 내에서 의사들이 이용한다고 한다.

작가가 의대 졸업생이고 현 의사이기도 하다. 아마도 내과 쪽이 아닐까 싶은데, 보통 의학 드라마를 보면 다 외과 쪽이고 긴박감 넘치고 스릴있는 내용이 우리를 기다리지만 "내과"는 생각만 해도 여어어엉~ 따분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것을 "추리물"의 탈을 쓰고 소설로 낸 것이다. 추리의 과정은 사건의 해결이라기보다 "총괄진단"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역시 그 내용이 너무도 전문적이다보니 마치 마법사가 "아하하. 그것은 말이지. 답은 이거라네!"하면서 주문을 외워 나에게 손바닥 위에서 팟! 하고 답을 "탄생"시키는 느낌이랄까. 문제도, 원인에 대한 내용도 의학적인 것이다보니 아하! 그렇구나! 하는 맛이 떨어진다는 소리이다.

그런데.. 여 주인공 타카오가 너무 귀엽다. 머리도 엄청 좋고 진단도 잘한다. 부하직원인 남 주인공을 착취하는 시츄에이션은 나름 짜릿한 기분(응?).

따지고보면 나 역시 시스템 유지보수를 하다보니 말 그대로 "진단"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데, 단지 인간이 아니라서 다행이긴 하다만(진상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작가도 참 많이 당한 듯) 아무튼 업무를 하면서 느꼈던 여러 상황들이 많이 공감이 가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내과"의 이야기니(남 주인공은 외과 쪽에 있다가 내과로 가기를 소망해서 진단 쪽으로 온거라고 했으니까 내과 맞겠지???) 긴박감 넘치고 스릴 넘치는 그런 건 없다. 단지 타카오라는 캐릭터는 쾌활하고 진단학에 굉장히 열정적인 여성이고 굉장히 좋아질만한 캐릭터다.

 

사라져라. 군청

주인공 나나쿠사는 어느날 눈을 떠보니 섬에서 "존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갑자기 이곳에 와서 적응하고 결국 살게 된 것이기도 하다.

뭐 그런 이야기이다. 처음부터 나는 이것은 의미가 없는 대부분의 판타지 세계관과 다르게, 현실에 대한 일종의 은유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정도 자아실현과 관련된 은유이기도 했다. 그것을 인지하게 된 것은 바로 어느날 나나쿠사의 앞에 등장한 마나베(표지의 인물이다) 대문이다.

나나쿠사는 마나베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언급한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나쿠사는 마나베를 좋아한다. 하지만 좋아한다는 것이 사귄다던가 더 친밀한 관계를 갖는다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으니까.

마나베는 정의롭고 뭐든지 직설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그런 성향이 나나쿠사를 힘들게 하고 괴롭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밝혀지지만 사실 어찌보면 나나쿠사를 동경했다는 의미로 나는 받아들였다.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면서도 이미 그렇게 존재하는 마나베를 볼 때, 그것은 동경의 감정이 일게 하면서도 자신에 대한 경멸이 마나베에 투영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 나는 이 소설을 덮고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인간관계에 대한 이런 문학적인 은유를 라이트노벨에서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만큼 두 인물의 관계의 긴장감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뒤로 나는 코노 유타카의 작품들을 천천히 볼 계획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하나 주문했다)

 

여고생 점장의 편의점은 즐겁지 않아

일단 초반의 이야기인데... 남 주인공 난리 미나토가  편의점 점주이자 그의 짝사랑인 코노모가 운영하는 편의점에 들어가기 위해 여장을 하는 과정이 좀 무리하게 전개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 물론 그 편의점에는 "여성 모집"이라고 했으니 필요조건에 대해서는 납득이 된다. 그런데 미나토가 여장을 하고 편의점에 면접을 보러 간 과정을 "우연"으로 처리한 것은 작가의 상상력 부족이 문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게다가 남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코노모의 반응도 그다지 이해는 안 갔다. 어쨌든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채식주의자

이 책에 대해서는 다들 많은 말들을 했으니 내가 무슨 말을 보탤까.. 읽으면서도 정말 가슴이 답답해진 작품이기도 하다. 한 여성이 어떤 이유인지도 모르게 모든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게 되는, 그리고 그런 그녀에 대해 남편, 형부, 동생 등 친족들 간에 이루어질 법한 일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그랬다.

예컨대 내가 갑작스러운 상처로 인해 내가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대하는 태도, 그리고 삶을 마주하는 자세가 완전히 달라졌다면 나의 가족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채식주의자"의 영혜가 왜 그렇게 채식을 하기 시작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명시적으로 나온 것이 없다.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은데도 나 역시 그런 이유를 좆기까지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유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이다. 영혜의 주변인들은 영혜가 왜 그러는 지에 대해 이유를 밝히려 들고 그것이 영혜 자신에게 손해라며 설득을 하려고 한다. 나는 진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변화에 대해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던 것 같다.

마치 볼록 나온 여드름을 눌러서 없애는 식으로 반응하는 우리의 일상적인 가족, 친정, 회사조직 등의 전형적인 반응이 여기에 들어갔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우리는 타자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신의 본질에 아무 손실을 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즉. 너는 너고, 나는 나일 뿐이다. 물론 그것은 "채식주의자"의 전개와 유사하게 고통스럽고 괴로울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훈련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다른 책들도 많지만.. 작년에 읽었던 책은 딱. 이 정도만 정리하고 끝을 내야겠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관 글. 2017-01-04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