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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감

니어 오토마타 후기

현정경 2022. 4. 9. 15:08

니어 오토마타의 한 장면. 인류가 사라진 쓸쓸한 도시다.

세일을 하고 있길래 덜컥 구매했다. 그런데 PS4와 스팀 모두 가격대가 같더라. 스팀은 공식적으로 한글을 지원하지 않는다. 별도의 패치가 필요하다. 아무래도 최적화에 대한 이슈도 있었다 하니 스팀판은 불안했다. 패치가 되었다고 해도 내 컴은 똥컴이라.. 별 수 없이 PS4판으로 구매했다. 공식 한글 지원하기도 하고 하드웨어에 잘 최적화되어있을테니 걱정없이 플레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큰 기대는 안했지만 상당한 대작을 만나게 되어 무척 기쁜 마음이 들었던 게임.

자동전투

나이가 들어 이런 손가락 움직임이 많은 액션 게임은 참 힘이 든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라. 난이도를 EASY로 선택하면 자동전투칩을 ON할 수 있는 옵션이 뜬다. (L2버튼으로 간단히 껐다켰다 할 수 있다) 자동전투를 하면 왠만한 탄막은 다 피하게 되고 포드 샷도 자동 록온되어 편안하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

엔딩 시스템

이 게임은 독특한 엔딩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1회차 플레이는 2B로 A엔딩. 2회차는 9S로 B엔딩이며 동일한 시나리오를 다른 캐릭터의 관점에서 플레이하게 된다. 3회차는 9S와 A2의 관점에서 A/B엔딩 이후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여기서는 마지막 전투에서 9S 혹은 A2를 선택함으로써 C엔딩과 D엔딩으로 나뉘게 된다.

미쳐가는 9S를 보고만 있어도 짜증나기 시작하는 C, D 루트 막바지

특히 여기서 가장 호평을 받으면서도 난처하게 만들기도 하는 엔딩이 바로 E엔딩.

"다른 게이머들의 E엔딩을 위해 자신의 세이브 데이터를 희생할 수 있는가?"

눈 앞에서 진짜로 삭제한다

본래 호혜란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정의에 따르면 부채감에 의한 교환이다. 즉 선물을 받았으면 갚아야 한다. 하지만 선물이란 그것을 갚더라도 그 고마운 감정은 지속된다. 하지만 완전히 갚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부모님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어쨌든 호혜란 교감의 지속성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게이머는 E엔딩을 위해 탄막슈팅게임에서 타게이머들의 세이브 데이터로 도움을 받게 된다. 이에 고마움을 느끼고 자신도 세이브 데이터를 희생할만한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 속에서 니어 오토마타의 E엔딩까지 본 이들 사이에서는 독특한 유대의식을 가지게 되었으리라 본다.

전작 [니어 레플리칸트]를 해야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수도 아니고 안해도 된다.

니어 레플리칸트와 니어 오토마타 간에는 수십 세기 이상의 간격이 있다. 굳이 말하자면 전작 [니어 레플리칸트]는 왜 인류가 지구에서 패망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 즉 외전의 위상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 전작이 인간과 마물의 이야기라면 오토마타는 기계생명체와 안드로이드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거시적으로도 큰 관련이 없다.

전작에서 이어지는 인물도 물론 있으나 알다시피 상당한 세월이 흘렀다는 점에서 사실상 전작과 동일한 인물이라 볼 수도 없다. 다만 전작을 한 게이머의 경우 경험하게 될 감성은 안해본 사람과 다르겠지만 말이다. 스토리의 측면에서 보면 게임 내에서 이에 대한 대강의 설명들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해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고 있다.

9S를 도와주고 희생하는 데볼&포폴

나의 경우 전작을 하지 않고 플레이했고 어려움이 크게는 없었다. 다만 데볼&포폴이 9S를 도와주는 동기가 되는 "어떤 죄책감"이 잘 와닿지는 않았는데 크게 신경쓰이지는 않았다. 다만 약간은 궁금했다. 이후 [니어 레플리칸트] 플레이를 유튜브로 따로 시청하게 되면서 대강은 이해는 되더라. 하지만 알고보니 슬퍼지기보다는 참으로 큰 과오였다는 사실 때문에 오토마타에서 느낀 슬픈 기분이 싸악 사라지고 식더라고..

총평

대강의 감상이라면.. 세계관 자체는 암울하고 고독하며 잔혹하다. 이미 인류가 달로 쫒겨난 뒤 몇 세기가 흐른 상태에서, 폐허가 된 지구의 도시를 돌아다니다보면 "고독하다..."는 감정을 떨쳐내기 어렵다. 그만큼 쓸쓸한 세계관과 서사가 담겨있다.

2B : "모든 존재는 사라지도록 설계되어있다. 생과 사를 되풀이하는 나선에 우리는 얽매여있다."

마치 쇼펜하우어처럼 회의적인 2B의 독백으로 게임이 시작되고 있다. 그만큼 회의적이고 잔혹한 세상을 그린 이 작품이 희망이라고는 1도 없이 비극으로 치달을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그러나...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기계생명체들의 생生들을 보다보면 니체적인 "의지"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세상은 잔혹하고 소멸을 향해 달려가며 소멸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며 살아가고 살아내고싶다는 의지를 보이는 삶들. 위의 2B의 독백은 E엔딩에서 포드에 의해 다시 언급되면서 이런 철학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포드 : "모든 존재는 사라지도록 설계되어있다. 생과 사를 되풀이하는 나선에 「그들」은 얽매여있다. 하지만.. 그 윤회 안에서 발버둥 치는 것이 살아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거짓된 것은 소멸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의미한 일에 안주하는 부류들이다. 인류의 멸망 이후 안드로이드들의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려고 하지 못하고 거짓 인류를 만든 요르하 계획이 그것이다. 왜 니체가 이런 경우를 말인last man이라고 표현했는지 게임을 하며 더 와닿는 느낌이 든다. 그런 속에서 B루트에서 요르하 계획의 기밀사항을 우연히 알게 된 9S에게 왜 사령관이 요르하 계획 기밀을 전해주며 "어떻게 할지 네가 결정해"라고 하는지 알 수 있다. 사령관 역시 안드로이드가 처한 이 난관을 새롭게 바꿀 삶의 의미를 2B와 9S가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이유로 C루트에서 벙커가 궤멸되기 전에 2B와 9S를 탈출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사령관은 요르하계획이 소멸까지 계획되었다는 것을 몰랐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게임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 자아가 없다고 생각하던 기계생명체들을 학살해오다가 네트워크를 끊고 공동체를 만드는 기계들을 마주하게 되며 이들이 네트워크와 상관없이 그것을 끊어내기 이전에도 어떤 의지가 있었다는 점에서 고스트가 있다는 거잖아? 기계생명체이자 안드로이드와 평화 공존을 원하는 공동체를 만든 파스칼은 외계인의 지시가 사라지고 나서 자아 형성이 된 것 같다고 추정하고 있다. (놀랍게도 3회차에서 밝혀지듯이 안드로이드의 코어인 블랙박스는 기계생명체의 코어가 근간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생각하니 이전부터 별 생각없이 기계생명체들을 학살했다는 사실이 떠오르면서 상당한 죄책감을 느끼게 하더라.. 이후부터는 나를 먼저 공격하더라도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플레이를 했다. 그렇더라도 자원 부족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결론적으로 나같이 게임을 해도 과몰입하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게임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