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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선형생산모델과 MMI 논의이란 것은 이 글에서 그냥 명명한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이 논의의 시작은 박현웅이 프레드 모슬리의 책 「화폐의 총체」[각주:1]에서 제안된 이른바 '거시-화폐적 해석'(Macro-Monetary Interpretation)에 대한 리뷰로부터였다. 이 글은 이들 간에 이루어진 논의들을 정리해보는 목적에서 작성되었다.

Fred Moseley

MMI란 무엇인가

먼저 모슬리가 새해석과 MMI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 부분[각주:2]을 인용하는 편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나는 마르크스의 이론의 초기 제안에 대한 화폐적 해석이 새해석의 논리적 확장, 특히 Foley의 버전(Moseley 2000[각주:3])의 논리적 확장이라고 생각한다. 새해석은 표준적 해석처럼 실질임금이 아닌 주어진 화폐임금(또는 가변자본)을 취한다. 화폐임금은 가치를 생산가격으로 바꾸는 데 전형되지 않고 유지된다. 그러나, 새해석은 주어진 생산량의 가치로부터 먼저 생산수단의 가치로 산출된 다음 생산수단의 생산가격으로 전환된 일정한 물리적 양의 생산 수단으로부터 도출된 표준적인 방식으로 불변자본을 해석한다. 그렇기 때문에 새해석에는 근본적인 논리적 불일치가 있다.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은 다른 방식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은 초기자본의 두 가지 구성 요소(즉, $M=C+V$)이므로 동일한 방식으로 결정되어야한다. 이 불일치로 인해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데, 총가격-총가치의 균형이 충족되지않고 가치이윤율과 가격이윤율이 일치하지않는다. 그래서 나는 새해석을 확장하여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을 주어진대로 취하고 가치를 생산가격으로 전형하는 데 변함이 없으며 더 많은 방법론적 근거와 훨씬 더 많은 문헌적 증거를 유지한다. 이런 식으로, 새해석의 논리적 불일치가 제거되고 “전형문제”도 제거된다. 나는 나의 해석을 “새로운 새해석New New Interpretation”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생각했지만 “거시-화폐”는 더 [적합한] 설명이다.[각주:4] [대괄호는 인용자]

Moseley, Fred. 2017. ibid. pp10.

즉 MMI란 불변자본 $C$와 가변자본 $V$의 결정을 서로 구분하지 않고 단일한 체계 내에서 비용가격의 재전형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이런 주장은 사실 보르드키비치(1907)[각주:5]의 비용가격의 재전형 문제를 풀면서 전형논쟁이 촉발되었던 해당 논의 자체를 무의미하다고 하는 것이라 하겠다.

왜 비용가격의 재전형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모슬리[각주:6]가 제시한 간단한 예시를 확인해보자. 먼저 가치텀으로 나타낸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의 합인 $M$을 정의해보자.

$K=C+V$

여기서 모슬리는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에서 그러하듯이 $C$와 $V$가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인다taken as given"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막대를 위로 취한 형태로 변경한다.

$K=\bar{C}+\bar{V}$

모슬리는 이에 대해 주석 5[각주:7]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을 보완하고 있다.

지적한 바와 같이, "실제"에 의해,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이 각각 생산수단과 생계수단의 실제 장기균형가격(즉, 생산가격)과 일치한다는 것이 내가 말하려는 의미이다. 즉, 표준적인 해석에서 투입물의 장기균형가격(투입물의 가치)과 일치하는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의 양[이라는 통속적인 정의와] 대조적이다.[각주:8] [대괄호는 인용자]

Moseley, Fred. 2017. ibid. pp19

새해석은 순생산물의 가치에 한해 총계가 일치한다고 본다.

$N=mL$

모슬리가 주어졌다고 보는 불변자본의 가치 $\bar{C}$를 추가하면

$P=\bar{C}+N$

가 된다. 불변자본 역시 화폐단위로 일관되게 적용되도록 정의되기 때문에 모슬리의 체계는 단일체계에 해당한다. 단지 차이는 새해석의 경우는 순생산물에 한해 이런 정의를 한다면 모슬리는 불변자본에 대해서까지 적용한다는 점이다.

