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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감

페르소나5 스크램블 후기

현정경 2022. 2. 26. 08:37

페르소나 5 스크램블 더 팬텀 스트라이커즈

페르소나 5 스크램블 포스터

페르소나5의 후속작인 스크램블이다. 메멘토스 사건 이후 반년이 지나고나서 본가로 돌아갔던 주인공이 여름방학을 이용해 욘겐자야 르블랑 카페에 돌아오면서 "제일"이라는 수수께끼의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이다. 자. 이런 설명은 다른 자료에서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것이고 대강 내 생각을 끄적여본다.

페르소나5는 전체적으로 흐르는 메세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아마도 "사유하지 않는 대중"이 아닐까 한다. 이 부분에서 한나 아렌트가 떠오르기 쉬울테지만, 좀 더 일본적인 시사에 맞춰서 다시 생각해보니 가라타니 고진의 「윤리21」이 떠올랐다.

가라타니 고진은 이 책에서 범죄자의 부모에게 왜 자식을 그렇게 키웠나? 라며 자살로 이르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를 개탄했는데, 이 비난하는 사회(한국에서는 악플에 비견될 거 같다)가 무서운건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면서도 실체가 없기에 책임을 지게 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가라타니 고진은 "사회"와 "규범"이라는 성격을 먼저 정의하고 바로 이러한 점이 일본의 특수성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피해자의 부모가 분노를 금할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왜 ‘사회’가ㅡ현실에서 저널리즘이ㅡ그 분노를 대변하는 것일까? (p22)[각주:1]

의천도룡기를 보면 부모를 자결하게 만든 문파 인사들의 얼굴을 장무기에게 똑똑히 기억하라고 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누가 누군지 전혀 모르고 모르겠는 집합적인 어떤 의식이 내게 심리적 타격을 주고 죽음에 이르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작품 얘기로 돌아가보자. 스크램블에서 피해를 받은 대중들은 소원을 빼앗기도 사유하지 않는 자가 된다. 그들은 무엇에 혼이 빼앗긴 것처럼 처리되어 있다. 따라서 피해자성이 강조되어 있으나 좀 더 현실적인 형태를 생각해보면 당연히 고진이 지적한 형태에 더 가까울 수 있다. 분노를 대변하여 자신의 스트레스를 푸는 군상들의 형태. 여기서는 EMMA가 그런 역할에 준하며 대중은 자신들의 일상을 좀 더 영위할 수 있는 형태라고 생각한다.

스크램블에서 소원을 빼앗긴 사람들의 일상에 대해 언급된 것이 있다. 그들은 갖가지 자신의 주변에 민폐를 끼치고 있다고 나와있다. 사실은 그 반대일텐데 말이다. 그들은 사회적 의식을 통해 분노를 마음껏 표출함으로써 일상을 잘 살 수 있었다고 하면 어떨까? 창원에 고양이를 바닥에 내던져 취업 스트레스를 풀었다는 사람의 심리가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에겐 당연히 스트레스라는 것이 있고 이는 건강한 방법으로 푸는 방법과 그렇지 않은 방법으로 나뉜다고 나는 생각하는 편인데, 그것의 기준은 반-사회성에 있을 수 있으나 사회적 유대성을 강하게 가지면서 건강하지 못한 것도 있을 수 있다. 고진이 지적한 피해자의 분노를 대변하여 애꿎은 사람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그런 것이겠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나는 스크램블의 "소원을 빼앗긴 대중"이라는 처리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감옥에 갖혀있는 대중들(섀도)을 본 괴도단은 가둬놓는 것이 옳은 것인가? 라고 따질 때 악역(스포일러라 누군지 말하지 않겠다)이 이런 말을 한다.

"갇혀있다고?! 관점이 잘못됐어. 그들은 보호되고 있는 거야"

이런 생각에 이르니 괴도단이 대적해야 했던건 사람들의 소원을 가둔 EMMA가 아니라 어찌보면 스스로 사유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 피해자를 대변한다면서 아무것도 걸지 않으면서 안전하게 애꿎은 이를 비난할 수 있는 저들 집합적 인민들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에 결국 괴도단은 이 사실을 깨닫고 그 인민들을 향해 예고장을 날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친 것일지도 모른다.

-끝-

  1. 가라타니 고진. 2018. 「윤리21」. 윤인로, 조영일 역. 도서출판b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