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덕후감

영화 [반교 디텐션] 리뷰

현정경 2021. 5. 31. 06:53

게임 [반교 디텐션]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이다. 게임을 안했더라도 충분히 이해에 어려움이 없도록 되어 있다.

게임에서 느꼈던 바와 달리 영화에서 강렬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이 바로 "살아남은 자는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제스 치하에서 일어난 학살을 기억하고 알리는 것. 이를 듣고나니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시가 떠올랐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게임에서는 주인공 방예흔(팡루이신)의 사적 동기에 너무 초점을 맞춘다는 느낌이었다. 여기에서 그녀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잔혹한 결과를 마주하면서 정신이 붕괴하게 되는데 게임에서는 상당히 비극적으로 느껴졌었다. 어쨌든 영화에서 좋았던 점은 게임과의 미묘한 차이점에 있었다. 내가 게임에서는 못봤다고 생각되는 장면이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데, 바로 장명휘 선생이 방예흔에게 말하는 장면이다.

"물론 잘못은 잘못이야. 하지만 너는 (국가에게) 이용당한 거야. 지금 네가 해야 할 것은 위중정을 이곳에서 나가게 하는 거야. 살아있다면 기억할 수 있어. 이 일을 잊지 말고 알려줘."

영화 [반교 디텐션] 中

대만에서 장제스의 평가는 우리나라의 박정희와 같이 상당히 엇갈린다고 알고 있다. 다만 박정희보다 더욱 심하게 독재를 했고 미국의 눈치를 봐야했던 박정희와 달리 장제스는 아예 안아무인이었던 것 같다. 물론 한국의 부마항쟁과 대만의 2.28 항쟁을 생각하면 둘 다 나쁜 놈들이지..

여러모로 우리와 닮은 대만의 비극적인 과거사에 대해 잘 풀어낸 수작이다. 게임도 훌륭하고 영화도 훌륭했다. 엔딩에서 위중정이 방예흔에게 루쉰의 [고민의 상징]을 건네는 장면은 게임보다 더 슬퍼서 엄청 울어자너...

루쉰의 책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한 논문을 통해 그 내용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루쉰은 <고민의 상징>에서 "문예는 인간고(人間苦)의 상징"이란 논단이 갖는 의미를 충분히 긍정하면서 이로부터 더 나아가 "인간의 내재정신 충면 상에서의 고통과 곤경"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상징이 갖는 사회적인 작용을 강조했다.[각주:1]

구문규. 2012. p3.

문학창작에 대한 심성에 대한 이론서로 볼 수 있는데, 물론 대만과 한국 모두 루쉰을 좌익작가로 분류하여 금서로 지정했었기에.. 내용과 상관없이 금서로 취급했던 것 같다. 반교 영화를 보면서 얻은 점은 독재자들이 금서로 만든 루쉰을 "언제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계기라고 생각한다.

[이관 글. 2020/12/02, 12:01 오전 작성]

  1. 구문규. 2012. "루쉰(魯迅)의 문예이론 번역의 의미 고찰―《고민의 상징》의 번역에 주목하여." 한국연구재단 연구과제 결과보고서.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