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한국전쟁의 전사를 다룬 경우는 보통 드문데.. 이번에 와다 하루키의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정전 70주년인 2023년에 출판되었었다. 1 이번 기회에 읽게 되어 무척 기뻤다. 더군다나 이 책은 소련이 해체된 후 공개된 비밀문건들을 상당수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볼만한 자료가 많다.
우선 이 책을 통해 다음의 질문들을 해소할 수 있었기에 이를 중점으로 리뷰를 작성해보고자 한다.
- 스탈린은 남침을 불허해왔다가 왜 입장을 바꿨는가?
- 미국은 북한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나?
- 왜 정전협정 중에도 전쟁을 멈추지 않았나?
- 정전협정 당사자로 한국은 왜 참여하지 않았나?
참고로 이 책은 이외에도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다. 위의 물음은 개인적으로 정리가 필요했던 질문이었기도 하여 선택된 것일 뿐임을 참고바란다.
스탈린은 왜 입장을 바꿨는가?
스탈린이 초기에 북한의 남침을 불허해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가장 큰 이유는 소련의 입장에서 당시 미국의 개입 가능성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인용자 : 스탈린과 김일성의 면담 상황) 스탈린 : 남침은 불가합니다. 첫째. 북조선인민군은 남조선군에 대해 확실한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적으로도 열세입니다. 둘째. 남조선에는 아직 미군이 있습니다. 전쟁이 나면 그들이 개입할 것입니다. 2
물론 이는 미군이 분단 당시 한반도에서 철수하기 전의 일이다. 그렇지만 철수가 완료된 시점이라 하더라도 미군이 다시 돌아와 참전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당시 일본은 미군이 장악하고 있었고 주둔하고 있었다.
스탈린과 소련공산당은 이 단계에서 미군의 개입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북한 지도부의 무력 해방안을 확실하게 반려했다. 3
스탈린과 소련공산당의 이러한 판단을 들어보면 당시 북한 지도부인 김일성과 박헌영은 미국의 개입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기에 남침을 계획할 수 있었던 것일까? 스탈린이 툰킨 공사에게 김일성에게 물으라고 한 항목 중 하나가 미군의 개입 가능성에 대한 김일성의 평가를 보고한 내용인데 이를 살펴보면
"조선에서 내전이 발생하면ㅡ김일성과 박헌영의 견해에 따르면ㅡ남측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군과 중국군을 파견하고 미국은 바다와 하늘에서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인 고문은 전투 행동의 조직에 직접 참여할 것이다" 미군의 직접적 개입은 없을 거라는 김일성 등의 인식이 여전히 일본군과 장제스군의 파견이라는 전망과 결부되어 있었다. 4
즉 북한 지도부는 미군의 참전 가능성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다. 그리고 이와 결부되어 일본군의 지원을 더더욱 경계했고 이는 중공 지도부에서도 동일하게 신경쓰던 일이다. 다만 하루키의 의견처럼 이는 희박한 가능성을 과대평가한거다. 이미 일본군부는 해체되었고 다시 재조직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텐데 말이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북한 지도부가 미군의 참전 가능성을 걱정하는 소련을 설득하기 위해 일부러 낙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어쨌든... 이랬었던 스탈린이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이다. 시티코프 북한 대사에게 김일성에게 전달하라는 스탈린의 50년 1월 30일 회신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김일성 동지의 불만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가 획책하고 있는 남조선에 대한 이런 대규모 사업에는 대규모 채비가 필요하다. 너무 큰 위험이 없도록 조직해야 한다. (...) 이상을 모두 김일성에게 전달하고, 나는 이 건으로 그를 지원할 뜻이 있다는 말도 전해달라. 5
계속된 불허 이후에 갑자기 남침을 허가하는 입장으로 바뀐 것이다.
이런 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미국에 대한 조건의 변화가 아닐까 한다.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핵심적인 환경변화의 정세는 두 가지로 생각된다. 첫째는 핵보유국의 등극 둘째는 미국무부의 방위선 발표에 한국과 타이완이 배제된 사건이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 핵보유국은 소련이 되었고 당시 이 사건은 공산국에서도 상당한 센세이션을 주었던 사건이었는지 대서특필하였고 그와 함께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이 선포되었다. 그만큼 이 사건은 미국에 대해 소련이 군사적 열세에서 우세로 돌아서게 된 조건으로 변화된 것이고 공산체제국들의 지도부들을 흥분시켰을 것이라 보인다.