"실제" 장기균형가격의 의미 (19/12/31 추가)

여기서 모슬리가 말하는 "실제 장기균형가격actual long-run equilibrium prices"이 $K$와 일치한다는 말은 가장 논쟁적이고 MMI의 중요한 요점이라고도 생각이 든다. 여기서 "실제"라는 말은 어떤 것에 대조하여 이런 말을 한 것일까? 현실에서의 경제행태를 지칭한다기보다는 (이런 식의 말은 보통 의미가 없다. 마르크스가 한 말처럼 사회과학은 추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로 선형생산모델의 특성과 대조적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표현된 것이다. 선형생산모델은 장기균형가격, 즉 생산가격과 투입물의 가치가 동시에 결정된다. 하지만 MMI는 $K$가 먼저 결정되고 따라서 가치이윤율 $\frac{S}{K}$이 먼저 결정된다. 따라서 모슬리는 $K=C+V$와 같은 변수로 이루어진 식이 아니라 $K=\bar{C}+\bar{V}$와 같은 형태로 이러한 가치가 미리 "주어졌다고 취급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선형생산모델과 MMI

박현웅(2019a)은 모슬리의 책에 대한 리뷰 논문[각주:9]을 통해 모슬리의 부정적인 생각과 달리 투입-산출 선형생산모델이 MMI의 특징을 재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

반대로 MMI의 투입-산출 모델을 구성하여 모슬리의 통찰력 중 상당 부분을 재현할 수 있으며 MMI에서 발생하는 어려운 문제 중 일부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각주:10]

Park, Hyun Woong. 2019a. ibid. pp126.

만약 MMI를 선형생산모델에 통합하려면 어려운 난관이 하나 있다. 투입물의 재전형이 필요없다는 입장에 서면 가치 이윤율과 생산가격 이윤율은 동일하게 된다. 그러나 선형생산모델에서는 가치텀은 이윤율에 대해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점을 먼저 지적해야겠다. 선형생산모델의 이윤율이란 것은 투입계수행렬과 소비재바스켓의 행렬의 합 $M=A+bl$에 의하여 0보다 큰 페론-프로베니우스 고유값이 이윤율이 되고 이에 대응하는 양의 고유벡터인 산출량벡터 $x$로 체계화된다.[각주:11] 이런 이유 때문에 선형생산모델에서 가치텀은 이윤율에 대해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는다.

따라서 박현웅은 모슬리의 이윤율 프로세스를 부차적인 의미로 두는 데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는 모슬리를 설득하긴 힘들 거다. 실제로도 모슬리의 응답[각주:12] 역시 이 문제에 대한 언급으로 한 챕터를 소비하고 있었다.(Moseley. 2019 : pp237-239)

Park은 그의 모델의 이윤율은 임금뿐만 아니라 MELT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의 모델의 이윤율은 임금률 (및 물리적 투입-산출 계수)에만 의존한다. 따라서 Park의 MMI 재구성은 실제로 이윤률의 결정 요소 인 노동가치론을 제거하여 MMI에서 필수적인 것을 잃게 한다. 재구성은 파괴적인 것으로 밝혀졌다.[각주:13]

Moseley, Fred. 2019. ibid. pp238.

선형생산모델에는 애초부터 가치텀이 이윤율에 대해 어떤 역할도 하지 않고 실물단위에 대한 행렬의 페론-프로베니우스 고유값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을 모슬리는 노동가치론의 관점에서 선형생산모델에 적대적인 당위성을 찾고 있기도 하다.

모슬리의 응답에 대한 반박글이 박현웅(2019b)[각주:14]에 의해 다시 제출되었는데, 여기서 MMI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r^{M}=\frac{S}{\Sigma{F_{j}}}$[각주:15]

$P=F(1+r^{M})$

여기서 $P$는 부문별 생산가격 $P_{1},P_{2},...,P_{n}$을 원소로 하는 행벡터이며 $F$는 $F_{j}=C_{j}+V_{j}$인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의 합을 원소로 갖는 행벡터이다. 이로부터 다음의 확장된 투입계수행렬 $M$을 나타내고 있다.

