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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코가 카제하야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작가가 납득되는 계기를 설명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걸 납득시키는 장치들에 대해서 우선 생각해보자. 보통 그것은 극적상황의 동지애라든가, 고통 속에서의 구원이란 방식이 쓰인다. 캐릭터의 성장배경의 차이를 결합시키는 것도 있다. 예를들어 재벌2세와 서민의 비대칭을 결합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남조선 드라마 [파리의 연인]같은 것 말이다. 물론 사와코는 "사다코"라고 불리며 오해에 의한 왕따를 당하고 카제하야가 이를 구원한 것이지만 당시 사와코는 이를 '동경'으로 생각한다.  만약 이것이 사랑을 동경으로 오해한 것이라면 1화에서 방학이 시작한 날 기다려준 카제하야에게 표현한 "존경하는 마음"은 무의미할 것이다.

작품에서 사와코가 분명한 계기를 보여주는 것 '같은' 장면은 체육대회를 위한 자율연습 때(8화) 카제하야가 축구를 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인데, 이는 축구하는 모습을 보고 반했다기보다는 카제하야의 또 다른 모습을 보면서 좋아한다는 것을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것이 계기라고 한다면 이 작품은 스포츠만화가 되어버림으로 나는 이 해석에 반댈세

그렇다면 이 작품은 결국 사랑의 정확한 계기를 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기보다는 조금씩 차분하게 사랑의 감정을 쌓아간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이것은 순정만화의 대표적인 패턴이긴 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다른 순정만화와 같이 달달한 맛을 코믹하게 보여주는 순정만화의 구성이 아니다. 그렇다면 작가는 사랑의 극적인 발전방식을 버리고 차분하게 흐름을 높여가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무엇에 초점을 맞추려 했던 것일까? 즉 극적방식을 포기했다면 무엇을 선택한 것일까? 나는 그것을 사와코의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사와코는 매우 어둡고 침침한 분위기를 외형적으로 자아내지만 실은 매우 따뜻하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충분히 많은 사람이다. 이런 장점들을 볼 수 있었던 사람이 바로 카제하야였고, 카제하야는 어둡고 침침한 사람이 아닌 밝고 따뜻한 사와코를 처음으로 대면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카제하야는 사와코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런 점에서 사와코를 대한 태도는 (사와코의 오해처럼) '차별없이 공평한' 태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그 마음이 닿을 수 없었던 것은 사와코는 자신을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차였다고 착각하던 상황에서 사와코에게 아야네는 이렇게 말한다. "없는 차이 만들지 마" 문제는 사와코 자신에게 있던 것이고 카제하야에 대한 애증과 카제하야에 대한 동경심 간의 모순을 극복해가는 바로 그런 과정이 '성장'의 키워드겠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극적인 전개를 통해 사랑의 계기와 왜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분명하게 알려주는 방식을 포기하고 사와코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카제하야를 사랑하는 마음을 알아가도록 하는 구조이다. 이런 구조가 바로 이 작품의 묘미가 되겟다.

따라서 이 작품의 제목인 [너에게 닿기를]은 실은 사와코의 마음이 아니라 카제하야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에서는 대부분 "닿아라"라는 메세지는 사와코에게서 나오긴 하지만 실은 이 작품의 구조상 사와코가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카제하야의 마음이 닿을 수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도록 하는 인물들이 바로 쿠루미와 미우라겠다. 쿠루미는 착합니다! 미우라의 경우는 주관적으로는 악의는 없지만 객관적으로는 진짜 나쁜놈이다. 

그래서 너무너무 아쉬운 것은 "닿아라"라는 메세지가 바로 카제하야여야 했다는 것이다. 그랬다면 좀 더 풋풋할 것인데.. 물론 내가 카제하야를 좋아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라능  

[이관 글. 2013-08-19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