1950년 1월 12일 딘 애치슨 미 국무부 장관은 내셔널프레스클럽 연설에서 미국이 그은 "불후퇴 방위선" 안에 오키나와, 필리핀 등을 포함시켰으나 한국과 대만은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내용을 알렸다. 브루스 커밍스는 이것이 상대를 끌어들일 의도가 있었다고 평가했으나 북한이 이를 청신호로 판단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군의 직접개입 가능성을 과소평가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6
다시 말해 상황이 소련에 유리한 정세로 변화되었기 때문에 남침을 허가했고 북한을 적극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은 남침을 알고 있었는가
미국이 전야 상황에서 이를 알고 있었는가에 대한 와다 하루키의 정리는 다음과 같다.
그래서 전야의 미국의 움직임은 기민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관심은 오랫동안 미국이 북한의 동태를 포착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방관했는지에 집중됐다. 알았지만 중시하지 않았다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7
분단 후 전쟁발발 전에 미군이 모두 한반도에서 철수한 바 있다. 그때 한국에 남았던 미국 정보수집기관인 KLO는 첩보활동을 계속 하면서 보고해왔는데 공개된 문건을 보면 북한의 군사적 동태를 면밀히 보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하루키가 인용한 미 극동군 총사령부 G-2의 코멘트를 보면
6개 정규 사단의 존재는 이미 파악됐다. 그리고 병영은 거의 38도선부터 39도선 사이의 벨트 지대에 위치한다. (...) 이는 공격을 위해서는 2 대 1의 우위가 필요하다는 이론과 일치한다. (...) 그들은 확실히 병력을 2배로 늘리려 하고 있다. (...) 북한이 침공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돌고 있으며 (...) 침공이 임박했다고 보지 않으며 공공연한 침공 타이밍을 장기 예측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 군사 작전에 가장 알맞은 기상 여건은 지나갔다. 8
라며 아직 침략이 무르익지 않았다고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하루키는 CIA에서도 동일한 의견을 보였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의견은 소련이 직접 참전을 원하지 않았다는 점과 중공군의 참전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북한이 단독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란 평가를 했다.
즉 움직임을 알았지만 실제로 북한이 단독으로 남침을 시작할 것이라고는 예상을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불쑥 드는 생각은 그런 군사적 움직임을 보이는 와중에 미군을 모두 철수 시켜야 했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전쟁은 결국 시간 문제였을 것이다. 미국이 전쟁을 막으려고 노력할 가치를 한반도에서 찾지 못했다는 것이 진실일 듯 하다.
왜 정전협정 중에도 전쟁을 멈추지 않았나?
이 질문은 사실 최근에 일어난 전쟁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에서 보여진 정황 때문에 관련하여 궁금했던 점이다. 이들은 모두 협상 중에도 전쟁과 공습, 포격을 멈추지 않았다. 어찌보면 전술적으로 기본적인 프로세스가 아닌가 싶다.
스탈린은 협상을 하면서 전쟁을 한다는 생각이었다. 9
즉 협상을 하는 시점에도 계속 유리하거나 불리한 조건들이 수시로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전쟁을 하면서 협상을 하는 것이 보통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미국은 정전협정에 유리함을 얻으면서 협상테이블에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평양에 대한 공습을 멈추지 않았다. 당시 소련이 직접 참전을 한 게 바로 공군이었다. 미군과 소련은 제공권을 가지고 사투를 벌였지만 후반에 이르러서는 미군의 제공력에 장악되었고 이로 인해 평양에 자주 공습을 때릴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박헌영이 유엔에서 평양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미군을 비판하는 발표를 했는데 이는 협정 중이었던 중국과 북한을 위기에 빠뜨릴만한 일이었다. 그것은 미국이 협상 중인 북한이 빨리 정전을 하고 싶어한다는 시그널로 인지하며 이로부터 협상이 미국에 유리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과정을 보니 상당히 고난한 일이었던 것 같다. 일반적인 측면에서 협상이 짧아질수록 전쟁에 의한 피해는 줄어들겠지만.. 말이 쉽지 국가 간의 체면도 있기 때문에 협상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걸 보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의 협상도 상당한 기일이 걸리지 않을까 싶다. 한국전쟁도 정전협정에 2년이 넘게 걸렸으니 말이다.
정전협정에 왜 한국은 당사자로 참여하지 않았나?
정전협정 과정에 한국은 참여하지 못했는데, 이는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이 너무 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실 이승만은 대외적으로 정전협정 반대를 표명했었다. 그러므로 이런 태도로는 정전협정에 나설 수 없었을거다. 결국 마지막에는 한국 지도부의 서명이 필요했으므로 미군은 지속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이 참 순탄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이 "너무 강했다"는 표현을 햇는데 이게 그냥 과했네 같은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미국에게 신뢰를 잃게 만들만한 돌발행동이라거나 극단적인 정치행보로 이어진 수준이었다.