$M=\begin{Bmatrix}mu_{ij}\end{Bmatrix}=\begin{Bmatrix}\frac{x_{j}}{x_{i}}(a_{ij}+b_{i}l_{i})\end{Bmatrix}$

이로부터 소비재의 생산가격에 대한 체계

$M=X^{-1}(A+bl)X$

과 명목임금 체계

$M=X^{-1}AX$

과 같이 서로 다른 접근법을 명시적으로 다룰 수 있다. 여기서 $X$는 부문별 산출량을 대각상 원소로 갖는 $diag(x_{1},x_{2},...,x_{n})$ 대칭행렬이다. 이 논문은 가변자본(노동력의 가치)을 소비재의 생산가격체계로 혹은 명목임금체계로 다룰 경우에 대한 산출량의 해가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논의 역시 모슬리에게는 부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모슬리에게 산출량은 미리 주어진 것일테고 따라서 산출량의 해는 그에게 관심없는 변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MMI는 동시적 결정체계가 아니다. 박현웅이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 주석을 원문 그대로 인용해보자.

This conclusion on the sequential determination is different from Park (2019), where it was argued, without proof, that once the equality between the input and output prices is explicitly specified the profit rate and the prices of production, defined at an industry level, will be determined simultaneously in the MMI. Equation (7) was what I had in mind when making this argument. If M is taken as given, then from equation (7) P and rM can be determined simultaneously from the Perron-Frobenius theorem. However, the problem here is that M which is defined as X-1(A+bl)X—see equation (5)—cannot be taken as given; otherwise it would imply X is given since A, b, and l are taken as given, which, as shown earlier, consequently makes F to be determined endogenously within the model by these given parameters; this however contradicts contradicts one of the essential characterisitcs of the MMI that F is given

Park, Hyun Woong. 2019b. ibid. pp132의 주석10.

그는 여기서 모슬리의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을 "주어진 것으로 취급한다"는 주장에 대해 확장된 투입계수행렬 $M$을 주어진 대로 취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주어진다고 하면 $F$가 내생적으로 결정되어야 하는데 이런 특성은 MMI의 특성과 모순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아직 나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나 이것이 선형생산모델로 MMI를 구성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로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MMI는 좀 극단적인 단일체계이기 때문에 실물단위 $A+bl$ 행렬을 쓴다는 것 자체를 거부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합성의 측면에서 MMI의 단점을 알 수 있기도 하다. MMI는 부문별 혹은 단위별 가치-생산가격 모델로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시적으로 비용가격의 재전형이 없다는 "정의"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형생산모델의 단죄

그러고보니 잠깐 딴소리를 하고 싶어졌다. 마르크스경제학 내에서도 선형생산모델에 대한 적대적 태도들은 꽤 오래된 것이기도 하다. 모슬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선형생산모델 자체를 "스라파 모델"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이 체계 자체가 스라파의 본래의 모델과 같이 실물단위에 의존적인 것이기 때문이고 가치텀이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 거의 없다. 모슬리는 이러한 차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내 책의 주요 요점 중 하나는 마르크스의 이론은 Sraffian 이론과 근본적으로 다른 논리적 방법. 주요 차이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Marx의 이론과 Sraffian 이론) : 노동가치론 vs 비-노동가치론, 화폐 필수성 vs. 화폐 비-의존, 논리 체계로서의 화폐자본의 순환 vs 투입-산출 프레임워크, 거시 대 미시, 순차적 결정 및 동시 결정. 그러므로 나는 현재 마르크스 이론에 대한 지배적 인 Sraffian 해석이 마르크스의 이론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라고 주장한다.[각주:16]

Moseley, Fred. 2019. ibid. pp237.

