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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아렌트가 아이히만 재판에 잡지 <뉴요커> 특파원 자격으로 가 "악의 평범성"을 주장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유럽 영화를 잘 보는 편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꽤 잘 만든 수작이었다. "사유하지 않는" 평범함이 악이 된다는 그녀의 '악의 평범성'과 빗대어, 종전 후 아렌트가 스승 하이데거와 만나 대화하는 장면은 무척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악의 평범성은 곧 사유하지 않는 것이 곧 인간 개인이 악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런데 사유하는 존재인 현존재의 존재를 설파했던 하이데거의 경우 나치에게 협력했다. 그는 그것에 대해 아렌트에게 듣고 넘겨 짚으며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렌트는 어깨를 잡고 다시 강조한다. "당신을 믿어보려고 저는 여기에 온 거예요." 아렌트가 하이데거의 전범재판에서 증인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개운하지 않은 기분이다. 하이데거는 무엇을 놓친 것일까.
그러고 보니 영화를 본 후 의도치 않게 예전에 읽으려다 말았던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읽고 싶어졌다. 하인리히와 아렌트가 무엇보다 그 사유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다는 그 사유가 정말로 그만한 가치가 있었던 걸까하는 의문 때문이지만 어차피 읽지도 못할 것이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하이데거를 위해 증언을 한 사실을 일종의 불륜관계 때문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사람의 마음이 100%가 어딨겠나. 여러 마음이 복잡하게 얽혔을 거다.
공산주의자인 하인리히의 말이 가슴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역사를 심판할 수 없으니 개인을 심판한다"며 아이히만 재판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았다.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밀러 교수가 이에 대해 그럼에도 그를 재판에 세워야 한다고 맞서는데, 사실 하인리히의 말이 일견 동의하는 부분도 있으나 그렇다고 어쩌라는 지에 대해서는 답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하인리히가 말하는 역사런 건 우리 두뇌가 만든 개념일 뿐 허구적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사과를 깎을 수는 있어도 우리는 '과일'을 깎을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결국 우리에게 전두환이라는 사람도 그렇다. 사람들은 5.18 민중항쟁에서 시민들을 향해 전두환이 발포명령을 내렸는지에 관심이 매우 많다. 이것이 현재로서 기정 사실화된 상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인간에 대한 회의감은 더더욱 깊어지기도 한다. 바로 그 명령을 꺼리낌없이 수행하며 곤봉으로 무차별하게 시민의 머리를 으깨버린 특전사 대원들을 생각해보면 아주 역겨워진다. 5.18에서 본래 중요한 문제는 폭력적인 권력이 하부 공무원들에게까지 작동할 수 있었던 매커니즘일 것이다. 즉 발포명령과 진압명령을 꺼리낌 없이 수행했을 사람들.. 현재는 특전사를 제대하고 직장도 은퇴를 해서 일상을 살며 가족을 꾸리고 아버지가 되고 손자의 할아버지가 되고 우리들의 이웃이 되어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누는 푸근한 인상의 할아버지일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역겹다는 것이다. 이런 사유없음에서 일어난 과거사를 제대로 정리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우리 사회가 국가체계가 작동해온 구조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하인리히가 바란 "역사를 심판하는 것"의 본질일 것이다.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도 꽤 훌륭하며 유럽영화적인 분위기, 미국인들이 망명자를 보는 시각 등이 잘 표현된 느낌이다. 게다가 사실 이름만 알던 아렌트의 남편 하인리히 블뤼허가 공산주의자였던 것, 역사를 심판하지 못해 개인을 세웠다며 아이히만 재판을 비판하는 모습 등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기사로 뵤내고나서 시온주의자를 포함한 유대인 동료들에게 갖은 경멸과 비난에 처하게 되는 과정을 보이는데 무척 가슴아픈 과정이었다는 걸 알았다. 왜 그녀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나치에 협력했다는 걸 악의 평범성을 말하는 기사에 써야했을까. 우대인 친구들이 적대하게 될텐데 말이다.
"너는 유대인을 사랑하지 않는 거니?"
"나는 민족을 사랑하지 않아. 내가 사랑하는 건 나의 친구야."
하지만 이런 생각은 그녀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믿었던 유대인 친구들에게서 미움을 받게 되고 보통은 되돌릴 수 없게 되기도 한다. 그녀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글이 <뉴요커> 지에 실리게 되면서부터 유대인 사회에서의 따돌림과 협박을 받으며 마지막 공식석상에서 토론을 하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악은 근원적이지 않다. 근원적인 것은 '선'이다."라는 그녀의 말이 맴돌기도 한다. 짧은 시간이었긴 하지만 옳지 않다고 소리지르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싸우자는 그런 곳에서 어느 정도의 청춘을 보냈었다. 지금으로서는 그 일들은 그만둔지 오래지만 적어도 인간관계는 유지했었는데.. 그 사회와 담을 쌓기 시작한 것은 내가 남을 부리고 일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되기 시작했을 때였던 것 같다. 당시에 나는 나를 사회에 의해 착취당하는 피해자라고 받아들였던 것 같다. 어찌보면 이제 이 사회를 그리고 나를 의심하지 않게 될 때부터 악은 평범하게 시작된다. 악은 근원은 악마의 모습이 아니라 사유없음 혹은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자면 현존재의 존재가 아닐 때가 아니겠는가.
[이관 글. 2019-06-23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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