이는 다음 날 이승만 대통령이 저지른 무모한 행위의 동기에 대한 사전 설명이었다. (...) 부산, 마산 등 4곳의 포로수용소에서 북한인 포로 2만 5천 명이 일방적으로 석방된 것이다. 이는 정전협상 타결을 방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유엔군 사령부는 이것이 한국 정부 상층부에서 계획된 것이라고 발표하고 항의했다. 공산 측 반응이 걱정됐다. 10
하지만 역사는 합목적적으로 항상 흐르지는 않는게... 이승만 대통령의 이런 똘끼(?) 덕에 어찌보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될 수 있는 분위기로 이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와다 하루키가 인용하는 미국 내부의 문건을 보면 한국을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빠뜨렸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이승만의 강경한 북진통일론 태도 때문에 정말 미국과의 관계가 위험했던 시기가 자주 발생했다.
밀레스는 미국 청년 100만 명이 한반도로 가서 2만 4천 명이 죽었고, (...) 이것은 "단결의 원칙을 충실히 지키려고 우리가 치른 희생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 단결의 원칙을 깨려 하고 있다. "그렇게 행동할 권리가 당신에게 있는가?" 분열의 길은 파멸의 길이며 "공산주의자에게 대승리를 안겨 줄 것이다." (...) 밀레스는 어떻게든 이승만을 설득하려고 했다. (...)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이승만이 지금과 같은 정책을 추구하는 한, 미국으로서는 철수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솔직한 진실을 그에게 알려야 할 때가 됐다는데 동의했다. 11
결과적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통해 한반도 전쟁의 억지력을 획득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을 보다보면 이 사람이 국가의 수장이 맞나 싶을만큼 그다지 현명해보이지 않았다.
결론
와다 하루키가 참조하는 문건들은 보통 소련의 문건들이 많다. 북한 지도부와 중공 지도부와 회담을 하거나 대사와 이야기를 한 것들을 보다보면 한국전쟁이 "한국" 전쟁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실상은 북한군과 한국군과 중공군은 아바타였을 뿐이고 소련군과 미군의 싸움 아니겠나 싶다는 것. 물론 한국전쟁에 미군은 직접적으로 참전했고 미군용사들이 많이 희생했지만 이 전쟁에 어떠한 의미도 얻지 못했다. (와다 하루키는 미국에 있어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으로 보는 즉 금기어가 되었다고 전했다) 그렇기에 한국전쟁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소련이 아니었을까?
그건 그렇고 전쟁을 막을 수 있었는가? 하는 물음도 생겼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분단 당시 남한과 북한에서의 민의와 정치인들의 통일 의지는 상당히 극심했던 것 같다. 해방 후 한반도의 정치 지도자들이 공산체제와 자유주의체제로 각각 대표되어 서로를 없애려고 안달이 났었고 남한 내에서도 정치테러가 자행되었던 "해방정국"을 생각해보면 미국과 소련이 분단을 하지 않았어도 내전과 쿠데타의 연속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실제로도 전쟁 전부터 계속 국소적인 내전은 있어왔다. 침략을 통한 통일은 김일성만 외친게 아니라 이승만도 대외적으로 외쳤던 것도 꽤 재밌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한국전쟁을 통해 북한과 한국, 일본 내부정치상황, 중국과 타이완의 대응, 소련과 미국의 정치상황 등을 왠만큼 다루면서 한국전쟁에 대한 관점이 매우 넓어지게 하여 즐거운 독서 시간이었다.
- 와다 하루키. 2023. 「한국전쟁 전사.」 남상구, 조운수 번역. 청아출판사. (전자책) [본문으로]
- 와다 하루키. 2023. 1장-북 대표단의 소련 방문 [본문으로]
- 와다 하루키. 2023. 1장 - 모스크바의 계속된 불허 [본문으로]
- 와다 하루키. 2023. 1장 - 북의 의지 표명 [본문으로]
- 와다 하루키. 2023. 2장 - 스탈린의 승인 [본문으로]
- Bruce Cumings.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 Liberation and the Emergence of. Separate Regimes. 1945-1947. Princeton University Press. 433-435. (와다 하루키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 와다 하루키. 2023. 2장-전야의 미국 [본문으로]
- 와다 하루키. 2023. 2장-전야의 미국 [본문으로]
- 와다 하루키. 2023. 5장-소련의 정전 중개 움직임 [본문으로]
- 와다 하루키. 2023. 7장-타결로 [본문으로]
- 와다 하루키. 2023. 7장-미국의 설득 [본문으로]
'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BBC 북한 내부 주민 인터뷰를 본 뒤 단평 (0) | 2024.08.27 |
---|---|
이번 북러조약에 대한 간단논평 (0) | 2024.06.20 |
인공지능과 기본소득 논의는 자본의 공공성에 눈을 돌린다 (0) | 2024.05.24 |
식대 2700원. 가장 악랄한 착취형태 (0) | 2024.05.01 |
22대 국회의원 선거의 화두는 복수 (0) | 2024.04.12 |