선형생산모델이 노동가치론의 특성을 잘 재현해주는 모델인가 또는 이원체계(가치와 가격)로 구분된 선형생산모델이 일반화된 조건에서도 정합적일 수 있는가에 대해 오래전부터 많은 비판들이 있어왔다. 스티드만(1977, p81)[각주:17], 새뮤엘슨(1971)[각주:18], 클라이만(2006, p79)[각주:19], 사사키(2017)[각주:20] 등등 많은 마르크스주의자 혹은 비-마르크스주의자의 비판을 받아왔다. 사사키 류지는 '동시적 결정' 모델인 선형생산모델이 마르크스경제학을 망친 주 요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서사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모델은 모델일 뿐이다. 예를 들어 마경에 "선형생산모델주의파" 같은 파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모델을 쓰는 게 어떤 점에서는 편리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커뮤니케이션에서도 훌륭한 도구이기도 했다. 이런 유용함들은 선형생산모델에 의해 왜곡된 피해를 넘어섰을 거라고 생각한다. 새해석이 등장하기 전 적어도 80년대 이전에는 가치를 실증연구할 수 있는 게 산업연관표를 쓰는 것 외에는 방법 자체가 아예 없었다. 이런 시절에는 분명 이 모델이 유용했고 마경학자들은 그에 의존하는 방법 외에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비-동시적 결정과 관련된 다양한 이론들이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에서 제시되는 모델들이 더 많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속에서 더 좋은 모델이 만들어지면 자연스럽게 선형생산모델은 쇠퇴할 것이다, 그러니 잉크와 종이와 지력을 투입해서 논문을 산출해가며 "선형생산모델은 맑스적이지 않아!"라고 정치질 하면 나무에게 너무 미안한 일 아닐까? 그런 정치질보다 더 좋은 모델을 많이 개발하는데 연구력을 쓰는게 마르크스경제학의 발전에 더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결국 모델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특수한 가정에 입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론에 대해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한계를 의식하면서 그 유용함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은 해롭기보다 이득이 더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케인스(1936)[각주:21]의 거시경제 이론과 이를 존 힉스(1937)[각주:22]가 모델링한 IS-LM 모델은 케인스의 이론을 한정적으로 재현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교육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경제학자들에게 현실의 거시경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른 거시경제 모델이 개발되고 발전하면서부터 IS-LM 모델은 쇠퇴하고 있으나 여전히 직관적이라는 유용함 때문에 교육에 사용되고 있다. 이런 유용성에 대해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모델에 대한 적대적인 입장들은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마경이 망한게 선형생산 모델 때문이라는 식의 목소리가 굉장히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주류경제학이 이론없이 모델만 있는 경우와 달리, 마르크스경제학은 이론과 모델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이런 측면은 오키시오(1986: 국역본 p11)[각주:23]가 지적하듯이 마르크스주의 자체가 경제현상 뿐만 아니라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회구성체를 아울러 지양의 운동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런 학풍과 특성을 고려하여 더 유용한 연구자의 태도가 무엇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결론

두 분의 논의는 어찌보면 선형생산모델로 MMI를 재구성할 수 있는가가 더 중심적인 논의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마르크스의 본령과 다르고 심지어 해롭기까지 하더라도 분명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모델에 대한 개발 연구는 실증연구자에게 더 폭넓은 대안을 마련해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질문을 야기하기도 했다. 단일체계에서 특히 많은 입장인데 마르크스의 본령으로 돌아가자는 태제들이다. 이것도 어찌보면 마르크스 무오류설로 돌변할 위험성이 다분하다. 거기에다 비용가격의 재전형을 마르크스가 동의했냐 아니냐 정도의 논의를 마르크스 사후 1세기가 지나서도 반복되고 있는 걸 보면 이런 논쟁들이 정말 앞으로의 마경의 미래에 있어 "중대한" 사안인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았다. 그런 속에서 모슬리의 MMI라는 새로운 접근법은 이런 재전형의 문제에 있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혁신적인 시도라고 생각한다. 좀 더 많은 검토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든다. 모슬리의 연구를 좀 더 면밀히 공부해봐야겠다.

[이관 글. 2019-12-29 작성]

