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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쌀이 포장재에 규격화되서 5키로 10키로로 판매하던 시절이 아니던 때, 동네마다 쌀 가게라는 것이 있었다. 쌀은 다들 거기서 사곤 했다. 한 되에 얼마 뭐 이런 식. 검은봉지에 담아서 무게를 달아 팔았었던 걸로 기억난다.
이게 그렇게 옛날도 아닌게.. 적어도 20년 전까진 저런 가게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것을 도시에서 혹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먹었는진 모르겠당. 어쨌든 그걸 사와서 쌀통에다가 넣어 보관하는 거다. 그 당시에 쌀 상품의 규격화된 단위는 한 가마이다. 한 가마라는 단위는 kg으로 치면 80kg이라고 한다. 1
어쨌든 어르신들은 쌀을 사러 갈 때 "쌀 팔러 간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어르신들이 이런 말을 하면 젊은 사람들은 "쌀을 왜 팔아?"로 되묻곤 했을 것이다. 이것이 사는 걸 판다고 표현하는 거라고 어르신들이 설명해줬다면 매우 큰 의문점이 들게 될 것이다. 사는 것인데 "판다"고 표현하는 방식이 "쌀"에만 국한된 표현이라는 점이 흥미롭지 않은가? 왜 그럴까? 어르신들은 그 답을 모를 것이다. 그들도 자신의 웃어른들이 하는 말을 따르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를 확인하려면 꽤 먼 과거로 거슬러 가야 한다.
문헌적 등장 시점과 생산력과의 관계
이런 표현이 국어사전에 있는지 찾아보니 "쌀판다"는 말은 옛날 문헌 상 16세기부터 등장한다고 한다. 이때는 조선이 농업생산력이 발달하며 잉여생산물이 발생하기 시작한 즈음이다. 2
그 전부터도 조선통보와 같은 화폐의 형태들이 있긴 하였으나 옷감과 곡물이 보편적 등가물로써 지배적이었다. 그것이 잉여생산물의 증대로 시장거래가 활발해지면서 통보가 활발하게 사용되어 보편적 가치형태 3의 역할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4
엽전을 판다=쌀을 판다는 같다?
(22/08/09 추가)예컨대 현대에 화폐 생산자는 오직 중앙은행 뿐인데, 이와 달리 쌀이 화폐의 역할을 한 시대에서 쌀 생산자들이란 상품 생산자일 뿐 아니라 화폐 생산자이기도 했다. 우리에게 "사는 것이란" 화폐를 팔아 상품을 사는 것이 지배적인 관념이라면, 당시의 소농민들에게 "사는 것이란" 쌀을 팔아서 다른 상품을 사는 것이 지배적인 관념이었다.
이런 과도기적 상황에서
쌀을 산다= (일반적 가치형태인) 쌀을 (화폐형태인) 엽전을 팔아 산다 = 엽전을 팔아 쌀을 산다 = 쌀(가치형태)을 팔아 쌀(가치형태)을 산다 = 쌀을 판다
가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농경업자가 화폐 생산자였던 시절 이들에게는 뭘 사러 시장에 간다는 행위 자체가 엽전을 팔러 가는 것이 아니라 쌀을 팔러 가는 것이었다. 화폐의 역할이 엽전으로 이동되면서 엽전을 팔고 쌀을 사는 형태로 바뀌었지만 어쨌든 "화폐를 판다"는 형태에는 바뀐 것은 없다.
(22/08/09 추가)물론 이런 설명은 "쌀을 판다"란 말이 왜 조선 후기부터 등장하느냐에 대해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해보인다. 그 이유는 잉여생산물이 적고 생산력이 낮았던 시대에는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했을 것이고 이런 시대에는 쌀 상품이 화폐의 역할을 했더라도 매우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조선 후기부터 수리시설이 발달하고 이앙법이 저변화되면서 생산력이 높아지고 잉여생산물이 많아지면서 시장 거래가 활성화되는데, 이때부터 사람들이 차차 시장과 화폐의 역할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그것이 화폐(쌀이든 엽전이든)를 판다는 형태로 이해했을 것이라는게 내 생각이다.
가치형태론으로 설명
이는 마르크스경제학에서 말하는 "가치형태론"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모시 A개 = 쌀 X개 삼베 B개 = 국밥 C개 = |
그러므로 이 형태에 의해 비로소 상품들은 실제로 가치로 서로 관련을 맺거나 상호간에 교환가치로 나타나게 된다. 5이러한 보편적 등가물로서의 쌀이라는 가치형태를 마르크스는 "제 3형태"라고 보는 것이 그것이다. 다른 상품들이 자신의 가치를 쌀 X개라는 사용가치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러한 형태가 이른바 "제 4형태"인 일반적 화폐형태로 아래와 같이 대체된다.
모시 A개 = 엽전 X개 삼베 B개 = 국밥 C개 = |
결론
하지만 화폐제도가 제대로 정착한 건 조선 말기이므로 이전까지는 쌀과 옷감이 더 강력한 일반적 가치형태였을 것이다. 수 세기동안 이러한 대체가 이루어지면서 그 문화적 흔적이 현대의 어르신들에게도 정취가 남은 것은 아닐까.
- KDI 경제정보센터. https://eiec.kdi.re.kr/publish/naraView.do?cidx=6154 : 2021-08-29 14:58 [본문으로]
- 네이버 국어사전. https://ko.dict.naver.com/#/entry/koko/9bbd6907b42446bfbbf376478f9633fa 접속일시 : 2021-08-29 15:01 [본문으로]
- 다른 상품들의 가치를 표현하고 어떠한 상품과도 교환되는 상품. 즉 정부가 독점발행하는 형태 이전에 상품이면서도 통화의 역할도 하였던 옷감, 곡물 등의 상품을 말한다. [본문으로]
- 보편적 등가물이 보편적인 가치단위가 되는 것을 말한다. 금, 은과 같은 경우를 의미한다. [본문으로]
- Marx. K. (2004). 자본론 1권 상. p85. 김수행 역. 비봉.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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