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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매춘’ 발언 논란 류석춘, 이번엔 “전태일 착취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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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보면서 류석춘 교수는 착취가 뭔지 생각도 안하고 글을 쓰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그의 연구실 홈페이지에 가서 한 관련 연구자료를 찾아보려고 했다.

박정희는 노동자를 착취하였는가

라는 제목이 눈에 들었다. 정가는 16,000원이다. 안산다;;;
아무튼 PDF 파일이 있길래 클릭해서 열어봤더니 머리말과 목차만 있었다. 머리말을 보면 다음과 같은 착취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전략) "박정희가 노동자를 착취했다"는 주장이다. 한국이 이룩한 이른바 경제기적은 박정희가 노동(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감행해서 일부 재벌로 대표되는 기업만을 살찌운 착시효과 때문에 느껴지는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류석춘. 2018. " 박정희는 노동자를 착취하였는가." p6. 기파랑.

뭐 대강은 알고는 있으시다. 근데 이걸 반론이라고 하면서 든 예시가

이 주장이 거짓이라는 사실은 굳이 멀리 갈 것 없이, 세계 최고의 노동 강도를 자랑하면서 저발전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북한의 존재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노동을 혹사시키기만 해서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면 북한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경제기적을 만들어야 했다.

류석춘. 2018. " 박정희는 노동자를 착취하였는가." p6. 기파랑.

너무 비약이 심하다;; 옳은 정의에서 잘못된 결론으로 이르는 대표적인 예인 듯. 경제발전은 착취와 상관은 있어도 경제발전이란 결과가 없어도 착취는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노예들이 모든 생산을 담당했던 고대로마가 영토확장 동력이 줄어들던 때가 오는데... 이때부터 로마는 노예공급에 어려움을 겪어 경제적 곤란을 겪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시기에 노예들은 착취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덜 착취해서 경제가 곤란을 겪었나? 대답은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노예노동에 대한 착취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 기사에 나오는 최근에 썼다는 "전태일" 관련 글은 찾고 싶지도 않고 읽고 싶지도 않았다. 전태일재단의 반론을 통해 유추하건데, 착취에 대한 반론으로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지 않았다는 걸 들고 싶었나 보다. 이 예시는 너무 비겁한 것 같다. 반론을 하고 싶어도 힘이 쭈욱 빠져버린다. 예컨대 조신시대의 노비를 크게 나누면 공노비와 사노비인데 보통 공노비는 사노비보다 형편이 좋은 편이다. 그럼 공노비는 착취되지 않는가? 아니다. 공노비도 노비라는 이유로 관아에 대한 노역 혹은 신상(예물)의 공납을 해야 했다. 즉 착취가 일어난 것이다. 단지 형편이 조금 나은 노예와 형편이 어려운 노예가 있을 뿐. 모두 노예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착취란 부등가교환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예라는 걸 소유하고 그걸로 노역을 시키든 공납을 시키든 노예를 팔아넘기든 이로부터 소유자가 (단지 소유했다는 의미로만)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다면 그것은 착취가 된다. 즉 박정희 시대의 "착취"라는 의미는 경제발전이라는 결과로서 유추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 노동자에 대한 불합리성, 곡가제로 인한 농민의 곤란함을 의도적으로 방관하고 무시했다는 점에서 나온 비판이다. 류석춘 교수는 이를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비약을 저지르는 수법을 쓴다. 너무 비겁한 방식으로 말하는 것부터가 마음에 안든다.

[이관 글. 2019-10-12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