  1. Moseley, F. 1993. Money and Totality: A Macro-Monetary Interpretation of Marx’s Logic in Capital and the End of the “Transformation Problem.” Leiden: Brill Publishers. [본문으로]
  2. Moseley, Fred. 2017. “Money and Totality: A Macro-Monetary Interpretation of Marx’s Logic in Capital and the End of the ‘Transformation Problem.’” International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46(1):2–21. [본문으로]
  3. Moseley, F. 2000. “The New Solution to the Transformation Problem: A Sympathetic Critique.” Review of Radical Political Economics 32, no. 2: 282–316. [본문으로]
  4. I consider my monetary interpretation of the initial givens in Marx’s theory to be a
    logical extension of New Interpretation, especially Foley’s version (Moseley 2000). The New Interpretation takes the money wage (or variable capital) as given rather than the real wage as in the standard interpretation; the money wage remains invariant in the transformation of values into prices of production. However, the New Interpretation continues to interpret constant capital in the standard way—as derived from given physical quantities of means of production, first as the value of the means of production and then transformed into the price of production of the means of production. Therefore, there is a fundamental logical inconsistency in the New Interpretation— constant capital and variable capital are determined in different ways. But constant capital and variable capital are the two components of the initial money capital (i.e., M=C+V), and thus they should be determined in the same way. This inconsistency leads to other problems: The gross price-value equality is not satisfied, and the price rate of profit is not equal to the value rate of profit. So I extend the New Interpretation to take both constant capital and variable capital as given and remain invariant in the transformation of values into prices of production, with much more methodological grounding and much more textual evidence. In this way, the logical inconsistency of the New Interpretation is eliminated, and the “transformation problem” is also eliminated. I thought about calling my interpretation the “New New Interpretation,” but “macro-monetary” [본문으로]
  5. Bortkiewicz, L. V. 1907. “Zur Berichtigung der grundlegenden theoretischen Konstruktion von Marx im dritten Band des „Kapital.” Jahrbücher für Nationalökonomie und Statistik 89.1 (1907): 319-335. [본문으로]
  6. Moseley, Fred. 2017. op. cit. pp11. [본문으로]
  7. Moseley, Fred. 2017. ibid. pp19 [본문으로]
  8. As pointed out, by “actual” I mean quantities of constant capital and variable capital that are equal to the actual long-run equilibrium prices (i.e., prices of production) of the means of production and means of subsistence respectively; i.e., as opposed to quantities of constant capital and variable capital that are equal to hypothetical long-run equilibrium prices of these inputs (the values of these inputs), as in the standard interpretation. [본문으로]
  9. Park, Hyun Woong. 2019. “A Review of the Macro-Monetary Interpretation of Marxian Labor Theory of Value *.” MARXISM 21 16(1):125–49. [본문으로]
  10. To the contrary, by constructing an input-output model of the MMI, I show that many of Moseley’s insights can be replicated and that some of the difficult issues arising from the MMI can be addressed. [본문으로]
  11. 페론-프로베니우스 정리와 이윤율의 관계에 대해 궁금한 분은 필자의 또다른 을 참고할 것. [본문으로]
  12. Moseley, Fred. 2019. “Reply to Park’s Review of Money and Totality.” MARXISM 21 16(2):236–45. [본문으로]
  13. Park states that the rate of profit in his model depends on the MELT as well as the wage rate; but that this is not true. The rate of profit in his model depends only on the wage rate (and the physical input-output coefficients). Therefore, Park’s reconstruction of the MMI actually eliminates the labor theory of value as a determinant of the rate of profit and thus does lose something essential in the MMI. Reconstruction turns out to be destruction. [본문으로]
  14. Park, Hyun Woong. 2019. “An Input-Output Reconstruction of the Macro-Monetary Interpretation of Marxian Theory.” MARXISM 21 16(3):117–39. [본문으로]
  15. 모슬리(1993)의 (M11)식 [본문으로]
  16. One of the main points of my book is that Marx’s theory is based on a fundamentally different logical method from Sraffian theory. The main differences are the following (with Marx’s theory first and then Sraffian theory): labor theory of value vs. no labor theory of value, money essential vs. no money, the circuit of money capital as the logical framework vs. a physical input-output framework, macro priority over micro vs. only micro, and sequential determination vs. simultaneous determination. Therefore, I argue that the currently dominant Sraffian interpretation of Marx’s theory is a fundamental misinterpretation of Marx’s theory. [본문으로]
  17. Steedman, Ian. 1977. Marx after Sraffa. Schocken Books. [본문으로]
  18. Samuelson, Paul A. “Understanding the Marxian Notion of Exploitation.” Journal of Economics Literature, Vol. 9, No. 2. [본문으로]
  19. Kliman, Andrew. 2006. Reclaiming Marx’s Capital: A Refutation of the Myth of Inconsistency. Lexington Books. [본문으로]
  20. 사사키 류지 (2017). 새뮤얼슨의 함정: 현대 ‘마르크스 경제학’ 비판. 마르크스주의 연구, 14( 4), 66- 91. [본문으로]
  21. Keynes, J. M. 1936.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Springer. [본문으로]
  22. Hicks, J. R. 1937. Mr. Keynes and the" classics"; a suggested interpretation. Econometrica: journal of the Econometric Society, 147-159. [본문으로]
  23. 置塩信雄. 1986. 現代資本主義と経済学. 岩波書店. [국역본]현대자본주의와 경제학. 최종민 역. 2012. 화산미디어.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